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스탯을 숨김-76화 (76/180)

제76화. 교도소의 폭군 (1)

작업동 건물 내부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부들로 분주했다.

아니, 인부가 아니라 노예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했다.

그들은 교도소의 경제 유지를 위해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당하는 중이다.

“저놈이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애송이냐?”

한차례 고함을 친 후 지시를 내리던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이쪽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그러자 요지부동 상태로 옆에 서 있던 죄수가 긴장하며 입을 연다.

“네, 맞습니다!”

여기선 계급에 따른 상하 관계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단 하루 만에 이 정도로 체계가 갖춰진 걸 보니 큰형님이란 자의 능력이 제법 뛰어난 모양이었다.

“너, 이름이 뭐냐?”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공구 박스 위에 연장을 내려놓더니 거들먹거리는 자세를 취했다.

“전요한입니다.”

“그래, 요한이. 사회생활 할 때 주특기가 뭐였냐?”

직업을 물어보는 이유는 상대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 가늠해 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어서 여길 뒤져 봐야 하니 가장 마음에 들어 할 대답을 해주었다.

“몬스터 사냥이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해진 상황에서 헌터는 고가치의 인적 자원이다.

동시에, 무법 세력에 있어선 잠재적인 위협 요소이기도 했다.

“허, 헌터?”

일반 시민인 줄 알고 방심하던 사내가 놀라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다시 대기업 면접관처럼 질문을 해온다.

“종합 능력치는 몇이지? 보유 중인 이능력과 성급도 밝혀라.”

“50이고 적당히 쓸 만한 도검류 전투 스킬 있습니다. 어디 가서 딱히 자랑은 못 하는 2성급이고요.”

“…그렇군. 초면이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밥값은 하겠어.”

작업복 차림의 사내는 만족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위 랭커면 몰라도 어중간하게 머릿수나 채우는 헌터는 다루기 쉽다 생각한 것이다.

작업동에서 노역 중인 인부의 숫자만 해도 100여 명.

이들을 관리하는 무법 세력이 헌터 출신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내부의 험악한 분위기를 흘끗 육안으로 재확인한 후 전요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있는 자들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만 우선 확인 절차를 거쳐야지. 가끔 짐꾼인 녀석들도 이능력이 있다고 우리 집단에 끼려 하는 경우가 있거든.”

철저하게 능력 중심으로 평가하겠단 건가.

딱히 저들과 친목질을 할 생각이 없었던 전요한으로서는 대환영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옆에 있던 죄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헌터로 추정되는 사내 두 명이 나타나 내 좌우에 위치했다.

“그럼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증명해 보도록 해. 아 참, 내 이름은 고동배니까 잘 기억해둬. 이곳의 주된 노무를 담당하는 작업반장이다.”

고동배가 나중에 다시 보자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후 두 사내에게 이끌려 작업동을 나가자 저만치 떨어진 철조망 너머로 여러 마리의 좀비들이 보였다.

“종합 능력치 50이면 충분히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실패해서 죽는다면 네가 무능력한 거겠지.”

두 사내는 전요한을 철조망의 출입문 바깥쪽으로 밀어 넣은 후 방관하듯 팔짱을 꼈다.

동시에 좀비들을 구속하던 족쇄가 원격 해제되었고 그중 가까이 있던 몇 마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키야아아악!”

“크아아아아!”

고작 이 정도로는 그간 온갖 역경을 헤쳐 온 전요한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처리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으므로 시간을 두고 한 마리씩 차근차근 베어 넘겼다.

스걱!

스걱!

어느덧 4성급까지 도달해버린 터라 시시하다 못해 지루했다.

그래서 설렁설렁 전투에 임해도 굳이 스킬까지 써먹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오호, 하위 랭크치곤 몸놀림이 괜찮은데?”

“부족한 면이 없진 않지만 밖으로 나갈 때 데리고 다닐 만하겠어.”

충분히 합격점이라 판단했는지 저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사내들의 평가가 호의적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기에 조금 더 속도를 내서 나머지 개체까지 정리해 버렸다.

“아직 좀비가 더 남아 있습니까?”

“아니, 전력상의 가치는 충분히 증명됐어.”

“하지만 테스트는 완전히 끝난 게 아냐. 우린 불미스러운 내분을 막기 위해 사상 검증도 확실히 하거든.”

이번엔 가치관 테스트로군.

범죄자 소굴에서 어떤 식으로 피아 식별을 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철조망의 출입문이 여전히 굳게 잠겨 있는 것을 보며 전요한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오호, 저기 때맞춰 오는군.”

“큰형님이 CCTV로 직접 보고 계신가 본데? 저쪽 애들 이런 일로 빠릿하게 잘 움직이잖아.”

서로 잡담하는 사내들의 시선이 반대편에 있는 철조망 너머로 향했다.

고개를 돌리자, 인상이 안 좋은 무리가 포박된 일반 시민들을 앞세워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들어가!”

“반항하면 즉결 처형한다!”

곧이어 현재의 구역 안으로 떠밀리듯 들어오는 3인.

성인 남성이 둘이고 나머지 한 명은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다.

“…….”

“…….”

“…….”

그들을 끌고 왔던 무리는 건너편의 헌터 사내 둘을 한번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되돌아가 버렸다.

추정하건대, 이곳의 무법 세력은 모두 큰형님이란 자를 따르긴 하나 내부적으로 패거리가 나뉘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 같다.

“아놔, 저놈들 우리랑 마주쳤다고 기분 나빠 하는 것 봐라.”

“정말 언제 날 잡아서 전부 싹쓸이해야지 안 되겠어. 이렇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양쪽을 이간질하면 여길 조사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니 자세한 사정은 이따가 들어보는 편이 좋았다.

