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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스탯을 숨김-123화 (123/180)

제123화. 밝혀지는 흑막 (2)

군수품 생산 기지국은 외부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특히 핵심적인 시설이 위치한 지하층은 매 층이 요새와도 같다.

덕분에 일행은 분전하며 제법 곤경을 겪어야만 했다.

“최심부까지 대체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죠?”

질린 기색의 멜리사가 뒤돌아보면서 전요한에게 물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캣시의 말에 따르면요.”

시르케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한층만 더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죠. 위원회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니까요.”

평소처럼 앞서나가며 전요한은 모두를 독려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하 수로를 통해 침투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온 편이었다. 만약 상층부에서 진입했으면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렸으리라.

“그런데 조금 불안해. 이 밑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서.”

계획대로 잘되어가고 있음에도 한나는 걱정인 모습이었다.

애덤 카다스키가 위험한 인물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일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든, 확실히 끝맺음을 해야 합니다. 이쪽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요.”

시르케가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번의 좀비 사태, 타천사 강림과 같은 재해들의 배후가 바로 눈앞에 있다.

“애덤 카다스키는 학원도시의 원로원이 무슨 속셈인지도 알고 있어. 그 외에 기밀 정보가 많을 거야.”

한나는 녀석에게 묻고 싶어 하는 것이 많아 보였다.

대화를 나누며 계속 나아간 결과, 마침내 최후의 관문이 일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르르.

최심부로 연결되는 게이트.

승강기는 비활성화된 상태라서, 저길 개방해야 계속 이동할 수 있다.

모두가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고민할 때였다.

터벅. 터벅.

구석진 통로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애덤 카다스키.

아니, 만일에 대비해 스스로를 복제해서 만들어낸 더미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모든 것이 너희의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제법 고압적인 태도였다.

망상에 사로잡힌 오만한 과학자답게 기본적으로 타인을 깔보고 같잖게 여기는 시선이었다.

“어떤 깜짝 선물을 주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전요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말하며 복제인간과 마주했다.

그러자 녀석은 씨익 웃더니 주머니에서 리모컨 하나를 꺼냈다.

“긴말할 것 없이, 직접 보여주지.”

더미가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누르자, 동시에 저만치서 거대한 비밀 통로가 개방되었다.

그곳에 안치된 유물을 본 멜리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뭐, 뭐야? 대체 저건.”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외계 문명의 생명 유지 장치와도 같은 실험관.

내부엔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계종이 잠들어 있다.

“변이종의 여왕, 쿠루엘라다. 그녀는 수많은 종족을 정복하고 자신의 휘하로 두었지.”

복제인간은 마치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쿠루엘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 모습이 보기 언짢았는지 시르케가 중간에 말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위험한 존재라면, 통제 방법은 생각해 둔 건가요? 자칫 잘못될 경우엔 인류의 심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잠식 능력을 보여줬던 기계여왕과 동급으로 평가받는 쿠루엘라였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별로 두렵지 않은지 여유롭게 검지를 흔들어 보인다.

“학원도시의 신기술을 얕보지 마라. 멋대로 설치지 못하게 이미 조치를 해두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체내에 특수한 생체 물질을 삽입해서 명령에 불복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주도록 한 모양이다.

제법 머리를 쓰긴 했는데 그 정도로는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었다.

“계획이 많이 부실한데? 그보다 더 나은 수단을 사용했을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인걸.”

아르티나를 들어 올리며 전요한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물론, 쿠루엘라가 만만한 상대인 건 아니지만 현재 전력으로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그 여유로움,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말을 마친 복제인간이 리모컨의 파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생명 유지 장치가 개방되면서 변이종의 여왕, 쿠루엘라가 서서히 눈을 떴다.

“크으….”

깨어난 쿠루엘라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녀가 생명 유지 장치에서 나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을 때였다.

타다다닥.

배후에서 여러 명의 인파가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작전에 참여했던 다른 헌터들이 무리를 지어 이쪽으로 합류하고 있었다.

“어이, 전투는 아직이야?”

“덕분에 지름길로 단번에 여기까지 도착했다고!”

“레이드는 우리와 함께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겉으로 보기엔 아군이 늘어나서 좋은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다.

왜냐하면 상대는 변이종의 여왕.

무력화시킨 생명체를 감염시켜 자신의 충실한 종복으로 삼을 수 있는 탓이다.

“조금 곤란하게 되었네.”

너도나도 활약하겠다고 나서는 헌터들의 모습에 전요한은 혀를 찼다.

좌중을 휘어잡아 통제할 수 있는 지휘관의 부재 때문에 난전이 예상되고, 쿠루엘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장기전이 될 겁니다. 다들 미리 각오해 두세요.”

자세히 브리핑을 하는 대신, 이번 전투가 쉽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러고는 곧장 쿠루엘라를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채앵!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금속성의 마찰음이 주위에 울려 퍼졌다.

* * *

변이종의 여왕, 쿠루엘라.

그녀는 이를 테면 궁극의 생체 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장갑을 걸친 여러 개의 다리는 하나하나가 예리한 검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기괴하게 생긴 한 쌍의 날개는 고공비행이 가능하게 해주고, 길고 튼튼한 꼬리는 변칙적인 공격과 적을 휩쓰는 수단으로 제격이다.

그런데 사실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그녀가 지닌 다양한 유전 정보였다.

치지지직!

쿠루엘라가 민첩한 움직임으로 전격 마법을 시도해온다.

그동안 복속시킨 종족의 능력을 흡수해온 탓에, 언제 어느 유형의 공격이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치광이 과학자의 개가 된 기분이 어때? 한번 자세한 소감을 듣고 싶은데.”

