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밝혀지는 흑막 (6)
애덤 카다스키의 여섯 팔이 현란하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차의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는 각양각색의 날붙이들.
전요한은 그 위협적인 모습을 침착하게 눈으로 훑었다.
‘여러 개의 무기를 사용한다 해도 패턴이 있을 거야.’
빈틈을 보이지 않고 연속해서 공격해올 심산이었다.
그렇다면 최선의 순서대로 조합하여 파괴력을 높이려 할 터.
중간중간에 속임수를 쓰긴 하겠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움직임이 보인다. 어떤 팔을 먼저 휘두르며 쇄도해올지.’
어렴풋이 패를 읽은 순간, 미래시가 발동했다.
전요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이형의 장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티잉!
금속성의 마찰음과 함께 양쪽의 무기가 맞부딪쳤다.
마창과 장검.
상성은 애덤이 유리해 보였다.
“크큭!”
마치 함정에 걸려들기라도 했다는 듯, 애덤은 사악하게 웃었다.
나머지 팔에 들린 무기들이 틈을 노려 인정사정없이 내리쳐진다.
공방을 주고받은 직후라 불가항력적인 반격이었다.
상대가 예측 범위대로 움직이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말이다.
스르르르!
주위가 일그러지는 듯한 왜곡과 함께 이변이 일어났다.
원인은 다름 아닌 새롭게 진화한 전요한의 검, 녹티스.
5성급의 성유물답게 심상치 않은 이능을 발현하고 있었다.
- 조금도 쉬지 않고 베어 넘기는 거다. 회전하는 움직임에 가속도를 실어서.
뇌리에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스쳐 지나갔다.
전설적인 마검사, 라스.
에테리아 대륙의 모험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만한 영웅이었다.
‘이것이 녹티스의 능력인가.’
전사자들의 검이라 그런지, 이전 소유주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한 명씩 등장하여 파훼법을 알려주고, 비의가 전승되는 형태.
전요한은 마검사 라스가 속삭이는 동작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내가 대응하려 했던 방식과 상당히 비슷해.’
그보다 더 정교하고 완성도가 있는 연계였다.
하나의 필살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 뛰어넘어라. 눈앞의 괴물을. 네 자신의 한계를. 찰나의 시간이라는 속도를.
“하아아아아!”
전요한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이윽고 섬광의 궤적을 따라 애덤의 한쪽 팔들이 보기 좋게 잘려나갔다.
“뭐, 뭣이?”
믿기 어려운 현상에 애덤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 정도의 전력은 지금까지의 관측으로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측정해둔 상대의 한계치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 가속도에 몸을 맡기고 확실히 마무리 짓는 거다. 놈이 다음 일격을 가하기 전에.
눈앞의 시야에 새로운 궤적이 윤곽처럼 나타났다.
전요한은 그 의지에 이끌려 다시 한 번 검무를 췄다.
쌍륜의 고리가 이어지며, 애덤의 나머지 팔들마저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말도 안 돼, 전력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순간 압도당한 것에 경악하는 애덤이었다.
그는 비굴하게 도망치며 메데이아를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놈들을 해치우라고!”
그녀는 전요한의 일행과 별 진전 없는 소모전만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나 무리인 모양이군요. 당신의 역할은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기다란 은발을 휘날리며 메데이아가 입을 가렸다.
어차피 금단의 실험이 성공하고 난 이후엔 필요 없는 상대. 애덤 카다스키는 그저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불과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내가 여기서 죽으면 네년의 계획도….”
“망상이 심하시군요. 당신을 대체할 만한 인간은 학원도시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원로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자를 포함해서요.”
메데이아는 굳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덤은 그에 대해 알고 있는지 몸을 부르르 떤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냐! 나를 통해 학원도시의 기술력을 이용하려고!”
애초부터 정체도 불분명한 악마를 믿은 게 잘못이었다.
애덤이 혼자서라도 도망치려 하자, 전요한은 그를 뒤쫓았다.
“어딜 가려고!”
녀석을 붙잡아서 원로원의 검은 속내를 파악해야 했다.
이능력자를 양산하는 기술로 그들은 대체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걸까.
필요한 정보가 더 있었지만, 메데이아가 먼저 손을 썼다.
“당신이 붙잡히면 원로원의 그자도 상당히 곤란해하겠죠. 그렇게 될 바엔 여기에서 사라져 주셔야겠어요.”
손아귀에서 피어난 검푸른 불꽃이 하나의 점으로 응집되었다.
이후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그것은 애덤에게 작렬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광–!
무한 재생 능력을 지닌 애덤이 살아남지 못하도록 완전히 괴멸시켜 버린 것이다.
“같은 편을 이렇게 무참하게 살해하다니.”
먼지가 휘날리는 공터를 바라보며 멜리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노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전요한은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완성한 기술로 혼란을 일으킬 셈인가 본데, 우리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것 같아?”
지난 사건들의 진정한 배후는 메데이아였다.
애덤의 생사에 더는 집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자신에게로 일행의 시선이 집중되자 메데이아는 웃으며 입을 가렸다.
“정확히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유전적으로 이능력을 발현하는 기술은 막 걸음마를 뗀 상태라고 할 수 있죠.”
더 많은 생체 데이터와 실험을 필요로 했다.
학원도시는 그것을 위한 최적의 장소.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을 때까지 잔혹한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죠, 전요한. 당신의 취향에 맞는 볼거리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재회를 약속하며 메데이아는 자취를 감췄다.
질투의 대리자라서 그런지, 이런 식의 공간 도약쯤은 우습게 해낸다.
