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서로 승부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감정이 풀릴 때까지 이렇게 주먹으로 주거니 받거니 대략 한 시간을 몸을 푼다.
토레스는 예전처럼 나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크리처의 보스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누가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했던가. 우린 서로 증오하는 것도 없거니와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힘겨루기에 있어 비슷한 부류로 무료한 시간을 보낼 뿐.
식사 시간이다.
아레스는 항상 나부터 챙긴다.
“먼저 드세요.”
나는 두말 않고 그녀가 만든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한다.
맛있다. 지구의 음식과는 별개의 개념이지만 인공 고기의 육질, 그리고 처음 보는 채소류의 아삭아삭 씹는 질감이 좋았다. 특히 소스가 일품이었다.
아레스는 그다음에 토레스에게 말한다.
“먹어.”
역시나 토레스는 아레나가 포크를 들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건 주인에게 대한 공경심이었다.
저들 외계 종족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식주 생활을 탈피 못 하는 생명체들이다.
그들의 인구는 대략 1조 명.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다. 그들의 행성이 초고도 과학 문명의 부작용으로 병들어 가고 자원이 고갈되어 결국 먼 우주를 방황하다 지구로 찾아온 것이다. 아니 침략이 옳다.
여하튼 그들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잠깐 말이 샜는데 아무튼 1조 명에서 단 한 명의 여왕이 존재하며 그가 모든 통치를 하고 있단다. 아레나는 바로 현재 여왕의 후계자이고.
그렇게 따지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하고 귀하신 몸인지 실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토레스 같은 중급도 못 미치는 전투 실력의 크리처가 그녀를 경호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상황.
그렇지만 시공간의 틈새가 갑자기 열리는 바람에 초공간이 생기고 그나마 그 구역에 남아 있던 던전 보스인 토레스가 지금의 경호원이 된 것이다.
더 웃긴 것은 인간인 내게도 도움을 청했고.
그것도 E등급에 지나지 않는 내 보잘것없는 실력을 알고 말이다.
하지만 토레스는 갑자기 달라진 내 능력을 그보다는 높게 평가한다.
최소한 그보다 한 단계 위인 D등급 헌터 정도 될까.
전투력의 차이로 그렇게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가 여전히 기분 나쁘지만 나는 초고속으로 F등급에서 무려 두 단계나 뛰어넘은 D등급에 오른 것 자체가 황송할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보다 헌터 생활을 오래 해 왔던 강호 형보다 더 강할 수 있다. 그나마 전설 템을 먹었기에 이 정도였으니 아마 전설 템을 먹기 전이라면 나는 이미 토레스에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하루 일과는 토레스와 몸을 풀고 이렇게 아레나가 준비해 준 식사로 시작되었다.
요즘은 우주선의 요새화 운동으로 이곳은 부산을 떨고 있었다. 초공간에서의 그 어떤 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크리처들은 매번 실전과도 마찬가지로 전투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들의 훈련 총 지휘관은 박병수 아저씨였다. 대대장 나승구는 그보다 위인 우주선 사령관이고.
외계 수장 가르시아가 그에게 그런 최고의 자리까지 파격적으로 승인한 것은 그가 우리를 그저 E급 헌터로 보지 않고 바로 홀론의 각성자로 보기 때문이다.
홀론의 각성자.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홀론의 개념이란 내게 있어서 정말이지 놀라움 그 연속인 것 같았다.
전생자가 그 힘을 그대로 부여받고 환생하는 개념. 물론 그것을 완전하게 각성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결국에 원래 있는 잠재력을 표출하는 방법만 찾으면 게임은 끝인 것이다.
나 역시 꿈을 통해 내 전생의 힘, 즉 포식의 권능의 능력으로 강해지고 있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직은 그들의 개개의 면면을 살펴보지 못해 그 힘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처음 E등급 헌터를 훨씬 벗어나는 전투 기술을 각자 터득하면서 그들도 나만큼 그 어떤 기연을 얻는 것 같았다.
