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족장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나무를 손으로 가리켰다.
“바로 저 기둥 지점에서 검은색 반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기류 같은 것이 뿜어 나오며 부족 전사들을 하나둘씩 휘어 감쌌고 이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조금 오금이 저렸지만 한편으로는 허기가 지니 이는 분명 저 나무와 찾고자 하는 템이 관련되어 있지 않나 싶었다.
“겉보기에는 아무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소만.”
“불규칙적으로 기류를 뿜어냅니다. 그러고는 삽시간에 마을을 덮지요.”
“그 검은 기류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소?”
“안개와도 같지만 분명 그 각각의 형체를 띄고 있는데.”
“각각이라면 한 개 이상을 말하는 것이겠군요.”
“때로는 수십 수백 개로 분리되어 각각의 방향으로 사람들을 향해 덮칩니다.”
그때였다.
슈! 슈! 슈! 슈!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흑색 기류.
족장과 주민들은 소리를 질렀다.
“나타났어.”
“악령이!”
“도망가!”
그때 나는 갑자기 배를 움켜쥘 만큼 배가 고파졌고 그대로 비틀거렸다.
“헉.”
뭔가 먹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랄까. 그건 허기가 진다는 개념보다 먹지 않으면 곧 의식을 잃을 정도로 절박한 상태였다.
“아아.”
내가 휘청거리자 세바스와 근위대원들이 재빨리 내게 다가와 나를 몇 겹으로 둘러싸며 철통 방어를 했다.
“폐하를 보호해라! 당장.”
군대마저 술렁였다. 심지어 제7 군단장 갈비아스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했다.
“당장 저 사악한 나무를 베어라!”
하지만 나는 왠지 그러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겨우 정신을 차려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물러가라!”
세바스가 대신 더 큰소리로 외쳐 주었다.
“폐하께서 다들 물러가라신다!”
곧이어 근위대와 병사들은 주춤했고 세바스와 군단장은 내게로 와서 상태를 살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폐하! 저 갈비아스가 저 나무를 당장 베어 버릴 테니 명령만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 아니. 내, 내가 먹어야겠다.”
그때였다.
[포식의 권능이 발화.]
순간 나무에 갑자기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며 그 안에 있던 뭔가가 부스러지며 나에게 흡수되었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대마녀 헤르시몬의 지팡이(레어 등급)를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사악한 기류 증가(B등급)을 흡수합니다.]
【 카르마타파 】
역시 포식이 끝나자마자 현실로 돌아왔다. 그때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대마녀 헤르시몬의 지팡이(매직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270]
[특수 스킬 아바론(발동 시 사악한 흑색 기류 발사)]
[내구도 67/100]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15 획득!]
[현재 포인트 +34]
역시나 속성을 지닌 채 현실로 그대로 나타난 템.
나쁘지 않았다.
“정보창!”
[이형도]
[레벨 7]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23 힘 20 민첩 15 마력 9 지혜 12]
*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고유 - 기류 발사]
*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
[체력 상승 100%]
[손목 근력 상승 140%]
[도약 능력 상승 130%]
[카르마타파: 578억]
레벨이 무려 3에서 7이 되었다. 추가된 스킬도 하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패시브 스킬들이 100% 이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
체력과 손목 도약의 괄목할 만한 상승.
그리고 카르마타파의 천문학적 숫자가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578억…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아무튼 내가 쥐고 있는 흑색 목단 지팡이 한 개.
이번 꿈은 개운치가 않았다. 아니 뭘 잘못 먹은 듯 체한 느낌이랄까. 그때 헛구역질이 나왔고 나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날은 강호 형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도 쉬어야만 했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가 걱정스런 눈길로 나를 간호해 주셨다.
“이마에 얹은 물수건이 식었네.”
“어머니. 저 이제 괜찮아요. 그러니 가서 쉬세요.”
“이놈아! 아직 눈이 시뻘건 게 도깨비 눈알도 아니고 아주 이 내가 그냥 속병 들겠다.”
“눈이 빨갛다고요?”
