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케논 검 】
나는 다시 고민에 잠겼다. 그것은 저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은 그 마음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욕심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나는 두 가지 템을 다 얻고픈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일 한 사람을 택해 당신 말이 옳다고 한다면 템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처음에는 그렇게 해 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는 법.
이왕이면 두 명의 고민거리에 동시에 답을 해 준다면 템 두 개가 굴러들 올 텐데.
하지만 그런 판단을 할 지혜가 내게는 없었다.
자! 그렇다면 어느 템을 결정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대지의 검인가?
아니면 천공 날개인가.
하나는 대지를 이용해 막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검이고, 하나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 능력의 천공 날개이다.
우~
양단의 선택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황제여, 답이 없다면 우리 둘 다 돌아가겠소.”
나는 순간 외쳤다.
“답해 주겠소!”
둘이 동시에 외쳤다.
“누가 맞나요?”
나는 잠시 주저했다.
물론 내 대답은 당장이라도 ‘둘 다 맞소!’ 하고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
두 개의 템을 다 얻으려는 욕심과 아주 가볍고 얕은 내 판단.
하지만 그건 오히려 두 개의 템을 모두 잃을 확률이 컸다.
그래서 그 순간에 생각해 낸 것이…….
“둘 다 틀렸소.”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건…….
도박이었다.
일단 시간을 끌기 위한.
그때 사내와 여인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만 물었다.
“둘 다 틀리다니요?”
남편에 이어 여인이 물었다.
“우린 누가 맞는지를 물어봤습니다. 그러니 다시 대답해 주세요.”
나는 이왕 이렇게 된바 그냥 내키는 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둘 다 맞는 말을 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답을 주겠소? 내 생각에는 둘의 고민은 이미 틀렸고, 하물며 그런 질문에는 애초부터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내가 물었다.
“애초부터 답이 없다니, 그건 무슨 뜻이오?”
나는 일부러 당당하게 큰소리쳤다.
“나는 명색이 황제요! 비록 인간 세상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신들께서 그런 식으로 장난을 치면 안 되죠. 답 없는 질문을 가지고 와서 답을 하라는 그 어리석음이 과연 그대들의 진실된 마음이라면 그건 짐승만도 못한 미물이 분명할 것이오. 그도 아닌, 그저 자신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이인지 그 누가 알아주기를 원한다면 그건 그대 부부들이 아주 낯부끄러운 짓을 하는 거요.”
이번엔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이라니요? 그거야말로 무슨 뜻이죠?”
나는 당장 거기서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말을 지어내어 답을 할 수도 없는 입장.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생각나는 대로 뱉어 냈다.
“그거야 당신들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요. 생각해 봐요. 이상 끝!”
아!
탄식이 나왔다.
두 개의 템을 모두 잃는 이 비극적인 사태. 그냥 한쪽만 옳다고 들어 주고 템 하나라도 챙기는 건데.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오고야 말았다. 게다가 갑자기 성질이 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다시 소리쳤다.
“서로 입장에서 생각해 봐요! 내가 상대를 얼마나 더 미워하는지에 대한 생각 말고 내가 그보다 훨씬 사랑하기에 이렇게까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일까? 하고요. 젠장! 바보들도 아니고! 그저 자기 똑똑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본인들의 진정한 자아를 꽉꽉 누르고 있으니 뭔들 눈에 보여. 그저 마음이 아닌 겉으로 지껄이는 대로 지랄을 하지. 솔직히 서로 관심을 두지도 않으면 벌어질 일도 아니건만 어디서 애꿎은 사람한테 와서 또 사랑싸움이야!”
이제 보니 저 부부는 사랑싸움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 시시콜콜한 문제가 신들이 싸우는 꼴도 한심해 보였다.
“빌어먹을. 돌아들 가시오. 당신네들 그 물건들 가지고 싶지도 않소. 어차피 줄 것도 아니면서. 처음부터 나를 가지고 놀기 위한…….”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둘 다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여인이 한숨을 쉬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 아닌가.
