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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4화 (14/143)

14화

보름여 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방의 수백 수천은 깔린 변종 크리처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이 우릴 공격하자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창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열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한가운데 98명의 대원들이 있었고 우리와 꼭 닮은 외계 종족 지휘관들과 협상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대사건.

외계 침공 이후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외계 종족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대대장 나승구도 적지 않게 긴장하는 눈치였지만 애써 표를 내지 않았다.

상대방은 귀가 뾰족하고 요정 같아 보이는 곱상한 외계인, 나이는 중년에 접어들었는지 차분하게 말을 걸어 왔다.

“회담에 응해 줘서 고맙소.”

그가 먼저 말문을 열자 나승구는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회담에 응한 건 대원들의 생각이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그대를 믿지 못하겠소. 언제 명령을 내려 저 수많은 크리처들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르니까.”

“그대들의 능력은 그대들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요. 보다시피 크리처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그저 우리의 경호만 관심이 있소.”

나승구는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 그나저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지구를 침략하던 무리의 수장이 어쩐 일로 이런 일개 대대의 나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것이오?”

그러자 수장은 다소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일단 나는 함대 사령관인 가르시아라 하오. 본론부터 말하자면 그대들의 도움을 받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고요.”

“도움이라니요?”

“우린 갇혔소. 시공간의 영향으로 이곳에 초공간의 공간이 형성되면서 지금의 던전은 차원의 틈새가 활짝 열린 개방 문으로 바뀌었고.”

나승구는 여전히 고자세로 나갔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소?”

“그대들 역시 정보에 의하면 갇힌 것으로 알고 있소. 그렇기에 우린 이제부터 적이 아닌 서로 상생할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내 의견이오.”

“후후. 살다 살다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 보겠네. 그대들이 뭐가 아쉬워 인간들과 상생하자는 거요.”

“물론 이곳이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면 이런 협상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우린 그동안의 적대적인 관계를 송두리째 뽑아 버릴 제3의 세력에 위협을 받고 있소. 솔직히 그대들 역시 우리와 같은 상황 아니겠소?”

사실이 그랬다.

우리 역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작은 집단.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들이다. 그 많은 크리처들을 거느리고도 모자라 우리와 상생을 하자니 과연 무슨 의도일까.

“시공의 틈새가 갈라지는 바람에 우리 우주선이 지상으로 추락했소. 그리고 다른 차원으로부터 온 강력한 존재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그대들이 합류하여 그들과 대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오.”

그때 나승구는 내가 궁금하던 것을 대신 물었다.

“크리처들이 지천으로 깔리고 깔렸는데 그들을 부리면 될 것 아니오.”

그러자 외계 수장 가르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창조물들은 한계가 있소. 지능도 낮고 전투력 또한 그 어느 정도 한계에서 머물고 있소이다. 그들의 힘만 가지고는 도저히 저들의 위협에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나승구는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그토록 지구를 삼키려고 작정하던 그대들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나저나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그대는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하쇼?”

다소 깔보는 말투, 하지만 가르시아는 진지했다.

“확신합니다. 그대들도 궁지에 몰린 상황, 우리의 크리처들을 거느릴 수 있다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

나승구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겠소.”

“믿든 안 믿든 아마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텐데요. 사실 이 협상이 깨지면 당신들을 공격할 것이오. 물론 우리 사상자 수가 많겠지만 그대들 역시 희생이 만만치 않을 거요.”

그 말에 나승구는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가 도와주는 대가로 뭘 해 줄 거요?”

“지구에 열린 던전 모두를 폐쇄 조치하겠소.”

그 말에 나와 더불어 대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건 21년 동안 이어진 그 험난한 전쟁을 끝내자는 의미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그런 중대한 사안을 결정해 버리다니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다.

옆에서 저들의 협상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로서는 한 가지 의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보아하니 변종 크리처들은 하급 계열이 분명하고 그것을 관리 조종하는 저들 역시 외계 종족들 중에서도 하급 부서나 기관이 틀림없었다.

사실 현 시점에서 외계 종족의 과학 기술이나 생명 공학 기술은 우리 지구보다 훨씬 뛰어났고 그 던전들만 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시무시한 상급 계열의 크리처들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지구에도 S등급을 비롯해 A, B, C, D 등급의 헌터들이 존재하며 그들과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저들이 그 어떤 권한으로 지구의 모든 던전을 폐쇄할 수 있단 말인지.

뭔지 모르지만 이건 저들의 속내에 뭔가 있을 것이라 게 확실하다.

나승구 역시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끝내 본심을 숨기고 말했다.

“우리도 정부로부터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자들, 지구가 어떻게 되든 상관할 바 아니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대가를 바라겠소.”

“지휘권을 넘겨주겠소.”

그 말에는 나승구도 반응을 보였다.

“지휘권이라니요?”

“이안의 우주선과 크리처들 그리고 우리 종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 모든 통제권을 넘기겠다는 말이요.”

그때 나승구는 주변에 서 있는 크리처들을 살펴보더니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도 못 믿는 저 한심한 쓰레기 변종 크리처들을 나더러 군대로 삼으라는 것이오?”

“저들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또다시 변종을 이룰 것이오. 그때는 군대로서 효용 가치가 충분할 것이라 믿고 있소.”

