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꿈길을 걷는 자 】
“내가 누구지?”
시종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황제 폐하이시옵니다.”
“내 이름은?”
내 질문에 시종이 살짝 당황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시스프 2세이옵니다.”
“음.”
“폐하, 옥체에 무슨 문제라도…….”
“문제라기보다.”
생각보다 말이 편히 나왔다. 꿈 치고는 꽤 리얼한 느낌이다.
‘뭐지……?’
이 느낌.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이 현상, 나 지금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꾸고 있는 건가.
아무튼 좋다. 그러려니 꿈을 즐기면 되니까. 항상 찾아오는 기회도 아니고.
그런데 아무리 꿈이라지만 진짜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그 어떤 몽롱함도 없이 정말 내 두뇌는 자연스레 주변 황궁의 사물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나는 저절로 위엄을 갖춘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때 시종이 복장을 챙기며 목걸이를 걸어 준다.
“폐하. 오늘 베른 왕국으로부터 조공 들어온 물건입니다.”
흡사 진주알처럼 생겼는데. 맞나 싶어 물어보려는 찰나, 시종이 말했다.
“진주알이옵니다. 한번 걸어 보시겠습니까?”
“음, 음…….”
내가 주저하자 시종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디 편찮으신지요?”
“아, 아니?”
“평소와 다르게 보입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왕 꿈이니 뭐 적응하려면 일찍 하는 게 낫다 싶었다.
“내가 평소에 어땠는데?”
“폐하. 진정 괜찮으신지요!”
시종이 무릎까지 꿇고 불안에 떨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얼른 목걸이를 가리켰다.
“그 목걸이나 해 볼까.”
잠시 후 그걸 목에 거니 몸이 상쾌해지는 것이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흠. 이거 좋은데. 그냥 평범한 목걸이는 아닌 것 같고.”
“폐하. 베른 왕국의 국왕 레온이 저 남반부 열도에서 직접 캔 진주로서 그 목걸이는 건강을 유지할 뿐 아니라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 아주 특별한 기운을 내뿜는답니다.”
“오호. 그런가. 어쩐지…….”
그때였다.
파팟!
갑자기 섬광이 일면서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때 누군가 등짝을 후려갈겼다.
“어머니.”
“자빠져 자는데 웬 목걸이를 차고 자는 거여! 이 웬수야. 집구석에만 있지 말고 제발 좀 생산적으로 살아!”
나는 아직도 몽롱한 상태에서 목에 걸린 그것을 무심코 만지작거렸다.
헉.
꿈에서 본 그 목걸이.
“뭐냐. 꿈에서 본 목걸이가 여기 왜?”
“너 오늘 야간 아르바이트하기로 했잖아! 당장 일어나!”
* * *
그날 저녁. 나는 아직 정신이 멍한 상황에서 일터로 나왔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 꿈속의 물건이 어떻게 현실로 그대로 나타났을까.
“내가 미쳤나? 아냐 그건 아니지. 분명 여기 목걸이가 있는데……. 그래도 꿈은 꿈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혹시 어머니가 장난치시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일단 그 일은 잊기로 했다.
시끄러운 소음.
웽!웽!
지금 온 곳은 외계 부산물 해체 공장이다.
때는 바야흐로 서기 2047년. 외계인들이 지구에 수백 개의 포털을 열어 침공한 지 21년째가 되는 해이다.
싸움에서 밀리던 인류는 외계 침공자들의 크리처를 이용한 병기를 만들고 무너진 경제를 복구하게 되었다.
부산물은 에너지원이기도 하고 바로 이곳에서 무기나 방어구에도 사용된다.
어머니는 이곳 외계 부산물 해체 공장에서 밥집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도와 여기서 들러붙어 일하며 용돈을 챙겼다. 그때였다.
“형도야.”
“왜 불러, 형.”
형이 내 얼굴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뭐냐?”
“뭘.”
“초상집에라도 왔냐? 몰골이 왜 그래……. 눈도 퀭한 게.”
“남 말 하고 있네.”
옆집 형 한강호였다. 그는 외계의 크리처들을 사냥하는 헌터다. 오늘도 사냥해서 잡은 크리처의 부산물을 들고 왔다.
“형 표정을 보니 오늘도 허탕이었나 보네.”
“그렇지 뭐. 젠장. 하급 크리처에서 뭘 바라겠냐.”
“기운 내. 뭐 오늘만 날인가.”
나는 그런 형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형은 나와 어머니에게는 은인이다. 아버지를 잃고 두 모자가 거리를 헤맬 때 이곳 공장 밥집을 소개해 준 장본인.
형 역시 침공 시기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 남았을 때 아들처럼 먹여 주고 재워 준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이곳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다.
우린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형은 헌터지만 최하 F등급이었다. 가진 무기도 부실하고 그저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다.
그때 강호 형이 배낭에서 물건을 꺼내 어머니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값어치가 있겠어요?”
어머니 역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글쎄다. 일단…….”
“됐어요. 어차피 폐기물 처리반으로 가겠죠.”
나는 그런 형에게 다가가 등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왜 또 그러셔.”
“아. 내버려 둬라. 형 오늘 피곤하다.”
“아이 뭘 그래. 남자가 그거 가지고.”
어머니 역시 형이 걱정되었는지 다정한 목소리로 식사를 권했다.
“강호야. 배고프지. 어서 식사부터 해라.”
“죄송하지만 오늘은 식욕이 전혀 없네요. 다음에 올게요.”
“그래도.”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돌아서는 강호 형.
잠시 후 강호 형이 가고 난 뒤. 난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잊으려 했지만 너무 신기한 일이라서 자꾸 생각이 났다.
