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잠시 후.
“뭐라? 애초부터 고공 검술은 새와 교감을 나눈 자체로 이미 완성이 된 것이라고?”
“네. 폐하.”
“그러니까 공중으로 뜬 상태에서 새와의 교감에서 얻은 시간 지체 능력을 사용하면 사물이 느려지고 그 체공 시간 역시 비례하여 세 번의 연속 발검이 가능하다 그 말인가?”
“네. 폐하.”
웃음이 나왔다.
“허허.”
이렇게 허무해도 되는 것인가.
“네 이놈. 진즉에 알려 주지 왜 이제야!”
레온이 이번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충성 어린 눈길로 말했다.
“검술의 기본부터 익히신 다음에야 알려 드리려고 했는데 폐하의 성취가 이렇게 빠를 줄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됐고, 앞으로 네 입으로 내 앞에서 자꾸 죽을죄를 지었다고 운운하면 진짜 죽는다.”
파파팟!
정확히 세 번의 발검 기술.
찌르고,
베고,
수직 일검.
착!
멋지게 지면으로 안착했다. 드디어 고공 검술 3단계를 성공한 것이다.
레온 말대로 도약과 동시에 새의 교감을 통해 그 관점에서 시간 지체 현상을 일으키는 동시에 나는 보통의 빠르기로 세 번을 휘두르고도 남을 만한 여유가 있었다.
“이게 다냐?”
“네. 폐하. 완벽합니다.”
“흠.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경하드리옵니다!”
노인은 끝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재수 없는 인간은 상종조차 하기 싫다고.
하기야 거울에 비치는 중년의 모습을 내가 봐도 재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니.
누가 봐도 무지막지한 폭군의 고약한 인상…….
어쨌든 그날로 하산했다.
* * *
노인은 저만치 산 아래로 내려가는 제자에게 갑자기 절을 했다.
“폐하.”
그러고는 뭔가 숙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황제 폐하께서 마음을 돌려 잡수셨나. 예전의 모습이 전혀 아냐. 그나저나 왜 소신을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인지. 하기야 너무 세월이 흘렀군.”
* * *
“폐하. 갑자기 안색이 변하셨습니다. 옥체에 이상이라도 생기신 것인지요!”
레온의 호들갑에 나는 배를 움켜쥐고 상체를 숙였다.
“이, 이런 경우는 처음일세! 우욱.”
“폐하! 배가 아프십니까!”
순간 나는 씩 웃었다.
“허허. 사실 배가 고파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레온. 나는 다시 배를 움켜쥐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상한 일이군. 지금까지 이렇게 허기가 진 것은 처음인데. 마치 포식의 권능이 발동이 아니라 폭발할 것 같은 이 심정. 아. 먹고 싶다! 나를 이처럼 미치게 만드는 그 템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정신없이 사방을 살펴보았고 이어 그 냄새를 찾아 배고픈 짐승처럼 템을 찾아다녔다.
얼마 후. 송림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 들어선 내 자신을 발견했고 나 스스로도 놀랐다.
“여기다! 이 근처가 틀림없어.”
마치 살고자 하는 생존 본능적인 욕구가 강하게 일어났다.
당장 먹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레온. 샅샅이 뒤져!”
“네. 폐하.”
레온 역시 내가 포식의 권능이 발동 직전임을 알아차리고 숲속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급히 움직였다. 그때였다.
“폐하! 이쪽으로.”
“그래! 뭔가 발견했는가?”
“여기 둔덕 아래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건물이라니?”
“언뜻 보아서 폐허 같은데 낡은 신전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신전?”
나는 급히 그곳으로 갔고 레온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봤다.
이끼가 잔뜩 낀 육각기둥들로 떠받쳐진 구조물. 레온 말대로 그건 신전 같아 보였는데 그것을 보자 내 배고픔이 극에 달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못 참겠어.”
그래서 냅다 뛰어 내려가 그곳 입구를 통해 무작정 들어갔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잠시 후.
흡사 악마의 조각상 같은 커다란 두상 위에 꽂힌 은빛 검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이렇게 새겨진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아스가의 검을 뽑는 자 주인이 될 수 있다.]
“아스가의 검?”
