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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6화 (16/143)

16화

“그, 그래 아우. 내 이제부터 조심하겠네.”

“진작부터 그렇게 나올 것이지.”

레온이 물었다.

“숙부님. 이 먼 길을 오느라 식사를 부실하게 하셨는데 뭣 좀 드셔야 하는 게 아닌지.”

나는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식당가. 벌써부터 음식의 향기가 코끝을 찔러 들어왔다.

“형님은 뭘 드시고 싶소?”

세바스는 아직도 어색한 듯 말문을 열지 못했지만 내가 노려보자 냅다 대답했다.

“양고기.”

“흠. 그것도 좋지. 여정에 지친 몸들, 고기로 영양 보충하는 것도 말이야. 레온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물론 좋습니다. 식당은 제가 알아볼까요.”

“알아보긴 뭘! 그냥 여기 앞에 문이 열린 곳을 들어가면 되지.”

“그래도 맛집이라는 곳이 있을 텐데요.”

“하하. 이젠 이곳에도 맛집이란 단어가 통용되던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어쨌든 들어감세. 뭐 음식점이 거기서 거기겠지.”

잠시 후.

핏물이 흐르는 커다란 양고기 다리. 대형 접시에 각자 뜯어 먹으라고 앞 접시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포크?”

“손으로 하세요.”

레온의 말에 나는 냉큼 손을 뻗어 고기 한 점을 뜯어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오물거리며 허기를 달래는 데 그제야 세바스와 레온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맛좋군. 그런데 덜 익었어. 그래서 더 싱싱하군. 육질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아무튼 좋아. 이 맛이라고.”

“숙부님. 와인을 곁들어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술?

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원래 술을 먹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말이다.

그때 세바스가 말했다.

“아우. 애주가로 유명한 그대가 술을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군.”

아차. 나 지금 황제지. 다소 뱃살이 나온 중년인. 그리고 내가 애주가였다니.

“나는 먹지 않을 겁니다. 형님이나 드시죠.”

“저도 별생각 없습니다.”

“레온. 너는 어때?”

“숙부님. 저는 경호 임무가 있어 술을 들지 못합니다.”

“원래는 좋아하나?”

“조금 합니다.”

“반주로 두 잔만 걸치지 그래.”

“사양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우리 옆자리에 보이는 대여섯 명의 일행들, 꽤나 왁자지껄 떠드는 걸 보니 술에 취한 모양이다.

그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건배를 하며 연신 들이켰고 다시 떠들었다.

“하하. 폭군이 달리 폭군이겠어. 사람들 잡아다 고문하고 숙청의 바람을 일으키고 심지어 형제들까지 감옥에 보낸 작자인데.”

순간 다른 동료가 그를 말렸다.

“이 사람이 미쳤나! 어디 함부로 폐하에 대해 거론하나! 그러다 잡혀가면 누가 책임지려고.”

“후후. 내가 지겠네. 알다시피 지금의 황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닌가. 그 무시무시한 기세는 어디로 가고 매일 황궁에 처박혀 나랏일은 돌보지 않고 궁녀들만 탐하는 인간으로 변했다며.”

“아니 이 사람이 정말. 그만 조용히 좀 해. 그러다 우리까지 잡혀간다니까!”

“아,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고 해. 나라의 국력이 바닥에 떨어지고 민생들은 굶어 죽는 판에 더 이상 말조심할 게 뭐가 있나. 빌어먹을! 오히려 그 옛날 황제가 폭군이었을 때가 좋았지.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고 곳간에 곡식이 넘쳐흘러 살기가 좋았네. 하지만 지금은 이게 뭔가. 백성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호화로운 궁에서 욕정과 탐욕이나 즐기면서.”

순간 레온이 듣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가려고 했다.

물론 나는 그를 말렸다.

“나서지 말게.”

이에 레온이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사실 나는 저들의 술주정하는 내용이 더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황제에 대한 정보를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사실 시종장 세바스는 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물어볼 때마다 말을 빙빙 돌리며 정확한 답변을 피해 왔다.

물론 아직도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짐작은 했다. 황제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런데 폭군이라…….

나는 다시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 정상일 리는 없겠지. 그러니 폭군은 당연지사이고. 그래도 전쟁에서 연승 행진을 한 업적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칭찬 좋아하시네. 그가 자행한 학살과 살육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아는가. 그런 그가 칭찬을 받아야 한다니 어디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하는가.”

그때였다.

그제까지 구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손님들 중 한 청년이 갑자기 그들의 술판에 가서 탁자를 엎는 게 아닌가.

“닥쳐! 황제 폐하는 위대한 정복자이시다. 너희들 같은 졸부들이 함부로 논할 만한 분이 아니시라고.”

순간 일행들은 청년의 행패에 다들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갔다.

“뭐 하는 놈이여! 너같이 새파랗게 젊은 놈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우린 나이가 다 50대를 넘겼고 직접 원정군에 참여해서 그의 만행을 두 눈으로 본 목격자들이다.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이렇다니까. 세상 물정 전혀 모르고 날뛰는 꼴이란.”

그러자 청년이 그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퍽!

그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내 아버님께서 당시 폐하를 직접 모신 장군이시다. 그렇기에 나는 황제 폐하의 진면목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이후로 그분을 욕되게 하거나 그런 무지한 발언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자 그들 일행은 마치 재수 없는 놈 만났다는 듯 자리에서 슬슬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상대해 봐야 소용없어.”

“감세.”

“사실 우리도 말조심해야 하고. 언제 어디서 황제의 끄나풀들이 우릴 잡아갈지 모르니까.”