한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그녀가 사라진 허공을 응시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손도 못 쓰고 놓쳐 버렸는데.”
“상아탑의 최상층부로 갈 겁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학원도시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원로원의 장로들과 담판을 지어야했다.
마음을 정한 전요한은 홀연히 발길을 돌렸다.
* * *
상아탑의 하층부.
학원도시의 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 이곳은 현재 혼란이 펼쳐지고 있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모두 위원회 소속의 이능력자였다.
삼엄한 경계와 보안 체계에도 입구가 뚫린 탓에, 이러한 기습은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었다.
“끝도 없네요. 얼마나 더 쓰러뜨려야 하는 걸까요.”
함께 위층으로 이동하던 멜리사의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정면 돌파를 하게 된 것이 매우 유감인 듯했다.
“지금까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실속도 없었죠.”
“…그렇긴 하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몸이나 풀어야겠습니다.”
멜리사는 되도록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전력으로 덤벼오는 상대도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는 식으로 제압하기만 한다.
[멜리사]
고뇌에 빠진 여전사(★).
올곧은 가치관으로 인해 현실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만약 잘 이끌어 주기만 한다면, 당신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운명 카드에 의하면, 그녀의 방식을 존중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이윽고 다음 층에 도달하자, 대기하고 있던 이능력자들이 마구잡이로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악명 높은 배신자가 왔군!”
“우리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닐 거다! 각오해라!”
“이렇게 된 이상 결사 항전한다!”
다양한 유형의 이능력자들이 뒤섞여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언가 세뇌를 당한 것 같은데, 위원회가 미리 언론 플레이라도 한 모양이다.
스걱!
줄곧 후방을 지켜오던 시르케가 적진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이 그대로 마력파동에 의해 벽 쪽으로 날아간다.
콰쾅쾅쾅쾅―!
어지간한 이들을 기절시키기엔 충분한 공격이었다.
한편, 한나는 물질 변환 능력을 이용하여 거대한 회중시계를 만들어낸 차였다.
“이런저런 고생할 필요 없이 이걸로 전부 해결하면 된다고.”
황금으로 변한 회중시계가 허공에서 진자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을 본 이능력자들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제자리에 픽 쓰러진다.
아마도 한동안은 꿈속을 헤매도록 자기 암시를 걸어놓았을 터다.
퍼퍼퍼퍼퍽―!
박수호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은지 한쪽 구석에서 맹공을 퍼붓는다.
그동안 수련을 한 보람이 있는지 이전보다 움직임이 나아진 상태였다.
“데려오길 잘했네.”
전황을 지켜보던 전요한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혹시나 해서 여유가 있다는 이들까지 합세시켰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서걱! 서걱!
메이가 피의 권능을 사용하여 민첩하게 사이드를 휘두른다.
이제는 흡혈에 대한 욕망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는지, 별다른 후유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린이 안 보이네.’
얼마 전부터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았다.
서창민 역시 같은 상태인 걸 보면, 아마도 위원회에 불려간 모양이다.
만일의 사태를 머릿속으로 그려본 전요한은 문득 곤란함을 느꼈다.
‘부디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특별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자주 맞부딪쳤던 이들이었다.
각자의 사정에 깊은 고민을 하는 중이었고, 결국엔 자신의 곁에 서서 함께 싸워주었다.
마음만으로는 충분히 동료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들이었기에, 험한 짓을 당하지 않길 바랐다.
“꺄아아악!”
최후까지 버티던 여마법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는 다가오는 전요한의 옷깃을 붙잡더니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제발!”
어디선가 탄환이 날아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전요한은 검날로 그것을 신속하게 쳐낸 후 한쪽 방향을 노려봤다.
“왜 같은 편을 죽이려 하지?”
그곳엔 마법공학으로 빚어낸 총검을 든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서있었다.
아마도 위원회의 간부로 보이는데, 실력이 제법이다.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항복하는 년 따윈 위원회 소속으로 남아있을 자격이 없어. 살려둬 봤자 괜히 아군의 사기만 떨어진다고.”
사내는 귀찮다는 듯이 입을 나불거렸다.
이후 마법 공학 소총을 다시 들더니,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해온다.
타탕탕탕―!
전요한은 이리저리 도약하여 피하면서 거리를 좁혀갔다.
전부 피해냈지만, 탄환은 곡예를 부리듯 우회하며 목표점을 향해 날아간다.
「탄도 조작」.
쉴 새 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탄이 전요한을 엄습했다.
도저히 방책이 없을 것처럼 보였으나 시르케가 개입해서 후방지원을 해줬다.
콰드득!
허공에 생성되는 얼음벽이 대신 마탄의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그것으로도 막아내지 못한 탄환은 한나가 물질 변환 능력으로 추진력을 감소시켰다.
“장난질은 이제 끝이다!”
어느덧 승부는 오랜 접전 끝에 결착이 나고 있었다.
전요한은 기합을 내지르며 사내의 지근거리까지 파고들었다.
“크윽! 이대로는 질 수 없다!”
이를 갈던 사내가 정신을 집중하더니 최후의 한 발을 쏘았다.
타아앙!
공중 곡예를 부리던 마탄이 순간적으로 전요한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어림없다!”
전요한은 일전에 녹티스를 통해 마검사 라스에게서 배웠던 검술을 펼쳤다.
끝없이 회전하며 가속도를 키워가는 돌격기.
전사자들의 검, 녹티스가 서슬 퍼런 공명음을 내며 사내의 목전까지 쇄도했다.
“히익!”
최후를 직감한 사내가 주마등을 경험하며 비명을 내뱉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