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 *
우주선에는 희귀한 것들이 많았다. 초고도 과학 문명으로 만들어진 물건들, 마치 시골 촌놈이 서울에 와서 스마트 폰을 처음 구경하듯 나 역시 이런저런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했다.
뭐 그래 봐야 첨단 기기들.
허공에 나타나는 홀로그램 영상들, 가상 현실 게임기,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 검 등등.
익히 SF 영화에서 봤던 것 그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아레나 앞에서 촌놈 소리 듣기 싫어 일부러 인상을 찡그리며 뭐든지 보면 그냥 시큰둥하게 대응했다.
“뭐야 그게. 별것도 아니네.”
“이거는요?”
“별로.”
아레나는 그런 나를 볼 때 미안했던가. 사실 그녀는 마치 초등학생처럼 천진한 마음으로 내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여 주며 선물로 줄 생각인가 본데 내가 번번이 거절하자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 같았다.
“아레나. 이러지 않아도 돼. 나는 그저 상관의 명령대로 내 임무를 수행 중에 있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오히려 내가 더 부담이 되거든.”
그렇게 얘기를 해도 더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실 이곳은 그저 진부한 물건만 있으니 정말 마음에 드시는 것을 골라 드릴게요.”
“됐다니까!”
하지만 그녀도 고집은 있었다.
“토레스. 메타픽션 룸으로 안내해.”
순간 토레스가 깜짝 놀랐다.
“거, 거긴!”
“나도 알아. 이 우주선에서 그 누구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절대 금기 룸.”
“네 맞습니다. 그곳은 수장 가르시아 님 외에는 절대 출입 금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레나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뭔가를 내밀었다.
“후후. 여기 출입 카드가 있지.”
“공주님 그건.”
“토레스 살다 보면 절대란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거든. 설마 아버지가 내게 이걸 주실지 몰랐지. 원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아레나가 카드를 보여 준 순간 토레스도 더 이상 따져 물을 수는 없었나 보다.
아레나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요.”
그리고 토레스의 손도 잡아 주었다.
“너도 가자.”
“공주님.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거긴…….”
결국 룸 안으로 들어왔다. 외계 종족들조차 절대 출입 금지인 바로 이곳에.
“여기 뭐가 있다는 거지?”
그때 아레나가 갑자기 박수를 쳤다.
파팟.
순간 섬광이 일며 룸의 환경이 확 바뀌었다.
“뭐야!”
셀 수도 없이 많은 별무리의 우주 공간 한복판 떠 있었다. 아니 바닥을 딛고는 있었는데 360도 주변이 그렇게 영상화된 것 같았다.
“어이가 없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거야 지구에서도 우주 체험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룸, 그것도 초등학교 때 단체로…….
그때 몸이 붕붕 떴다.
마치 진공 상태로 우주를 유영하는 것처럼.
“시시해. 고작 이런 4D 상영관에 무중력 경험을 해 주려고 여기 온 거냐. 내가 애도 아니고. 빌어먹을.”
짝!
파팟.
박수 소리에 다시 원래 환경으로 돌아왔다.
아레나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만 다소 미안한 듯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할 줄 알았어요.”
“농담하냐? 도대체 그따위 과학 기술로 어떻게 이런 우주선을 만들어 몇만 광년을 항해한 거지. 우리 지구도 이제야 로켓을 만들어 간신히 화성을 탐사하는 마당에.”
기술 차이가 고작해야 몇 년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토레스가 나섰다.
“목소리가 너무 커!”
역시 그가 나설 줄 알았다. 내가 아레나에게 조금이라도 화를 낸다면 불경스럽게 보인다면 어김없이 태클을 거는 듬직한 그녀의 보디가드.
“야 인마! 너 같으면 화가 안 나겠어? 이런 것도 과학 기술이라고. 젠장. 어디서 4D 우주 체험관 같은 곳에 데려와서. 나 참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토레스는 잠시 나를 한심하다는 듯 보더니만 말했다.
“너는 실제로 우주 밖에 나갔다 온 거다.”
그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물론 그러시겠지. 우주복도 없이 진공 상태에서 숨쉬면서 마음껏 유영을 하고 왔단 그 말이냐.”
토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
녀석의 표정을 볼 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은 게…….
그렇다면 뭐 인정해 줄 만은 했다.
한 공간을 우주 공간으로 변환하고 그냥 맨몸으로 떠 있게 할 수 있는 정도의 과학 기술…….
후후.
그래도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레나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이곳이 초공간의 한정된 영역이라서 마음껏 우주 유영을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워요.”
“됐고! 여기 재미없으니까 그냥 나가자.”
그러나 아레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만 갑자기 카드를 꺼냈다. 그건 이 룸을 들어올 때 사용했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모양과 색상의 카드.
토레스는 깜짝 놀랐다.
“공주님!”
“슬쩍 했어.”
“안 됩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내게 룸을 들어갈 수 있는 카드를 주셨을 때 나는 알았지. 그곳은 절대 출입 금지 구역이 아닌 놀이방이라는 것을. 하지만 바로 이 안에 정말 비밀의 방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로 그 룸으로 통하는 실제 금지 구역의 키를 이렇게 가져왔어.”
토레스는 안절부절못했다. 나 역시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아레나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기에.
그저 착하고 순진한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장난기 다분한 구석도 있고 지금의 저 흐뭇해하는 얼굴을 봤을 때는 악동의 기질도 있는 것 같았다.
뭐 어쨌든 되냐 안 되냐 하는 말다툼으로 우리끼리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그리로 향했다.
잠시 후. 우리 셋은 그 문 앞에 선 채 마지막 결정을 놓고 다시 옥신각신했다.