“제길. 그나저나 아직도 황제를 두둔하는 놈들이 있었나. 그 미친 인간을.”

그는 말하다 말고 주변을 의식한 듯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쉿. 이건 절대 비밀인데. 사실 황제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미쳐 있었다네.”

“그건 무슨 말인가?”

“애초 정신 분열증이 있었다는 말이지. 예를 들자면 혼자서 그 누가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이상한 짓 등.”

“이번엔 무슨 헛소리를 할 참인가?”

“진짜일세. 그 장면을 본 대신들이 한두 명이 아니야. 처음엔 독백이려니 생각했는데 진짜 진지하게 대화를 한다는 것일세. 그것도 황당무계한 내용들이랄까.”

“대체 누구와 대화를 한다는 거지?”

“카르마타파.”

“카르마타파라니?”

“그만함세. 일전에 그 이름을 발설했다가 참수형 당한 대신들이 적지 않다네. 그 정도로 황제에게는 절대 금기어에 속하지.”

잠시 후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세나.”

나는 멍했다.

카르마타파…….

이번에 두 번째 정보를 얻을 기회였는데. 그만 아쉽게도. 그나저나 그 존재와 나와 대화를 했다고?

그들 일행이 완전히 사라지자 청년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술을 들이켰다.

나는 잠시 고민에 잠기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젊은이.”

그가 누군가 하고 나를 올려다봤다.

“…….”

“같이 합석해도 괜찮겠소?”

“누구시죠?”

“나는 멀리 외국에서 살다 온 이방인이오. 직업은 작가이고.”

“작가요?”

“주로 역사적인 인물을 집중 조명해서 다루는 위인전기를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내 멀리서 이곳 센 제국의 황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분에 대해서 책을 내 볼까 해서.”

청년은 잠시 경계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앉으시오.”

“고맙소. 아까 보니 황제 폐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분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 주면 안 되겠소? 사례는 충분히 드리오리다.”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대도 혹여나 불경스런 말을 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나는 일부러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오. 정말 위인전기를 집필하는 작가일 뿐이오. 그러니 어서 말해 보구려.”

“사실 저는 대부분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남들이 모르는 황제 폐하에 대한 일화를 많이 알고 있죠.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듣다마다요.”

한데 청년이 과음을 했던 것인지,

쿵!

그 자리에서 탁자에 머리를 박고 그냥 쓰러졌다.

나는 레온에게 그를 업으라고 지시했고 인근 여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그다음 날.

청년의 이름은 페르시우스였다. 놀랍게도 이 도시에서 알아주는 명문 귀족의 장남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 전에는 황제를 직접 모시고 북벌 원정을 다녀온 대장군이었다고 했다.

페르시우스는 자신이 술에 취해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린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물며 나와의 대화도. 오히려 그는 왜 내가 자신을 이곳 여관으로 데리고 왔는지에 대해서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도대체 그대들은 누구기에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거죠?”

나는 어제 했던 얘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기억이 날지 모르지만 나는 위인전기를 주로 집필하는 작가요. 어제 그대가 내게 이곳 황제 폐하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서 이리로 데려온 것입니다.”

청년의 눈빛에 두려움이 이는 듯했다.

“약속이라고요?”

“그렇소.”

“내가 정말 그렇게 말했습니까?”

“물론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지만 그대는 분명 약속을 했소.”

내가 이런 거짓말까지 하며 그를 설득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황제인 나에 대한 그 어떤 일화든 들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폭군이라 하고 어떤 자들은 달리 표현하고 어떤 자들은 이 청년과 마찬가지로 성군으로 알고 있으니 어느 말이 진실인지 몰랐기에 답답했다.

“제발 말해 주시오. 이번에는 내가 약속건대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사상가도 아닌 순수 무학을 접하고 있는 작가요. 그러니 어제 그대가 말한 대로 황제 폐하에 대한 유익한 얘기가 있으면 나는 그 내용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소. 그러니 도와주시오.”

그 말에 청년의 마음이 동했던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만 말문을 열었다.

“여긴 장소가 그러니 일단 저희 저택으로 가시죠. 정식으로 그대들을 손님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성공이다.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고맙소.”

저택의 규모는 상당했다. 대문에 정원으로 통하는 길은 웬만한 산책로에 버금갈 정도이다.

잘 꾸며 놓은 조경이 황궁으로 돌아온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페르시우스는 우리 일행을 직접 안내하며 소개했다.

“아버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리고 정원 중앙으로 가자 분수대가 보였다. 물이 위로 치솟아 오르며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그런데 그 위로 우뚝 솟은 한 젊은 전사의 동상.

나는 뭔지 모르게 숙연해졌고 그 앞에서 멈추었다.

동상의 정교함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섬세했다. 마치 밀랍 인형을 보는 듯.

그런데 왠지 친근감이 드는 이유는 뭐란 말인지. 그리고 페르시우스의 설명에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서 황제 폐하의 젊은 모습을 토대로 제작한 동상입니다.”

그 밑에 이시스프 2세라고 돌에 새겨져 있었다.

바로 나인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동상의 몸에 걸친 군장이었다.

매우 두툼한 볼륨이랄까. 각종 보호대에 둘러싸여 원래 본 모습이 상상되지 않지만 뭔가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았다.

동상에는 실제 느낌으로 색상까지 칠해져 있었는데 선홍빛의 흉갑은 내게 큰 인상을 주었다.

직접 몸에 걸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할까.

아무튼 옛날 저 늠름한 모습이 나라니까 왠지 우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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