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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29화 (29/143)

29화

“빌어먹을! 외계 종족들하고 협상을 할 때 그리 경솔해서야. 더 끌어낼 건 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협상이라고! 이 사람아!”

시시콜콜한 것까지 트집을 잡아 따진다.

사실 그 협상 덕분에 던전 폐쇄라는 아주 획기적인 성과를 이루어 내지 않았던가.

“E등급 헌터들치고는 그런대로 노력 좀 했군. 하지만 그게 좀, 서툰 것 같기도 하고……. 하기야 아마추어들이 그렇지, 뭐.”

비아냥거림도 아주 수준급이다.

이원룡은 고작해야 나이 내 또래의 스무 살 정도랄까.

그 나이에 어떻게 저 높은 B등급까지 갔나 싶은데, 그래도 자기보다 열 살이 더 많은 나승구에게 그렇게 하대할 때마다 내가 다 끓어오른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외계 종족의 수장 가르시아는 저들의 지휘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원래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협상은 당시 자리에 있었던 자들과 협상이 성사된 거지, 갑작스레 나타나서 저렇게 대놓고 갑질을 하면 답이 없는 것이다.

흠.

하지만 우리들 입장에서 놓고 보면 그리 쉽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나승구 같은 경우는.

그는 요즘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대화 파트너로서 그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야, 인마. 너 절대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우리 헌터들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그런데 기분 나쁘다고 개기면 그걸로 우리 질서는 끝장이라고. 알았나! 이 자식아.”

사실 나승구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은 수하들의 불만스러운 감정이 언제고 표출되어 사태가 변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를 걱정 많이 한다.

사실 내가 뭐 욱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현재 홀론의 각성자 중 그래 제일 앞서 나가는 전투 능력을 지녔다고나 할까.

바로 그런 점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현재 홀론의 각성자들과 B등급 헌터들과의 전투 능력을 비교하자면 아마도 그 우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절대 B등급 헌터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만 분의 1의 경쟁을 뚫고 올라간, 그야말로 전투의 천재들인 것이다.

그 숫자도 지구를 통틀어 불과 50여 명.

정예 중의 정예로서 대부분 던전 수십 개는 혼자서 깨부순, 어마어마한 존재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프다.

앞으로 해결할 문제들이 또 생겼으니.

* * *

그로부터 얼마 후.

결국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B등급 헌터 한 명에 의해 크리처 세 명이 희생당하는 불상사.

빌어먹을! 그렇게 학대를 하더니만.

아무튼 난리가 났다. 가뜩이나 크리처들은 새로운 지휘부인 B등급 헌터들의 무지막지한 처우와 무시에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그야말로 그 불길이 거세게 일어나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외계 종족의 상부에서도 화가 몹시 나 있었다.

우주선 내에 경계를 긋고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지는 분단의 현실을 맞게 되었으니.

물론 서로 간에 전투의 기운이 감돌았다. 나승구는 현재 대장 이원룡에게 긴급회의를 요청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 현안이 다루어지고 있었다.

“저들을 무조건 달래야 합니다.”

나승구의 말에 이원룡이 일축을 했다.

“뭐 하는 소리야! 저따위 크리처들 몇 놈 죽인 거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 자체가 한심한 일이 아닌가.”

“대장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비록 전에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간에 없어서 안 될 협력 관계를 잘 유지해 온 아군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대를 가급적 빨리 수습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사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순간 이원룡은 주먹으로 탁자가 부서질 정도로 내리쳤다.

쾅!

“미친 새끼! 그동안 크리처들과 놀아나더니만 아예 반역자가 되어 버렸군. 어차피 우리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놈들을 제거하고 우리만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잘됐다. 이 기회에 놈들을 완전 뿌리 뽑는 것도 좋겠지.”

그게 의도였던가.

B등급 헌터들이 이것에 추가로 파견된 이유. 그건 이원룡만의 생각이 아닌, 아마도 정부에서 그렇게 지시를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야 각본대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고.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 어려 세상사가 그저 그렇고 대충 살면 살아지나 싶더니만,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 존재한다. 차라리 적들을 상대하는 게 나았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복종 아래 그들이 하란 대로 한다는 것이 아주 더럽게 느껴졌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나려 하는데, 나승구가 먼저 일어나 말했다.