전투 도중의 막간을 이용하여 전요한은 도발을 해보았다.

“나약한 인간 주제에, 감히 나를 능욕하려 드느냐!”

짐작한 대로 쿠루엘라는 대노하며 더욱 맹공을 퍼부어왔다.

이에 몰려온 헌터들도 총공세를 시작했다.

“일기토는 그쯤하고, 우리도 본격적으로 끼어들자고!”

“암암, 레이드는 역시 함께해야 제맛인 법이지!”

“여기까지 와서 허탕만 치고 돌아갈 순 없잖아?”

중요한 작전인 만큼, 모여 있는 헌터들이 네임드 급의 상위 랭커다.

콰콰콰콰쾅―!

쿠루엘라를 향해 형형색색의 스킬들이 퍼부어졌다.

회갈색의 먼지가 주위를 뒤덮었고 잠시 소란이 일었다.

“쓰러뜨렸나?”

“아니, 그렇게 쉽게 당할 녀석은 아닌 것 같던데.”

“시야가 흐려진 틈을 타서 기습해올 수도 있으니 조심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소리.

그것들을 최대한 무시하며 전요한은 감각을 곤두세웠다.

쿠루엘라는 제자리에 선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멜리사가 쿠루엘라에게 돌격했다.

진홍의 불꽃과 함께 범상치 않은 오러가 피어오른다.

“날 쓰러뜨린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잠자코 있던 쿠루엘라가 건방지단 듯이 비꼬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소환 마법을 시전하여 자신의 상위 권속들을 주위에 불러낸다.

키아아악―!

크르르르―!

변이체들의 모습은 실로 다양했다.

여러 종족이 변이 인자를 받아들인 만큼 상대법도 다종다양해서 대응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하압!”

돌격하던 멜리사가 괴수처럼 생긴 변이체에게 대검을 꽂아 넣었다.

녀석이 허무하게 소멸하자, 사기가 오른 헌터들이 앞다투어 그 뒤를 따른다.

“좋아, 이 기세로 밀고 나가자고!”

“권속들을 계속 소환할 테니 조금도 틈을 줘선 안 돼!”

“여왕의 목은 내가 차지하겠어!”

“어림없는 소리! 그건 내 거야!”

누구도 반전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저들 모두를 살릴 방법은 없는 것 같군요.”

멋대로 행동하는 헌터들을 보며 시르케가 탄식을 늘어놓았다.

전요한은 고개를 끄덕인 후 주위의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쿠루엘라는 헌터들을 끌어모은 후 대량의 기생충을 살포할 생각 같습니다. 접근하지 말고 미리 거리를 두세요.”

변이종의 전투방식에 대해서는 대미궁에서 수도 없이 경험해봤다.

그중에서도 최강의 개체인 여왕이라면 어떻게 싸울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니요. 지금 승부를 내야 합니다. 더 위험해지기 전에요.”

함정에 걸려들지 않는 편이 나아 보였지만, 멜리사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경고를 무시한 채 거침없이 변이체들을 도륙했고, 쿠루엘라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쯤하면 된 것 같군. 전부 내 노예로 만들어주마!”

다시 한번, 변이체 권속들이 그녀의 주위에 소환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전부 기동성이 빠른 돌격 전사들이었다.

크르르르―!

녀석들은 곧장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더니 하나둘씩 자폭하기 시작한다.

콰앙! 콰앙!

폭발력도 만만치 않지만, 더욱 무서운 건 그로부터 쏟아지는 기생충들이었다.

크기가 매우 작고 민첩해서 그에 감염되는 희생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모, 몸이 가려워!”

“으아아악!”

곧, 레이드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 * *

“치잇!”

수많은 헌터들이 고통을 호소하자, 최전선에 있던 멜리사가 뒤돌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로선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여왕의 목을 치려는 심산이었을 터다.

하지만 각성 모드에 돌입했음에도, 급박한 상황만큼 움직임이 따라주지 않았다.

“너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여전사. 지금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 저들의 목숨은 살려주마.”

곤란해 하는 멜리사를 보며 쿠루엘라가 제안을 해왔다.

아니, 제안이라기보단 항복 권유에 가깝다.

기생충에 감염된 희생자들을 인질로 삼자, 멜리사는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수작이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어림도 없는….”

“만약 내가 저들을 공간도약 마법으로 학원도시 곳곳에 뿌릴 거라면? 그래도 계속 나와 대적할 것이냐?”

교활한 쿠루엘라가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이에 순간 멜리사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전요한은 슬슬 나서야 할 때임을 느꼈다.

“만일에 대비해 다른 헌터들이 각 구역마다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피해가 커지진 않을 테니 물러서지 마시죠.”

“크윽….”

별것 아닌 위협임에도 멜리사는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일반인을 수호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입장이니 더욱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모양.

전요한은 하는 수 없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다.

타다다닥!

빙결 마법으로 움직임을 둔화시킨 후 그 틈을 파고들면, 충분히 승부수를 띄워볼 수 있다.

아르티나를 쥔 채 내달리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가고 있을 때였다.

휘이이익!

가만히 서 있던 멜리사가 전요한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진심으로 공격해오는 것이었기에 그녀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티잉!

결국,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인가.

멜리사의 대검을 받아내며 전요한은 그녀의 선택을 힐난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를 가로막는 겁니까? 무작정 항복하면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킨단 걸 모릅니까?”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무고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모른 척할 수만도 없죠.”

멜리사는 차가운 눈빛으로 전요한을 노려봤다.

여차하면 다시 한번 공격을 시도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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