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교도소의 폭군 (2)
“뭐? 벌써부터 줄을 서겠다고?”
“허허, 당돌한 놈일세. 그런데 사실 헌터는 환영이긴 해.”
자신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말하자 경계자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현재 교도소의 무법 세력은 두 파벌로 나뉘어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니 이런 요구도 반가운 것이다.
“그럼 들여보내 줄 테니 문제만 일으키지 마.”
“신참내기가 의욕만 앞서 가지고… 무리하다 다치지나 마라.”
저들은 내부 소동을 일으키는 자들이 전부 한통속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윽고 수용동 안으로 들어서자 저 너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어쩔 거야?”
“여기서부턴 우리 파벌이 아닌 녀석들도 있어.”
다시 한번, 헌터 사내들이 주저하며 의향을 물어 온다.
전요한은 다그치듯 앞쪽을 가리켰다.
“숨어서 잠입하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정면 돌파할 테니 오정구 패거리와 만나면 한판 붙으시죠.”
오정구는 큰형님인 고동배의 오른팔이자 행동대장이다.
한편, 이쪽은 좀비 사태 이후 합류한 윤길수의 패거리.
그래서 끗발이 상대적으로 밀리고 반대쪽의 무시를 받는 중이었다.
“길수 형님의 허락 없이 그래도 되려나….”
“한번 날 잡아서 붙을 생각이라고 하셨으니 뭐 괜찮겠지.”
사실 내 말을 거부할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두 사내는 납득한 듯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마치 서로가 악연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오정구 쪽의 일당 중 두 명이 저 너머에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너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까 들여보낸 신참내기가 난동 피우고 있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역시 저들만으로는 메이를 막기에 역부족인가 보군.
전요한은 그녀가 신나서 전부 때려 부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예쁘장한 여자애가 갑자기 날뛰어서 상당히 당황했겠지.’
씨익 웃으며 헌터 사내들의 등을 떠밀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원수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도 행운이에요.”
“…….”
“…….”
눈빛을 교환한 헌터 사내들이 말없이 자신의 주무기를 소환한다.
그 모습을 본 오정구 쪽의 일당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얼씨구. 너네 일 벌이고 나서 감당할 수 있겠어?”
“길수가 이러라고 시키더냐? 들어와, 들어와!”
이로써 오정구와 윤길수를 싸움 붙일 계기는 마련된 상태.
양쪽의 파벌이 인상을 구기며 맞붙는 동안, 전요한은 혼자서 유유히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 너! 수감 번호가 뭐야!”
시끌벅적한 소리가 점차 가까워져 온다 느끼던 중이었다.
무법 세력의 일원이 나타나서 전요한을 향해 윽박질렀다.
오정구의 파벌인지 윤길수의 파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똑같은 방해꾼.
말없이 빙결 마법을 시전하여, 둔탁한 얼음 덩어리를 방해꾼의 머리 위에 떨어뜨렸다.
“아악!”
무법 세력 중엔 헌터가 아닌 죄수들도 많다.
좀비 사태가 발생한 지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들 모두가 이능력을 사용할 리 없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멋대로 난동을 부리는 것도 꽤나 재미있네.”
메이.
생채기 하나 없는 모습이다.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은 걸 보니, 아직 고동배와는 조우하지 않은 모양이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너는 능력을 쓰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사실 좀 어지럽긴 했어.”
내 충고에 메이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놀아 볼 기회가 그녀에겐 적었던 탓이다.
“그나저나, 채린하고 멜리사는 만났어? 그녀들도 여기 어딘가에 있잖아.”
“아니, 실은 소장실 쪽으로 가보려 했는데 워낙 경계가 삼엄해서 포기했어. 거기 헌터들도 있어서.”
메이는 나와 합류하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후 함께 나아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건물이 뒤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이건 분명 멜리사의 짓이다.
그리고 그녀가 필요 이상의 능력 발휘를 한 건 아마도 화가 나서겠지.
왜 화가 났을지는 전요한으로서도 대략 짐작이 갔다.
