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크악! 크악!
숲 어느 지점으로부터 들리는 울부짖음. 또 다른 크리처들이 이쪽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것이 분명했다.
나승구는 입술을 씹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다니까.”
대원들은 각자 무기를 빼 들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나 역시 검을 들어 전투에 참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승구가 내게 소리쳤다.
“너는 뒤로 물러나!”
결국 나는 참다못해 항변했다.
“나도 싸운다.”
“네까짓 게 뭘 할 줄 알아서 싸운다고!”
나는 급기야 성질이 났다.
“왜 내가 못 싸울 거라고 생각하지?”
그러자 그가 내 손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곱디고운 손으로. 후후. 평생 검 한 번 만져 보지 못했을 놈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 이 짓거리 하려니 얼마나 겁이 날 텐가. 그러니 닥치고 당장 내 꽁무니나 쫓아다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를 확 밀쳐 버렸다.
나는 오기가 생겼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대장이 뭐라든 나는 싸울 테다.”
“후후. 병신 같은 새끼. 그래, 어차피 여기가 우리 무덤이 될 테니 죽기 전에 객기 한번 부려 봐라.”
“객기 아니거든.”
“주둥아리는 달렸다고 끝까지!”
그 순간.
사방에서 크리처들이 뛰쳐나와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숫자만 족히 수십은 되어 보였다.
“다들 겁먹지 말고 맞서 싸워.”
대장의 외침에 대원들은 그야말로 비장한 각오로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팟!
“컥!”
“이 개새끼 죽어!”
“크악!”
삭! 삭!
“컥!”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나승구가 대원들에게 외쳤다.
“부상자를 보호해.”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애송이는 내가 보호하겠다.”
이어 내 앞으로 나서더니만 달려드는 적들을 대검으로 무참히 베기 시작했다.
나는 대장에게 말했다.
“비켜!”
“헛소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삭! 삭!
그렇게도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대장이 갑자기 영웅 행세라도 펼칠 셈인가. 실제로 그는 크리처가 내게 달려들 때마다 전력을 다해 막아 주었다.
물론 자존심이 상했지만 뭔가 끈끈한 전우애가 느껴지는 것은 뭐란 말인지.
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처음의 몇 배는 더 불어난 것 같았으니. 나승구와 대원들은 점점 지쳐 갔다. 계속해서 공격해 들어오는 크리처들, 그들 중 한 무리가 나승구와 나를 에워싸고 그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대장은 오로지 내 안위만을 집중해서 가로막고 연신 사투를 벌였다.
이어 뒤쪽으로부터 또 한 무리의 크리처들이 달려드는데 나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전투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허공으로 점프를 했다.
타다닥!
파파팟—
[고공 검술 3단계]
“크악!”
적들 세 마리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나는 그 감촉을 느꼈는데 두부를 베는 듯 무를 자르듯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실전에서의 베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2m를 도약해서 대장의 키를 넘어 검술을 펼친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목격한 나승구와 대원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목격하는 듯했을까.
순간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더 열심히 싸워서 뭔가 더 보여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타다닥!
“컥!”
또다시 펼쳐지는 고공 검술 3단계. 이어 연속으로 도약을 하며 세 마리를 베어 내고 또 다시 도약을 해 도합 아홉 마리의 사지를 벨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그 틈을 이용해 내 검을 살폈다.
꿈속에서 얻은 레어템인 아스가의 검. 그 힘의 도움을 받아서인가. 물론 템을 먹고 내 신체에 쌓인 스탯들도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내가 선전하자 각자 힘이 났는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마음껏 전투를 치렀다.
나승구의 들려오는 한마디.
“애송이 제법인데.”
나는 당당하게 맞대응했다.
“어디 제법뿐이겠어!”
타다닥!
파파팟!
“컥!”
“칵!”
이제 적들이 두렵지 않았다. 그저 휘두르면 픽픽 쓰러지니 말이다. 체력은 아직 충분하다. 저들이 저 인해 전 술로 계속 밀고 들어와도 한동안은 신나게 싸울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대략 한 시간 정도가 흐르자 숲 주변에는 크리처의 시체들이 점점 높이 쌓여 갔지만 우리는 아직 전투 중이었다. 그리고 적들의 기세가 주춤하기 시작했으니 그 역시 반가운 일이었다.
대원들의 그때그때 뿜어내는 활 솜씨, 검술, 도끼 등등에 감탄을 자아냈고 그들 역시 내 고공 검술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고공 검술이 그렇게 멋있나 하는 철없는 아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치열한 전투는 막을 내렸다.
* * *
대지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대단했다. 태양은 초원을 태워 버릴 듯 활활 타올랐고 우리는 여전히 전진하는 중이다.
“형도야. 부상자들을 살펴봐 줄래.”
대장의 말투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알았어.”
“저게 또 반말이네. 나이도 열 살 차이가 넘건만.”
다른 대원들도 나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내버려 둬. 저 자식 원래 싸가지 없는 거 알잖아.”
“맞아. 그렇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고.”
발목이 절단된 부상자의 이름은 박병수다.
그는 특히 나를 좋아했다. 자신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내 마음이 갸륵했기 때문인가.
“형도야. 이제 됐고 너도 그만 가서 쉬어라.”
“됐어요. 그래도 상처가 덧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박병수는 형이라 부르기에는 나이를 좀 많이 먹었다. 대략 30대 중반 정도 되어서 삼촌 벌쯤 되어 보였다.
그는 부상을 당하고 나무 지팡이에 기대어 한 발로 걷는데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착잡해진다.
“그냥 들것에 실려 가면 될 것 가지고. 참. 왜 그래요.”
“피해 주기 싫어.”
