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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30화 (30/143)

30화

“어디 갔어!”

“놈을 찾아!”

이원룡의 다급한 외침에 헌터들이 눈을 까뒤집고 살폈지만 귀신처럼 그 흔적이 온데간데없었다. 그때 바로 이원룡의 뒤쪽에 파팟, 하고 나타난 인형.

엑스였다.

순간 이동으로 나타난 엑스가 어느 사이 그의 등을 공격했다.

파팟.

“악!”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대장.

“대장님!”

이미 늦었다.

엑스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보다. 전면전이 아닌 후방 기습 공격. 하지만 내 눈에는 긴장하여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마치 전투가 너무 쉽게 끝나면 재미없다고 생각해서 세운 작전인 것 같았다.

대장을 잃은 헌터들을 향해 손을 들어 강기를 발사한다.

파파파팟.

“악!”

“컥!”

나머지 헌터들의 너무도 허무한 죽음.

픽픽 쓰러지는 그들 사이로 엑스가 천천히 걸어간다.

풀썩!

풀썩!

그리고 손을 거두었다. 이미 싸움은 끝났다는 듯.

전멸이 분명했다.

쉰 명 중에 단 한 사람도 생존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홀론의 각성자들.

비록 저들 B등급 헌터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의 지휘권을 빼앗고 횡포 아닌 횡포를 부렸지만 분명 같은 편, 그것도 직속상관들, 정부의 지시를 이행하러 온 공식적인 파견자들이었다. 당연히 극도의 긴장이 흘렀다.

물론 나승구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이 개새끼가!”

그가 앞으로 돌진하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그의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우리 상대가 아냐!”

“뭐야! 이 새끼! 당장 비키지 못해!”

“당신이야말로 비켜, 내가 상대할 거니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 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그다음은 나도 어쩌지 못한다.

어쨌든 나는 이왕 각오한 상태, 그대로 엑스에게 검을 들어 돌진했다.

“내가 대신 상대해 주마.”

“…….”

엑스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눈동자조차도. 그저 고개를 갸웃하는 정도랄까.

파팟!

내가 고공 검술을 펼치기도 전에 그의 강기가 내 가슴을 강타했다.

“욱!”

나는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지면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컥! 컥!”

선혈이 흘러나왔다.

눈앞이 가물가물.

나는 그 와중에도 내 뒤쪽에 있는 대원들이 먼저 생각났다.

“다들 가만있어요. 나처럼 개죽음당하기 전에! 컥! 컥!”

그때 누군가 달려와서 나를 안았다.

포근한 느낌. 그 특유의 싱그러운 향기.

“형도 님!”

아레나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와서 내 팔을 부축했다.

“형도! 괜찮아?”

토레스…….

이것들이 갑자기 왜?

언제부터 이리 친했다고.

“아아.”

현기증에 나는 점점 의식을 잃어 갔다. 그리고 저벅저벅 들려오는 발소리.

미세한 파공음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엑스가 틀림없었다.

마지막 내 숨통을 끊어 놓으려고 확인 사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일으켜 줘.”

“안 돼요, 흑.”

아레나의 흐느끼는 소리.

다 죽어 가기 직전에조차 나는 궁금했다. 그녀가 왜 우는지. 무엇 때문에.

그리고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

【 마계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의식이 돌아오려 한다. 설마 또다시 꿈속으로 들어온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나는 죽었으니까. 분명 죽었다.

그런데 왜 말소리가 들려올까.

침대 같은 것 위에 놓인 푹신함. 귀에 익은 음성.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흑.”

아레나……?

“나 역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뭐야, 저 목소리는… 설마…….

“엑스 님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죽일 가치도 없었지요. 너무 약해서.”

“그, 나머지 헌터분들에게도 선처를 베푸신 것에 대한 고마움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먼저 싸움을 포기했으니 굳이 그런 자들을 해칠 이유가 뭐가 있겠소.”

세상에, 지금 아레나와 엑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저 둘이?

나는 눈을 떠 보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마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의식은 또렷한 듯 저들의 대화가 더욱 생생하게 들려왔다.

“어차피 그대들은 내 손이 아니라도 죽을 운명이죠.”

엑스의 말에 아레나가 되물었다.

“죽을 운명이라니요?”

“머지않아 이곳 초공간에 그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이라니요?”

“도망자들이죠. 저처럼. 절대 악계라는 감옥에 갇혀 영원히 생을 마감했어야 할 자들인데, 시공간의 틈이 생겨 탈출할 기회가 생긴 거죠. 나 역시 그곳에 갇혔던 죄수지만 내 무리들을 이끌고 이곳 초공간으로 숨어든 것입니다. 내가 내 부하들을 죽인 이유는 바로 곧 나타날 그들의 만행이 너무도 잔인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차라리 내 손으로…….”

엑스란 놈이 원래 저렇게 말이 많았던가.

“엑스 님, 제가 보기에 그대는 이곳 우주선에서조차 감히 손끝 하나 대지 못할 정도로 너무도 강대한 분인데 지금 그 누굴 겁낸다는 것이 언뜻 납득이 가지 않네요.”

“제가 강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에 비하면 하급 중의 하급 전투력을 지닌,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마법사이죠. 절대 악계라는 감옥에는 전 차원에서 가장 흉악하고 악명 높은 자들만 잡아서 모아 놓은 곳이죠. 거기에서는 저야말로 쥐새끼처럼 숨어 사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

“그리고 그곳을 탈출했지만 운이 없게도 그들이 이곳으로 피신해 올 테니 그대들은 아주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내가 당신들을 죽인들 살린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어차피 시한부 삶을 산다고 여기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저 이 자리에 있는 거죠.”

엑스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지금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정말 그 자신이 나약하다는 말을 저렇게 뻔뻔이 할 수 있던가.

