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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6화 (6/143)

6화

* * *

그날 저녁.

형은 한 시간이 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차려 준 밥상을 나 혼자 먹으며 계속해서 형의 눈치를 보았다.

세상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한숨만 쉬어대는 강호 형.

“형. 먹을 건 먹고 한숨 쉬어.”

그제야 형은 나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

“끝났어.”

“끝났다니?”

“F등급 헌터들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단 말이다. 아니 이제는 중급까지도 그렇게 될 거야.”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건 아니잖아. 아직 우리 위쪽으로 상당한 실력을 가진 헌터들이 많은데.”

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상급으로 갈수록 헌터의 숫자는 소수가 되지. 그리고 아까 보았던 변종 크리처들의 숫자는 더 늘어날 테고. 빌어먹을! 우린 고작 한 놈 상대하는 데 목숨을 잃을 뻔했잖아. 그런데 그런 변종들이 수백 수천 마리가 몰려온다면 그때는 어떡할 건데.”

“…….”

그 말에 나는 그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형은 또다시 침묵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형이 자리에서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뭐가?”

“가자.”

“어딜?”

“등록하러.”

“뭘 등록하러.”

“헌터 말이다. 이대로 하급에 머물다가는 언제 죽을지 몰라. 너도 어차피 헌터 생활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테고. 마침 정부에서는 이번 변종 크리처 출현 때문에 앞으로 헌터는 군대식으로 재편해 E등급을 소집하기로 했거든.”

나는 어리둥절했다.

“형. 나는 초보 헌터라고. 그런데 바로 E등급이라니.”

“모집 요강에 변종 크리처 부산물을 가지고 가서 증거로 제출하면 바로 E등급 헌터가 될 수 있다고 했어. 너는 오늘 잡은 크리처가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고.”

그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머니에게 말씀드린 뒤 그날 새벽에 입소 상담을 받고 그대로 합격 통지서를 받아 내무반에 배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낯선 헌터들과 같이 막사 간이침대 위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형은 다른 내무반으로 배정되어 헤어지게 되었고.

그로부터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날이 새기만 바랐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신참 하나 들어왔는데. 흐흐.”

순간 옆자리로부터 뭔가가 날아와 내 얼굴을 가격했다.

퍽!

“악!”

“뭘 각성했기에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E등급이야.”

“조용히! 교관이 듣겠어.”

“신고식을 못 해서 아쉬운데…….”

“내일 우리 식대로 해 주지.”

“그게 더 가혹할 텐데.”

“후후. 만일 버틸 수 없으면 그냥 퇴소해야지. 이런 풋내기와 같은 조가 되었다가는 우리마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더군다나 크리처들이 변종이 되어 팀 간에 화합이 틀어지면 목숨마저 잃을 수 있어. 그러니 어떡하든 내보내야지.”

“그럼 네 말대로 내일 하자.”

“도대체 이런 애들을 왜 하필 우리 쪽에 보내 가지고 신경 쓰게 만드는 거야.”

일단 위기는 모면한 듯싶다.

이들은 내가 어린 나이에 운이 좋아 E등급으로 배정받은 줄 안다. 그리고 내일이면 시기와 질투를 담아 나를 골려 줄 게 뻔해 덜컥 겁이 났다.

상대들이 E등급 헌터들이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왠지 오기가 생겼다. 저들에게 굴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자존심이랄까.

하물며 이런 식으로 쫓겨날 수는 없었다. 나도 남자인데. 물론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꿈을 통해 얻는 기연.

하지만 그저 레어템 하나 추가한다 해서 과연 일취월장할까. 그것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쩌랴. 방법이 이것뿐인걸. 일단 뭐든지 얻고 보자는 생각에 잠을 청했다.

그날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어 다시 꿈속에 들어갔다.

* * *

“폐하. 맛있게 드셨습니까.”

“…….”

나는 지근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고 잠시 안정을 취했다. 그런 내 모습에 세바스는 다시 불안해하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당분간 말 시키지 마라.”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센 왕국으로 귀환하는 여정에 있어 여전히 골치가 아팠다.

‘후~ 방법이 없어…….’

“폐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세바스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폐하. 혹시라도 고민거리가 있으시다면 제게 말씀하시지요.”

“내가 왜 자네에게 얘기하나.”

그러자 세바스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전에는 그리하셨지 않사옵니까?”

“전에……?”

“폐하께서는 그 모든 고민거리를 저와 상의하셨고 황송하게도 제 고민을 들어주셨습니다.”

나와 시종 간에 내가 모르는 관계가 있었나 보다.

“흠. 서로 상의를 했다고?”

“네. 폐하.”

“음…….”

이제 보니 내가 꿈속에서 지낸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정작 제일 가까이에 있는 세바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떤 인물인지 성격은 어떤지, 취미, 좋아하는 음식 등등.

“내 고민은 별거 아니네. 그건 그렇고 자네 혹시 고민거리가 있나?”

그때 세바스는 다소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즉시 그에게 뭐가 있음을 느낌으로 알았다.

“있군! 있어.”

“폐하. 아직 기억을 해 주신다는 것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기억? 그건 또 무슨 말이던가.

“폐하. 일전에 제가 드린 말씀은 너무 괘념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제 아들놈은 자기 알아서 살아갑니다.”

“…….”

내가 기억 못 하는 전 황제와 시종 간에 그 어떤 말이 오갔음이 분명했다. 물론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지난번 말한 고민이 무슨 내용인지 알지만 이번엔 허심탄회하게 더욱 상세히 내게 자네 아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말해 보아라.”

세바스는 감동 어린 눈길로 내게 절을 하였다.

“폐하. 감사합니다.”

잠시 후 그의 얘기가 이어졌고 대략 한 시간 가량이 흘렀다.

