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말해 보게나. 카르마타파가 뭔지!”
내가 화들짝 놀라 묻자 레온은 당황한 듯.
“카, 카르마타파는 원천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 원천이 뭐냐고!”
“아 그게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원천을 언급했다면 뭔가 안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래 그 원천이 뭐와 관계가 있냐고 묻고 싶군.”
“원천이란 태고의 역사가 시작된 그 시점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어둠과 관련이 있는 듯…….”
“어둠?”
“어둠은 악의 근원이기도 하죠. 바로 그곳에서 유래가.”
“악의 근원이라니?”
“더 이상은 저로서도……. 폐하.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생각임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
카르마타파……. 그저 우연히 겹친 말이던가.
그나저나 악의 근원이라니.
왜 하필 악일까.
젠장. 혹시 그게 뜻하는 것이 재앙일까.
아무튼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소 그 실체를 알 수 없어 실망스런 표정으로 레온에게 말했다.
“됐네. 뭐 아니면 말고.”
그때 주의를 돌리기 위해 레온이 새 한 마리를 유심히 살펴보더니만 말했다.
“방금 저 새의 날갯짓 횟수는 정확히 154회였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 그럴 어떻게 알지?”
“바로 교감입니다.”
“교감이라니.”
“저 새와 저와의 교감 말이옵니다.”
그건 뭐 수긍이 가는 듯했다. 보통 인간이 동물과 교감으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을 들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교감한다고 어떻게 날갯짓 횟수를 아는가?”
“그 교감이라는 것이 폐하께서 아시는 일반적인 것과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
“교감이란 뜻은 내가 직접 저 새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일종의 영혼 이입의 기술이 들어가죠.”
“영혼 이입은 또 뭔가.”
“말씀드린 대로 제 영혼이 저 새의 조그만 뇌에 깃드는 것입니다. 물론 저 새는 원한다면 인간이 자신의 두뇌에 깃드는 것을 기꺼이 허용하는 것이옵니다.”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살다 살다 별 얘기를 다 들어 보는군. 사람의 영혼이 새에게 이입이 된다라.”
그때 레온이 진중하게 말했다.
“황당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레온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나 역시 이번엔 진지한 눈빛으로 다시 새들을 관찰했다.
“내가 백번 양보한다고 치고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저 새들과 교감을 한다는 말인가?”
“저도 처음엔 그것 때문에 이 과정을 수련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도 놀라고 말았죠.”
그때 레온은 팔을 들어 올려 손등을 내밀었다. 그 즉시 새 한 마리가 그 위로 내려앉았다.
“이 녀석이 저와 교감을 했지요. 그동안 보고 싶었답니다.”
“새와 대화까지 나누는가?”
“네 그렇습니다. 폐하.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뇌와 이 녀석과는 동조가 되어 서로 생각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다 있군. 어쨌든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믿긴 믿어야 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스스로가 과연 새와 교감을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일세. 대충 짐작을 해 보니 먹이로 꾀일 수 있겠고 아니면 그 외에 다른 방법 등이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새는 새일 뿐. 인간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러자 레온은 갑자기 내게 손을 내미는 게 아닌가.
“폐하께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하는 대로 따라만 주신다면 말이죠.”
“어떻게.”
“일단 눈을 감아 보시죠.”
그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비우다니. 애초 내가 뭘 품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 무슨 종교도 아니고.
“새의 입장이 되어 보세요.”
거기서 나는 끝내 말문을 열게 되었다.
“새의 입장이라니?”
“그들은 영물입니다. 바로 새가 된 영물들이죠. 원래 그들의 영혼은 폐하처럼 인간인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그들이 날개를 지닌 채 보다 자유로운 생명체로 전환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폐하께서는 그들을 단순히 새로 보시지 말고 아주 고귀한 저 상위 영체로, 마음의 눈으로 보시면 그 실체가 나타나게 되어 있지요.”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킨 채 레온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애초 레온의 말을 완전히 이해 못하고 그렇게 하는 척을 하려니 내 머릿속에는 온갖 잡생각들로 가득 찼다.
아마도 불교에서는 그것을 번뇌라 했던가. 그들은 구도를 위해 속세의 때를 벗겨 내기 위해 마음을 비운다고 했다. 적어도 지금의 내 행동이 그것과 비슷한 종류의 수련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되던가. 아무나 생각을 떨쳐 버리고 싶다고 떨쳐 버린다면 모두가 부처님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레온은 지금 내게 그것을 요구하니 참… 난감하기도 하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일 말이다. 천진한 아이 때는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이 순수하고 해맑게 보이다가 점점 성장하면서 변해 간다.
결국에는 속물적인 인간이 되어, 탐욕의 노예가 되어 온통 거짓과 위선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폐하. 새와 교감하는 비법은 아이의 생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내 속마음을 읽었던가. 절묘하게 내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어린아이라…….
그러고 보니 갑자기 내겐 친구 같은 새가 한 마리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란 말인가?
그건 너무도 멀리 있는 아련한 기억과도 같았다. 이 순간 봄날 아지랑이처럼 새록새록 솟는 듯.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기억을 빌리는 것처럼 이 묘한 기분.
순간 손등에 뭔가 내려앉았다.