나는 너무도 허기가 진 나머지 그대로 다가가 검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순간 쑥 뽑혀 나오는 검.
[포식의 권능이 발화.]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아스가의 검 (레어 등급)를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고공 발검 기술 가능(B등급)을 흡수합니다.]
* * *
현실로 돌아오는 동시에, 역시나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아스가의 검(매직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공격력 1,270]
[특수 스킬 아스가(발동 시 물리 공격력 +125%)]
[내구도 87/100]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25 획득!]
[현재 포인트 +59]
“정보창!”
[이형도]
[레벨 17]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123 힘 120 민첩 115 마력 109 지혜 112]
*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고유 - 기류 발사]
*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
[체력 상승 200%]
[손목 근력 상승 240%]
[도약 능력 상승 230]
[물리 공격 상승 125%]
[카르마타파: 1,307억]
놀랍게도 레벨이 7에서 17, 무려 10레벨이나 상승되었다.
그 외에 두드러진 스탯 상승들!
특히 패시브 스킬에서 물리 공격력 상승 125%가 추가되었고 나머지 역시 100% 이상 상승했다.
체력, 민첩, 마력, 지혜에서조차 큰 상승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카르마타파의 숫자가 무려 1,307억…….
레온이 언급했던 그 카르마타파, 악의 근원과 겹쳐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한데 왠지 악의 근원의 숫자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도대체 내게 득일까 실일까 하는 생각에 점점 걱정스러웠다.
어쨌든 뭐 일단 통과.
【 실험실의 쥐들 】
헌터 E등급 막사에서의 첫날밤, 꿈속에서 상당한 성취를 얻어 낸 나는 아침의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내 모포 안에 소중히 안고 있는 검.
[아스가의 검]
병영 생활에 있어서 이 무기는 때마침 내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지난밤부터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선임들의 눈빛이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밤새 나는 템을 먹고 한층 더 나아진 성취에 자신감마저 얻었기에…….
“이 새끼 너 오늘 죽었어.”
검을 침대 밑에 숨겨 놓고 모포를 개고 있자 내무반장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사내가 주먹질로 위협을 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했다.
“얼마든지 죽여 봐. 능력 있으면.”
그런 내 반응에 헌터들은 혀를 찼다.
“허! 이 새끼 봐라. 제법 똘끼가 있는 것 같은데.”
헌터의 훈련은 아침 6시부터 시작되었다. 보통의 군대처럼 웃통을 벗고 단체로 연병장을 달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대략 10바퀴, 수 킬로미터를 달린 후, 교관에 의해 체력장으로 안내되어 거기서 각자 기호에 맞는 도구를 이용해 체력 운동을 시작한다.
약 10명 정도의 내무반 대원들 모두는 우람한 근육질덩어리에 다들 식스팩을 자랑하는 보디빌더에 가까웠는데 그에 비해 나는 아직 여물지 못한 십 대의 뽀얀 살과 마른 체형.
일단 거기서부터 기가 눌릴 판이었다. 아니 이미 예정된 수순대로 하나둘씩 내 주변으로 모여들더니 아주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는데.
“뭐야. 이런 것도 몸이라고… 쯧쯧. 아무리 낙하산으로 들어왔다 하더라도 최소 기본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그들 중 하나는 손가락으로 내 하얀 볼살을 꼬집는 자도 있었다.
“후후. 계집애도 아니고 참. 그거 거시기하네.”
순간 나는 그의 손을 확 뿌리쳤다.
“손대지 마!”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었다.
“하하. 이 새끼 앙탈 부리는 것도 귀엽네.”
“X발. 이거 진짜 E등급 헌터 맞아?”
나는 그들의 눈을 노려보며 독기를 뿜었다.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가만있지 않겠다.”
분위기가 다소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교관이 나서서 외쳤다.
“다들 여기서 뭐 해. 체력 훈련하지 않고!”
잠시 후 나는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체력 상승 200%, 손목 근력 상승 240%의 패시브 스킬을 몸소 시험하려고 일부러 이 종목을 택한 것이다.
순식간에 스무 개를 거뜬히 해냈고 아직도 여분의 힘이 남아돌았다. 평소 세 개도 못했던 내게 있어서 얼마나 신기한 일이던가.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내무반 대원들. 그들도 다소 놀란 듯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법이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더니.”
