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운석의 비밀 (1)
관광도시의 해변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카이젤은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데….”
그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세계는 평화롭고 모든 게 일상적이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회의심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또 쓸데없는 걱정인 거야? 당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뒤따라 나온 피오나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메이드복 차림의 그녀는 자꾸만 딴생각을 하는 카이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붙잡아두려 애썼다.
“미안. 요원으로 일했을 때의 압박감이 아직도 남아 있나 봐. 주위가 한적해도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어.”
“과중한 임무수행 탓에 마음이 병든 거야. 이곳에서 힐링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아.”
피오나는 달래는 말투로 카이젤을 안심시켰다.
연인의 위로에 카이젤은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그런 걸까. 네 말대로 나는 이제 지쳐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카이젤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게이트가 생겨나고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인류는 여태껏 겪어 보지 못한 시련에 절망했고 무고한 희생자들이 무더기로 생겨났다.
그 후로 얼마나 달려왔던 걸까.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게 되었지만, 성과라고 부를만한 진전은 있었다.
자신과 같은 이능력자들이 자질을 꽃피워서 지금처럼 대항해 나간다면….
“분명 언젠간 몬스터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겠지.”
카이젤 자신은 지금까지 세계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자부했다.
여전히 암울한 미래인 건 마찬가지지만, 관리국의 후기지수들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오직 자신만이 선택받은 전사라 생각하는 건 어떻게 보면 오만일 수도 있었다.
“안심해. 당신이 전장에서 멋지게 활약하지 않아도, 나는 항상 곁에 있을 테니까.”
말을 마친 피오나가 품에 안겼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카이젤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세상에서 오직 이 사람만이 자신에게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것이다.
기묘한 위화감이 신경 쓰이는 것은 단지 그뿐이었다.
“피곤할 텐데 조금 쉬어, 피오나. 임신한 몸으로 무리하게 일하는 건 좋지 않아.”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당분간 그녀를 대신할 인력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 어리석은 자여. 아직도 거짓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순간, 얼어붙을 정도로 어두운 사념이 뇌리를 강타했다.
카이젤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
역시 불안한 예감은 틀린 게 아니었던 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을 걸어올 만한 존재는 얼마 되지 않았다.
-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다시 찾아와라. 첫 번째 운석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용무가 끝났는지, 사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카이젤은 품 안에 안겨 있는 연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피오나, 그때 봉인했던 운석은 아직도 지중해에 있는 거지?”
“응? 그거라면 인근의 섬으로 옮겨져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혹여 무언가에 반응해서 다시 활성화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피오나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지중해 운석 이야기는 카이젤에게 있어 매우 민감한 과거이기에.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카이젤은 휴대폰으로 섬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여기가 분명해. 다른 곳이 있을 리가 없어.”
사념의 근원지는 바로 그 운석일 터였다.
따지고 보면, 여기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카이젤은 운석이 있는 섬에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갑자기 거긴 왜 가려는 거야? 당신은 규격 외의 이능력자라서 함부로 운석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이미 운석은 내게 사념을 보낼 만큼 활성화되어 있어. 봉인에 균열이 일어났거나,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던 거지.”
카이젤에게 있어 그 운석은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었다.
전대미문의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었던, 재앙의 근원지.
그것이 다시 한번 세상에 뿌리내리려 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아야했다.
“그만둬, 카이젤! 네가 다가가게 해서 봉인을 해제하려고 유혹하려는 거야!”
재해가 일어날까 봐 걱정되는지 피오나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하지만 카이젤의 의지는 확고한 상태였다.
“나 혼자 갈 테니 따라오지 말고 이곳에 있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고 올게.”
운석이 건재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었다.
피오나의 안전도, 아이가 생겨난 가정의 행복도 재해가 발생하고 나면 지켜내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건 불가피한 일이야.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막아야 해.”
개인 선박을 타고 섬으로 향하며 카이젤은 중얼거렸다.
이윽고 부둣가에 도착하자 무장한 요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여긴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돌아가십시오.”
“계속해서 접근해 온다면 무력을 행사하겠습니다.”
저들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카이젤은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냐! 너희는 운석이 활성화되었단 사실도 모르는 건가?”
듣는 순간 뇌리에 각인될 만큼 이질적이고 어두운 사념이었다.
전에도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운석을 봉인하는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였다.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지.’
인근에 위치한 운석은 오로지 여기뿐이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요원들은 재차 거부 의사를 보였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정신이 나간 게 아닙니까?”
“만약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신보다 우리가 먼저 눈치챘을 겁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자신의 말을 믿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답답한 상황에 카이젤은 언성을 높였다.
“내 이름은 카이젤 나이트링거! 한때 관리국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했던 5성급의 이능력자다! 운석에 대해서는 너희들보다 잘 아니까 당장 상관을 불러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은퇴한 신분이 처량하게 여겨졌다.
카이젤이 계속해서 화를 내자, 요원들은 곤란하단 듯이 서로를 쳐다봤다.
