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그는 매우 노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내게 다가와 멱살을 잡아 주먹으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퍽!
“악!”
나는 그대로 뒤로 나가자빠졌는데 그 충격이 얼마나 강한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호위라고 맡겨 놨더니 공주님에게 함부로 대하는 네놈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겠다.”
그러더니만 내 앞으로 다가와 발로 내 복부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퍽!
퍽!
“아악!”
그때 공주가 그에게 다가와 말렸다.
“토레스! 그만해.”
“아닙니다. 공주님. 고작 인간 따위에게 경호를 맡긴 가르시아 님은 그런대로 참고 넘기겠지만 이런 인간이 공주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일으켜 이번에는 뺨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내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낭자했건만 그의 폭력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이대로 당하지 않으려고 급기야 검을 뽑았다.
홱!
“죽여 버릴 테다.”
그러자 토레스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히쭉 웃었다.
“후후. 고작해야 E등급 헌터 나부랭이 주제에 감히.”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고공 검술 3단계로 놈의 사지를 잘라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새끼가!”
타다닥!
파파팟.
그도 검을 뽑아 대응했다.
격돌 순간 나는 그에게 단 일 검도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발길질을 당해 공중으로 떠서 바닥에 뚝하고 떨어졌다.
쿵!
“악!”
“빌어먹을 인간이. 네 능력이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데 감히 공주님을 경호해?!”
“컥! 컥!”
나는 선혈을 토해 냈지만 다시 신형을 추슬러 일어났다.
“개새끼!”
이어 다시 공격을 했다.
타다닥!
시간 지체의 기술을 이용해 고공 검술을 펼친다. 찌르고 베고 수직 일검. 한데 그는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손으로 내 목을 확 움켜잡았다.
순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가 내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때 공주 아레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만해! 그분을 죽이면 협상이 깨지게 되고 우리 종족 모두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하지만 토레스는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았고 그녀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공주님.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던전 237호의 보스 크리처 출신입니다. 제가 상대하는 인간들은 주로 D등급 헌터들입니다. 그자들도 이런 약골보다는 전투력이 몇 배는 강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E등급 쓰레기들에게 거래를 제안한 거죠?”
나는 거의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레나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너를 소멸하겠다!”
그제야 토레스는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욱!”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피를 토하며 신음을 흘렸다.
“아아.”
그 와중에도 충격이 심했다. 내가 고공 검술을 사용하고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리고 저자의 말을 들어 보니 D등급 헌터들을 상대하는 보스 크리처라 했는데……. 마치 하늘 위에 하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목숨은 구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나를 간호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눈을 떠 보니 공주 아레나였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사실 토레스는 원래 제 경호를 담당하는 크리처입니다. 본래 성격은 저렇지 않은데…….”
“…….”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토레스가 고개를 숙여 직접 사과했다.
“미안하다. 아까는 욱해서.”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최근에 꿈속을 통해 템을 먹고 스스로 강해졌다고 자부하던 터였는데 저런 크리처에게 아주 피떡이 되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솔직히 아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잠이 오려나.
마치 세상을 포기한 것처럼 자포자기의 심정이 몰려왔다.
회의감.
아니 나약함의 표본.
내가 고작 이 정도 실력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극도의 실망감.
‘빌어먹을.’
그것도 현재 나보다 고작해야 한 단계 위 등급의 헌터가 상대하는 보스 크리처.
그에게 아주 개망신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더 자자.
【 헤파토스 】
“폐하! 옥체는 괜찮으십니까?”
오랜만에 꿈속으로 돌아왔다.
“흐흠. 머리가…….”
시종장 세바스는 미리 준비한 시원한 냉수 한 컵을 내게 내밀었다.
“시원하게 들이켜소서.”
나는 그걸 마시고 주변을 둘러봤다.
황궁의 내 방, 침대 위.
“내가 기절했었나?”
“네 폐하. 포식의 권능으로 아스가의 검을 드시고 실신했고 이곳으로 모셔 올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으셨습니다.”
“레온은?”
“방 밖에서 대기 중에 있사옵니다.”
“좋군.”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현실에서 꿈을 꾸고 있건만. 참 묘한 기분이었다. 오히려 현실이 악몽 같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 다시 황제가 되어 포근한 안식처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곳에서 할 일이 생겼다.
내가 진정 홀론의 각성자라면 바로 지금의 황제 모습이 내 전생이라는 사실.
하지만 아직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곳에 올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다급했다. 다급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절실했다.
내 실력을 깨닫는 순간,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자꾸 욕만 나온다.
물론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후~”
연신 한숨만 쉬니 세바스는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
“폐하.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지요.”
있고말고.
아주 골치 아프다. 그렇다고 세바스에게 내 문제를 상의하기도 그렇고…….
나는 또다시 골몰히 생각했다.
‘레어 등급보다 더 강한 템은 없는가?’
물론 있다.
그건 바로 전설 템.
