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놀랍게도 레벨이 17에서 127로 무려 110레벨이나 상승되었다.
그 외에 두드러진 스탯 상승들!
특히 패시브 스킬에서 물리 공격력 상승 몇백%가 추가되었고 나머지 역시 400% 이상 플러스 되었다.
체력, 민첩, 마력, 지혜 수치도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카르마타파가 3,000억이 되면서 카르마타파의 속삭임이 느껴진다는 문구가 나왔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뭐 환청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레어 템과 전설 템과의 격차가 이 정도라니.
특히 레벨이 100이 넘게 올라가다니.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먹은 템은 신들과 대적해서 승리한 고대 영웅 클레이토스가 착용한 그 전설 템이 아니던가.
나는 실제로도 몸이 훨씬 가볍고 뭔가 거대한 에너지를 얻은 기분이 느껴졌다.
“아.”
한번 도약을 해 봤다.
타다닥!
슉!
순식간에 몸이 떠올라 이곳 우주선 천장까지 도달했다.
놀랍게도 그 높이만 수십 미터!
신이 났다.
그래서 이번엔 컵을 쥐어 봤다.
우지직.
쨍그랑!
거의 힘도 주지 않았는데…….
이 기세를 몰아 다음에는 손날로 고공 검술 3단계를 펼쳐보았다.
쾅!
우두둑!
쇠기둥을 가격했는데. 그대로 뱀처럼 허물해지더니만 이내 찌그러지기까지 했다.
없던 괴력이 생겼다.
고공 검술의 점프력 역시 그 자리에서 저 높은 3층까지 가뿐히 올라섰다.
이번엔 달리기!
거의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마음먹은 대로 저곳에 있다 이곳에 나타났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데 단 1초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착용한 선홍빛의 군장, 거울을 보니 이건 완전 대박이었다.
저 모습이 나라고?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위엄 있는 모습.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천하를 얻은 것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 내가 이런 힘을 얻었다는 것을 함부로 보여 주어서도 안 되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어머니의 격언.
바로 그때 문 쪽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공주 아레나와 그의 경호원 토레스였다.
아레나는 아직도 내게 몹시 미안한 듯했다.
지난번 토레스가 나를 개 패듯이 반쯤 죽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 천성이 착한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아프고 자존심도 상해 몹시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형도 님. 다시 사과할게요.”
토레스 역시 사내다운 기질이 있던가.
“그대가 원한다면 지난번 복수를 허용하겠다.”
그러고는 가슴을 내밀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패라.”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분이 풀릴 때까지라고? 그럼 넌 죽어. 후후.”
“그래도 때려라. 나도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그때 나는 잔머리를 굴렸다. 이윽고 그의 앞에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한 대.”
“한 대라니?”
“딱 한 대만 때릴게.”
“…좋다.”
“자신만만하군. 후회할 텐데.”
이에 토레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회는 자네가 할걸. 그 실력 가지고 겨우 한 대라니.”
나는 일단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가격했다.
홱!
“악!”
그가 붕 떠서 저만치 수십여 미터 철근 기둥에 몸을 박았다. 내 주먹 힘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철근이 다 찌그러지겠는가.
“컥! 컥!”
토레스는 선혈마저 토해 냈다. 나는 그의 앞에 가서 당당히 말했다.
“후회한다고 그랬지.”
* * *
회의가 열렸다.
내가 지휘관들만 낄 수 있는 이 중요한 작전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이유는 바로 공주 아레나의 경호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그 임무는 책임이 중대하다고 볼 수 있다. 토레스조차 감히 나서지 못하는 자리.
그리고 그 첫 번째 회의 분위기는 묘했다.
대대장 나승구와 몇몇 상급자들과 외계 종족의 수장 가르시아와 원로들.
그 의미를 크게 두자면 지구인과 외계인과의 협력 체제 이후 처음으로 갖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우려했던 불협화음이 일찍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리처 따위가 통제를 한다고 해서 우리 인간들처럼 체계 있는 군대가 만들어지겠소? 그들은 단순한 전투력 외에는 지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통솔 자체부터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그저 없는 셈 치는 게 낫겠지.”
항상 그렇지만 나승구는 바로 저런 성격이 문제점이었다. 뭘 말해도 돌려서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직선적이었다.
그나마 외계 종족 수장의 성격이 부드러워 다행이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크리처들의 지능 한계의 폭이 넓어졌소. 그건 제3단계의 업그레이드 덕분이고 이제는 상하 추종의 논리뿐만 아니라 그대들처럼 군대의 개념으로도 충분히 병영 생활과 훈련이 가능하오.”
나승구는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으로 표정 가득 불만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지능이 개선된들 어차피 그대들의 창조물일 뿐, 난 솔직히 그들을 지휘할 자신이 없소. 일단 생긴 것부터 파충류라니! 우리 지휘관들조차 혐오스러워 가까이 가서 명령을 전달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닐 것이고 그놈들이 말을 듣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소.”
정말이지 성격이 꽉 막힌 인간이 틀림없었다.
그저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옹고집쟁이. 그런데 우리에게도 제법 말을 논리적이고 유화적인 인물이 있었으니 대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박병수 아저씨였다.
그는 이곳 초공간에 들어온 첫날 다리가 절단되었고 내가 치료와 간호를 도맡았기 때문에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부대대장 박병수입니다. 이번 크리처의 군대 양성 훈련 계획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찬성합니다. 사실 저는 오늘 회의가 있기 전에 몇몇 크리처들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 가능성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들로부터 한 가지 희망을 엿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그 단순하고 공격적인 크리처가 아니라는 것을.”
