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병사가 나를 노려보았다.
“넌 뭐야!”
나는 그 즉시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센 제국의 것이 아닌 다른 나라의 위조 신분이지만 높은 귀족의 신분을.
그러자 병사는 공손해졌고 내게 말했다.
“나리께서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물러나시오.”
“일단 이 사람부터 해치지 말아 주시오.”
병사가 우물쭈물하는 틈을 타 나는 그 사내를 부축했고 골목 뒤로 데리고 왔다.
사내는 그때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이내 눈물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흑. 이럴 수는 없단 말이오. 우리가 그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다니 너무 억울해서 못 살겠단 말이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내는 진정을 했고 우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대들은 누구요?”
나는 이번에도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해 주었다.
“나는 위인전기 작가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영웅을 찾아다니며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책으로 낼 계획이 있어 이렇게 여행 중에 있답니다.”
그러자 사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만 물었다.
“누구에 대해 쓰려고 이 나라를 찾았소?”
“바로 이곳 센 제국의 이시스프 2세 황제 폐하에 대해서입니다.”
순간 그의 눈알이 확 뒤집히더니만 내 멱살을 잡는 게 아닌가.
“이런 개새끼가! 그런 인간 악종을 위인이라고!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어 보자.”
그가 내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물론 옆에서 레온이 그를 간단히 제압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잠시 후.
마침 술이 있어 다행이었다. 배낭에 몰래 감춰 둔 와인 가죽 통 두 개를 비우고 나서야 사내는 진정이 되는 듯 말했다.
“아깐 미안하오. 내가 너무 흥분해서.”
“아닙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죠.”
사내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그럴 만한 사정이라……. 하기야 당신 같은 외부인이 뭘 알겠소. 그나저나 말이 나왔으니 물어보겠소만 그대 정말 위인작가 맞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당장 그 직업 포기하시오.”
“포기하라니요?”
“보는 눈이 없으니까. 당신이 쓸 그 작자는 인간 이하이지 절대 영웅이 아니오.”
이시스프 2세,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자 사내는 가죽 통을 입에다 대고 술을 몇 모금 더 마시더니만 내게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나는 오늘 죽기로 작정한 몸. 내가 진실을 말해 준들 뭐 억울할 것도 없소. 하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오.”
“약속이라니요.”
“그 작자에 대해 위인전기를 쓸 때 내가 지금부터 말할 내용도 반드시 추가해 달라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 그러니 내게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얘기를 말해 주시오.”
사내는 다시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사실 당신의 말을 믿지는 않소. 어차피 귀족 신분에 그 작자와 똑같은 족속들. 아마도 그를 화려하게 치장하여 훗날 길이길이 남을 만한 영웅으로 미화시키겠지요. 하지만 나는 말하겠소. 아까도 말했듯이 이제는 더 버릴 것도 없는 구차한 목숨. 내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대가 판단할 문제지만 어쨌든 죽기 전에 다 털어놓게 되어 마음은 홀가분하구려. 하하.”
그는 다시 벌컥벌컥 마시더니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이시스프 2세가 우릴 핍박하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가 너무도 절실히 원하는 것을 우리 2군단의 장교들이 빼돌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절실히 원하는 것이라니요?”
“그건 군장이오.”
‘군장…….’
그 말에 내 눈빛이 절로 번뜩였다.
“군장…….”
“그는 전쟁을 핑계로 바로 그 전설의 군장을 찾으러 간 거였소. 우린 군은 그저 적을 토벌하는 줄만 알고 수도 없이 생사를 가르며 전진하고 또 전진했소. 하지만 황제는 오로지 탐욕만이 가득하고 그에 눈이 멀어 우리 군단의 일부가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아군을 구하지 않고 정예 병력을 데리고 군장을 찾아 떠났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찾는 군장이 전장에 있었고 우리 손아귀에 떨어졌죠.”
잠시 목을 축인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시 장군 헥토르는 황제에 대한 회의감에 군장을 가지고 귀환해서 그걸 꼭꼭 숨기고 말았지. 하지만 그 대가로 애꿎은 장군의 휘하 장교들만 오해를 샀소. 황제는 우리가 자신의 군장을 숨겼다 믿었고 불같이 화를 냈지. 그러나 세상에 군장이 있는 곳은 오로지 장군 헥토르만이 알 뿐 그 누구도 몰랐기에 그때부터 장교들과 그 가족들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소.”
그의 말을 듣고서 이제야 짐작이 갔다.
“당신은 그 장교들 중에 한 사람이로군요.”
사내는 침묵을 지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장군 헥토르라는 자의 아들이 바로 페르시우스. 그 청년이 분명했다.
“…….”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전모를 다 안 이상 그에게 물어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떠오른 것은 그들에게 대한 무조건적인 사과와 용서랄까.
