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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스탯을 숨김-158화 (158/180)

제158화. 베스트셀러 작가 (2)

동경하는 대상과 직접 팬 미팅 하는 게 신기한지 그리젤다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사인회가 진행되는 동안 전요한은 알티나를 주의 깊게 살폈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아직 수집되지 않은 상태.

하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알티나가 슬퍼 보여. 즐거운 날인데 왜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 그리젤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녀의 말대로 알티나는 조금 우울한 모습이긴 하다.

겉으로는 해맑게 웃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팬서비스일 뿐.

무언가 말 못할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다.

“글쎄. 차기작에 대한 압박감이나 악플러들의 공격 때문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용모 때문에 질 나쁜 스토커가 붙었는지도 모른다.

자세한 건, 이따가 물어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알티나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 내가 지닌 능력으로 가능할까?”

그리젤다는 염력을 특히 잘 다루는 악마종이었다.

그녀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곤란함이 생겨난다.

“음, 알티나의 심상 세계로 들어가서 부정적인 사념을 없애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당장의 기분은 호전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 그 부정적인 사념의 원인을 모르잖아.”

한계점을 지적하며 전요한은 적당히 선을 그으려 했다.

알티나와 접선을 시도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세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가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것에 대한 의문점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선순위로 두기도 어려운 일이라서 필요 이상으로 얽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알티나의 친구가 되어줄 거야!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알아낼 거야!”

그리젤다가 감수성이 폭발한 문학소녀처럼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이러면 만약 알티나와 적대 관계로 돌아설 경우에 곤란해지는데.’

뭐, 자세한 건 직접 대화한 이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겠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자, 어느덧 대면 차례가 되었다.

그리젤다와 함께 앞으로 걸어 오니 알티나의 눈빛이 호감으로 바뀐다.

“어머, 멋진 분이시네요.”

환골탈태로 인해서 전요한의 외모는 격변을 거친 덕분이다.

“오랜 팬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처음 뵙는군요.”

“저는 여동생 그리… 아니, 전하연이에요!”

그리젤다는 말실수를 했다 생각했는지 이름을 금방 바꿨다.

아무튼,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았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화가 서로 오갔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조만간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예상은 했지만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가 찾아오리란 사실을 미리 알기라도 했단 건가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전요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티나는 입가를 가리고 웃더니 전요한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저는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의 서열을 볼 수 있어요. 예컨대, 당신은 1위. 사실상 이 세계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위치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알티나의 얼굴에 순간 희열이 생겨났다.

이후 그녀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팬 미팅 이후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알티나는 오빠의 비밀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사인을 받고 되돌아서며 그리젤다가 속삭였다.

그녀의 생각대로 뭔가 특별한 능력이 분명 있어 보이긴 했다.

“어쩌면 알티나를 노리는 자들이 숨어있을 지도 모르겠어. 팬들 중에 이상한 녀석이 섞여 있진 않나 한번 살펴봐야겠네.”

단지 감일 뿐이지만, 확인해봐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만일에 대비해 주위를 살폈으나 수상한 낌새는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알티나가 나쁜 사람들의 타겟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를 악용하려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하거든.”

옛 동료들과 함께 공략했던 대미궁에서도 그러했다.

온갖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는 음습한 세계.

그중엔 마지막까지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일전에 상대했던 악마 숭배 집단도 항상 연막탄 따위를 이용해서 철저히 정체를 숨겼지.’

아담 카다스키 역시 환단을 통해 하수인들을 거느리는 방식으로 그들의 추적을 피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공공장소라고 해도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군.

“오빠, 이제 사인회는 끝났나 봐.”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리젤다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고개를 드니 알티나가 마지막 멘트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팬들과 만나서 참 기뻤어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올게요.”

귀여운 표정으로 윙크하자, 모여 있던 팬들의 환호성이 빗발쳤다. 철저하게 인기 관리를 하는 것이, 여타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그럼 함께 가시죠. 괜찮은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팬 미팅이 끝났음에도 주위가 계속 북적이자, 전요한은 알티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몇 명의 팬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은 후, 알티나는 순순히 뒤를 따른다.

“알겠어요. 그럼 어서 가요.”

* * *

알티나를 데려간 곳은 유명한 요리사가 운영하는 한식집이었다.

보통 여기에서 한번 식사를 하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 하는데, 멜리사의 도움을 얻었다.

“인맥이 넓으신 모양이네요. 그 유명한 발키리도 아시고요.”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져 나온 한식을 보며, 알티나가 순수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는 서투르게 젓가락질을 하더니 가볍게 시식해본 것에 대한 평가를 한다.

“확실히 영국 음식보단 맛있어요.”

단순한 립 서비스라기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이에 그녀와 맞은편에 있던 그리젤다가 싱글싱글 웃어 보인다.

“맛나죠? 여기 있는 떡갈비랑 순두부찌개도 드셔 보세요!”

그리젤다는 이제 한국 문화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서 사심이 전혀 없어 보였는지, 좀 전부터 긴장하던 알티나는 조금 마음을 놓는다.

