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21화 (21/143)

21화

홱! 홱! 홱! 홱!

마치 새까만 개미 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듯 그들은 순식간에 상공으로 솟구쳐 이곳 진영을 향해 무섭게 날아왔다.

파파파팟.

“억!”

홱! 홱! 홱! 홱!

공중에서 발사된 화살들이 아군 크리처들의 몸통에 박히기 시작했다.

이어 검 부대가 이곳에 안착해 사정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아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고공 공격 루트에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속수무책 당하는 꼴이 되었다.

삭! 삭!

“아악!”

우주선 방어선 전 기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진열을 정비하고 공격하라!”

나승구의 명령으로 아군 역시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적들은 대부분 상공에 있기에 일단 궁수 크리처들이 화살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억!”

처음으로 그들도 공격을 당하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박병수의 부메랑들이 허공을 쉭하고 가로질렀다.

그것도 연속으로 30개가 발사되면서 하나의 부메랑이 여러 적들의 몸을 관통했다.

“컥!”

“악!”

창이 주 무기인 크리처들이 공중을 향해 창을 힘껏 던졌다.

홱! 홱! 홱! 홱!

하지만 적들은 그것을 예상했는지 더 위로 날아올라 사정권으로부터 피했다.

뭔가 불길했다.

초반부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크나큰 희생을 당할지 몰랐다.

여전히 적들의 빗발치는 화살에 크리처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 나갔다.

그나마 홀론의 각성자들이 고군분투를 하여 일당백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으로 달려갔다.

“이얏!”

타다닥!

슉!

순식간에 수십여 미터를 도약했다. 날개 달린 적들은 내가 이렇게 높이까지 뛰어오를 줄 몰랐던가.

고공 검술 3단계의 연속 발검 기술로 그야말로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베기 시작했다.

“아악!”

내 주변에 사지와 목이 잘려 나가는 적들이 부지기수.

다행스러운 것은 놈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사실.

하지만 날개가 달렸고 그 숫자마저 많았으니 인해 전술로 계속 밀고 들어왔다.

지상에 있는 토레스 역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던전 보스답게 그의 포스는 실로 가공할 만했다.

그도 점프를 할 줄 안다.

나만큼.

파파파팟―

“악!”

마치 나와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검술을 보여 주려고 일부러 내 옆에서 전투를 펼친다.

나는 성질을 냈다.

“저리로 꺼져. 여긴 내 구역이야.”

“전쟁 중에 네 구역 내 구역이 어디 있다고!”

“빌어먹을! 너는 공주를 보호해야 하는 거 아냐.”

“안전한 데 잘 계셔.”

“꺼지라니까.”

“인간아! 같이 싸우면 좋지 뭐 그래.”

나와 토레스가 합세해서 싸우니 우리 주변에는 순식간에 피를 토하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적들이 족히 수백 명은 되어 보였다.

그 아래 나승구의 대검 역시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 주었다.

날개 달린 적들 중에는 검 계열로 지상에서 전투를 하는 무리들도 엄청났고 그런 그들의 파죽지세를 나승구가 거의 혼자서 막아 내고 있었다.

붕! 붕!

“이 개새끼들! 다 골로 보낸다. X놈의 새끼들!”

저 인간은 싸울 때도 욕지거리를 한다.

인상도 더럽다.

적을 벨 때마다 침을 뱉는 더러운 습관.

홀론의 각성자들 역시 각자의 특성에 따른 주무기로 적들을 유린했다.

그들의 무기는 다양했다. 채찍, 혹은 쇠막대 등등 독특한 병기들. 대원들의 눈부신 활약이 전세를 대충 비등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크리처들 역시 처음의 그 당황한 모습과는 달리 평소 훈련받은 대로 전열을 다듬고 대열을 이루어 합공을 펼치며 놈들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한 녀석.

박성준.

