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28화 (28/143)

28화

휘리리릭!

나와 토레스는 단숨에 저들의 진영 상공 위까지 다가갔다.

그러고는 평소 호흡을 맞춰 왔던 합공이라는 것을 시전 했다.

파파파팟.

쾅!

쾅!

우르릉, 쾅!

이미 대지의 힘을 듬뿍 실은 나와 토레스의 쌍검 공격, 저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돔 형태의 방어막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두둑!

잠시 후 그 틈새가 벌어졌고, 우리는 겁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 다시 검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물론 이건 공방전, 놈들이 가만히 서서 그냥 맞아 줄 리가 없었다.

화르르.

불덩이들이 날아왔다.

물론 우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외쳤다.

“천공 날개!”

순간.

휭!

날갯짓 두어 번 하자 폭풍 같은 기세의 바람이 불덩이를 맞받아쳤다.

휘리리릭!

불덩이가 오다 말고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힘 대 힘 싸움이라도 하듯.

마법사들 사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밀리는 것 같은데!”

“저들은 권능의 힘을 이용하고 있어!”

권능이라는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우쭐했다.

그건 신에게나 쓰는 표현이라서.

토레스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뭐 해! 정신 차리지 않고!”

잠시 한눈파는 사이 불덩이가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헉!”

“천공 날개!”

다시 열심히 날갯짓을 했다.

퍼덕! 퍼덕!

슈! 슈! 슈! 슈!

화르르.

그러자 놀랍게도 그 불덩이가 마법사들에게 향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천공 날개의 힘이 이렇게도 강했던가.

화르르.

“아악!”

자기들이 발사해 놓고 자기들이 타 죽는 광경. 뭐, 몇 놈 안 되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그중 유독 어리게 보이는 자, 앳된 청년 분명했다. 옷도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리 하늘빛 망토를 둘렀는데, 체격은 다른 거인 마법사들과 달리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그마했고.

얼굴을 살펴보니 해죽 웃고 있었다.

청년이 손을 들어 외쳤다.

“거기까지!”

그러자 불덩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어 청년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다른 마법사들이 고개 숙여 예의를 차렸다.

“군주께서 벌써 나서실 일이 아닙니다.”

순간.

“욱!”

방금 전 말했던 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는다.

이어 옆에 있던 마법사 역시 피를 토하며 스러졌다.

“컥!”

그 뒤에 있던 자 또한.

“욱!”

보아하니 청년의 눈길이 닿는 자들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계속 죽어 갔다.

“구, 군주님! 컥!”

마법사들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살려 주십시오.”

하지만 청년은 냉혹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수하를 계속 죽이는 것이 아닌가.

“악!”

풀썩!

“억!”

청년이 수백 명의 마법사를 그저 눈빛으로 즉사시킨 시간은 대략 30분, 이제 그의 눈길이 나와 토레스에게 돌려졌다.

…….

…….

나는 감히 대항할 생각조차 없었다. 이미 그의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기세에 눌려 있었고, 실제로 온몸이 마비된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고강한 존재를 대하는 이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하고픈 마음이 절로 들었다.

토레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그의 불같은 성격 같았으면 벌써 대항하고도 남았건만…….

그저 죽을 일만 남았던가.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엄마…….

강호 형.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청년은 우릴 쳐다보다 말고 우주선 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저벅저벅 걷는 그의 뒷모습, 우리를 살려 두는 것 같았다. 아니, 우주선 쪽으로 가는 것을 보니 그곳을 몰살시키려나.

헌터들과 크리처들, 심지어 외계 종족의 수장들까지 극도로 긴장한 채 청년이 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그 앞까지 왔을 때 나승구가 명령을 내렸다.

“저놈을 향해 집중 공격!”

파파파팟.

쏟아지는 화살들, 박병수 아저씨의 표창마저 허공을 가르며 요동을 쳤다.

나승구 역시 대검을 들어 검강을 마구 발사했는데, 그 모든 화력들은 청년의 몸에 닿기도 전에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이었다.

너무 강했다.

터무니없이.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면 또 그 위에 뭔가가 더 있는 것처럼 이건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공격이 끝나자 방어선의 대부분 아군들 역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이제는 저 절대적인 존재의 공격을 받을 차례.

아마도 전멸을 면키 어려울 것 같았다.

체념도 전염병이던가. 공격 의지를 잃고 그저 청년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

그때였다.

“물 좀 주게나.”

…….

…….

일시에 정적이 흘렀다.

“목이 타서…….”

청년의 의외의 반응에 다들 경직이 되었다. 하지만 청년은 아군을 공격하고자 하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더운 여름날 목이 타서 물 한잔을 갈구하는 나그네의 그런 천진한 표정이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정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 삶을 학습하며 성숙해져 가고.

그다음에 맞닥트릴 운명에 대해 한층 지혜롭게 대처하려 한다.

하지만 그 상대가 예상을 뒤집고 한 번 더 뒤집는다면 세상 그 어떤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 기묘한 상대, 청년 엑스(X)가 그랬다.

사실 그는 자신에 대해 일절 얘기 한마디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조차 몰랐고, 오직 지난번에 자신의 수하들인 마법사들을 몰살시킨 그 기억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여전히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곳을 초토화시키고 모든 생명을 앗아 갈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렇게 살아 있다.

그도 별 관심이 없는 듯 우리의 일상생활에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 다가오려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엑스(X)로 명명한 것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안했다.

몹시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우린 끝이기에. 하지만 왠지 느낌이 그렇지 않을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그의 소박한 행동거지 때문이랄까.