“공주님 절대 안 됩니다.”
“내가 절대라는 말 쓰지 말랬지.”
“그래도 절대로!”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체 저 철벽의 문 안에 뭐가 있기에 아레나는 그곳을 가자는 것인지. 사실 그녀도 뭐가 있는지 몰랐다. 다만 아버지 가르시아만이 어쩌다 들어가는 비밀의 공간.
아레나가 내게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물론 내 선심을 사기 위해서라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그때 토레스가 다시 한번 아레나를 설득했다.
“공주님. 이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키를 넣고 작동을 시켰다.
웅―
진동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우리 셋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디뎠다.
살펴보니 중앙에 큰 시험관 같은 것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안, 액체 속에 누군가 온갖 기기 장치로 연결되어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언뜻 크리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통의 크리처들은 다른 생명 공학 건물로부터 창조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왜 가르시아가 그토록 조심스럽게 드나드는 이런 절대 출입 금지 구역의 비밀스런 관에 크리처가 들어 있나 싶었다.
그때 토레스가 외쳤다.
“여, 여긴 반역의 방이야! 반역의 방이라고!”
그때 우리가 열고 들어왔던 문이 저절로 닫혔고 긴급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 구역은 외부 침입으로 자동 폐쇄되었습니다!]
띠! 띠! 띠!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 셋은 각자 두려움이 가득한 낯빛으로 한곳에 앉아 웅크리고 있었다.
반역의 방이라…….
토레스에게 이 방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 역시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말 그대로 절대 출입 금지 구역이 맞다. 적어도 현재 이 우주선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이곳에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해 저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애석한 일이지만 아레나가 그 문을 열었고 구역이 폐쇄되어 그들이 깨어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안에 갇혔다는 것이고…….
반역의 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말 그대로 반역한 자들을 체포해 저런 식으로 관에 담아 생명 존속을 시키는 방.
그런데 그 반역자들의 힘이 어마어마하단다.
토레스는 나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등급별로 설명했다.
일단 요 앞에 있는 시험관 안에 있는 자의 정체는 외계 종족들만의 고유 계열인 ‘아젠다’ 급.
그걸 우리 식대로 해석하자면 지구 C등급 헌터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종 던전 관문의 보스. 즉 토레스 자신보다 한 등급 센 놈이다.
이 안의 반역자들 열두 명 모두가 아젠다 급 이상이라 그랬다. 그러니까 헌터의 개념에서 C등급보다 훨씬 상회하는 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흥미롭다.
왜냐고?
바로 토레스와 같이 사춘기적 요인이 작용해서였다.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느꼈고 그 창조물을 만든 외계 종족에게 왜 충성을 다하며 던전의 캄캄한 지하 궁전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등등.
하여간 토레스가 다소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그놈을 가둔 저 시험관의 회복 시스템이 작동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곧 그놈들이 들이닥쳐 우리를 죽인다는 얘기인데 애석한 일이지만 나와 토레스의 전투력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그냥 놈들이 깨어나기 전에 그냥 생명관을 부숴 버리자고 했더니 폭파 장치와 연결이 되어 이곳 구역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나.
그래서,
일단…….
저 아젠다 급의 놈이 깨어날 때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제길!”
“두려워할 필요 없다. 우리 둘이 합공을 하면 승산이 있어.”
토레스의 말에 한 대 쥐어 갈기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참았다.
“그걸 말이라고 해!”
C등급 헌터들의 던전 최종 관문의 보스.
지금의 능력으로는 토레스 같은 놈이 열이 달려들어도 당하지 못할 텐데 이 자식은 그래도 희망을 엿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놈 하나가 깨어났다.
쨍그랑!
시험관을 부수고 연결 기기 장치를 스스로 풀어 우리 앞에 등장하자마자 노려보았다.
“내 이름은 막시탄! 너희들은 누구냐.”
이름답게 아주 무식하게 생겼다.
아니 무지막지하게. 그냥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재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아주 흉악하게 비틀어진 오크의 모습.
어쩌겠는가.
나와 토레스는 공주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둘 다 검을 뽑았다.
삭!
삭!
그러나 막시탄이라는 놈이 고개를 삐딱하게 하더니만 우리에게 뭐라 했다.
“헌터들인가?”
내가 대답했다.
“나는 헌터이고 얘는 너처럼 던전 보스.”
놈의 눈알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째 조합이 이상하다고 느꼈기에.
“헌터와 던전 보스라니?”
“우리 친구 먹었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도 혹시 나처럼 인간하고 친구 먹을 생각 없냐?”
순간!
우! 우!
쾅!
다짜고짜 주먹을 내리쳤다.
부직!
놈의 첫 번째 공격을 피했지만 다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는 상태, 일단 합공을 하기로 했으니 우리는 검을 들어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파팟!
탕!
“헉!”
놈의 앞에 형성된 투명 막! 거기에 부딪혀 그 반탄력으로 뒤로 나가자빠졌다.
공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가.
과연 예상대로 엄청난 존재인 것 같았다.
놈이 웃었다.
“크! 하하하. 이제 보니 정신 나간 놈들이었군. 감히 내게 대적할 생각을 하다니.”
나는 내심 억울함이 솟구쳐 올랐다.
“대적할 생각 없다. 여기를 자기 발로 들어올 만큼 정신 나간 것은 맞지만.”
토레스는 농담할 생각이 아닌가 보다.
“공주님을 지켜야 해.”
그러더니 혼자서 공격해 들어간다.
타다닥!
펑!
이번엔 막시탄이란 놈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내밀어 그대로 장풍을 발사했다.
우지직!
그 충격으로 토레스는 뒤에 있는 벽에 부딪혀 선혈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