“우, 우리가 서로 사, 사랑하는 사이였던가요. 흑.”
사내 역시 뭔가를 깨달은 듯.
“흠, 잊고 있었어. 살면서 그런 본질은 희석되어 잊히고, 우리는 서로를 지적만 하며 경쟁을 하듯이 다투기만 했지, 정작 서로를 깊은 내면에서부터 사랑한다고는…….”
“저도 잊고 있었어요. 애초 저는 대지의 신이라서 당신을 좋아한 게 아니라 한 착한 청년으로 선택한 것이거든요.”
그러자 사내는 아내를 안아 주며 말했다.
“나 역시 그대를 천공 전사로서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해맑고 순수한 여인으로서 내 품에 안은 것이오. 정말이지 그 긴긴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도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소모전을 해 온 것 같소.”
“가요, 이제. 당신의 나라인 저 대지 아래로.”
“아니오, 나도 눈을 크게 떠 저 천공의 세계를 경험하겠소. 그러니 그리로 갑시다.”
“괜찮으시겠어요?”
“하하, 여기서 더 삐치면 나는 남자가 아니지.”
순간!
스르르.
파팟!
그 둘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남은 것들.
템 두 개…….
대지의 검과 천공 날개.
그때 허기가 느껴졌다.
“헉! 배고파!”
들려오는 음성.
[포식의 권능이 발화.]
또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대지의 검 (전설 등급)을 포식합니다.]
[천공 날개 (전설 등급) 추가로 포식하였습니다.]
[고유 특성 모든 스텟 +300 강화(A등급)를 흡수합니다.]
“전설이 두 개씩이나! 이런 초대박이! 그리고 스텟이 +300이라니!”
섬광이 일었다.
파팟.
역시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대지의 전설(전설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18,270]
[특수 스킬 대지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발동 시 물리 공격력 +625%)]
[내구도 99/100]
[천공 날개(전설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30,760]
*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들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105 획득!]
[현재 포인트 +209]
역시나 속성을 지닌 채 현실로 그대로 나타난 템들. 이번엔 두 개다!
물론 그다음에는 내 정보창이 궁금해져서 외쳤다.
“정보창!”
[이형도]
[레벨 327]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923 힘 1,020 민첩 1,515
마력 1,309 지혜 1,412]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고유 –기류 발사]
[고유 –현재 방어력의 7제곱(유일 등급)]
[고유 –대지의 힘]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에서 B등급으로 승격)
체력 상승 1,300%
손목 근력 상승 1,440%
도약 능력 상승 1,530
물리 공격 상승 1,425%
비행 능력!]
〈카르마타파: 1조 이제부터 카르마타파와 대화가 가능함.〉
와!
믿어지지 않았다.
한 개도 아닌 두 개의 전설 템이라 그럴까. 그 모든 것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역시 문제는 카르마타파이다. 그것도 1조라니. 이거 뭔지 모르지만 해도 너무 한 게 아닌가.
무려 1조라.
도대체 뭐지. 그것보다도 카르마타파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
어쨌든 이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들.
보스 열두 명이 우리를 노려보며 무기를 후려치려 하는 순간.
나는 일단 전설 템 두 개를 토레스에게 던져 주었다.
“하나는 대지의 검, 다른 하나는 천공 날개. 그거 차고 당장 전투해!”
물론 나는 템을 먹고 절로 강해진 상태.
일단 아레나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아스가의 검을 뽑아 지면에다 확 꽂았다.
바로 대지의 힘을 얻기 위해서!
슉! 슉! 슉! 슉!
역시나.
뭔가 빨리는 느낌, 아니 흡수되는 에너지랄까. 지면으로부터 검 끝으로 대지의 기운이 빨려 들어온다.
그 순간 열두 명의 보스들이 일제히 검을 뽑고 돌진해 들어오는데.
파파파팟.