“그럼 당신이 계속 거느리던지.”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기에 그대들, 인간들의 지휘가 필요하다는 좀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실 사안이 급합니다. 추락한 우리의 우주선은 그 전투 기능을 상실한 채 그저 자급자족으로 겨우 버티는 상태이오. 하나 적들은 24차원 하이닉 계열로 지금도 호시탐탐 우주선을 노린다오. 그러니 그대가 응해 준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소.”

생각 외로 저자세로 나왔다.

그만큼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던가.

나는 저들의 의도를 모르지만 분명 지금으로써는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것은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 초공간이 만들어 낸 일종의 촌극처럼 보였지만 적어도 그들이나 우리나 처한 상황은 마찬가지.

그때였다.

가르시아는 손짓을 하며 그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뒤에서 한 소녀가 나왔다. 귀가 뾰족한 외계 종족, 요정에 더 가깝게 생겼고 한눈에 봐도 귀여운 용모를 하고 있었는데.

가르시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그대들에게 다소 굴욕적이라고 할 만큼 부탁을 하는 이유는 바로 제 딸인 아레나 때문입니다. 장차 여왕이 될 신분. 바로 이 회담의 목적은 이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

“크리처에게 경호를 맡길 수도 없는 판국에 결국 저희들끼리 의논 끝에 아레나에게 인간의 경호를 맡긴다는 결론이 나왔죠. 그러니 부탁드리오. 제발 이 아이를 그대의 수하들 중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을 선출해서 보호해 주시오.”

이제야 해답이 나온 것 같았다.

하급 크리처들을 관리하는 저들의 하급 부서가 그 모든 던전을 폐쇄할 정도의 권한을 가질 만한 이유. 그건 바로 공주 때문이던가.

그렇다면 말이 되었다. 높은 신분의 공주가 왜 이런 하급 부서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그녀는 반드시 보호해야 할 그 명분이 분명할 것이다.

아무튼 이건 지구와 외계 종족 간에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처럼 위대하다던 S등급의 헌터들도 이루어내지 못한 그 어마어마한 일들, 전쟁의 종료를 우리 같은 E등급의 헌터들이 성사시킨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다른 각성자들과는 달리 홀론의 각성자이기에 그 의미가 다를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 모든 힘을 발휘 못 한 채 잠재적인 능력만 갖춘 그야말로 초짜 헌터들.

나는 가슴이 막 두근두근거렸다.

이거 정말 실화 맞아?

어쨌든 그 대목에서는 나승구도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의 의도가 불순하지 않음을 알고 그 역시 결단력을 세웠다.

그런데.

“형도야.”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설마!

“알지 형도야.”

“싫어!”

“내가 보기에는 네가 아주 적격인 것 같다. 그러니 명령에 따라라.”

“싫다니까!”

“너밖에 없어.”

“빌어먹을!”

“후후. 형도야. 아무리 화나도 상관에게 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 *

우주선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지상에 반쯤 박히고 그 나머지가 마치 큰 성처럼 위로 솟아났는데 그 반경이 수 킬로미터에 높이만 족히 2km가 넘는 것 같았다.

나승구가 그들의 제안을 허락한 것은 아직도 잘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나로서는 아주 죽을 맛이다. 나더러 외계 종족의 여왕이 될 소녀를 경호하라니. 이게 갑자기 무슨 팔자란 말인가.

그래도 명령이니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당장 그녀와 함께하면서 여러 이질감이 느껴졌고 그것에 적응하느라 무척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보지 마.”

“…….”

무서웠다.

그 커다란 눈망울,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나 게임의 캐릭터같이 완벽한 외모, 잡티가 단 한 개도 없는 뽀얀 피부, 그런 그녀가 나를 똑바로 응시할 때면 나는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살아 있는 인형이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다시 눈길을 아래로 향하는 아레나.

그러나 그렇게 말해 놓으니 미안한 건 오히려 나였던가.

“누가 고개 숙이라고 그랬어? 그냥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는 거지.”

그러자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의 눈길이 또다시 내 눈으로 향했다.

“보지 말라니까.”

“형도 님이 앞에 있으니까 자꾸 보게 돼요.”

“그럼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려.”

“그게 쉽게 안 돼요.”

“왜?”

“상대의 눈빛을 보지 않으면 불안하거든요.”

나는 성질을 냈다.

“뭐라고?! 설마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빌어먹을! 지구를 침략한 너희 그 재수 없는 외계 종족, 솔직히 나는 이렇게 너와 마주 앉아 있는 것조차 아주 기분이 더럽다고.”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마!”

“…….”

결국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의 공주를 경호한다는 것이 잘하는 짓일까.

아무리 대대장의 명령이라지만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식탁에 올려진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순간 컵이 미끄러워 그걸 놓쳤고 그만 바닥에 떨어트렸다. 깨진 파편이 튀어 하필이면 손등을 스쳤고 피가 뭉글하게 나왔다. 그때 아레나가 다가와 나를 살폈다.

나는 그녀의 관심도 싫은 나머지 그만 손을 휘두르고 말았다.

“내버려 둬!”

탁!

그런데 그녀가 뒤로 벌렁 자빠지는 것이 아닌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좀 심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않고 되레 소리를 질렀다.

“알아서 일어나.”

바로 그때였다.

그녀 옆에서 갑자기 형체를 서서히 드러내는 인형.

스르르.

“뭐, 뭐야!”

잠시 후 빈 허공에서 나타난 존재는 흑색 군장 차림의 검은 머리칼의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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