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 *
현실로 돌아온 지 삼 일째 되던 날 나는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폐하. 포식은 잘 하셨습니까.”
역시 꿈은 내가 깨기 직전의 그 시점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쯤에서는 나는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능력을 얻긴 얻었는데 그게 꿈을 통해서 얻는 능력이라……. 물건을 먹고 신체에 속성을 쌓아 두고 나머지 속성이 남아 있는 템을 현실로 가져가는 것……. 음.’
원래 능력을 가지고 있던 꿈속에서의 나와 새로이 각성한 현실에서의 나. 즉, 두 개의 세상을 살면서 각각의 나에게 능력이 주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꿈속에 들어온 지금 황제로서 그 삶의 패턴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여기는 꿈속이니, 황제에 대한 정보, 기억들, 뭐 여타 환경들을 집중해서 봐야 했다. 특히 포식의 권능이라는 그 놀라운 능력부터.
“폐하.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아니.”
“오늘 하루 종일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요.”
“흠. 시종……. 네 이름이 뭔가?”
순간 시종은 다시 엎드려 불안해하였다.
“폐하! 어찌하여 저 시종장 세바스를 놀리시옵니까?”
“그래 세바스. 내 너에게 할 일을 주겠다.”
“분부만 내려 주시옵소서!”
“네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짐에 대한 관점을 소신껏 얘기해다오.”
이런 식의 방법밖에는 없었다. 황제인 이 세계의 나에 대해 알려면. 물론 세바스는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감히 제가.”
“무료해서.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니 어서 얘기해 봐라. 가끔은 나도 내 스스로를 모를 때가 있어 짐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혹시나 독단적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 의미에서 너의 솔직한 말을 듣고 싶구나. 다른 뜻은 없도다.”
그제야 세바스는 알아들은 듯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폐하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오로지 폐하 스스로만이 아실 뿐.”
“그건 무슨 뜻이지?”
“폐하께서는 어느 날, 이 대륙에 홀로 뚝 떨어진 분으로 지금까지 그 정체가 신비에 쌓인 분이시옵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그 말은 뭘 의미하던가.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황제라지만 옆에서 보좌하고 내내 지켜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고 어찌 내가 포식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부터 말해 보거라.”
“그조차 아무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오로지 폐하 자신만이 아실 뿐.”
“…나만이 안다고. 그럼 내가 어떻게 황제가 되었지?”
시종이 그만 눈물을 흘렸다.
“폐하. 흑. 대체 왜 이러시는지요.”
나는 이쯤에서 질문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 어떤 사연이 있을 테고 시종은 전혀 모르는 눈치라.
“허허. 장난이니라.”
“폐하.”
“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궁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 황금빛 돔 건물들이 빽빽한 이곳 황궁, 그 안에 나는 황제로 군림을 하며 살고 있다.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어마어마한 위치. 그건 그렇다 치고……. 아이템을 먹어 치우는 포식의 권능은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는 끝끝내 알지 못해 궁금했다.
제길! 그것도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먹어 치운 템이 현실로 그대로 나타나고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하나.
그래 그것도 사연이 있겠지. 이 자체도 꿈일 수 있고 나는 꿈속에서 한 번 더 꿈을 꾸고 있는 기가 막힌 현상을 겪고 있는 걸지도 모를 테니…….
잠시 후. 완벽한 정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애써 머릿속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나았다. 이제 뭐 하나 싶었지만 내 질문에 나 스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즐기자.”
일단은 따지지 말자는 모토. 그게 나은 것 같다.
“세바스!”
“네. 폐하.”
“오랜만에 황궁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구경을 하고 싶군!”
의아한 표정의 세바스.
“며칠 전 이미 구석구석 시찰을 하셨고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아마도 몇 년간은 이곳 집무실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황제인 척하지만 역시 나는 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인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행동, 말투, 동작은 이미 몸에 배어 있었으니 이는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하튼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대처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았다.
“하하. 마음이 바뀌었다. 어서 시찰 준비를 하여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 포식의 권능 】
그날 오후.
“여기가 어디인고?”
“무기 창고입니다.”
알면서 물어봤다. 내 원래 속셈이 뭐 이런 거 아닌가.
“어디 보자, 쓸 만한 게…….”
내가 다스리는 제국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창고는 무진장 컸다. 아니 드넓다고 해야 하나. 가슴이 콩닥 콩닥거렸고 나는 이내 그 초입 구간부터 천천히 살펴보았다.
“흠. 여기가 병기 코너 맞는가.”
“예 폐하. 병기들만 모아 둔 곳이옵니다.”
검과 창, 도끼 그 외에 다양한 형태의 무기들.
“이것들 제작은 어디에서 했나.”
“물론 황궁 산하 대장간에서 만든 것들입니다.”
“음. 좋아.”
다음 코너에는 주로 군장들과 보호대 장비들이랄까. 은빛, 흑색, 두툼한 갑옷에서부터 가벼운 차림의 경갑 종류들, 어깨나 무릎 손목 보호대들.