“정부의 뜻입니까?”

그 질문에 이원룡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렇다면.”

“…….”

나승구 역시 매우 허탈해하는 모습. 아마도 그의 심정은 나와 똑같을 것이다.

“따르겠습니다.”

“네가 따르지 않는다면? 어쨌든 오늘부로 놈들과 전면전이다.”

결국 우주선 내부의 두 세력이 충돌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 * *

전쟁의 시기는 상상외로 빨라 다가왔다.

우주선 중간 지점 경계를 두고 저쪽의 수많은 크리처들과 이쪽의 헌터들이 대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홀론의 각성자들은 좀처럼 나서기를 꺼려 했다.

어제까지 사이가 좋았던 그들과 이제는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하는 입장이 아니던가.

다만 나승구는 싸우려는 태세였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사나이. 개뿔, 융통성이 없는 인간이다. 어차피 B등급 헌터들이 전면으로 나선 상태이니 그들이 주로 전투를 펼칠 것이다.

그리고 게임의 승부는 아마도…….

크리처들의 전멸과 외계 종족의 붕괴.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정이 들었건만. 저편에는 아레나와 토레스도 있었다. 그들도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인 것 같았다.

빌어먹을. B등급 헌터 쉰 명의 전투력이라면 이 전투는 생각보다 쉽게 끝날 것 같았다.

나는 갈등했다. 이 순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항명이라도 하며 이 사태를 말려야 하지만 나승구 말대로 우리는 지구인이고,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 운명이다.

바로 지구에 우리 가족과 소중한 시민들이 존재하기에. 그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개소리!

그때 B등급 헌터들이 각자 무기를 집어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냥 진격해서 끝내 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크리처 무리들 앞에 나서는 자가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엑스.

그가 외쳤다.

“나는 이편에 서겠다!”

아차, 엑스가 있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아 어디론가 떠난 줄 알았건만.

설마하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크리처들의 편에 서겠다니.

만일 그렇다면 이 승부의 양상은 다시 달라져 버린다.

엑스의 전투 수치는 내 기준으로도 측정 불가이다.

한마디로 현재 우주선 내부에서는 절대적 존재.

그에 맞서 싸우려는 B등급 헌터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지구에 전달되는 방송을 통해 그에 대해 알고 있기에.

하지만 이원룡은 달랐다.

“저놈부터 제거한다. 강해 보이지만 우리는 숫자가 쉰 명에 다다른다. 각자 직업별로 용사의 괴력, 성기사의 버프와 힐러의 힐, 그리고 물리 공격수들, 마법 공격수들의 조화로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

드디어 격돌이 시작되었다.

50 대 1의 싸움.

마치 게임 유저들이 던전 최후의 보스를 잡는 것마냥 그를 겹겹이 에워싸고 각자의 현란한 스킬을 배합하여 합공을 했다.

타다닥!

용사들이 선제공격을 했다. 그 뒤에 성기사들이 버프를 해 준다. 그 뒤로 힐러들이 힐을 해 주었고, 궁수가 먼 거리에서 활을 쏘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조합. 그것도 쉰 명의 최정예 헌터들, 각자의 레벨이 가히 상급에 달한 자들의 공격이다.

이에 맞서는 엑스.

그 역시 손을 들어 주변을 향해 휘젓는다. 마치 태극권처럼 허공을 서서히 가르는, 유연한 동작. 그의 주변에 보랏빛 오로라가 서서히 형성된다.

짐작이 맞는다면 그건 방어막을 형성하기 위한 것.

용사들의 거친 물리 공격이 엑스에 가해졌다.

팅!

팅!

보랏빛 막에 튕겨 나가는 대검들, 성기사들의 버프의 확률이 올라간다. 용사의 검들로부터 빛을 발하는 여러 색깔의 빛 점들.