“카이젤이라면 여러 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대선배인데, 어떻게 하지?”
“당시에 운석을 봉인하는 작전의 책임자였다고 하던데.”
“저렇게 확신할 정도면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건가?”
요원들이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때였다.
인내심이 극에 달한 카이젤이 몸을 날려 허공을 딛고 달리기 시작했다.
인류 최강이라 불렸던 그는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허공답보로 간단히 섬에 착지했다.
“왜, 왜 허락도 없이 이쪽으로 넘어온 겁니까!”
“예전에 같은 요원이었다고 해도 당신은 현재 민간인 신분이라고요!”
“더는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기는 최상위 기밀 지역이라 사소한 문제에도 민감하단 말입니다!”
요원들은 기겁한 표정으로 카이젤을 말리려고 했다.
그때, 다시 한번 어두운 사념이 뇌리에 들려왔다.
- 잘 왔다. 그러면 약속대로 네게 진실을 보여주도록 하지.
순간, 세상이 정지한 듯한 착각과 함께 삐— 하는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처절할 정도로 잔혹한 기억이 차례대로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뭐, 뭐야 이건?”
충격을 받은 카이젤이 무릎 꿇으며 머리를 감쌌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과거가 사고를 어지럽힌다.
- 깨달아라. 네가 어떤 존재인지, 희망이 없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두운 사념이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모든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이제는 달콤한 낮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라고.
평온한 일상 따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 그럴 리 없어…”
현실을 부정하는 카이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착란상태에 빠진 것처럼 불안 증세를 보이다가 돌연 의식을 잃었다.
* * *
천공섬과 같은 유적지가 나타난 건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긴장한 반응을 보였고 협회에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능력자들을 투입하기 위해 군용 헬기까지 동원되었고, 민간의 출입 및 접근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작전을 수행하는 건 처음인 듯하네.”
헬기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멜리사가 심경을 토로했다.
맞은편의 레이나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관리국 요원은 아니지만, 얼마나 중요한 임무인지 실감은 나네. 정말 기대되는걸?”
레이나는 자신이 활약할 기회가 생겼다며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전요한은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살짝 쳤다.
“곧 도착이야. 조금은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라고.”
멀리서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땅덩어리가 보였다.
대략 여의도 면적만 한 크기인데, 현대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기현상이었다.
이윽고 군용 헬기에서 내린 일행은 신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매우 높은 고도에 있는데도 호흡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다른 이들처럼 한가운데 있는 마탑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레이나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여기서 집 짓고 살아도 되겠네. 공략 후에도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뭐,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거 같네.”
미리 땅을 사두면 나중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리란 예상은 들었다.
전요한이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청아하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전자는 이게 전부인가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헌터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허공에 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여교황이 입을 법한 예복과 무표정하면서도 한없이 아름다운 얼굴.
그녀는 검은 안대로 두 눈을 가렸는데,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긴 은발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가, 갑자기 뭐야?”
“토벌대에 저런 여자도 있었어?”
헌터들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으로 은발 여인의 존재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이고 신비한 분위기 탓에 다들 섣불리 말을 걸진 못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도전자가 있나요?”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은발 여인이 차분한 어조로 재차 말했다.
보다 못한 금발 벽안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은발 여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대는 대체 누구요? 괜히 혼란 일으키지 말고 우선 자신의 정체부터 밝히시오.”
그의 이름은 한네스.
이번 공략대를 이끄는 총지휘관이었다.
“저는 여러분에게 시련을 내리기 위해 강림한 존재입니다. 본격적인 진행을 위해 도전자가 모두 모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은발 여인은 잠시 물끄러미 한네스를 내려다보다가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의 표정이 일시에 험상궂게 변했다.
“그럼 인간형 몬스터인가?”
“다들 뭐 해? 허튼수작 부리기 전에 어서 공격하자고!”
공략대장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성미 급한 몇몇 헌터들이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이제 막 공략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인 터라 아직 지휘 체계가 확고하지 못한 탓이었다.
“곤란하군요.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먼저 답변을 해드린 건데.”
투명한 결계에 가로막히는 공격 스킬들을 보며 은발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을 공격하던 사내 한 명을 향해 검지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참혹한 비극이 일어났다.
푸콱―!
마치 체내에 폭발물이라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처럼, 사내의 육체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차마 믿기 어려운 광경.
그런데도 공격이 여전히 멈추지 않자 은발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희생자 한 명만으로는 부족했나 보군요.”
이번엔 자신이 바라보던 곳을 향해 검지로 가볍게 사선을 그었다.
이후 한차례 피바람이 불었고 상황을 지켜보던 멜리사와 레이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이 되나요? 저렇게 간단하게 학살을 벌이다니요.”
“상위 권능을 사용한 것 같은데, 긴장해야겠어.”
한편, 전요한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녹티스를 들어 올렸다.
“누군가는 멈춰야 해. 이런 건 결코 용납할 수 없어.”
한 차례 숨을 들이쉬고는 은발 여인을 향해 곧장 달려가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