“폐하. 눈을 뜨지 마시십시오. 한 녀석이 교감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 내심 놀랐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고 너무 기뻐 하얀 치아까지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왜일까?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지금 이 아이의 기억은 내가 아닌 황제의 어린 시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꿈을 꾸면서 황제가 되었고 마치 그가 제삼자인 양 괴리감이 느껴졌다. 한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애초 나와 황제는 같은 본질에서 갈라진 두 개의 객체라는 것, 그러나 그것은 곧 다시 하나로 합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헉.”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경기를 일으킨 것 같은데 방금 전 내 손등에 앉은 새가 도망을 가지 않는 것이다.
이어 내 앞에 수염을 기른 중년인, 황제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나는 저 새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나를 보는 것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폐하. 교감이 이루어진 듯합니다. 정말 경이로운 일입니다. 저는 수개월에 걸쳐 깨달은 일을 단 한 번에 성공하시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 새는 이미 폐하를 알고 있는 듯 옛 교우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이 그랬다.
처음 경험이 아닌 것 같았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그 새에게 친숙함을 느꼈다. 이미 알아 왔던 사이라도 된 것처럼.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때 새가 날아올라 날갯짓을 했다.
펄럭~
펄럭~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너무도 느리게 보였다.
날갯짓 한 번 하는데 몇 초나 걸릴 정도로.
“폐하께서는 지금 새의 관점으로 시간 지체 현상을 경험하시고 계십니다.”
“세상에.”
“현재 날갯짓을 몇 번이나 했습니까.”
“세 번, 아니 이제 네 번째 하려고 날개를 폈네.”
레온의 흥분한 목소리.
“폐하! 축하드립니다. 성공하셨습니다!”
며칠 후.
노인은 상당히 고깝지 않은 시선으로 내 얼굴을 째려보고 있었다.
“보인다고?”
“네 스승님. 분명 고공 검술 3단계의 공중에서 찌르고 베고 수직 일검이었습니다.”
“짐작으로 넘겨짚은 거겠지!”
“아닙니다. 스승님.”
“누가 네놈의 스승이야! 나는 너같이 탐욕 덩어리처럼 생겨 처먹은 늙은 놈을 제자로 둔 적이 없어.”
“늙기는 스승님이 더 하신대.”
순간.
노인의 지팡이가 내 등짝을 후려쳤다.
“고얀 놈! 아마도 레온이 귀띔을 해 주었겠지. 며칠 안에 내 3단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혀!”
나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후후. 그런데 이렇게 해냈잖습니까. 스승님.”
팍!
“악!”
갑자기 노인이 일어나서 고함을 쳤다.
“보는 건 쉽지. 하지만 그걸 직접 행하는 건 절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더니 자기 움막집으로 확 돌아가 버렸다.
나는 레온과 둘만 남은 상황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허탕일세. 아무 가르침도 주지 않고 그냥 가시다니 말이야.”
하지만 레온은 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폐하 그게 아니옵니다.”
“아니라니.”
“드디어 고공 검술 3단계의 발검 수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뭐라?”
“원래 스승님은 직접적인 표현보다 돌려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아까 스승님이 말씀하셨듯이 ‘직접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미는 바로 수련을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절반은 성공한 셈이군.’
그날 오후 늦도록. 공중에 떠서 검을 수십 수백 번도 더 휘둘러 봤다.
타다닥!
붕!
꽈당!
단 한 번의 스윙에 또다시 흙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빌어먹을!”
그런 내 모습에 레온은 여전히 나를 추켜세웠다.
“폐하! 훌륭하십니다. 이전보다 발검이 유연해졌습니다.”
나는 바지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충신은 왕에게 아부하지 않고 직언을 하게 마련일세. 그러니 오버는 하지 말게나.”
“폐하. 제가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옵니까? 소신의 견해로는 폐하께서는 이미 그 발검의 논리를 아시는 것처럼 동작의 유연함이 천부적으로 타고나신 것 같습니다.”
“타고나다니. 허허. 이제 웃음밖에 나오지 않네. 내 중년에 다 늙어서 천부적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내 몸이 오글거려 더 이상 주체를 못 함세. 그러니 그만하게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나는 내게 이런 소질이 있나 싶어 무척 놀라는 중이다.
사실 현실에서 나는 평생 검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완전 초짜이다.
그런데 지금 허공에서 베기를 함에 있어서 마치 전에도 해 본 것처럼 가볍게, 유연하게, 절묘함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판단 감각이 절로 생긴 것이다.
여기서 나는 또 머릿속에 그가 겹쳤다.
황제.
황제는 어린 시절 검술을 배운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되어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당장은 답답했다. 고공 검술 3단계에서 한 번 정도 잘 휘둘렀다고 자화자찬하는 꼴이란 내 자신도 못 봐주겠으니까.
“레온.”
“네. 폐하.”
“이 정도 했으면 이쯤에서 비법을 말해 주지 않겠나.”
순간 레온은 깜짝 놀랐다.
“폐하. 제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셨습니까? 마침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사옵니다.”
“내가 좀 급하네. 하루빨리 검술을 속성으로 배워야 할 이유가 있기에 자네가 좀 도와주어야겠네.”
“네 폐하! 알겠습니다. 이제 기본 발검 자세를 익히셨으니 그 비법을 전수받으실 자격이 충분히 있사옵니다.”
“설령 내가 자격이 없을지라도 자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성공시켜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성질을 부릴 테니까.”
순간 레온은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상체를 엎드려 사죄했다.
“폐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감히 폐하께 자격을 운운하다니요. 저를 죽여 주십시오.”
“후후. 농담일세. 죽이긴 뭘 죽여. 내가 그런 무지막지한 인간으로 보이나?”
‘흠. 아니지. 그럴 만도 하겠지. 전에 황제는 아주 폭군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다음 단계로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