“그게 말이 돼요? 그 정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으면 당연히 실려 가야죠.”
“병신 취급하지 마라. 나 이래도 싸울 건 다 싸운다.”
박병수의 각성 능력은 표창이다. 외투 안에 대략 수십 개의 표창이 있었고 그걸 던지면 백발백중이다.
지난번 전투에서 그는 그저 아프다고 놀고만 있던 게 아니다. 자리에 누운 채로도 놈들을 해치운 대단한 실력가이다.
나는 그의 부상을 돌보면서 자연스레 친해졌고 이제는 이런저런 농담도 하며 지낸다.
그에 비해 대장 나승구는 여전히 내게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드러낸다. 물론 말투는 순하게 바뀌었지만 그래도 퉁명스러웠다. 물론 나는 원래 성격이 그런가 하고 넘겼다.
사실 그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 아니었다면 우린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람한 체격, 단단한 근육질, 사각형의 얼굴 모양까지 누가 봐도 나는 전사요 하는 표시가 확 나는 남자 중의 남자다.
입이 걸고 성질이 고약해 처음에는 나를 무척 무시했지만 지금은 남자답게 나를 대해 주며 고맙게도 전사로 인정을 해 준다.
“형도야. 다음 전투 때에는 네가 선봉에 서라.”
대장에 말에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싫은데요.”
“왜?”
“총알받이는 싫다고요.”
“자식아! 총알받이가 아니라 고공 검술로 기선을 제압하란 말이다.”
“그거야 대장의 그 무식한 대검이 더 효과적이지 않나.”
“빌어먹을! 그거 전투 한 번 잘했다고 기고만장하기는.”
“사실이 그렇잖아요. 제가 57마리. 대장이 47마리. 그러니까 내가 이긴 거지.”
“잘났다 이 새끼야.”
“욕하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대들면 대장 나승구는 피식 웃고 만다.
“후후. 꼴통 새끼.”
그날 오후.
“이게 무슨 냄새지?”
한 대원이 코를 막자 다른 대원들도 얼굴을 찡그렸다.
“썩은 냄새 같은데.”
“우욱. 너무 고약해.”
나 역시 코를 막고 괴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어디서 시체가 썩는 듯한 냄새였다.
한 대원이 둔덕에 올라서자마자 외쳤다.
“빌어먹을! 저게 뭐야.”
이어 다른 대원들 역시 그곳으로 향했고 저마다 토악질을 해댔다.
“웩!”
“젠장…….”
나승구 역시 의아한 얼굴로.
“갑자기 웬 크리처 시체들이 이렇게…….”
잠시 후. 현장을 살펴본 대원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냥이겠지.”
“다른 소대가 한 짓일 거야.”
이곳에는 대대 병력의 헌터가 투입되었다. 우리 말고 다른 헌터들의 사냥일 수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밖에 없었는데 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 같은 헌터의 소행이 아니야.”
순간 대원들이 일제히 그를 주목했다.
“우리 같은 헌터가 아니라니.”
“놈들이 당한 상처 부위가 전혀 달라.”
“뭐가 다르다는 거야.”
“검의 날로 베인 게 아니라 그 어떤 거친 무기에 찢겼어.”
“그게 무슨 뜻이지?”
나승구는 시체를 조금 더 살펴보더니 다시 말문을 이어 갔다.
“말 그대로 헌터의 소행이 아니라 그 말이지.”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난들 아나.”
나 역시 시체를 살폈다. 가만히 보니 대장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짓이겨진 신체 부위들, 일정한 검의 궤적에 의한 패턴이 아닌 무작위로 마구 찢어 죽인 것 같은 참상.
이 도마뱀들은 그 어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도망가다 고통스럽게 죽은 것 같았다.
누가 한 짓일까에 대한 궁금증 이전에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이 던전에서 일어나는 일들, 애초부터 나는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디딘 듯해 불길함만 증폭이 되었다.
이건 사냥이 아닌 학살로 보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변종 크리처는 엄연히 우리의 적이자 사냥감이다. 그런데 헌터가 아닌 그 외 제삼자의 짓이라면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살육을 벌인 걸까.
생각이 많으니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지금부터 조심해. 변종 크리처 말고 다른 존재가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장의 말에 대원들도 긴장했고 그 두려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빌어먹을. 산 넘어 산이라니.”
대장이 말했다.
“어차피 이게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고 우리는 어떡하든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또 다른 살육 현장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역시 앞서 목격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끔찍하게 당한 크리처들. 물론 이 또한 헌터 짓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더구나 크리처들의 숫자가 족히 수백은 넘었으니 이는 집단 살상이자 그 어떤 단체 무리에 의해 자행된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나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무기를 버린 채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크리처들, 거의 대부분이 뒤에서 공격을 받고 죽은 듯 보였다.
대장은 꽤나 자세히 살펴보더니만 우리들에게 단정 짓듯 말했다.
“사냥이 맞아.”
대원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
“사냥이라니.”
“이들은 사냥당했어.”
사냥이란 말은 우리 헌터들의 고유 전유물이 아닌가. 그런데 누가 크리처들을 사냥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대원들 사이에 커져만 갔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이들을 죽인 그 존재들에 대해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무기를 놓고 사방으로 도망치기에 바빴을까.
보통의 경우 크리처들은 공격성이 너무도 강하여 상대가 누구인지 가리지 않고 무작정 덤벼들기 일쑤였다. 그런 크리처들이 도망칠 정도라면…….
그때 대원 한 명이 뭔가를 발견한 듯 외쳤다.
“다들 이것 좀 봐봐.”
그가 집어 들어 우리에게 내보인 것은 햇빛에 반짝이는 작은 금속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