아니 용서는 오히려 황제인 내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아스카 도시 총독에게 내 신분을 밝히고 대대적인 의식을 치르고자 했다.
아스카 도시에는 억울하게 죽으면 그 넋을 달래기 위해 연에 불을 붙여 날리는 관습이 있다고 했다.
강가를 낀 웅장한 협곡 지대가 꿈틀거리는 곳, 그 끝에 거센 바람을 견디어 내며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 정상에 세워진 제단에는 망자들의 한을 풀어 주는 영결식이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고 불길을 일으키기 위해 장작들을 모두 피웠다.
불을 붙인 연들은 자그마한 화염을 일으키며 저 멀리 보이는 대양(大洋)으로 날아갔다. 지난 20여 년 동안 황제인 내 탐욕의 제물로 희생된 장교들만 331명이었다.
삶을 다한 그들은 언제가 지상으로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고서는 황제의 뉘우침을 직접 보고 싶어 한다는 전설.
내 위치가 워낙 지고하기에 그들은 감히 대항조차 못하고 계속해서 핍박받는 삶을 살아왔다.
나는 오늘 영결식에 참석하였다. 아스카 도시의 총독과 그 신하들을 멀리 물러서 있게 하였고 은빛 머리칼을 날리는 곱상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만을 대동한 채 저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페르시우스.
나는 수심 가득한 표정이었고 페르시우스는 허탈한 심정이었다.
“폐하. 이 모든 것이 그저 남들 보여 주기식인 가식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황제가 아닌 나 스스로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진심일세. 그러니 내 용서를 받아 주게나.”
“그들의 유가족은 이런 형식적인 의식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폐하의 진실한 뉘우침을 원하죠.”
그의 말에 나는 슬퍼졌다. 내 정성을 원치 않는다니.
“내가 어떡하면 되겠는가? 어찌 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겠는가.”
“저로서도 방법을 모릅니다. 폐하께서 이런 의식을 치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 다가가고 계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때였다.
연등을 날리며 여기저기 흐느끼는 아낙네들. 그들은 남편과 일찍 사별한 장교들의 부인이자 가족 같았다.
“흑! 흑! 여보!”
그런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우리 어머니를 보는 듯했다.
내가 어릴 적, 외계 침공이 있고 정확히 3년이 지난 날이었다.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전사가 어머니에게로 통보되는 날, 나는 아직도 그날 어머니의 그 창백한 얼굴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 서 있다가 그로부터 얼마 후 현관 기둥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던 그 모습.
- 흑……. 여보…….
그리고 이어 나를 안은 채 계속 흐느끼셨다.
저 아낙네들의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그 통곡이 자꾸 떠올라,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황제 폐하께서 눈물을!”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폐하께서 우신다.”
“아니 통곡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들은 내가 우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 듯 계속 술렁였다. 황제가 흐느끼는 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황제가 흐느끼니 그도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 황제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이 시원해질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그리고 저 아낙네들의 그 애틋한 심정을 알기에 말이다.
그때 페르시우스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아버님이 폐하께서 언젠가 찾아와 이렇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실 때 그 결계를 풀어 주라 하셨습니다.”
나는 잠시 눈물을 멈추고 물었다.
“결계라니?”
“사실 아버님은 폐하께서 그 군장을 절대 찾지 못하게 하려고 결계를 걸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걸 가져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이렇게 확인을 했으니까요. 그게 바로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셨습니다.”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신기하게도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하려 하는가.
페르시우스는 나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말했다.
“제가 군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지요.”
* * *
얼마 후.
그 군장이 페르시우스의 저택에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동상에 입혀진 그 선홍빛 군장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이럴 수가!”
“이제 가져가십시오. 결계가 풀렸으니까요.”
순간.
[포식의 권능이 발화.]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클레이토스의 군장 (전설 등급)를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모든 스텟 +100 강화(A등급)을 흡수합니다.]
‘어? 전, 전설이다. 레어가 아닌! 그리고 스텟이 +100이라니!’
섬광이 일었다.
파팟―
* * *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클레이토스의 군장(전설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8,270]
[특수 스킬 방어력(발동 시 물리 공격력 +325%)]
[내구도 99/100]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55 획득!]
[현재 포인트 +104]
“정보창!”
[이형도]
[레벨 127]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423 힘 520 민첩 515 마력 309 지혜 412]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고유 - 기류 발사]
[고유 - 현재 방어력의 3제곱만큼 방어력을 상승시켜 준다.]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에서 B등급으로 승격)]
[체력 상승 700%]
[손목 근력 상승 440%]
[도약 능력 상승 530]
[물리 공격 상승 425%]
[카르마타파: 3,000억]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카르마타파의 속삭임이 느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