대대장 나승구의 주 무기는 대검이다. 원래 수십 킬로그램 나가는 육중한 무게의 대검을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이곳 우주선에서 특별히 제작된 무려 250kg의 대검을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휘두른다.
물론 홀론의 각성 덕분이다.
게다가 그 단순무식함의 검술도 보다 정교하고 절묘하게 변모해 이제는 제법 검사답게 행동한다. 그래도 그 욱하는 성질은 못 고치는 법!
화를 참지 못하면 대검으로 철벽을 강타하는 데 무려 1m 두께의 벽이 통째로 날아간다.
정말이지 무식한 인간…….
박병수 아저씨의 주 무기는 표창, 그 역시 가르시아가 특별히 제작해 준 초고도 과학으로 태어난 실험실의 무기로 재무장했다.
원래 표창의 본질은 지닌 채, 그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뿜어 대는 부메랑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에 숫자는 대략 30개.
기존의 표창과는 달리 일단 날아가면 목표물을 관통하고 그의 손목에 안착된 기기에 30개가 그대로 돌아와 다시 재충전된다. 그 위력 역시 철근을 관통할 정도였고 아저씨는 그것에 대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저렇게 변종 크리처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단계로 변종한 크리처들은 생각보다 영리했다.
그들은 막 창조되어 처음 대하는 세상에 대해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복종의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인다.
생긴 것도 그 징그러운 파충류에서 반인반수, 즉 늑대인간과 흡사했고 그들의 전투력도 기존보다는 상당했다.
검, 도끼, 창, 활 등 다양한 무기를 바탕으로 군대 개편에 투입이 되면서 훈련 과정을 빠르게 소화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고민하는 크리처도 있었다.
마치 토레스처럼…….
마치 사춘기 소년을 보는 듯 가끔 자신에 대해 되묻곤 한다.
- 나는 누구지. 왜 이렇게 태어나서 이런 삶을 맞아야 하는가?
더 나아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 삶의 목적이 뭐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운명을 가진 것일까 그렇다면 왜? 왜? 무엇을 위해서. 내가 나를 위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복잡했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너는 크리처에 불과한 괴물이라 놀렸지만 그는 진지했다.
-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거지?
그런 질문에는 나조차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 역시 왜 사는지 모르니까. 그리고 거기서 느낀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저 크리처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는가? 라는 의구심.
생명 공학의 발전으로 지구에도 한차례 유전자 조합에 의해 태어난 인공 수정체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윤리적으로 그들에게도 생명의 존중을 적용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하물며 외계 종족의 생명 공학은 우리보다 훨씬 발전한 모델로서 지금의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고등생물체들이 창조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헌터들의 사냥감 대상으로서 괴물 크리처로 인식되었지만 그들의 변종이 3단계가 거쳐 가며 나나 대원들도 헷갈리고 있다.
실제로 박병수 아저씨는 그들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자기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줄 것을 간간이 요구받고 있어 그것에 대한 고민을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물론 나로서도 그 어떤 대답을 해 줄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 자신이 살아 있는 인격체로 느낄 때 그것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들 크리처들은 아저씨에게 실제로 충성을 하며 복종하고 있다. 진심으로 자신들의 지휘관으로 여기는 것이다.
결국 애초부터 답 없는 명제는 아예 생각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그저 나일 뿐.”
그때였다.
- 너는 너일 뿐이 아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환청.
“뭐, 뭐야?”
- 바로 내가 너이기 때문이다. 우린 하나로 보이지만 둘의 공간을 산다. 빌어먹을! 나는 너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를 하며 수많은 미물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중이지. 하지만 아무리 많이 죽여도 끝이 없는 이 하등의 영역, 제일 고등 차원의 생명체가 지렁이일 정도로 하등한 이곳에서 나는 미생물의 희생으로 그 힘을 축적하고 있지. 기다려라. 내 천추의 한을 네놈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하마.