곱지 않은 시선들.
어차피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들이 뭐라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레온이 그랬던 것처럼. 이는 시간이 필요한 법.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보다 여유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다음에 실력으로 서서히 증명을 하면 되는 거고.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식당은 넓었다.
다른 중대의 헌터들을 합쳐 대략 백여 명 정도 되었을까. 저마다 체력 운동을 하고 난 뒤에 꿀맛 같은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군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이곳 식당은 뷔페식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각각 덜어서 개인적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물론 나는 이제 신병 헌터로서 마땅히 어울리는 사람들도 없고 해서 창가 쪽에 홀로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상했다. 왜 강호 형이 보이지를 않는지. 분명 함께 이곳 대대에 배치받는 줄 알았건만. 식당에 오면 당연히 볼 줄 알았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함께 지원했는데 대대가 갈릴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내 앞에 누군가 앉는다.
“앉아도 될까?”
“……?”
“보아하니 신병 같은데. 처음에는 꽤나 갈굼 받을 거야. 사실 나도 우리 내무반에서 왕따 당하는 중이거든. 하기야 그게 우리같이 나이 어린 신병들이 겪어야 할 운명 같은 것이겠고…….”
“누구지?”
“아 이런, 내 소개부터 해야 했는데. 나는 이제 입소한 지 일주일 되는 4소대 소속 박성준이라고 해.”
그는 자연스럽게 식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앉았다.
“너는?”
“2소대 이형도.”
“직업은?”
“글쎄. 아직 몰라.”
“각성한 건 맞지?”
“그런 것 같아.”
“그런 것 같다니? 각성자들은 대부분 그 어떤 확실한 능력을 받고 헌터가 되는데. 게다가 여기는 하급을 벗어난 E급 등급의 헌터들이 모인 곳. 아직도 자신의 직업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이 좀 많은 것 같다. 생긴 건 기생오라비처럼 곱상했다. 그는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더니만 다시 떠들었다.
“음식이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도 고급스러운데. 흠. 뭔가 이상해.”
나는 별의별 놈이 다 있다 싶었고 그냥 내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녀석이 또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이는?”
“열아홉.”
“동갑이네. 그럼 말 트자. 형도야.”
“…….”
“이제부터 내 성인 박은 빼고 성준이라고 불러. 그리고 오늘 나를 만난 것을 네 인생의 최고 행운이라고 여겨.”
그건 또 뭔 헛소리인가.
“나는 밥 먹을 때에는 조용한 게 좋거든.”
더 이상 나대지 말라는 뜻에서 한마디 했다. 그러자 녀석이 빙그레 웃었다.
“후후. 다짜고짜 말도 많고 처음 보자마자 건방지게 나오니까 거슬리긴 하겠지. 하지만 나를 만난 게 엄청난 기연을 얻은 거라는 걸 실감할 시간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 뭐 이상한 놈이 다 나타나 가지고 첫날 식사하는데 훼방을 놓나 싶어 다른 자리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우린 실험용이야. 이제 하루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실험실의 쥐들이지. 조금 과장하면 시한부 인생들. 이 고급스런 진수성찬을 먹고 난 뒤에 긴급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질 거야. 바로 저들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출동을 시키겠지. 그리고 우리는 전장에서 변종 크리처들과 대적하며 살육당할 테고. 정부는 그 전투 과정을 녹화하고 분석하여 자료로 쓸 테고.”
나는 참다못해 뭐라 소리쳤다.
“닥치고 네가 딴 데로 꺼져!”
그러자 녀석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만 말했다.
“너도 이산가족 되지 않았냐?”
“이산가족이라니?”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지원했을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누군가와 같이 왔겠지.”
순간 강호 형이 떠올랐다. 이어 그가 말했다.
“나는 친구들 네 명하고 왔는데 나 혼자만 이 대대로 배치받았지. 흠. 아무래도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여기에 배치받은 자들은 마치 상부로부터 선택당해 하나의 대대로 구성한 것 같은 게……. 여기 각성자들 대부분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공통점이라니.”
그 말에 박성준은 다소 긴장 어린 눈빛으로 입술을 달달 떨기 시작했다.
“그 공통점이라는 게…….”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