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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23화 (23/143)

23화

“컥! 컥! 컥!”

그걸 지켜본 나는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그 결과가 뻔히 보이기에. 그래서 다른 잔머리를 써 보기로 했다.

“보스 나리. 저희가 깨어나길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아십니까? 이곳 절대 출입 금지 구역에 진입하기까지 무려 수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에야 이르러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막시탄 님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감히 이렇게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헤헤.”

“…….”

내가 허리까지 굽히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자 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맞아. 내가 그냥 풀려날 리도 없었을 테고.”

“그럼요! 사실 저희들도 던전 보스들입니다. 물론 막시탄 님보다는 그 아래 등급이죠.”

그 말에 그의 화색이 돌았다.

“보스라고? 그럼 크리처들인가?”

“넵! 크리처 맞습니다요.”

신기할 정도로…….

단순했다.

“괴로웠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크리처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습니까? 그건 노예나 마찬가지죠.”

“나 막시탄은 기분이 너무 좋다.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관에 갇혀 지냈을 테니까. 그런데 외롭다. 내 동료들은 아직까지 잠들어 있는가?”

“어차피 이곳의 회복 시스템이 작동되었으니 곧 동료들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 열한 명마저 깨어난다면 그야말로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아젠다 급, 토레스보다 한 등급 위이다.

“궁금한 게 있다.”

“네. 말씀하시죠.”

“우리가 풀려난들 이곳이 폐쇄당했는데 어떻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지?”

기대하던 질문이었다.

“그걸 풀 수 있는 자가 바로 여기 이 여자애입니다.”

순간 막시탄이 아레나를 쳐다보았다.

“누군가?”

“사실 얘는 던전 보스가 아닌 과학자입니다.”

“과학자라니?”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간단히 말씀드려서 이분은 크리처들에 대한 무분별한 윤리 의식의 저하에 대한 대항으로 양심을 깨고 결국 우리 편에 서서 이렇게 좋은 일에 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로지 이분을 믿고 이곳을 나갈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막시탄은 다소 혼란스러워했다.

“유, 윤리 의식의 저하…….”

어려운 말로 현혹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레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위치를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놈들이 공주를 함부로 해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분이시군. 우리를 위해서 일하다니.”

그때였다.

웅!

쨍그랑!

웅!

쨍그랑.

진동음과 여기저기서 뭔가 깨지는 소리.

우려했던 일들이 결국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젠다 급의 나머지 던전 보스들이 깨어난 것이다.

사실 생존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사실 막시탄이라는 자는 그 자체가 단순 무식하여 그런대로 쉽게 속여 넘길 수 있었지만 과연 나머지 보스들은 어떤 놈들일까.

“막시탄!”

“오호. 내 친구여!”

보스들끼리 껴안고 난리가 났다. 같은 던전 12구역의 보스들, 서로 안면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잠시 후 그들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가였다.

막시탄은 자기가 직접 우리들에 대한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며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놈들의 시선이 우리 셋에게 집중되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무도 고요한 정적이랄까.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조차 나와 토레스는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아레나는 그렇지 못했다.

“후~”

결국 가슴을 쓸어내리고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보스들의 눈빛들이 번뜩였다.

“별로 기뻐하지 않는 표정인데.”

“과학자라 그랬지. 그런데 왜 우리 같은 크리처들을 위해 위험을 자초한 것인가?”

“이봐! 네가 직접 대답해 봐.”

열두 명의 보스에 이미 압도당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데 그런 그들에게 질문을 받으니 아레나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덜덜 떨었다.

위기의 순간이다.

그때 나는 기지를 발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좀 과격한 방법이지만…….

짝!

“악!”

일단 그녀의 뺨따귀를 날렸다.

“쌍X!”

내가 그리 행동하자 보스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이X. 왜 이제 와서 후회하는 표정이야. 생각해 보니 보스들 풀어 준 게 억울하냐!”

짝!

“악!”

한 대 더 때렸다.

그 순간 막시탄이 내게로 급하게 다가오더니만 말렸다.

“뭐 하는 짓인가! 우리를 구해 준 분에게!”

“아니 이X 표정 좀 보세요. 비록 우릴 위해서 일한다지만 뭔가 내키지 않는 이 얼굴 말입니다.”

“이놈이! 그건 우리를 막상 보니 두렵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부터 손을 댔다가는 나한테 먼저 죽을 줄 알거라!”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내가 바라는 대답이었다. 일단 아레나의 경호원 한 명이 더 는 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속이 타고 목이 타고 심장이 타는 그런 초조한 순간이.

“왜 못 여는 거야?”

아레나는 문 앞에서 애초 맞지도 않는 가짜 카드를 여는 연극을 하느라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신 과학자 맞아?”

“그렇게 쉽게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상한데! 너 뭐야!”

“당장 열라고! 여기를 들어왔으면 나가는 방법도 알 거 아냐.”

그 순간 아레나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카드를 내동댕이쳤다.

홱!

“그렇게 재촉할 거면 너희들이 열어 봐!”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보스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냐! 이런 문은 시스템이 복잡해서 단시간 내에 할 수가 없다고!”

나도 깜짝 놀랐다.

그녀의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에 발휘한 기지에 말이다.

정말이지 아주 적절한 순간에 내뿜는 포스가 죽여 줬다.

