45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탁자 위에 놓인 공력의 서에 떨어졌고.
순간 양피지에서 환한 빛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 허기가 몹시 지면서.
[포식의 권능 발화]
또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공력의 서 (전설 등급)을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모든 스텟 +11,200강화(A등급)을 흡수합니다.]
“전설이라! 스텟이 +11,200이라니! 만 단위로!”
섬광이 일었다.
파팟.
역시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방어력 358,270]
[특수 스킬 대지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발동 시 물리 공격력 +20,625% 추가: 마법 공격력 +9,900)]
“물리에 이어 마법 공격력도 추가되다니.”
[내구도 899/1,000]
[공력의 서 (전설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910,760]
*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들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300 획득!]
[현재 포인트 +759]
역시나 속성을 지닌 채 현실로 그대로 나타난 템들. 이번엔 두 개다!
아! 그리고 거래 자격 포인트가 이제 759이다.
나는 환호했다!
“드디어 거래 상점을 개설할 수 있어!”
그런데 거래 상점은 임의의 영역에서만 가능한데.
도대체 임의의 영역이라는 곳은 어디인가?
드디어 거기를 갈 수 있는 것인가.
“정말 궁금하네!”
물론 그다음에는 내 정보창이 궁금해져 외쳤다.
“정보창!”
[이형도]
[레벨 5,327]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14,323 힘 25,020 민첩 47,515
마력 26,309 지혜 28,412]
“미쳤다! 레벨이 한 번에 수천이 올라 5,000대에 이르다니!”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고유 – 기류 발사]
[고유 – 현재 방어력의 7제곱(유일 등급)]
[고유 – 대지의 힘]
[고유 – 케논의 마법화]
[고유 – 공력의 묘미]
〈카르마타파: 24조 카르마타파는 그대에게 협조를 할 것입니다.〉
“공력의 묘미는 무슨 뜻인지……? 무슨 음식도 아니고.”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 등급에서 (S등급으로 승격)
체력 상승 58,300%
손목 근력 상승 47,440%
도약 능력 상승 29,530
물리 공격 상승 71,425%
비행 능력! (추가 순간 이동)
공력의 묘미!(추가 관념의 기술)]
“패시브 스킬 퍼센트 수치가 거의 수만 업이라.”
그나저나 카르마타파의 수치 24조이다. 게다가 이제 나에게 협조한다고?
도대체 카르마타파의 정체가 뭐지? 어쨌든 지금 당장 레아와 아서에게 가 봐야 해!
* * *
그로부터 잠시 후.
숲길을 지나 둔덕 아래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아!”
나는 당장 그리로 뛰어 내려갔고, 레아와 아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놈에게 폭행당하고 있는 끔찍한 광경이 들어왔다.
“멈춰!”
그 순간.
푸른 빛 전사, 그놈이 동작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나는 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인제 그만하시지.”
그는 피식 웃었다.
“보이지 않길래 어디서 뒤졌거나 도망간 줄 알았더니, 내게 나타나? 설마 너도 이 두 연놈과 함께 저승이라도 가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그건 인정해야겠군. 의리 하나는 좋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의리 때문은 아니다.”
“의리 때문이 아니라니?”
“다른 이유가 있지.”
“다른 이유라? 후후, 도대체 그게 뭔지 내게 알려 줄 수 있겠나?”
나는 잠시 레아와 아서를 바라보며 다시 놈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흠, 얘기는 해 주겠다만은 과연 네가 그 뜻을 알지 모르겠군. 나조차 아직은 그런 감정이 뭔지 헷갈리는 중이니까.”
“도대체 뭔 헛소리야! 어차피 죽을 놈, 그게 대체 뭔지 알려 주기나 하지.”
“그럼 말하지. 그게 말일세, 그러니까, 그게… 워낙 묘한 감정이라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일단 이렇게 시작하지. 그건 사랑일 수 있다고.”
순간 놈이 마구 웃었다.
“하하하, 사랑? 하하, 사랑이라고.”
“웃을 줄 알았다. 하기야 나도 전에는 그런 반응을 했겠지. 그러나 적어도 네놈에게 사랑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그 사랑이라는 게 뭔지 어디 한번 떠들어 봐라! 그리고 나는 내 방식대로 여기, 이 반반한 년을 실컷 사랑하고 성적 노리개로 가지다 놀고 죽여 버릴 테니까. 그런 사랑도 사랑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에는 나 역시 너와 같은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게 말이야, 조금 다른 식으로 생각하면 그렇더라고. 그러니까 그게 당장 확 느껴지는 그런 싸구려 감정이 아닌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 아냐, 지금 이 표현보다 훨씬 더 적당한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가방끈이 짧아 당장 답은 줄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네놈 앞에서 벌벌 떠는 저 여자 말이야. 나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울고 있다네.”
“울다니?”
“그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뭔 개소리!”
“그래, 개소리일 수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때로는 그런 개소리가 가끔 나에게 감동을 줄 때가 있거든. 이를테면 나 같은 감정이 메마른 놈도 끙끙 앓게 만든 것, 아니 그 정도면 이해가 가는데 아예 내 속이 뒤집히고 토할 정도로 괴롭다고나 할까.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녀가 죽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 그런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하나의 새로운 진실을 찾게 되었다. 그게 바로 사랑일 수도 있다는 것.”
놈은 내 얘기를 듣다가 갑자기 검을 들어 다가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별의별 놈에게 강연을 듣는 것도 아니고. 잠시 정신이 돌았나. 에휴! 다음부터는 타르켄 전사들 만나면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려야지!”
그는 검으로 내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홱!
순간.