그나저나, 다시 한번 딜레마가 찾아왔다.

‘곤란하게 됐네.’

사상 검증을 통과하려면 이들을 죽여야 할 텐데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무튼, 거기 신참! 이제부터 하는 말 잘 들어. 거기 있는 녀석들은 모두 사형수다.”

“죄명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아마 반역 미수일 거야. 여기서 우리 동료로 지내고 싶으면 전부 네 손으로 처리하도록 해.”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눈앞의 일반 시민들이 공포감에 몸을 떨었고 전요한은 어느 쪽이든 확실히 결정을 내려야 했다.

* * *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상황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차라리 전부 죽여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런 식으로 계속 단계별 절차를 거치는 것보다 그냥 일행과 함께 정면 돌파하는 편이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지금쯤이면 다들 각자 다른 구역으로 흩어졌을 테니 한번 상황을 듣기로 했다.

- 메이, 현재 위치가 어딘지 알려줘. 슬슬 움직여야 할 때 같은데.

- 난 수용동의 주방 시설에 있어. 요리 좀 해봤다고 하니까 바로 이리 보내던데?

- 채린과 멜리사는?

- 그녀들은 예쁘장하다고 소장실로 끌려간 것 같았어. 아, 물론 나도 괜찮다고는 했는데 외국인이라 꺼려진대.

이 정도면 혼란을 일으키기엔 충분한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일행을 분산시켜 놓은 이유는 무법 세력을 각개 격파해서 귀찮은 일이 생겨나는 걸 막기 위함이다.

주위에 배치된 CCTV를 확인한 후 전요한은 작전 개시를 알렸다.

- 일단 거길 빠져나와서 먼저 소동을 일으켜. 그럼 다른 일행도 함께 움직일 테니까.

제대로 교도소를 뒤엎기 위해, 전요한은 아르티나를 소환했다

“뭐야 저 녀석,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객기라도 부리려는 건가?”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사내들.

일단 저들을 내버려 둔 채, 차가운 검기로 눈엣가시였던 인근의 CCTV부터 모두 박살냈다.

콰과과광!

아까 분명 큰형님이란 자가 직접 보고 있을 것이라 했었지.

이렇게 그의 관심이 이끌린 상태에서 난동을 피우면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바로 결판을 낼 수 있을 터다.

“설마… 폭동을 일으키려는 거냐?”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야?”

뒤늦게 눈치챈 헌터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주무기를 소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도전이었다.

콰드드득!

빙결의 마법검, 아르티나로부터 혹한이 일어나 사내들의 발목을 얼어붙게 했다.

그 타이밍에 맞춰 도약한 후 사내들을 재빨리 제압했다.

퍼억!

퍼억!

사내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고 당해버렸다.

“시키는 대로 하면 목숨은 살려드리죠.”

여길 장악하러 온 목적은 다름 아닌, 정보 수집이었다.

그러니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자의 도움을 받는 편이 여러모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싸늘한 표정으로 위협하자 쓰러진 채 바닥을 기던 사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사내들을 통해 얻은 정보는 제법 쓸모가 있었다.

여길 점거 중인 무법 세력의 대략적인 구성부터 해서 수용된 피난민의 수까지….

외부인이었던 입장으로선 이런 내부 사정에 여태껏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감염이 의심되는 생존자는 수용동의 C구역에 격리되어 있단 거죠?”

“응, 확실해. 거긴 우리도 잘 접근하지 않는 곳이고 식량 배급도 앞으로 끊길 계정이야.”

앞장선 채 걸어가던 사내들 중 한 명이 흘끗 뒤돌아보며 질문에 대답했다.

그를 향해 단검을 겨누며 전요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시선을 정면으로만 향하세요. 괜한 의심을 사면 곤란합니다.”

그들은 지금 형식상으로 신입과 선배의 관계였다.

아까 CCTV를 파괴했던 일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내부적으로 그의 정체는 들통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거야? 네가 대단하긴 하지만 우리 큰형님도 정말 무서우신 분이라고.”

혹여 전투에 휘말릴까 봐 걱정되는지 반대편의 사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동배 씨라면 상대법은 생각해 뒀습니다. 아마 별문제 없을 겁니다.”

헌터 사내들에게서 그와 관련한 아야기를 들었다.

경비가 삼엄한 수용동을 향해 걸어가며 전요한은 고동배에 대한 것들을 되짚어봤다.

전과 12범.

그중 살인미수가 4건이고 성범죄 관련해서는 6건의 이력이 있다.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되어 관리국의 감시하에 수감 생활을 해왔으나… 이번 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거기 뒤에 있는 녀석은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헌터야? 신기하게 생긴 장검 들고 있네.”

수용동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자들이 이쪽을 보며 물었다.

간수복을 입은 걸로 보아 저 녀석들도 무법 세력의 일원이다.

“신참내기니까 별 신경 쓰지 마.”

“어서 문 열어. 얘 기본적인 거 알려줘야 해.”

전요한이 포섭한 사내들은 미리 얘기한 대로 아무 일도 아닌 척 연기했다.

이렇게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위협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도우면 나름의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내부에서 소란이 일어났어.”

“이번만 신참 교육하는 코스를 조금 바꿔. 굳이 여기부터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잖아?”

주방 시설에 보내졌다던 메이가 제대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출입 허가는 좀처럼 내려지지 않았다.

그냥 경계자들을 제압하고 진입할까 하다가 솔깃하게 들릴 만한 제안을 해보았다.

“그쪽 파벌에 붙을 테니 좀 들여보내 주세요. 저는 어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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