그렇다, 이제부터는 레어가 아닌 전설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건 인간계가 아닌 신들의 전유물이라 들었다. 그렇기에 사실 전설 템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필요했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그나저나 내가 있는 이 대륙에 전설 템이 존재하는 곳부터 물색을 해야 하니 정보가 필요했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전설이 서린 곳. 그런 장소로 간다면 뭔가 있을지도 몰랐다.
“세바스.”
“네 폐하.”
“내일 당장 떠날 채비를 하여라.”
“폐하. 갑자기 떠나시다니요?”
“여행 말이야. 머리도 아프고 전국을 유람하며 쉬고 싶구나.”
세바스는 갑작스런 내 말에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금세 답을 주었다.
“알겠사옵니다. 그럼 근위대를 비롯한 특수 군단을 대동하시어.”
“그건 됐고. 나와 너 그리고 레온 이렇게 셋만 간다.”
순간 세바스는 깜짝 놀랐다.
“폐하. 그, 그건 너무도 위험하옵니다.”
“위험하기는 뭘. 나 원래 거추장스러운 거 싫어하거든. 아무튼 내 말대로 해. 이상!”
그로부터 며칠 후.
“세바스.”
“네 폐하.”
“여기 자네가 작성한 리스트 말이야. 이거 믿을 만한가?”
“아 네. 어떤 점에서 말씀하시는지요.”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그 전설이 사실일 가능성이란 법은 없겠지.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특별히 의뢰한 이 전설의 지역들 말일세. 정말 확실한가 해서 말일세.”
세바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폐하.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려 100여 명에 다하는 황궁 학사들이 옛 고서들 수백 권을 뒤져 문헌상에 기록된 것과 역사적으로 그 일치되는 부분만을 가려서 선별하였고 그것을 또 추려 최종적으로 만든 리스트이오니 믿을 만하옵니다.”
그래도 나는 영 뭔가 켕겼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 설령 그게 맞는 말일지라도 전설 지역에서 전설 템이 나오란 법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가는 내 심정, 그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는 템을 먹어야만 하는지, 현실을 버티기 위해서? 꿈속의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바스.”
“네. 폐하.”
“처음 목적지에 대한 전설에 대해 다시 말해 주어라.”
“네. 폐하. 아스카 지방에 내려오는 전설은 익히 대륙에서도 유명한 성소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으로부터 고대 시절 그곳에는 처음 왕조가 생겨났고 대략 수천 년간 그 화려한 문명을 지속시켰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카 왕조에는 수많은 전설과 일화가 전해져 오기도 합니다. 일단 저희 황궁 학사들이 추리고 추려낸 것은 그들이 신과 맞서 싸웠던 그 일화 속의 영웅에 관한 내용인데. 그의 이름은 헤파토스라 합니다.”
나는 도중 그의 말을 끊었다.
“나도 이미 자료를 검토해서 그 내용을 대충 알긴 하지만 정말 그 고대 시대에는 인간이 신에게 대항한 것 맞긴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폐하.”
“자네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고작해야 문헌과 역사기록에서 유추할 뿐.”
세바스는 당황했다.
“폐하. 확신한다고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자료를 토대로…….”
“됐고! 이제 와서 그런 거 따져서 뭐 하나. 그냥 그 영웅이라는 자, 헤파토스에 대해 더 말해 보아라.”
“네. 폐하. 우선 그는 신과 인간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병기를 다루었고 특히 그가 착용한 군장, 그 자체 권능만으로 그들에 대적하여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었습니다.”
군장이라…….
어쨌든 마치 그리스 신화를 읽는 착각이 들었다.
제우스와 헤라 여신, 그리고 올림포스 신들의 영역 다툼, 거기에 맞서는 인간들의 영웅담들.
이 대륙 역시 그런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신과 대적해야만 그 존재가 강력하게 보인다는 것.
물론 나는 헤파토스라는 인물보다는 그가 다뤘던 그 군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포식의 권능으로 먹어야 할 템.
과연 그런 게 존재할까.
손으로 지근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흠~”
그로부터 보름 후 드디어 아스카 지방에 도착했다.
“아우…님……. 아니 폐하. 도저히 말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감히 제가.”
세바스의 불안감에 나는 다시 그에게 호통쳤다.
“허! 이 사람이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내가 누구라 했는가! 자네의 아우, 나는 자네를 형님이라 부를 호칭할 것을!”
그러자 레온이 내 말을 거들 듯 세바스에게 한마디 했다.
“맞습니다. 아버님. 숙부님은 그런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레온의 말에 흡족하였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군. 그나저나 여기 말이야. 지방이라 해서 작은 마을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제법 큰 도시가 들어서 있군.”
세바스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내게 말했다.
“아우…님……. 이곳 아스카 도시는 중개 무역지로서 대륙의 남반부에 위치해 주변국들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아! 이 사람이 또! 또! 아우 할 때 님자를 빼고 존댓말 대신 하대로 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형님.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황궁에 돌아가면 감옥에 넣을 수도 있다고요.”
순간 세바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