…….
…….
뭐냐?
방금 전…….
설마 그게 그건가?
카르마타파의 속삭임.
그건 마치 내게 증오와 악의가 가득 찬 음성. 대체 뭔 놈이지?
【 초공간 】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성으로 견고한 요새를 구축한 우주선 저 앞 벌판, 아직 적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진격의 조짐만이 감지될 뿐.
둥! 둥! 둥! 둥!
우리는 그들의 실체를 모른다. 척후병을 보내 수도 없이 알아보려 했지만 실패이다. 이유인즉 이런 초공간에서 나타나는 적들은 그 즉시 거대한 포털을 형성해 그 안으로부터 곧바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그 공격을 할 시점에야 비로소 적의 병력, 모습, 그 실체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른다.
그들이 어느 영역으로부터 온 군대인지. 그저 수많은 차원들의 한 공간에서 불쑥 나타난 미지의 존재들.
그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 침공을 위한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그들의 문명의 수준 정도였다.
과연 과학이 발달된 초고도 기술을 지닌 존재이던가. 아니면 마법을 사용하는 종족이던가.
현재로써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북소리로 진군하는 형태의 고대, 혹은 원시 무기를 지닌 거대한 집단, 혹은 군대일 수도…….
드디어 지평선 저 지점으로부터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군의 진영이 술렁였다.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저들의 실체가 육안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무기는? 병력의 숫자는?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명령 체제로 움직이는 군대이던가. 아니면 괴생명체들의 무리이던가.
둥! 둥! 둥! 둥!
긴장감이 팽배한 가운데 서서히 다가오는 저들의 모습이 이제는 아군의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진영 여기저기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것들은 뭐야!”
“벌판에 쫙 깔렸어.”
“세상에! 지평선 좌우의 끝이 보이지가 않을 정도로 빽빽한데.”
나 역시 그들을 살폈다.
…….
숫자는 엄청났지만…….
평범했다.
그저 경갑 차림의 보통의 고대 군대. 검과 방패를 든 로마 군단처럼 도열을 하고 있었다.
시시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초공간에 오는 종족이라면 그 차원의 특성에 따라 제법 뭣 좀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적들, 아니 모든 공간의 존재들은 눈 두 개, 팔 두 개, 다리 두 개의 인간형을 하고 있을까.
신들이 피조물들을 창조할 때 아예 그렇게 하자고 약속이나 했던가.
게다가 저들은 인간형의 보통 체격들, 이렇게 100m가량의 우주선 벽을 공격해 오는데 그 어떤 공성 기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우리로서는 당연히 좋은 점이지만 게임은 끝난 것 같다. 저들의 병력이 많고 인해 전술로 밀고 들어온다 할지라도 말이다.
둥! 둥! 둥! 둥!
여전히 진격의 기세를 멈추지 않는 저들, 과연 이곳 성벽 아래까지 와서 그 어떤 작전을 펼칠 것인가.
여유가 생겼다.
이런 전쟁 직전에조차 말이다.
어떤 형식으로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보아하니 궁수들도 보였다. 화살이라도 발사할 텐가. 아니 투석기에 큰 바위를 올려놓고 공격할지라도 이 초합금으로 만들어진 우주선 외벽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것이다.
둥. 둥.
두 번의 북소리에 저들 대군이 멈추었다.
그리고 검들을 뽑고 방패를 세운다. 궁수들 역시 활에 화살을 장전하고 공격 명령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다음은…….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갑자기 북소리가 마구 울렸다.
그 순간,
퍼드덕!
퍼드덕!
나도 모르게 외쳤다.
“저건 뭐야!”
그들 등 뒤로 활짝 펼쳐지는 날개들.
와! 와!
이어 귀가 찢어질 정도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날개 달린 존재들…….
그건 반전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