그것들 모두가 제법 견고하고 정성이 묻어났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다음 코너는?”
“전리품들을 모아 둔 곳입니다.”
그 말에 나는 눈빛이 발했다.
“전리품이라. 그래 그거 한번 구경해 보자.”
잠시 후.
“오호. 이전에 보았던 것들과는 뭔가 다르군.”
확실히 그랬다. 특이한 형태의 병기들과 어디에 쓰이는지 모를 정도로 독특한 장비들. 지난번 이민족의 칼을 얻고 나는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어서 먹은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욕망은 절로 생기는 데 아마도 이 안에 식욕을 발생시킬만한 아이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돌아보자.”
“네 폐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면밀히 관찰했지만 아직 내 안의 식욕을 발동할 만한 템을 찾지 못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이제 마지막 남은 코너로 넘어가기로 했다.
“여기는 어디인고?”
“가르티어스 차원의 장비들을 특별히 모아 두어 전시하는 곳입니다.”
그때,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저것들이 음식은 아니지만 포식의 권능에 의한 그런 부류의 허기짐. 그렇다고 거기 있는 물건 모두에 포식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 안쪽, 더 들어가면 뭔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에 그리로 갔다.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그 무엇이 보였는데,
장갑이었다.
하지만 외형은 아주 보잘것없었다. 보통 전장용 장갑은 중세 시대의 그런 사슬을 떠올리기에 십상인데 저건 일단 천이었다. 그것도 군데군데 실밥이 터진 중고품.
만일 반들거리는 가죽이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삼베처럼 겹겹이 대충 꿰매서 엮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자마자 식욕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겉으로만 판단하지 말자는 격언 있듯이 그 안의 실속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바로 그때였다.
[포식의 권능이 발화.]
아이템이 부스러지며 나에게 흡수되었다.
그러자 또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저 무지막지한 에스타란토 역사(力士)의 천 장갑(레어 등급)을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손아귀 힘 증가(D등급)’을 흡수합니다.]
“어?”
순간 섬광이 일었다.
파팟―
* * *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무기 앞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에스타란토의 역사의 장갑(매직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130]
[특수 스킬 아란트(발동 시 날카로움 손아귀 근력 70% 증가)]
[내구도 57/100]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7 획득!]
[현재 포인트 +10]
역시나 속성을 지닌 채 현실로 그대로 나타난 템.
이어 또 나온 임의의 영역 거래 불능. 도대체 무슨 뜻이지?
게임도 아닌 것이 게임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쨌든 그다음에는 내 정보창이 궁금해졌다.
“정보창!”
[이형도]
[레벨 2]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12(+4) 힘 10 민첩 11 마력 5(+2) 지혜 7(+2)]
*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
[체력 상승 50%]
[손목 근력 상승 70%]
[카르마타파: 13억]
레벨이 2로 올랐다. 게다가 수치들도 좀 향상되었고. 특히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에 새롭게 등록된 손목의 근력. 실제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자 새로운 힘이 느껴졌다.
“와.”
그런데 ‘카르마타파’ 13억은 무슨 뜻이지? 지난번에는 1억이었었는데. 저게 대체 뭐기에 숫자가 엄청나게 올라가는 거냐?
그다음 날 저녁. 어머니는 계속 맛있는 고기찜을 조달 중이시고 형과 나는 각성에 대해 제법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
“각성은 보통 그 대상에게 직접 그 어떠한 능력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는데 너 같은 경우는 템을 먹는 권능이 주어졌고 그 나머지 속성의 물건이 현실로 나타난다라.”
강호 형도 신기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나 역시 그런 부분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각성 헌터 사무실에서는 나더러 물건 중매자 비슷한 트레이더라 했는데 왜 그런 게 생겼는지.”
형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쨌든 좋은 거 아니냐. 그럼 됐지. 자식.”
“글쎄. 꿈을 꾸고 나서 그 세계의 내 모습인 황제에 대한 기억도 없어.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이 시점부터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 듯 내 정보창이 레벨1부터 시작하더라.”
“결국 템을 먹고 강해지는 거잖아.”
“그런 셈이지.”
그리고 그 먹은 템을 사용할 수도 있고.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 형에게 물었다.
“형은 어떤 식으로 각성하게 됐어?”
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게 각성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아무튼 어느 날 눈 떠 보니 왠지 모를 사명감이 생기더라. 마치 너에게 임무가 주어졌으니 앞으로 책임감 있게 살라는 듯한.”
“형이 지난번 말하기를 각성은 각각의 원천이 있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형과 나도 다른가 보네.”
“그렇지 뭐.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인데 어떤 능력 있는 각성자들은 원천이 좋은지 아주 처음부터 날고 기더라. 처음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났지만 지금은 내게 이런 조그마한 헌터 능력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니. 그러니 인마. 너는 아주 그냥 감사하게! 고맙다면서 매일 절을 하며 살아도 돼. 더 이상 따지지 말고!”
형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도 부른 데 자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