나는 검으로 흡수했던 힘을 그들에게 내뿜는다.
쾅!
“컥!”
우직!
“악!”
거센 돌풍이 몰아치며 놈들의 사지를 찢어 버리고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젠다급의 보스들답게 순간 반탄막을 형성에 내 공격에 대비한다.
나는 아직도 주저하는 토레스에 외쳤다.
“검을 지면에다 꽂아!”
“꽂으라니?”
“내가 너한테 준 검은 대지의 힘을 흡수한다고! 그러니 당장!”
“아, 알았어!”
토레스는 내가 말한 대로 검을 쫓았다.
나 역시 그랬고.
합공을 펼치기 위해서 우린 둘 다 대지의 힘을 마구 빨아들였다.
슉! 슉! 슉! 슉!
그러나 놈들의 반탄막은 무려 열두 겹. 우리들의 기세가 달라진 것을 눈치 채고 일찌감치 방어적 태세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사용할 수밖에.
“토레스! 천공 날개를 펼쳐!”
“천공 날개?”
“아까 내가 준 천공 날개의 모형 있잖아. 그건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어, 어떻게?”
일단 나부터 날개를 펼쳤다.
퍼드덕!
순간.
금속의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며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퍼드덕!
토레스의 날개도 펼쳐졌다.
한데 이상했다.
날개는 그저 비행만 하는 줄 알았는데 뭔가 다른 힘이 느껴졌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파괴적인 힘이 내뿜어진달까.
파파파팟.
놈들의 반탄막들이 금이 갈 정도로.
우지직!
기회는 지금인 것 같았다.
“토레스! 함께 공격하자!”
그는 내가 준 템 두 개의 능력에 대해 아직도 어리둥절해했지만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내 말대로 했다.
“자, 지금이야!”
타다닥!
우리는 대지의 힘을 흡수하고 똑같이 날아서 놈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이얏!”
펄럭펄럭!
파파파팟.
쾅!
우르릉, 쾅!
이건 뭐 부서지는 소리가 아니라 아예 폭발음이 들려왔다.
쾅!
반탄막들이 산산조각 터졌다. 당연히 나오는 비명 소리들.
“악!”
“컥!”
나와 토레스의 검 공격들로 인한 놈들의 아비규환!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열두 명의 보스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는 순간이었다.
토레스는 멍했다.
나도 그랬고.
뒤에서 지켜보던 아레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때 문이 열렸다.
스르륵.
“아레나!”
제일 먼저 모습을 나타낸 자는 수장 가르시아였다.
“아레나, 괜찮아?”
이어 나타난 자는 나승구.
“너 인마, 괜찮아?”
그가 나를 껴안으려고 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피했다.
“왜 이래요. 언제부터 친했다고.”
그러자 그도 다소 멋쩍었는지 손으로 꿀밤을 때렸다.
탁!
“이 자식이 또 무슨 말썽을 피운 거야.”
그때 또 등장한 사람.
“형도야!”
다리를 절룩거리는 박병수 아저씨였다. 나는 냅다 그에게 안겼다.
“아저씨!”
“하, 큰일 날 뻔했구나. 어디 다친 곳은 없니?”
나는 씩 웃었다.
“없어요.”
“다행이로구나.”
그때 머리를 또 쥐어박는 나승구.
탁!
“아얏! 왜 또 때려!”
“지금 사람 차별하냐!”
“아, 진짜.”
그로부터 며칠 후.
유명세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비록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반짝 스타가 되었지만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토레스 역시 크리처 출신치고는 너무도 과한 대접을 받나 싶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공주 아레나에 대한 경호 임무를 너무도 잘 해내어 스스로도 뿌듯했다.
토레스는 아직도 내가 자신에게 준 그 템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물론 나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얻었고, 왜 주었는지에 대한 것.
후후.
재밌었다.
녀석이 의아해하는 그 표정이.
아무튼 이렇게 해서 또 한 번의 각성이 이루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