“꽤나 화끈하게 싸우나 본데?”
“응, 멜리사는 한번 열 받으면 전부 때려 부순다고 했으니까.”
영혼의 색채가 붉은 계열인 것만 봐도 그녀의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각성하거나 하면 정말로 난리가 나겠지.
진홍색의 오러를 마구잡이로 날리면서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릴 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서둘러야겠네.’
가끔씩 덤벼드는 죄수들을 제압하며 소장실 근처까지 접근했다.
헌터로 추정되는 무리가 전요한을 가로막았다.
“네가 바로 다른 구역에서 난동을 피운 장본인이구나.”
“큰형님이랑 싸우는 붉은 머리 년도 같은 일행이지? 덕분에 우리까지 골치 아프게 됐다.”
모두 합해서 일곱 명.
맞설 전력이 부족한 건 아니나 맞서 싸우기엔 통로가 좁기도 해서 더 쉬운 방법을 택했다.
스르르르!
살의를 품은 채 눈앞의 무리를 노려보자 무형의 뭔가가 발산되는 느낌과 함께 주위에 서슬 퍼런 위압감이 형성된다.
「광전사의 격노」.
성장치가 점차 회복되면서 제한적이나마 이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크윽….”
“수, 숨 막혀….”
“뱀 같은 게 달라붙어서 전신을 옭죄는 것 같아….”
각자의 무기를 든 채 대치 중이던 무리가 하나둘씩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메이가 경탄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대단하네. 그런 걸 습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너도 언젠가 이 정도의 경지까진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메이도 충분히 4성급의 잠재력은 지니고 있었다.
아직 미래시가 발동하진 않았지만, 그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메이를 격려하며 전요한은 쓰러진 헌터 무리를 전부 포박했다.
이런 데서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는 자들이다 보니 대개가 별로 보잘것없다.
“그 이상한 능력은 우리 큰형님에겐 안 통할 거다. 각오 단단히 하는 것이 좋을걸?”
마력 포승줄에 의해 팔다리가 휘감기던 한 명이 전요한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분개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눈빛.
전요한은 그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다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별로 걱정되진 않는데요. 국내 서열 1위라는 상위 랭커도 상대해 봤거든요.”
“뭐? 마, 말도 안 되는….”
저항하듯 이쪽을 올려다보던 사내가 믿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이런 반응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다.
“말해줘도 믿지 못하다니, 조금 억울하겠는걸?”
옆에서 지켜보던 메이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난 공적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은 후, 관리국에 뭐라도 요구해야겠다 싶었다.
아무튼, 이제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일만 남았다.
콰콰콰콰콰콰쾅!
가까이서 들으니 멜리사의 난동질을 어서 막아야겠단 의지가 선다.
무력 행사의 여파로 살짝 찌그러진 문을 활짝 열고 진입했다.
교도소장의 예복을 빼앗아 입은 고동배와 대치 중인 멜리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저는 정숙한 숙녀를 성노리개 취급하는 남자가 제일 싫어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런 저질은 인간 취급하지 않을 겁니다.”
저기압 상태인 점으로 보아하니 역시 고동배가 멜리사에게 성추행을 시도했나 보다.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을 재언급했다.
“지금은 항체 보유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니 주위에 피해가 갈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하시죠.”
“…그건 참아 보도록 할게요. 하지만 저 녀석은 내 거니까 끼어들지 말아줘요.”
멜리사는 가까이 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후엔 히죽거리는 고동배를 향해 무지막지한 검격을 날려댄다.
콰콰콰쾅!
아까보다 화력은 다소 약해졌지만 여전히 신경 쓰이는 건 마찬가지.
이대로 내버려 두면 곤란했기에 옆에 있는 채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빙벽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줘. 적당히 이곳 소장실과 바깥쪽 통로까지만.”
“응,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채린이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생각보다 화끈한 여자군.”
여유롭게 멜리사의 화력을 받아내던 고동배가 호기심이 생긴 듯 이쪽을 보며 말했다.