꿈에서 얻은 목걸이가 현실로 나오다니…….
“뭐냐 정말.”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했다. 어제 꾼 꿈에 대해서 말이다. 묘했다. 꿈속의 물건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어쨌든 나는 잠이 들며 다시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 *
“폐하. 목걸이가 마음에 드신다니 저 역시 무척 기쁩니다.”
“…….”
신기하게도 꿈속의 시간은 잠에서 깨기 직전의 순간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황제의 의복을 걸친 중년인.
황제라…….
그때 머릿속을 언뜻 스치며 떠오르는 기억들. 그것들은 마치 과거의 편린처럼, 아주 조금이지만 내가 원래 황제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황제로서 살아온 기억들. 좀 납득이 가지 않지만 나는 원래 황제였던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현상을 겪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꿈을 꾸니 황제가 되어 그 삶을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게다가 황제는 중년이지만 현실의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꿈속의 연결 속에 나는 지금 황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소 낯선 느낌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모든 업무를 절로 할 수 있었다.
‘내가 언제 이런 복잡한 업무를 해 왔더라.’
아무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황궁과 그 주변을 살피며 이틀이 더 지났다.
그때 승전 보고를 하러 대전으로 온 장수들.
멋진 군장 차림의 그들은 나를 배알했고 이어 뭔가를 내밀었다.
“폐하! 여기 이 물건을 바칩니다.”
“물건?”
야만족들을 물리치고 노획한 장수가 무기를 주었고 나는 뭔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또다시 기억의 단편이 생각났던가. 그리고 나는 이랬지 하며 자연스럽게 무기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황제, 바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 신하들이 그에게 드실 것인지 묻는다.
“드시라니?”
순간 뭔가가 기억에 겹치며 나 자신도 모르게 검에 손을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잘 먹겠노라.”
[포식의 권능이 발화.]
아이템이 부스러지며 나에게 흡수되었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아다만 족장의 검(레어 등급)을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을 흡수합니다.]
“뭐, 뭐야!”
나는 놀랐다. 방금 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왜 그런 말을 하고 아이템을 먹었는지에 대한 신기함이랄까. 도대체 내게 무슨 현상이 일어난 거지?
“…아. 별일이 다 생기네.”
슬슬 불안해졌다. 그것을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분명 이전부터 포식의 권능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꿈속에서 삼 일이나 지났는데도 꿈에서 깨지 않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파팟’ 하는 소리와 함께 섬광이 터지며 환하게 밝아졌다.
* * *
눈뜨니 현실이다.
그때 머릿속에 한마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성하셨습니다.]
[고유 특성: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고유 스킬: 포식]
각성이라는 말에 놀랐고 곧이어 내 손에 뭔가가 잡혔다.
분명 꿈속에서 먹어 치웠던 무기가 내 손에 있는 게 아니던가.
그때 무기 앞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아다만 족장의 검(매직 등급):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공격력 125]
[특수 스킬 샤프니스(발동 시 날카로움 50% 증가)]
[내구도 87/100]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3 획득!]
[현재 포인트 +3]
뭐지……?
그때,
“뭔가 이상해……!”
내 신체에 이상이 생긴 것을 느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게 정보창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왜 그런지는 몰랐다.
아무튼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나도 설마……?
혹시나 해서 정보창을 외쳤다.
그러자 또다시 허공에 홀로그램 글씨들이 나타났다.
[이형도]
[레벨 1]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8(+4) 힘 7 민첩 8 마력 3 지혜 5]
*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C등급)]
[체력 상승 50%]
[카르마타파: 1억]
나는 손에 들려 있는 무기를 다시 살펴보았다.
“아, 이건 내가 꿈속에서 먹은 건데. 현실로 나타났네. 그럼 속성들 중 일부는 내가 취한 거고 그 나머지 속성은 물질로 현현했단 말인데.”
그때 마침 저녁 식사하러 들어오는 강호 형이 보였다.
“형도야! 왜 그렇게 멍하게 서 있어?”
“형…….”
“손에 그거 뭐냐?”
“이, 이거?”
“검 같은데. 그런데 갑자기 웬 검?”
나는 당장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너 이 검 어디서 났냐. 그냥 겉보기에도 기존 것들과는 그 분류부터 다른 것 같은데.”
한눈에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닌 듯 보이는 검에 형이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고 일단 훔친 건 아니라며, 다만 좀 시간을 달라 했다.
그리고 나는 형에게 밤새 생각해 둔 질문을 해 보기로 했다.
“형.”
“왜?”
“혹시 각성 능력이 뭐야?”
“응. ‘검사의 묘미’라고 말 그대로 검술에 관한 직업이지.”
“사실 나도 각성은 한 것 같은데…….”
“정말.”
“그 각성 능력이라는 게 어떻게 생기는 거야?”
“각자 다르지. 힘의 원천이 오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각 헌터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상한 능력을 얻게 되는데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형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런 것 같아.”
“정말? 무슨 능력인데.”
“모르겠어. 아니 혼란스러워.”
“그럼 당장 가자.”
“어디를?”
“각성자들이 처음 각성하면 가는 곳인데 거기서 그 능력의 종류를 확인할 수가 있어.”
다음 날 나와 형은 헌터 사무소를 함께 방문했다.
잠시 후 각성 선별 담당자가 나를 조사한 뒤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특이한데요. 뭔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내 직종에 기타가 뜨는 걸 본 직원이 조금 더 확인해 보자며 대 분류로 들어갔는데 트레이더(중개 무역상) 같다며 신기해했다.
‘트레이더라니.’
그게 뭐지. 처음 들어 보는 용어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