마법사답게 마법 스태프로 광선을 사방으로 발사하며 꽤나 효율적으로 전투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오히려 날개 달린 적들이 그에게는 더욱 수월했던가.

마치 물총을 파리에게 쏘듯 그저 조준만 하고 스태프로부터 광선을 발사하면 그걸로 게임 끝.

게다가 자신의 몸 주변에 투명 막을 쳐 놓음으로써 방어도 일품이었다.

이 전투에서 저 녀석이 무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놈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씩 웃는다.

“하하. 형도야 나 어때 멋지지?”

“지랄하지 말고 싸우기나 해!”

“야 인마. 홀론의 각성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 대원들 좀 봐봐. 다들 날고 기어. 특히 너는 끝내준다. 단 일 검에 여러 명이 나가떨어지니 말이다.”

이런 와중에 여유를 부리며 농담을 하는 저 녀석이 사실은 가장 대단했다.

“성준아. 그렇게만 해! 잘하고 있어.”

“고맙다. 그럼.”

파파파팟.

마법 광선의 푸른 줄기들이 곳곳에 뻗쳐 나가면서 적들이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나와 토레스의 합공.

나승구의 무지막지한 공격과 대원들의 각성 기술들.

박병수 아저씨의 새로 얻은 부메랑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크리처들도 반격의 기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들은 날개를 가졌지만 전투력은 강하지 않았기에 전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리자 적들은 등을 돌리고 퇴각을 하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하자 결국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다.

아군의 진영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크악! 크악!

크리처들이라서 그런지 마치 짐승들이 떼거리로 울부짖는 괴성 같았다.

어쨌든 전투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에 막을 내린 것 같았다.

그날 오후.

우주선 안에는 승리의 기념으로 작은 축제가 벌어졌다. 아직 전쟁 중이니 대부분의 주력 부대는 기지를 지키고 있었고 교대 병력들과의 소규모 파티인 셈이다.

물론 그 파티의 주최자는 외계 종족의 수장 가르시아였다.

사실 이 행사는 그가 우리 인간을 위한 특별히 마련해 준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헌터 대원들 대부분이 참석했고 연회장 맨 상석을 내준 자리였으니 말이다.

외계 종족으로 치자면 그들도 귀족 부류가 있는 듯, 다소 고급진 슈트를 착용한 귀빈들도 보였다.

중앙에는 마치 뷔페처럼 술과 음식들이 있었고 자기가 가져다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들은 인간들처럼 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뭐 으레 이쯤 되면 최고 높은 지휘자가 연단에 나와 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전투는 뭐 역사에 남을 만큼 훌륭했다는 등등, 뻔히 아는 얘기들, 지극히 형식적인 찬사들로.

그런 거 생략하고 곧바로 그냥 술과 음식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술을 먹나 싶어 신기했지만 그 술의 성분이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알코올과는 개념이 다른 것 같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어질어질한 것은 같은데 숙취가 전혀 없다. 메스꺼움도 없고. 그리고 금방 깬다.

이렇게 말하자면 마약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그건 아니겠지.

공주 아레나도 그런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내게도 권한다. 벌써 여러 잔을.

그녀는 오늘의 나와 대원들의 활약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상기된 얼굴.

계속 술을 들이켠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그 옆에는 토레스가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크리처들 중 유일하게 이 파티에 참석할 자격을 얻은 그였다.

그의 시선은 아까부터 술잔에 가 있었다.

하지만 감히 손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크리처는 절대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외계 종족들만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조물이고 외계 종족은 신인 셈이다. 그런 창조물 따위가 감히 자신들을 만든 신의 술을 먹는 것이 허용이 안 됨이 분명했다.

아니 내 짐작으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토레스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먹어.”

“…….”

그러자 토레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먹으라니까.”

“안 된다.”

“안되긴 뭘 안 돼. 먹고 싶으면 먹는 거지. 뭘.”

나는 술잔을 집어 들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먹어.”

“이러지 마라.”

“뭘?”