“생각보다 정겹게 대해 주시네요. 이것도 한국의 문화인가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에 반해, 이쪽의 생활 풍습 따위는 전혀 모른다.

그저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아서 문법책으로 언어를 독학한 탓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되신다면, 가이드를 조금 해드리죠. 마침 저희도 조금 한가한 때니까요.”

“정말인가요? 그것 참 잘됐네요.”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지, 알티나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인지하고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붉힌다.

“아, 그런데 조금 부끄럽긴 하네요. 전요한 님 정도 되시는 분을 관광 가이드로 삼다니….”

이거, 갑자기 분위기가 미묘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알티나가 내게 호감을 갖는 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그녀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이 이번 목표니까 말이다.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제 여동생이 알티나 님의 작품을 정말 좋아해서요.”

“아아, 전하연 님도 정말 감사드려요. 완결까지 읽었다니, 제 만화가 제법 취향에 맞으셨나 보네요.”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는 것에 대해 내심 뿌듯해하는 모습.

이런 태도를 보면, 어딘가에 있는 원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건 아닌 느낌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이세계의 신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일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 질문해보는 편이 빠르리라 여겨졌다.

“그런데 알티나 님은 혹시 꿈에서도 소재를 얻으시나요? 그 왜, 작가님들은 그런 식으로 영감을 얻는다고 해서요.”

“……!”

밝은 표정을 유지하던 알티나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찰나에 가까웠지만 그녀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전요한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역시 정곡을 찔렀나.

그녀의 특별한 능력은 아무래도 소설을 쓰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알티나 님을 보호하려는 쪽이니까요.”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우선 같은 편임을 강조했다.

알티나에게선 위협 요소가 딱히 발견되지 않았던 탓이다.

적대 관계일 이유가 없다면 이런 부류는 차라리 아군으로 삼는 편이 나으리라.

“…우선 비밀을 지키겠단 맹세를 들어도 될까요?”

생각에 잠겨 있던 알티나가 진지하게 전요한을 바라봤다.

전요한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약지를 펴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제 목숨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죠.”

“좋아요. 그러면 이제 근심을 털어놓아도 되겠네요. 꿈속에서 봐왔던 당신은 충분히 신뢰 가능한 상대였으니까요.”

결정을 내렸단 듯이 알티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저는 매일 밤 꿈을 꿉니다. 그건 어떤 이세계의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죠.”

“흥미롭군요.”

“제가 줄곧 지켜봐온 이야기는 태초의 마녀가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부터 시작된답니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스였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고, 신들에게까지 손가락질당했던 비운의 악녀.

그녀는 모든 것의 종말을 갈구한 결과 세계에 마신을 강림시켰다.

마신이 창조주를 절대신좌에서 끌어내린 결과,

인과율에 오차가 발생하고 어비스의 게임 시스템이 세계를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사실, 전요한 님을 만나려고 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어요. 제가 전승받은 신화에 의하면 당신은….”

지금부터가 핵심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콰아아앙!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음식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식겁한 표정을 짓는다.

“테, 테러다!”

“다들 피해!”

이번엔 또 어떤 녀석들이지?

중대한 대화를 방해받은 것에 기분이 나빠졌다.

“오빠, 저번에 그 비밀 집단 같아.”

희미하게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그리젤다가 정보를 알려줬다.

“네뷸러스인가. 영국의 왕립 학회가 완전히 박멸하지 못한 모양이네.”

생각해보니, 국내에서 기승을 부렸던 악마 숭배 집단의 배후엔 메데이아가 있었다.

이 또한 다른 죄악에 의해 벌어진 사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악마 숭배자들 따윈 전부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야.’

내버려두면 또 수작질이나 벌이다가 골치 아픈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이번엔 손가락이나 빨면서 순순히 놔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 세상이 황폐해지는 건 둘째 치고, 그렇게 되면 주위의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막아내자, 그리젤다.”

“응!”

함께 있는 알티나의 경우엔 신경 써서 최대한 보호하기로 했다.

그녀가 납치되거나 하면 적잖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알티나는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나같이 죄악의 세력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알티나를 호위하며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때, 기괴한 가면을 쓴 괴한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위대하신 바르바토스 님의 제물이 되어라, 전요한!”

탐욕의 죄악, 바르바토스.

마계 진영의 칠죄종 중 한 명을 숭배하는 녀석이었다.

녹티스로 간단히 베어 넘기려 했으나 누군가가 선수를 쳤다.

타아아앙!

시르케인가?

아니, 이번엔 황금색 머리칼이다.

그리고 희귀한 오드아이.

그녀는 프리메이든 사의 장녀인 한나 앨리슨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오랜만의 재회였기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여긴 어쩐 일로 온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적보단 아군에 가까운 편이다.

“그러게. 모처럼 영국에 와서 기분이나 풀려고 했는데,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네.”

한나는 가면 쓴 괴한을 찌릿 하고 노려봤다.

그녀가 회중시계를 꺼내자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이 주위를 휩싸고 돌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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