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음식이 아닌 것 같은데.”
“뭐가?”
“남자가 배낭에서 꺼낸 것 말이야.”
“음식이 아니면 뭐 다른 거겠지. 어디 보자 검은 봉투에 동그란 게… 공 같은데. 후후, 공놀이나 하러 갈까?”
잠시 후.
토레스의 눈빛이 번뜩였다.
“공도 아냐.”
“그럼 뭐냐?”
“머리.”
“머리?”
“네가 직접 확인해 봐.”
그래서 나는 그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빨간 물이 흐르는 머리칼 아래 드러난 얼굴 모습.
순간!
내가 말하기도 전에 우주선 여기저기서 술렁였다.
“사람 머리 같은데!”
“뭐야! 갑자기!”
그때! 여기저기 경악에 찬 음성들이 들려왔다.
“엑스 님 같아.”
“뭐라고!”
“저 머리가 엑스 님의!”
“헉! 그럼 목이 잘린 거라고!”
“아. 안 돼!”
나 역시 멍했다. 그저 차원 신기루인 줄 알고 평화롭게 감상 중에 있었는데, 저 남자가 배낭에서 꺼낸 것이 엑스의 목이라니. 우주선 전체는 완전 패닉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나는 애써 진정했고, 다시 그쪽을 살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가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
이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그 와중에는 우리에게 충격을 더해 주는 장면은 그들이 식사를 할 때 엑스의 머리의 살을 뜯어서 마치 잘 익은 고기처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는 것이다.
내 관심은 그런 엽기적인 광경보다 정말 그들이 이쪽 우주선을 인식 못하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때였다.
우주선 밖으로 뛰쳐나가는 크리처 한 무리들, 그들은 자신들의 추앙적인 존재 엑스의 죽음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공격하기 위해 돌진했다.
“죽여!”
“복수하자!”
그야말로 단 두 명을 공격하기 위해 수백 명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파팟!
달려들던 크리처들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허공으로 뛰어오른 자는 그대로 그곳에 머물렀으니, 마치 영상 필름이 정지 동작을 보여 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 두 명의 남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이를 걸어서 이곳 우주선 쪽으로 향해 왔다.
서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하게 보였는데.
순간 그들이 사라지는가 싶었고.
파팟.
동시에 이곳 성루 앞에 순간 이동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클레이토스, 고마워. 이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 줘서.”
여자가 말하자 사내는 다소 불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가린샤, 너랑 한 약속 때문이 아냐. 죽여 봤자 별 의미가 없어서지.”
“아무튼. 이곳에서는 말썽 피우지 마.”
“말썽이라니? 내가 애도 아니고. 나는 어른이라고. 내가 스스로 결정짓고 알아서 할 줄 아는 성인 말이야.”
“그럼 잘됐네. 일단 이곳을 방문했으니 어른답게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겠지.”
사내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반항만 하지 않는다면, 뭐.”
여자는 이쪽에 있는 우리를 보더니만 가벼운 목례를 취했다.
“안녕하세요. 아마 여기 지휘관분들인가 보죠?”
…….
…….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갑자기 사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1초 내로 대답하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 버린다!”
그때 가르시아가 앞으로 나섰다.
“내가 이곳의 수장이요.”
“수장? 그게 무슨 뜻이지. 대장이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화를 푸시고 하고 싶은 말씀을 저에게 하여 주기 바랍니다. 그대를 손님으로서 맞이하는 기회를 주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가르시아는 노련했다. 상대가 너무도 강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처음부터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순식간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선수를 친 것이다.
상대는 바로 엑스의 머리를 자른 장본인이 아닌가.
“손님? 후후, 내가 왜 손님이야. 이곳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내가 왕이로다.”
그때 옆에서 여자가 뭐라 나무랐다.
“클레이토스, 말투가 철없는 애 같아.”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예법을 지켜.”
“예법?”
“전에 배웠잖아. 지휘관이 되려면 갖추어야 할 덕목. 이를테면 지금 이 상황에서 네가 방문한 이곳의 왕에게 일단 ‘초대해 주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해.”
순간 그는 피식 웃었다.
“풋, 초대는 개뿔. 이게 네 눈에는 초대로 보여? 여기 왕이란 자 빼고 다들 무기를 들고 우리를 둘러싸 언제든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는데.”
여자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후~ 그거야 우리가 두려워서 그런 거지. 만일 저들이 진작부터 공격했으면 싸움판이 벌어졌을 거야.”
클레이토스는 어이없다는 듯.
“싸움판? 웃기는 소리.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겠지. 제길, 그냥 죽이자.”
여자 가린샤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약속은 지켜. 나는 네 아버지로부터 다짐을 받고 너를 여기 데리고 온 것이라고. 지휘관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반드시 그에 걸맞은 수준에 오르게 하겠다고 말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이 적당한 것 같아. 네가 앞으로 이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 아랫사람 소중한 것도 배우고 리드하는 법, 통치나 여타 업무들도 말이지.”
그 말에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하기야, 죽인들 그것도 심심한 일이지. 너랑 단둘이서 할 일도 없고. 젠장, 그럼 그러자. 그런데 내가 이곳의 왕이라 치고 처음부터 뭘 해야 하지?”
그때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우리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적대적인 그 눈빛들, 이해해요!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 왕 행세를 하려 하니 저 같아도 화가 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들이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현실 직시를 하기를 바라요. 그래야만 너무도 끔찍한 불상사를 막을 수 있거든요. 저야 여기 클레이토스의 대변인 자격으로 이렇게 조근하게 말하지만 그는 여차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기에 그 점이 무척 걱정이 되긴 합니다.”
“…….”
