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변이 바이러스 (3)
좀비 사태가 일어난 지 이틀째.
피난처로 몰려오는 시민들의 수는 점차 늘어만 갔다.
개중엔 바이러스 감염 의혹이 있어서 별도로 격리된 부류도 있었다.
“제발 여기서 풀어줘!”
“난 감염자가 아니야!”
혼란으로 인해 생겨난 내부 갈등은 보기에 안 좋았다.
수용소가 있는 구역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고 이따금 곤란한 문제도 발생했다.
“키아아악!”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좀비로 변한 사내가 철책에 달라붙으며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여러 다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사내는 피투성이가 되어 지면에 쓰러졌다.
“감염자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군요.”
즉결 처형을 지켜보던 멜리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가피한 일이긴 하나 이런 식의 격리 조치가 그녀의 눈에 좋게 비칠 리 없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진 아마도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겠죠. 어떻게 보면 흑사병보다도 심각하니까요.”
일행과 함께 수용소 주위를 거닐며 전요한은 말했다.
아카데미에 두고 온 시르케가 걱정되는지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그러고 보니, 통신망은 아직도 활성화가 안 되네.”
채린도 답답한지 먹통이 된 문자함만 바라보기만 했다.
“전파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이곳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의도적인 소행으로 보이는데, 알아볼 필요성은 있겠네요.”
관리국과 연락이 될 때까진, 이대로 함께 행동하는 편이 좋겠다고 멜리사가 말했다.
그녀는 일행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만큼, 다른 임무는 잠시 중단할 생각이다.
“그럼 우리는 항체 보유자도 찾아내고 전파 방해의 원인도 알아내야 하는 거야?”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메이가 난감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일행의 수도 그리 많지 않은데 과연 시간적인 여력이 있을지 의문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항체 보유자를 찾는 일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겠죠.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에 가까우니까요.”
변이 바이러스인 만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어차피 봉쇄령으로 인해 당분간은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 탓이다.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무기력함을 느낀 채린이 고개를 떨궜다.
전요한은 힘내란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일단 뒤에서 화력 지원을 하며 거들기만 해줘. 너무 나서진 말고.”
“응….”
채린은 이번 사건이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 있을지 모른단 사실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멜리사가 입을 열었다.
“슬슬 이곳의 지휘권자와 이야기를 해보죠. 그도 적잖이 곤란한 상황일 겁니다.”
현장에 투입된 육군 부대는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분쟁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헌터 전용 주거지역이 있는 곳이다 보니, 체류 중인 헌터들과의 마찰 또한 적잖이 골칫거리다.
“왜 우리까지 일반 시민처럼 통제하려고 드는 거야?”
“재래식 무기 좀 가지고 있다고 헌터가 우습게 보여?”
피난처에서 헌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유를 허용받았으나 이들에겐 그마저도 불만인 모양이었다.
난감해하는 군인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항의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만 같다.
두 세력이 대치 중인 지점을 피해서 작전 지휘소로 접근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계병 두 명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용무를 밝혀 주십시오.”
우리가 헌터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꽤나 긴장한 기색이다.
“대대장님에게 건의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이번 재해와 관련해서요.”
“…알겠습니다. 보고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깨에 총대를 멘 경계병이 작전 지휘소 안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를 안으로 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 * *
“어서 오시지요. 안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정승식은 책상 위에 펼쳐진 전략 지도를 보며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골몰해 있었다.
지도상의 상황을 보니 구역별로 좀비 소탕은 진전이 있는 편이나 완전한 섬멸까진 어려움이 많다.
“상급 부대로부터의 물자 지원은 아직입니까?”
“아마도 곧 도착할 겁니다. 다만, 봉쇄령 때문에 육로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전달되겠죠.”
다른 방법이란, 낙하산 등을 이용하여 보급품을 상공에서 내려보내는 걸 의미했다.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임시적으로 내놓은 대책.
그로 인해 여기 있는 군인들도 이러다 버려지는 게 아닌지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한다.
사정을 털어놓으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 정승식.