자신의 독보적인 권능을 사용하기보다는 반드시 우리에게 허락을 얻고 나서야 움직인다.

잠자리, 음식, 여타 필요한 일들. 그는 그저 지나가는 손님과도 같았다.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엑스에 대한 그 무시무시한 선입견이 거의 사라질 분위기이다.

여전히 말수가 없는 것에 대해 아직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이 있지만 그 반대로 오히려 과묵하고 소탈한 성격에 호감을 가지는 자들이 더 많이 생길 정도였다.

심지어 엑스는 이곳의 룰을 어기지 않았다.

아침 기상 시간이 6시면 우리와 똑같이 일어나 체조를 하고, 식사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함께한다.

주로 크리처들이 하는 허드렛일마저 가끔은 도와주기도 하고, 지휘부에 대한 일절의 간섭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존재란 말인가.

솔직히 나는 그게 더 불안했다. 그건 마치 절대 강자가 하수에게 장난치는 것처럼 잠시 놀아 주는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어느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태도가 돌변해서 끔찍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는 가변성의 요인이 충분히 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엑스가 그 짧은 기간 내에 모든 아군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로 부각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지극히 소탈하고, 뭔가 일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아직도 경계의 끈을 풀지 않고 있다.

세상에는 이율배반적인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 법, 좀 과장 되게 말하자면 사이코패스와 같은 부류들의 평소 일상생활은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친절하고 상냥하다.

그렇다고 엑스를 일방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그럴 수도 있다는 확률 게임이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희망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변하지 않기를…….

“엑스, 이리 와서 술 한잔하지 그래.”

“…….”

내 말에 그가 탁자 앞으로 다가왔다.

“…….”

원래 말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 건지 아직도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는 일단 술을 따르고 건배를 제의했다.

“마시자.”

엑스는 한잔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어때?”

역시나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짓는 녀석.

녀석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내가 자신을 아직도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에 그 어떤 감정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한 잔 더 마시고 싶군.”

말수가 없다고 벙어리는 아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할 뿐.

“술맛 좋지. 자, 여기 한잔 더.”

나는 와인 한 잔을 따라 주고 다시 건배했다.

“마시자.”

엑스도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단숨에 들이켰다.

“좋지?”

고개를 끄덕인다.

…….

…….

그리고 이어지는 레퍼토리.

그건 일시적인 침묵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항상 이런 식의 흐름.

잠시 후 엑스는 자리를 떴다. 그때 들려오는 음성.

〈강자 아래서는 여전히 굴욕적인 자세군. 마치 내게 했듯이.〉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카르마타파……?”

〈이제 대화가 가능하니 좀 낫군.〉

“도대체 넌 누구지?”

〈네게 권능을 준 장본인.〉

“권능? 무슨 권능?”

〈포식의 권능. 후후, 네놈이 그걸 원했고 우린 서로 계약을 했었지. 네가 그걸 배반했고 감쪽같이 날 속여 나를 이런 절망 속에 빠트렸어. 그때 다른 동료들의 충고를 따랐어야 했는데. 황제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간교한 놈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역시나 내가 황제였을 때 저 존재와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나는 기억을 못해. 사실 황제가 아니거든.”

〈아냐, 넌 황제야. 비록 지금은 환생자이지만 뼛속같이 철저한 황제라고.〉

“그래. 내가 황제라 치고,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게다가 그 숫자는 뭐지. 한 번에 몇백, 몇천억씩 오르는 그 의미를. 그리고 무려 1조나 된 상황에서 지금 무슨 이유로 내게 말을 거는 거지?”

〈후후, 차차 알게 될 거다. 물론 알면 너는 죽은 목숨이고. 기다려라. 네가 템을 먹는 덕분에 내 힘 또한 비례하여 늘어났으니, 이제야 미물들의 포식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업 된 영역으로 출(出)했도다.〉

“영역이라니? 그건 뭐지!”

〈…….〉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 * *

며칠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방문객들이 우주선을 찾아왔다.

그들은 지구 정부에서 파견 나온 손님들이다.

[B등급 헌터들.]

정확히 쉰 명이다.

이곳에 온 이유는 나승구로부터 지휘권을 양도받기 위해서란다.

일전에 얘기했듯 대원들의 슈트에 카메라가 부착되어 지금까지의 일들이 지구에 생방송되어 왔다.

그렇기에 정부는 아주 세세한 일까지 다 안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들의 개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보다 높은, B등급인 헌터들을 보낸 것이다.

이에 이곳에 있던 대원들은 다소 당황스러워했다.

갑자기 파견 나온 자들에게 지휘관을 넘겨주라니.

다들 투덜거리며 불만스런 표정 들이었다.

한데 현재 최고 지휘관인 나승구는 주저앉고 그들을 상관으로 맞이했다.

사실 헌터 세계에서의 위계질서는 가히 엄격하다 할 수 있다. 등급 하나를 거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려 수천 분의 1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E등급 헌터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보다 몇 단계나 높은 B등급이라면 그야말로 하늘 같은 존재이자 대선배들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지휘권을 요구했을 때는 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논리가 나온다.

게다가 나승구는 군인 출신으로서 그런 상하 관계의 공적 의무를 아주 중요시 여긴다.

뭐,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 지휘권을 받은 B급 헌터들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거만한 자세에 우리를 깔보는 말투, 특히 그들의 대장 ‘이원룡’이라 하는 작자는 아주 재수 없었다.

“왜 그따위로 일 처리를 한 거야!”

그는 나승구에게 그동안의 보고를 받으면서 성질을 엄청나게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