내용인즉 세바스에게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이름은 레온이었다. 레온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면이 있었고 특히 검술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아버지 세바스는 아들이 그 좋은 머리로 학문을 공부하여 학자가 되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레온은 검술에도 재능이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고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결국 검사의 길을 가기로 했다.

세바스는 이에 실망하여 아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검술 학당의 수업료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레온은 가출하여 산속에서 독학으로 훌륭한 검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저 듣기에는 뭐 평범한 가족사 내용 같지만 앞으로 얘기할 그 후반부 내용이 내가 지금 처한 환경과 비슷한지라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

레온은 독학으로 수련한 검술로 제국의 공공 기관에서 주최한 검술 시합에서 우승을 하고 곧바로 자신이 제일 원했던 특수 군단에 서류를 제출해 서류 전형을 기다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바로 합격을 해 버렸다는 사실. 그가 황제를 모시는 세바스의 아들이라서 특혜가 주어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그쪽 바닥에 공공연한 소문으로 나돌게 되었다.

물론 세바스는 자기 입으로 자신은 절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하고 실제로 아들 레온이 검술 시합에서 우승한 증거까지 제출할 수 있다고 그랬다.

일단 문제는 거기서 일단락되었지만 정작 레온은 입소 첫날부터 내무반에서 그를 의심하는 병사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병영 생활은 그때부터 지옥이었다.

상급자들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온갖 조롱과 학대를 당할 시점에 세바스는 자신의 아들이 받는 처사가 너무 가혹하다 여겨 황제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반년의 시간이 흘렀고 세바스는 지금의 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결론은 이제는 아주 잘 지낸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특진까지 하여 지금은 최연소 중대장 직급에 오른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라 하는데, 그 대목에서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조롱과 학대를 버티어 냈을까 하는 것,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인물이 아닌가. 그래서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자네 아들을 보고 싶군.”

“폐하! 감히 제 아들이 어찌 폐하께 알현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니 뭐 좀 물어보려고.”

세바스는 너무도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폐하. 제게 말씀하시면 제가 아들놈에게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됐고. 지금 당장 불러.”

잠시 후.

레온이 저 멀리서 당당하게 걸어왔다. 첫인상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뭔가 이글거리는 눈빛, 그렇다고 강렬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그런 기개를 감추려는 듯 겸손한 표정.

“자네가 레온인가.”

금발의 청년이 무릎을 꿇었다.

“특수 군단 5대대 제4중대장 레온이 감히 폐하를 뵙습니다.”

“일어나게.”

“네. 폐하.”

번쩍거리는 은 투구의 초록색 깃털, 흉갑의 독수리 문양과 어우러져 가히 명문가의 자제를 보는 느낌, 뭔가 끌리는 매력이 확실한 건장한 아이돌 타입이랄까.

“나이는?”

“22세입니다.”

현실 나이로 나보다 세 살 많았다. 물론 그의 눈에는 내가 아버지 벌 되는 중년인, 아니 감히 눈을 마주칠 수도 없는 지고지순의 황제.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아라.”

“폐하. 어찌 감히.”

“나도 그저 사람이니라. 그러니 편하게 대하라.”

그제야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레온.

“내 그대 아버지에게 내용을 들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물어보려고 자네를 부른 것이다.”

“폐하. 황공하옵니다.”

“말을 들어 보니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이었건만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냈는가?”

나로서는 현실에 닥친 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돌려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이 절실한 상태였다.

“얘기해 보아라. 자네의 병영 생활이 시작부터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하는데, 그때 두렵지 않았는가?”

그러자 레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만 말문을 열었다.

“두려웠습니다.”

“두려웠겠지. 첫날부터 자네를 어리다고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아무튼 어떻게 버티었나.”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내버려 두었다고? 막 때리고 욕지거리를 뱉어도 말인가?”

“네. 폐하.”

“그럼 그들에게 지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레온은 잠시 당황했고 다시 말문을 조심스럽게 이었다.

“폐하.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이기고 지고를 떠나 함께 전장을 누비며 전우애를 나눌 소중한 상급자이자 동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다소 짓궂은 환영식조차도 언젠가는 제게 좋은 추억거리로 남게 될 영광이옵니다.”

“…….”

뭔가 다르다. 몇 마디 나눠 보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기를 확 죽이니 말이다.

“하하.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자네를 떠본 것이야.”

그는 당황해서 다시 부복을 했다.

“폐하.”

‘흠. 그런 넓은 마음가짐이라면 몇 대 터지고 욕먹는 정도야 뭐 그런대로 넘어가겠는데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게 문제지.’

“그래 그런 식으로 얼마나 버티었는가.”

“대략 3개월 정도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당하고만 있어서 더욱 무시당한 것은 아니었더냐?”

“아닙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그냥 최선을 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테고… 음. 뭔가 보여 줬겠지. 가령 자네 검술을 잘한다고 했으니 그걸로 기를 죽이거나 뭐 그런 것들.”

“수련에 열중한 건 사실이지만 제가 특출하다고 자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게 바로 특출한 것이지. 재능이 엄청 있지만 겸손한 자세. 아! 이제 보니 그들이 자네에게 마음을 연 이유를 알겠군. 자네 정도의 실력에다 성품마저 완벽하니 짐 역시 그대가 좋아지려 하는군. 후후.”

순간!

레온은 다시 어쩔 줄 몰라 부복했다.

“폐하! 송구스럽습니다.”

“자네에게 짐을 보호하는 임무를 주겠노라. 물론 근위병들이 있지만 그들은 그냥 형식적으로 있는 거고 매사 내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역할, 그걸 경호 비서라 했던가. 아무튼 그거 해라.”

“…….”

레온은 당황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폐, 폐하.”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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