“충혈이 심해.”
“강호 형은요?”
그 말에 안색이 어두워지는 어머니.
“흠…….”
“무슨 일 있죠?”
“일단 네 몸부터 챙겨.”
“진짜 무슨 일 있네. 강호 형 어디 있어요! 당장 봐야겠어요.”
“아니 이놈이 정말……! …강호는 아직 사냥 중이야.”
나는 시계를 봤다.
밤 11시 37분.
“이렇게 늦게까지요?”
어머니는 한숨을 짓고 말았다.
“에구. 세상이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나. 그 많던 헌터들이 다 죽고 이제는 중급 이상의 헌터들만이 죽을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싸워야 하니.”
그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어머니부터 안심시켜야 했다. 잠시 후 어머니가 잠이 든 시간은 12시 40분 정도.
나는 창문을 통해 지면으로 내려왔고 당장 강호 형이 있을 만한 제일 가까운 사냥터로 달려갔다. 이번 꿈속에서 얻은 대마녀의 지팡이를 들고.
잠시 후 사냥 포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폐허가 된 전장 지구에서 형의 이름부터 외쳤다.
“강호 형! 형! 나야 나. 형도라고, 어디 있어!”
그때 저만치 앞에서 헌터로 보이는 사내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이쪽으로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도망쳐! 당장.”
낯익은 무리들, 그들은 일전에 강호 형과 파티를 이룬 F등급 헌터들로 밥집에도 가끔 왔었다.
“강호 형 못 봤어요?!”
“몰라!”
나는 혹시라도 어떻게 되었나 싶어 그 앞쪽으로 향하려는데 그들이 만류했다.
“죽고 싶어?”
“강호 형을 찾아야 해요! 제발 좀 가르쳐 주세요!”
“제길. 그는 아직도 크리처와 전투 중일 거야! 아니 이미 당했을 수도 있지.”
“어느 쪽이죠?”
그가 손으로 가리켰다.
“F구역 폐쇄 공장!”
그러자 다른 헌터가 내게 외쳤다.
“가 봐야 소용없을 거야. 놈들이 변종을 하니 강호도 어쩔 수가 없겠지.”
변종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 용어였다. 아무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F구역 쪽으로 내달렸다.
몸이 붕붕 뜰 정도로 도약을 하면서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포식의 권능으로 레벨 업이 된 내 신체 능력 덕분이던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치들.
*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
[체력 상승 100%]
[손목 근력 상승 140%]
[도약 능력 상승 130%]
[보다 강해진 체력에 도약 능력이 130%…….]
타다닥!
붕!
놀랍게도 2m 이상을 뛰어올라 5m 앞으로 착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니 대략 100m를 5초 내에 질주한 것 같았다.
그로부터 대여섯 번의 도약과 착지로 나는 어느새 F구역 공장 앞에 도착했고 그대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형!”
내부를 살펴보니 마침 저 앞에 강호 형이 크리처와 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형!”
강호 형이 나를 보자 외쳤다.
“형도야! 네가 왜 여기를…….”
“형! 괜찮은 거야?”
“당장 도망가! 위험해!”
나는 도망가라 소리치는 형의 말을 무시하고 재빨리 달려갔다.
“내가 도와줄게.”
“안 돼! 너도 죽어!”
나는 지팡이를 꺼내 형 옆으로 바짝 붙어 섰고 크리처와 정면으로 대치했다.
“크악!”
기존에 사진으로 봤던 크리처와는 전혀 달랐다. 그저 맹수와도 같은 네발 달린 짐승에 외계의 그 독특한 형태가 아닌 직립 보행의 긴 꼬리가 달린 파충류와도 같은 모습이랄까.
세상에 크리처가 무기 같은 것도 들고 있다니.
그건 지능이 생겼다는 얘기인데 설마 내가 보고 있는 저 무시무시한 괴물이 크리처의 변종이란 말인가.
“형도야. 지금이라도 도망쳐.”