“그렇기에 결론부터 말하죠. 우리는 강합니다. 무척이나. 그대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만일 마음만 먹는다며 이곳은 불과 몇십 초 만에 초토화가 될 것이고, 그대들 모두는 소멸당할 것입니다. 지금 한 말은 사실입니다. 절대 거짓이 아니죠. 만일 그게 의심스러워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걸 끝이죠.”
“…….”
“하지만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여기 내 친구인 클레이토스를 왕으로서 받든다면 그대들을 절대 해치지 않겠다고 제가 약속할게요. 사실 그는 지휘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배우기 위해 여러 학습을 경험 중에 있거든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그가 왕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며 여러 지혜를 얻어 통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말이죠. 이상입니다.”
* * *
며칠 후.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자에게 그 힘을 위시할 수 있을 권리가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약자들이 강자에게 무릎을 꿇는 법이 이렇게도 쉬운 걸까.
지난 며칠 동안…….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 점에 대해 아직도 나는 곰곰이 생각하는 중이다.
일단 나 자신부터 꼼꼼히 짚고 따져 보자.
첫 번째로 내게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대답은 ‘아니올시다.’
나는 일전의 꿈에서 케논 검을 먹었고, 고대 마계 신체를 지녔기에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변모했다.
더군다나 무려 1,000레벨이 오른 상태에서 그 모든 스텟 수치가 1만에 달했고.
솔직히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부분은 과연 그 힘의 측정이 어느 정도인가 모른다는 것이다.
케논 검만 하더라도 그 정확한 스킬 내용이 없었다. 다만 권능이 권능을 누르는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세부적으로 내가 어떤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전을 경험해 봄으로써 알아 가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엑스가 살아 있을 때 그와의 대적을 통해 힘을 가늠하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 클레이토스라는 자가 다짜고짜 이곳에 와서는 왕이 된다고 하였을 때 잠깐 호승심을 부릴 뻔도 했다.
그러나 놈이 그저 왕 행세만 하고 이곳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고대 마계인의 신체를 지녔지만 그조차 아직 뭔가 활성화된 것 같지도 않으니 섣불리 판단하고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현재 왕 행세를 하는 작자가 그의 여자 친구인 가린샤의 조언을 받으며 나름대로 성군이 되려고 엄청 노력한다는 사실.
물론 크리처들에게는 엑스를 죽인 원흉의 대상으로서 곳곳에 반란의 조짐이 보이기는 한다.
바로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라고나 할까.
사실 그들이 일어나면 나 역시 가만있지는 않을 터. 엑스를 제압한 클레이토스와 겨루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에 오히려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과연 얼마나 강한 존재이기에 엑스를 죽였을까.
그리고 저렇게 당당하게 이 우주선을 지배하는 것일까.
사실 내가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있는 것은 바로 클레이토스의 연인 가린샤 때문이다.
보기보다 괜찮은 성격, 매우 이성적이며 차분하고 사리 분별이 정확하다.
마치 공주 아레나처럼…….
더 웃긴 건 요즘에 그 둘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많이 친해졌다는 것.
지금도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와중에 둘의 담소가 아까부터 이어지고 있었는데.
“공주님이라서 그런지 지성미가 넘쳐흐르네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가린샤 님이야말로 항상 지혜롭고 자애롭습니다.”
“그런데 오늘 식사 준비는 혼자 하셨다고요?”
“예, 한번 해 봤어요. 입맛에 맞을지 걱정이 되긴 해요.”
정말 아레나는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 역시 아버지 가르시아의 성품을 닮았든가, 아니면 그 여우 같은 노련함을 닮았든가.
그녀를 나름 아는 나에게는 저것도 하나의 연기로 보였다.
바로 클레이토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물론 가린샤는 언제나 그렇듯 시식 전에 음식을 클레이토스에게 갖다 바친다.
그가 그걸 먹어 보고 그 기분에 따라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고.
“별로 맛없어. 나는 채소를 곁들인 것 따위는 질색이거든.”
탁!
포크를 식탁에 던지듯 했다. 그러면 언제나 긴장감이 흘렀다. 물론 오늘도 함께 식사하는 우주선의 고위층들.
바로 가르시아, 나승구, 박병수 아저씨는 그의 그런 행동이 못마땅해 보이지만 애써 참느라 고생한다.
한데 어째 나승구는 표정 관리가 좀 불안해 보이는데.
“시발! 줄 때 처먹어, 이 새끼야!”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가. 그가 드디어 폭발을 한 것이다.
와장장창!
급기야 나승구는 꾹꾹 참아 눌렀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식탁보를 집어 들어 완전 밥상을 엎어 버렸다.
“너 이 새끼, 나와. 당장 나와 대결하자!”
이에 클레이토스는 그만의 전매특허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가린샤에게 시큰둥하게 물었다.
“가린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
그리고 항상 그를 꾸짖는 그녀의 반응.
“네가 문제의 발단을 만들었잖아. 그러니 참아.”
“나더러 새끼라는데?”
“아직도 파악 못했어? 그러기에 지난 며칠 동안 시간을 두고 수하들 성격을 찬찬히 살피라고 그랬잖아. 저분의 성질은 욱하길 잘하지. 그래서 아들뻘 같은 네가 음식 투정하니 화가 나지 않겠니?”
“젠장. 그래도 나는 왕이잖아.”
“그건 아니지. 왕의 되려고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이라 보는 게 맞지.”
“빌어먹을! 그래도 왕에게 저렇듯 불경을 떠는데 나더러 가만있으라고!”
이에 가린샤는 잠시 심사숙고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뭘 조언해 줄 게 없는 것 같아. 어차피 너는 왕이니까 네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게 좋겠어.”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클레이토스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이미 홀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승구에게로 향했다.
“다시 말해 봐. 나더러 뭐라 욕했지?”
나승구는 자신의 등 뒤로부터 대검을 뽑아 들고는 클레이토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