박병수의 말을 듣는 가르시아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대 말처럼 그들은 3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자각하는, 또 다른 지성체로서의 변모를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외형도 파충류가 아닌 반인반수의 훨씬 중화된 느낌. 더군다나 검 계열에 궁수, 도끼, 창 부대를 개개별로 창단할 정도로 무기들도 각각 다양해졌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크리처들의 군대 양성은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래서 크리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합니다.”
그제야 외계 수장 가르시아는 말이 통하는 자가 나타났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재 병력은 대략 3,000명에 달하오. 계속 창조되는 병력까지 합하면 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오.”
“계속 창조된다는 의미는 창조의 한계가 없다는 말입니까? 이를테면 3,000에서 6,000 그리고 이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냐고 묻는 겁니다.”
“그렇소.”
나는 그 말에 내심 깜짝 놀랐다.
크리처의 생산에 한계가 없다면 그 병력이 무제한이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 그들과 맞서 싸운 지구인들의 앞날이 어쩔 뻔했던가.
만일 가르시아의 말이 맞는다면 한 번에 다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크리처들을 사냥하고 또 사냥해도 그다음 후손까지 상대해야 할 운명이 아니던가.
물론 그들은 변종의 변종을 거듭할 테고.
결국 그 전쟁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안 봐도 훤했다.
천만다행이다.
그런 그들이 우리와 동맹을 맺고 초공간에서 다른 차원 종족에 대항하자고 먼저 제의를 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렇듯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면 꼭 제지하는 인간이 있었으니…….
“난 반대요!”
나승구는 단호했다. 꼭 시도해 보지도 않고 먼저 초 치는 스타일.
하지만 그는 대대장의 지위로 우리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질 막중한 임무가 있다. 그렇기에 저렇듯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회의라는 것 자체가 서로 오가는 공방전에 애초의 각기 다른 의견들을 중화시켜 그 타협점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나승구와 박병수 아저씨의 조합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본다.
거기다가 외계 종족 수장의 인내심이 보기보다 더 좋았다. 그는 끝까지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온화한 태도를 유지했다.
잠시 후.
결론이 났다.
우리 대원들이 지휘관으로서 크리처를 훈련시키고 군대를 조직하는 임무. 그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나승구는 결론이 나기 전까지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뭐가 해결되겠는가.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도 그걸 알면서 일부러 소리를 높였는지 몰랐다.
처음부터 그 기득권을 쥐고 가려는 속셈. 나중에 못 이기는 척 박병수의 설득에 넘어가는 그 표정이 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내 옆에 앉아서 그 모든 것들을 경청하고 눈망울을 반짝거렸던 공주 아레나.
자기 아버지인 수장을 닮아서 그녀도 매우 침착한 성격 같았다.
회의의 열기가 높아질 때조차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에게 염려 말라는 그 응원의 눈길이 느껴질 만큼 속 깊은 딸처럼 보였다.
기나긴 회의가 끝나고 나는 내 임무로 돌아갔다.
그녀의 옆에 있는 것.
항상.
식사할 때나 업무 볼 때, 아니면 휴식을 취할 때에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의 경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루하다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가끔 토레스가 나타나 나와 신경전을 벌이는 정도 말고는 대체로 특별한 일은 없었으나 그녀를 관찰하는 것 때문이었을까. 경호하면서 지켜본 그녀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괜찮았다.
“형도 님. 먼저 식사하세요.”
예절도 있었고.
“어디 아프세요?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네요.”
배려도…….
“오늘은 제가 식사 준비를 해 봤어요.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친절한데다가.
“그런 눈으로 노려보지 마세요. 무섭잖아요.”
여린 구석까지.
그래도 나는 마음을 좀처럼 열기가 어려웠다.
엄연히 다른 이질적 존재랄까.
얼마 전까지 우린 서로를 적대시했던 인간과 외계 종족의 관계였다.
게다가 내 아버지는 놈들의 침략에 희생당하셨고 그들은 우리 어머니를 과부로 만든 원흉이다. 바로 그런 수장의 딸을 곱게 바라보기는 쉽지 않았다.
“빌어먹을! 더 이상 내 일에 참견하지 마! 제발! 너는 너 할 거만 하라고. 나는 임무를 받고 네 경호를 맡아서 움직이는 헌터일 뿐!”
내가 그렇게 소리 지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토레스.
“이 인간 나부랭이야. 어디 감히 대 공주마마에게 무례를 범해! 어디 한번 죽어 볼래?!”
그렇게 시비를 걸면 우린 또다시 한바탕 거칠게 격돌을 한다.
팍!
퍽퍽!
쾅!
우두둑!
철근과 같은 고철에 몸이 부딪치며 순식간에 찌그러진다. 나는 토레스에게 가격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이렇게 강해졌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야! 너 왜 갑자기 세진 거냐고!”
토레스도 납득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꿈속에서 템을 먹고 강해진다는 비밀을 세상에 그 누가 알랴.
나는 반격을 했다.
퍽!
내 주먹에 토레스가 멀리 날아간다. 이건 마치 만화책, 드래곤 볼의 한 페이지와 흡사할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 장면이다.
“그만해!”
우리를 만류하는 아레스 역시 만화 속 캐릭터처럼 완벽했고. 나는 그 와중에도 또다시 생각한다.
내가 진정 현실에서 살고 있는 건지 말이다.
꿈에서는 황제요 현실에서는 막강한 주인공이요.
그 두 세계가 연계하니 나는 두려울 게 없었다.
퍽!
토레스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가격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반대편 허공으로 붕 날아가 벽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부지직.
토레스는 E급 헌터들의 마지막 던전 관문의 최종 보스급의 전투 실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그런 존재와 이렇게 대결을 치른다. 뭐 대결이라기보다는 요즘엔 그저 싸움 놀이 정도랄까. 내 쪽에서 진심을 발휘하면 사실 토레스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