그제야 강호 형이 눈에 들어왔다. 슈트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형,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는지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고 검을 잡은 손목 사이로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사투를 벌인 듯 보였는데 그의 표정으로부터 체념의 빛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뭔가 끓어오르는 자신감에 형에게 말했다.
“형. 앞으로 내가 상대할게.”
“미쳤어?!”
“형. 나 각성했다는 거 알잖아.”
“넌 헌터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당장 도망가!”
“지금부터 헌터 하면 되지!”
“놈은 변종했다고.”
“나도 변종이라면 변종을 했으니 피차일반이지.”
그러고는 지팡이를 들고 놈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크악!”
크리처 역시 도끼류의 무기를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데 순간 와락 겁이 나기도 했다.
생전 처음 싸워 보는 크리처, 전투 경험이 없는 나로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때 귀가 찢어질 정도로 울부짖으며 내게로 달려드는 크리처.
홱!
“헉!”
홱!
“아!”
놈이 휘두르는 무기를 피해 공중으로 도약을 하고 착지함과 동시에 두 번째 공격 역시 상체를 숙여 간신히 피해 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손이 덜덜 떨려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적의 기세에 압도당했다고나 할까.
전투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 당장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때 강호 형이 외쳤다.
“빌어먹을! 이왕 이렇게 된바! 피하지 말고 너도 공격해!”
그 말에 힘이 되었던가.
“크악!”
놈이 재차 공격하자 이번엔 나 역시 몸을 비스듬하게 하며 첫 도끼를 피했고 그대로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크아아아악!”
고통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놈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놈이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저 가볍게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말이다.
놈은 다시 신형을 추스르더니만 도끼로 내 머리를 강타하려 했다.
순간 나는 도약을 함과 동시에 위쪽으로 하강하며 놈의 정수리 부분을 가격하려 했다.
순간.
퍽!
“아악!”
놈의 꼬리가 내 등을 가격함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공중에 뜬 채 수 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쿵!
“컥! 컥!”
나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피를 토했다.
“형도야! 괜찮아?!”
“아, 아, 아파.”
“형도야 당장 뒤로 피해. 내가 상대할 테니까.”
강호 형은 비틀거리는 상태에서도 나를 구하려는 강한 의지 때문인지 애써 신체 균형을 잡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 죽어!”
퍽!
“억!”
한데 놈의 꼬리가 형의 허벅지를 가격했고 그대로 나가자빠졌다.
크리처는 그 틈을 이용해 도끼로 형의 몸통을 가르려 했고 나는 벌떡 일어나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안 돼!”
파바바밧.
“크악!”
지팡이에 의한 네 번의 연속 가격에 놈이 충격을 받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사이 나는 형을 부축하여 폐타이어 뒤쪽으로 숨었다.
“형. 괜찮아?”
“우욱.”
그때 다시 달려드는 크리처. 순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슈! 슈! 슈! 슈!
지팡이로부터 흑색 기류가 뻗어 나가며 놈의 몸을 휘감았다.
“크아아악!”
그러자 크리처가 비명을 지르며 마구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흡사 자기 몸의 제어가 스스로가 안 되는 것처럼 발악까지 하자 형이 외쳤다.
“지금이 기회야!”
거의 다 죽어 가던 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만 검을 들어 놈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미간을 노려야 해!”
하지만 놈이 꼬리까지 무식하게 마구 휘두르며 발버둥 치는 통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형도야, 내가 꼬리를 맡을 테니 네가 미간을 노려!”
나는 형의 합공 의도를 알고 대답했다.
“알았어!”
형은 검으로 놈의 꼬리를 내리쳤다.
삭!
그 끝부분이 살짝 잘려 나가며 더욱 발작을 했는데 형은 용감하게도 그 윗부분을 다시 베어 버렸다.
삭!
“크아아악!”
“지금이야!”
나는 놈의 얼굴 위쪽으로 도약을 한 뒤 하강하며 그 미간을 지팡이로 정확히 꽂아 버렸다.
퍽!
마치 케이크에 초를 꽂는 듯 너무도 자연스레 들어가는 지팡이.
“컥!”
놈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