그녀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던가? 항상 내게 복종적이고 부드러운 그녀. 때로는 천진난만하다는 것까지는 알았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나 잠시 쉴래.”

그러고는 보스들 앞에서 당당하게 벽에 기대어 머리를 한번 출렁거리고 이마의 땀을 닦는 그 모습.

‘음…….’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처음으로.

그렇게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겼지만 그때만 효과가 있을 뿐, 보스들은 마음이 급했다. 자신들이 누구 덕에 쉽게 풀려났는지에 대한 고마움은 사라지고 다시 우리들을 들들 볶아 대었다.

의심스런 눈길.

그리고 심각한 문제는 여자를 밝힐 것 같은 색마의 눈빛으로 아레나를 자꾸 훔쳐보는 놈들.

사실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저들은 크리처지만 사내들이다.

음흉한 눈길에 아레나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토레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자꾸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이 가려 하니 말이다.

여차하면 기습 공격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때.

“흐흐. 이제 보니 과학자께서 상당히 미인이시구려.”

“몸매도 끝내 주고.”

“흐흐. 이왕 우리를 위해 일할 거면 뭐 다른 식으로 해도 좋소. 그러니 잠시 이리로.”

우려했던 일이 터질 것 같았다.

아레나는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침을 흘리며 다가가는 보스들.

그때 내가 있는 힘껏 소리를 쳤다.

“문을 열 수 있을 거 같아! 오호. 그걸 왜 생각을 못 했지?!”

순간 아레나로 향하려던 보스들이 깜짝 놀라 내게 다가왔다.

“문을 열 수 있다고!”

“정말이야?!”

“그럼 당장 열어 봐.”

나는 냅다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하는 척했다.

“음… 키 번호가 떠오르는 것 같은 5678……. 그다음 숫자가 뭐였더라.”

“당장 떠올려! 우린 당장 이곳을 나가고 싶다고!”

“잠깐만요. 분명 그 번호를 알지만 이렇게 부산한 가운데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명상할 시간을 주세요.”

“명상이라니?”

“자기 최면입니다.”

“자기 최면? 그게 뭔데!”

“조용히 이렇게 눈을 감고 조금만 앉아 있으면 자기 스스로 최면이 걸려 그 나머지 숫자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를 겁니다. 그러니 다들 조용히 해 주세요.”

“정말로?”

“쉿! 내가 지금부터 명상을 시작할 때 조금이라도 소음이 발생한다면 숫자는 사라져 버리고 영원히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

“…….”

그제야 잠잠했다.

물론 내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란…….

꿈이었다.

* * *

“폐하! 큰일 났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현실에서 가뜩이나 머리 아파 죽겠는데 꿈속에 들어오자마자 또 난리라니.

“제발 좀 쉬자. 방금 전까지 머리가 깨질 뻔했다고!”

“폐하! 아트랄 산맥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지진이라도 났나 보지. 당장 긴급 재해 대책반 꾸려서 자네가 그곳에 가서 수습 좀 하고 오게나.”

“폐하! 아트랄 산맥이옵니다. 바로 이곳 황궁 관문의 초입에 있는 아트랄 산맥 말이옵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 여기 관문 초입이라니!”

“산맥이 무너지면 그야말로 이 황궁을 비롯해 도시 전체가 매몰될 수 있으니 이는 실로 심각한 재앙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세바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으며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앙이라! 당장 그리로 가겠다.”

가는 도중에도 지축이 흔들렸다. 마차가 덜컹거릴 정도로, 앞에 서 있는 말들조차 울며 앞발을 치켜올리고 불안해하였다.

“원인이 뭔가! 지진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그, 그게 지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라니, 이렇게 진동이 심한데!”

“오히려 산맥이 무너지는 진원지 근방은 의외로 조용하니 그 원인을 아직도 알 수가 없사옵니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지진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천재지변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그 근원지를 가 보시고 더 정확한 보고를 받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흠…….”

창밖을 보니 벌써부터 짐을 꾸려 피난 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니 그 뒤를 잇는 마차 행렬, 이미 이삿짐을 챙긴 듯 산맥의 반대 방향으로 줄을 잇기 시작했다.

직접 그 상황을 보니 이는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그 산이 활화산 아닌가? 원인이 화산 때문에?”

“아트랄 산맥에는 화산이 없습니다.”

“없다고?”

그로부터 얼마 후.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대책 위원회로 보이는 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병사들이 그 주변을 에워싸 주민 통제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현장을 가까이 보려고 그곳으로 더 다가섰다.

그리고 저 멀리 만년설이 뒤덮인 봉우리가 세바스 말대로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그 정상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일인고!”

“이미 조사 위원회를 파견한 상태이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그들의 보고를 직접 들으실 것이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이러다 저 산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장이 떨렸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토록 기다렸던 파견 조사 위원들이 돌아왔다.

세바스가 그들을 내 막사로 안내하며 외쳤다.

“폐하께 당장 보고를 드리시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이 사색이 되어 내게 말문을 열었다.

“금번 재앙의 원인을 도저히 밝힐 수가 없사옵니다.”

“밝힐 수 없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그대들은 직접 현장을 보고 온 조사 위원회가 아닌가!”

그러자 노인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만 다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 의견으로… 아니 추측으로 아뢰옵는데 저 천재지변의 원인은 자연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인위적? 그건 또 뭔 소리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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