“지금 나를 놀려서 내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려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진심으로 이걸 네가 먹기를 원한다.”

“왜?”

“축배의 개념이다.”

“축배?”

“나와 함께 전투를 치른 동료에 대한 예의라고 보면 된다.”

토레스는 의아했다.

“동료라니?”

“흠. 물론 네놈이 어떤 놈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다. 그래서 술을 한 잔 주는 거다.”

토레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안 된다. 크리처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그게 법인가?”

“…….”

그 말에 대꾸를 못 하는 토레스. 그때 아레나가 그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오늘은 먹어도 돼.”

이에 깜짝 놀라는 토레스.

“공주마마. 제가 어찌 감히.”

“형도 님이 권하는 거니까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을 거야.”

그제야 토레스는 술잔을 들고 그걸 먹을까 하고 주저거렸다.

하지만 결국 술잔을 탁자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먹지 않겠습니다. 아직 전쟁 중이고 저는 공주님을 항시 지켜 드려야 할 경호원입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불쌍하군.”

그때 흐르는 음악 소리, 외계 종족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 홀로 나간다. 이들도 춤 문화가 있는 건지. 남녀가 서로를 안고 왈츠 비슷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의 종류가 뭐던가. 생전 처음 접해 보는 감미로운 음률이다. 타악기 같은 것이 규칙적으로 연주되고 마치 지구의 바이올린 악기처럼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얘기를 나눈다.

나는 술을 연신 마시며 그들을 구경했다. 아레나는 춤추는 남녀에 다소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 가르시아가 이쪽으로 다가오더니만 갑자기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 딸과 춤을 추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당황했다.

“추, 춤이라니요.”

그가 딸 아레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래도 너를 지켜 주는 분인데 최소 예의는 갖추어 드려야겠지.”

“예. 아버지.”

내가 아직도 어리둥절해하자 가르시아는 공손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희 종족의 문화는 이렇듯 춤을 함께 춤으로써 그분에 대한 예우를 해 드리는 것입니다. 다소 생소하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제 딸의 호의를 받아 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누가 거절할 수 있단 말인지.

쳇.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게 이곳의 문화라니 따르는 수밖에.

아레나가 리드를 해 주었다. 나는 어정쩡한 템포에 자꾸 스텝이 헷갈렸지만 그럴 때마다 아레나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편하게 대해 주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그런대로 음악 분위기를 즐기며 그녀의 댄스 보조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보조 역할이라니?

내가 말해 놓고도 좀 이상했다.

생전 처음이었다. 이렇게 춤을 추는 것은.

“잘 추시네요. 재능이 있어요.”

“거짓말하지 마라.”

“아니에요. 정말로 소질이 있으세요.”

“그나저나 언제 끝나나? 이거 영 어색해서 말이야.”

그때 댄스가 갑자기 늘어지더니만 마치 끈적이는 재즈처럼 변했다.

그때 아레나가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뭐 하는 짓이야?”

“이 춤의 동작이랍니다. 여인이 남자를 감싸 안으며 자연스레 스텝을 밟는 것.”

“…이, 이건 좀 그런데.”

하기야 지구의 춤 문화도 그랬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블루스 타임이라는 게 있었으니. 다른 남녀들도 끌어안고 춤을 추니 뭐 그런가 싶어 그냥 추기로 했다.

그때 우연찮게 테이블에 앉아 있는 토레스와 눈을 마주쳤다.

…….

…….

‘뭐야. 저 녀석 술을 먹고 있잖아.’

이쪽을 노려보며 다시 한 잔을 들이켜는 녀석 그런데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불만 어린 표정인데 애써 감추려고 하는 어색한 연기.

내게는 계속 즐기라는 듯 윙크를 했지만 그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이 깨질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아니 부들부들 거린다고나 할까.

‘뭐야 저놈.’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왠지 모르게 죄라도 지은 것처럼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그런 걸 느꼈다.

‘혹시… 저놈 질투하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