버프만 네 개 이상을 받고 그 괴력의 강도가 엄청나게 세졌다.

탕!

탕!

두 번째 공격에 엑스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만큼 위력이 컸던가. 엑스가 이번엔 손을 들어 허공에서 밑으로 가로지른다.

순간.

파파파팟.

무형의 줄기 같은 것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굉음을 일으킨다.

우두둑!

쾅!

마치 폭발 현장을 보는 것처럼 용사들이 각자 허공 뒤쪽으로 나가떨어진다.

“힐!”

수순대로 힐러들의 버프가 이어진다. 성기사들의 다양한 스킬의 버프가 다시 운용되었고, 이에 용사들은 무적과도 같이 전열을 가다듬는다.

이원룡이 외쳤다.

“각자 비기를 시전한다!”

그의 명령에 용사들의 군장 볼륨이 확 커졌다.

착! 착! 착! 착!

군장 변신 모드가 분명했다. 이어 무기 역시 더 날카롭게 빛이 난다.

웅!

상위 헌터들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템빨. 지금 나는 그것을 목격하는 중이다. 전혀 빈틈이 없다. 50은 마치 하나가 된 것마냥 이원룡의 지휘 아래 흐트러짐이 전혀 없다.

용사들이 다시 공격한다.

팍! 팍! 팍! 팍!

엑스의 방어막이 물컹거리며 뒤로 두어 발짝 물러났다.

아까보다 강대해진 공격에 그도 다소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입가에 엷은 미소가 보이니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엑스가 다시 두 손을 모아 강기를 일으킨다.

파팟!

순간.

섬광이 터지며 그 주변이 빛으로 휩싸인다.

번쩍!

“악!”

“욱!”

방금 전까지 거의 코앞까지 거리를 좁혀 왔던 헌터들이 동시에 뒤로 땅을 끌며 밀려난다. 하지만 그들에게 치명타는 없는 듯, 다만 군장의 보호대가 약간 찢긴 정도이다.

이원룡이 다시 외친다.

“날개!”

순간.

퍼덕퍼덕!

쉰 명의 등 뒤에 각자 붉은 색상의 박쥐와도 같은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제1 조는 지상, 제2 조는 공중에서 공격한다.

한데 그와 동시에 엑스 역시 그 자리에서 공중 부양이라도 하듯 몸체가 위로 쑥 솟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의 머리카락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쭈뼛하게 섰다.

그건 뭘 의미하는 건지…….

번쩍.

쾅!

벼락과도 같은 섬광이 헌터들에게 내리쳤다. 이번엔 엑스가 선제공격을 한 것이다.

하지만 헌터들은 이미 한 몸이 되어 각자 쉰 명분의 위력을 개개인이 내고 있는 상태.

그 때문에 엑스의 벼락 공격이 방어 버프에 의해 갈래갈래 분산이 되어 그 위력이 떨어졌다.

그 틈을 이용해 헌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얏!”

파파파팟.

쾅!

폭발음에 사방으로 파편들이 튀었다. 바로 엑스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집중 공격을 당했고 애꿎은 천장의 대들보가 파괴당한 것이다.

“놈이 사라졌어!”

헌터들이 당황했다.

방금 전 공격한 지점이 비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그들 뒤에 나타나 손을 들어 강기를 날린다.

슉!

한 줄기 무형의 에너지가 후방 제일 마지막 열에 있던 힐러 한 명의 등을 강타한다.

퍽!

“악!”

그대로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 즉사하고 말았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강기는 그다음 대열의 성기사를 강타했고, 그 줄기가 여러 개로 뻗쳐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헌터들을 공격했다.

파파파팟.

“악!”

순식간에 후방이 무너졌고, 그 앞에 있던 용사들이 부리나케 뒤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버프와 힐이 중단된 상황에서 그들의 방어력과 공격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엑스의 강기가 또 한 번 발사된다.

파파파팟.

“컥!”

게임의 판도가 단숨에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단번에 열 명 정도가 희생당했고, 그렇게도 견고했던 파티 조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엑스는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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