“엑스 님, 그렇다면 당신이 두려워하는 그들을 잡아서 절대 악계에 가둔 자들이 누군지 궁금하군요.”

“은하 전사들이죠.”

“은하 전사라니요?”

“천체의 질서를 바로잡아 세우는 영험한 분들 말입니다. 저 역시 제힘만 믿고 까불다가 그들에게 붙잡혔고.”

“후~ 이제 보니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군요. 세상에는 엑스 님보다 강한 존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존재들이 수두룩하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 온전히 살아 있을 때 집단 자결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게 싫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물론 그건 원하지 않겠지요. 눈앞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미리 겁을 집어먹고 삶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나는 분명 그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생생하게 느꼈지요. 그들을 또 마주하기 전에 그냥 죽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슥.

엑스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단도로 내 목을 스스로 베어 버릴 것입니다.”

“엑스 님. 그, 그건 옳지 않아요.”

“후~ 과연 그럴까요?”

“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뭔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얘기해 주니 일단은 검을 거두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고 그들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면 그 즉시 자결할 것이니 더 이상은 말리지 말아 주시오.”

정신병자가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저런 과대망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본인이 강하지 않다면 그가 말한 그들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대체 그게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지.

빌어먹을! 분명 허풍이 맞을 것이다. 애초 아레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고도의 수작.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그녀의 동정을 끌어내려 하는 바람둥이의 전법.

빌어먹을 새끼!

아아, 다시 정신이 가물거린다. 피곤하다. 더 이상은 이 현실이라는 곳에 적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꿈속에서 황제로 지내며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진짜 소원이다.

지금 잠이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깊이.

아주 깊이.

그곳에서 영원히…….

황제의 삶을 계속 구가하며.

* * *

온몸이 나른했다.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그때 들려오는 음성.

“황제여, 이제 깨어날 때도 되었구먼. 후후, 너무 주무시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당신은!”

내 앞에 아른거리는 한 인물. 어디서 본 듯한데…….

“누구시더라?”

“후후, 나요. 나 모르겠소? 대지의 신.”

순간 깜짝 놀랐다.

“그, 그대는!”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오.”

“내가 왜 여기에?”

“그대가 잠든 사이 데려왔지요. 지난번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되어 정식으로 대접을 하기 위해 순간 이동을 시킨 점, 미리 사과하리라.”

순간 이동이라?

“여기가 어딥니까?”

“나카스니아 대륙이오.”

“나카스니아 대륙…….”

“이제 보니 내 이름을 아직 말해 주지 않았구려. 앞으로 대지의 신 대신에 나를 카르소라 불러 주시오.”

“…….”

꿈속에 들어왔더니 바로 나카스니아 대륙으로 초대되어 이곳에 있었다.

“내 아내는 천계에 볼일이 있어 지금은 없다오. 그녀 역시 지난번 그대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지 못해 무척 아쉬워합니다.”

그녀는 내게 천공 날개를 준 바로 천공 여신.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말했다.

“나는 덕분에 대지의 검과 천공 날개를 얻게 되었는데, 제가 더 고맙지요.”

카르소는 환하게 웃었다.

“하하, 뭘 그런 소품 가지고 고마워하기는요.”

“소, 소품이라니요?”

“사실 그것들은 여기에서는 애들 전쟁놀이 하는 데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하오. 그래도 인간 세계에서는 뭐 쓸 만하다면 쓸 만하겠지만 그대의 신분이 황제인데 이거 너무 초라한 선물을 주어 그동안 내내 마음이 걸렸소.”

“…….”

그게 뭔 얘기인가.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방금 전 얘기 내용 말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푹 쉬다 가시오. 그대를 허락 없이 데려온 것이 다소 경솔하거나 무례하게 보일 수 있으나 내 그대에게 이곳의 멋진 풍경과 여러 문화를 보여 주기 위해 진심으로 초대한 것이니 아무쪼록 양해를 부탁드리오.”

나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그리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 여기가 말로만 들어왔던 나카스니아 대륙이란 말인가. 상상 속에나 나올 법한 그 모든 영물들이 모여 사는 곳, 그리고 그들을 동물 부리듯 하는 신계…….

일단 이 안은 대리석의 거실 같았는데, 바깥 풍경을 슬쩍 바라봤다.

구름 위에 봉우리만 올라온 산들. 한눈에 봐도 그 옛날 설화집에서 읽은 신선들의 세상 같았다.

“황제여, 사실 이곳은 고도가 다소 높은 천공의 경계에 위치한 지역이오. 나는 대지의 신이기에 이렇게 높은 곳은 싫어하지만 아내가 좋아하기에 내가 양보한 거요. 바로 지난번 그대가 말해 준 그 충고 덕분에 이제는 완전 새사람이 되었소. 하하, 내가 살다 살다가 인간에게 교훈을 얻을 줄이야. 어디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살다 살다 내가 대충 뱉어 버린 말을 듣고 신적인 존재들이 단번 깨달음을 얻어 부부 사이가 좋아질 줄이야 꿈에서조차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자! 황제여. 그대는 이곳에 온 몇 번째 안 되는 인간인데, 과연 뭐부터 구경하면 좋아하겠소.”

그 전에 나는 궁금했다. 아니, 확신이 필요했다.

“이곳에는 신들도 사나요?”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었다.

“당연하오. 그대 인간들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을 터요. 바로 이곳 나카스니아 대륙에 대한 전설을 말이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아직 인간 세상에서는 이곳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으니, 그저 머나먼 꿈속의 세상과도 같은 그런 곳이라 상상만 할 뿐입니다.”

“그럼 그거 잘됐구려.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이왕 하는 손님맞이를 확실하게 해 드리겠소. 자! 외출 준비부터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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