그의 능력은 「체질 변환」.
전신을 미지의 입자로 전환시켜 외부적인 충격을 견디거나 공격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저런 이능력자는 구속 제어로 무력화하는 편이 낫지.’
고동배는 마음만 먹으면 버티면서 얼마든지 시간을 끌 수 있기에 우선 심신을 속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투 패턴을 좀 더 지켜보기 위해 메이를 전투에 투입해 보기로 했다.
“한번 상대해봐. 우리가 배후에서 엄호해줄게.”
“알았어. 그럼 돌격할게.”
한차례 심호흡한 메이가 공격적인 자세로 고동배에게 달려들었다.
피의 권능으로 한층 적용 범위가 확대된 혈마법.
기존엔 일시적인 가속화와 동체 시력 상승에 주로 의존했지만.
휘이이익!
지금은 밤의 일족처럼 그 움직임과 파괴력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붉은 궤적을 남기며 전방을 사이드로 광풍처럼 휩쓰는 모습에 채린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번보다 더 강해졌네. 저 아이는.”
한편, 다 대 일의 상황에서도 고동배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반항심과 세상을 향한 증오가 가득한 눈빛.
좀비 사태로 인한 혼란은 그동안 억눌려 왔던 욕망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저번 던전 공략으로 몰래 챙겼던 보상 중에 이런 상황에서 써먹기 좋은 것이 있었다.
치지지지직!
「망혼의 결계석」을 던지자 곧이어 광채를 띤 마력 사슬이 순식간에 고동배를 휘감았다.
“음…?!”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고동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전신을 비틀며 저항하려고 하지만 그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이건 위계가 높은 악마도 붙잡아둘 수 있는 성유물이니까.
“어서 붙잡도록 하죠. 결계석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긴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계석은 구속 제어 능력이 뛰어난 대신 살상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전요한이 행동을 촉구하자 일행은 번뜩이며 일시에 고동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빌어먹을 녀석들….”
완전히 결박당한 고동배가 우리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는 멜리사가 구해온 형틀에서 빠져나오려 노력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그 재질이 이세계에서만 존재하는, 특이성의 귀금속이었던 탓이다.
형틀에 붙잡혀 있는 동안, 고동배는 이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럼 심문을 시작해볼까? 적당히 자극을 가하면서 말이야.”
앞으로 걸어 나온 멜리사가 하이힐로 고동배의 발등을 내리찍었다.
“크아아악!”
고통에 찬 신음이 소장실 내부를 가득 메웠다.
“크아아악!”
한동안 지켜보고 있기 어려운 고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만한 위협이 없으면 녀석이 입을 열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혹시 교도소 내부에 특이점을 보이는 감염자가 있습니까? 좀비에게 물린 후에도 아무렇지 않다거나 하는 등 말이죠.”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고동배를 향해 전요한이 질문을 던졌다.
고동배는 질문 의도를 파악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딴 건 관심 없었다. 의심 간다 싶은 녀석들은 죄다 수용동의 C구역에 격리 조치했거든.”
만약 항체 보유자를 발견했다 해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좀비 사태로 인한 혼란이 더 확산되길 원하니까.
고동배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덧붙이자 채린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현실 세계가 어떻게 되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기겠단 거야?”
이미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좀비 확산을 저지하지 못하면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닥친다.
채린이 그 점을 강조했으나, 고동배는 끝까지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난 잘 모르겠으니 그렇게 관심이 있으면 한번 C구역을 뒤져봐. 아마 결과는 뻔하겠지만.”
계속 고문을 한다고 해서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상황.
결국 우리는 멜리사만 남겨두고 수용동의 C구역에 가기로 했다.
“잘 감시해 주세요. 혹여 풀려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거든요.”
“걱정 마.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물리적 거세를 해버릴 테니까.”
언제 준비를 해두었는지 멜리사가 보라는 듯이 서슬 퍼런 날을 지닌 절단 도구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고동배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공포감이 어렸다.
“히, 히익! 부디 그것만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