“억!”
놈의 왼팔이 그대로 절단되어 흙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아아악, 내 팔! 아아.”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놈이 팔이 떨어지기를 바랐고, 그게 현실로 되어 버렸으니. 그때 놈이 외쳤다.
“지, 지금 관념의 기술을 쓴 건가!”
[관념의 기술.]
이게 바로 관념의 기술이던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포식의 권능으로 공력의 서를 먹고 새로 추가된 이 힘. 설마 이 정도로 황당하리만큼 강할 줄은 몰랐다.
더구나 놈도 관념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아는데. 게다가 베른 종족 제5색 푸른빛 전사, 초인계에서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고강한 전사이다. 그런 그를 나는 너무도 손쉽게 관념만으로 팔을 잘라 버렸으니…….
“아아.”
놈은 한쪽 팔을 잃고도 다른 한 손으로 다시 공격해 왔다.
“개새끼가 감히.”
순간.
툭!
이번엔 그의 목이 달아났다.
역시 관념의 기술만으로 그를 즉사시킨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 더 고통을 주며 서서히 죽이려 했지만 당장 그 옆에 레아와 아서가 거의 초죽음에 이르렀으니 그들부터 먼저 살펴봐야 했다.
레아와 아서는 내가 푸른빛 전사를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는지 매우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레아! 아서! 괜찮아.”
아서는 멍하니 뭐라 중얼거렸다.
“내,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레아는 눈물을 흘렸다.
“4,444호님, 무사하셨군요. 흑.”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녀는 내 안위부터 챙겼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주며 말했다.
“레아, 늦어서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
그녀는 내 품 안에 꼭 안겼고, 그제야 안도가 되었는지 정신을 잃었다. 아서는 그런 나를 보며 투정을 부렸다.
“네 눈에는 레아만 보이고 나는 보이지 않냐! 내가 더 심각하게 다치었다고. 봐 봐, 계속 피를 토하잖아! 컥컥! 아이고, 나 죽겠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공력의 힘을 사용해 각혈부터 멈추게 하였다.
과연 관념의 기술로 이런 치료도 가능한지 궁금했고.
* * *
산들바람이 이는 이곳, 능선 자락에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그 좁은 길로 한 청년이 등에 검을 메고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후 선 정상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한 중년인이 그 청년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호! 어서 오게나, 레기온!”
청년은 그에게 머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고,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제사장님.”
“하하, 자네 안색이 좋아 보이는군. 그동안 초인계 여행은 잘했나?”
“네, 그럭저럭.”
“여행이 만족할 만큼 즐겁지는 않았겠지. 원래 목적에 베른 종족을 사냥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니 말일세. 그것도 다른 타르켄 전사들은 신관이 두 명이 붙어 보호할 책임이 있는데 자네는 굳이 혼자 가겠다고 해서.”
청년은 무슨 이유인지 다시 환하게 웃었다.
“후후, 혼자가 편합니다.”
“하기야 타르켄 전사 1호이니 당연히 혼자가 편하겠지. 아무튼 자네를 또 보게 되어 영광이네. 5,000명 중 당당한 서열 1위인 레기온!”
그때 레기온은 바로 앞의 거대한 신전 건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를 보자고 한 것이 바로 이 신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는데요.”
“아, 내 정신 좀 보게나.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문 앞에서 기다리게 했으니. 당장 안으로 들어감세.”
잠시 후.
신전 테라스에 제사장과 레기온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현재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네. 뭐, 그전부터 이 초인계는 함락 직전에 놓여 있었지만 그래도 자네 같은 타르켄 전사들 덕분에 최후의 저항이 가능했던 거지. 하지만 현재 베른 종족의 주력 부대는 제1색 흰빛 전사들과 제2색 노랑 빛 전사들이 대부분인데 결국 그 위의 제3색과 4색의 주황빛 전사, 초록빛 전사들이 연이어 초인계에 들이닥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네.”
그 말에 레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미 제3색과 제4색의 베른 전사들과 마주쳤고, 대결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오호, 그랬었군. 그렇다면 그들의 전투력은 어땠는가?”
“그다지 강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겠지. 타르켄 1호인 자네라면.”
“그나저나 아르엠 군주님과 초인 마법사 수장 카시아스 님은 잘 계신지요.”
그러자 제사상 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상부는 초상집 분위기라네. 조금 전 설명했듯이 베른 종족의 중급 전사들이 이곳 영토에 들이닥치니 극도로 긴장하고 초조한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레기온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론에게 물었다.
“저를 보자고 하셨는데, 무슨 일 때문에?”
“아! 그렇지! 서론이 너무 길었군. 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감세. 내가 자네를 이곳으로 불러온 이유는 한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기 때문일세.”
레기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소개라니요? 누구를?”
그러자 론이 크게 말했다.
“이보게. 이리로 나오시게나.”
그때 벽면 모퉁이로부터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회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는 이들이 있는 탁자 가운데로 다가왔다.
론이 그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곧바로 레기온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지드라네. 인사하게.”
레기온은 손을 내밀어 악수하였다. 그런데 지드라는 사내는 무슨 이유인지 레기온의 악수를 거부했다.
레기온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을 내렸고, 이에 론이 다소 미안한 얼굴로 레기온에게 말했다.
“이 사람 성격이 원래 이러니 자네가 이해하게나.”
하지만 레기온은 상대가 예의를 무시하고 그냥 의자를 확 잡아끌어 털썩 앉아 버리고는 시선도 허공을 향하니 기분이 더 상할 수밖에 없었다.
“뭐죠? 이 사람?”
론은 오히려 그런 상황이 더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