전요한은 아까 동료들과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본질적인 해결책?”
“항체 보유자를 찾아서 상급 부대에 보고하면 백신 개발을 위해서라도 이쪽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해줄 겁니다.”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군요. 분명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합니다만.”
예상대로 정승식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여태까지의 감염자들이 예외 없이 좀비로 변했고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인원도 대부분 이상 증세를 보이는 탓이다.
“허락해 주신다면 저희가 한번 밖으로 나가서 찾아보죠.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도 구출할 겸 해서요.”
“…좋습니다. 관리국에서 파견된 요원도 함께하고 있으니 믿고 맡기도록 하지요.”
잠시 고민하던 정승식이 승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개의 헌터 무리와 달리 그간 적극적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해준 결과 돌아온 호의.
덕분에 일행은 사흘 정도의 보급품을 챙겨서 독립적인 활동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당분간 노숙을 하며 지내야겠군요. 비교적 안전한 위치의 공터나 건물에서요.”
점점 멀어져 가는 피난처를 뒤돌아보며 멜리사가 씁쓸하게 말했다.
저쪽도 솔직히 생활수준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젠 그마저 기대하기 힘든 처지가 되었다.
“불평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어서 계획대로 움직이죠.”
적당히 일행을 달랜 후 전요한은 도심의 시가지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위험 구역에 들어서자 길거리를 배회하던 좀비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키아아아!”
“쿠에에엑!”
어제와 비교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광경.
그나마 차이점이 있다면 생존자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정도였다.
스걱!
일행은 좀비 무리를 도륙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낮은 등급의 몬스터이다 보니 처리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감염 위험성 때문에 다소 성가시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거야? 생존자들의 도피처로 짐작 가는 데라도 있어?”
거침없이 사이드를 휘두르던 메이가 문득 물었다.
하나의 지역구를 전부 이 잡듯 뒤지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몇 군데 정도는 확실해. 이런 혼란 속에서 요새의 기능을 하는 장소가 있으니까.”
예를 들면 교도소나 학교, 경기장 같은 시설.
그중에서도 보안 수준이 높고 나름의 식량이 비축된 교도소 쪽에 가장 많은 생존자가 있을 터였다.
구체적인 목적지를 밝히자 채린이 조금 못 미더운 표정을 지었다.
“교도소라면 상식 이하의 저질인 인간이 많겠네. 어쩌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범이 활개를 치고 있을지 모르겠어.”
그녀의 말대로, 위험인물이 그곳을 장악하고 있을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사안이 중대한 만큼 무법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여긴 공권력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니 유혈 사태가 벌어져도 별로 문제 되지 않겠지.
다시금 몰려오는 좀비 무리와 마주하며, 전요한은 아르티나를 다시 들어 올렸다.
서슬 퍼런 일섬과 함께 한 차례 피바람이 불었고 일행은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 * *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교도소.
좀비들이 날뛰는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나의 성 같았다.
일행이 그 주위로 접근하자 감시 초소 위에서 우락부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지. 움직이면 쏜다.”
죄수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아마도 교도소 내부는 좀비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의 혼란으로 인해 저들에게 점거당한 모양이다.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부디 들여보내 주십시오.”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전요한은 두 손을 든 채 선량한 시민인 척했다.
그러자 죄수들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보고를 했다.
“피난민 네 명 발견. 젊은 여성도 있는데 들여보낼까요?”
직장 상사를 대하듯 공손하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나름의 위계질서가 잡혀 있다.
잠시 기다리자 위로부터의 허락이 떨어졌는지 출입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빨리 들어와. 갑자기 좀비 출몰하면 곤란하니까.”
일단 잠입 작전은 성공.
일행은 흔쾌히 내부로 들어섰다.
출입문이 닫힘과 동시에 죄수들 중 한 명이 총구를 전요한의 머리에 갖다 댄다.
“넌 좀 수상하니까 따라와.”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군.
마음만 먹으면 녀석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일이 귀찮아지니 참았다.
- 그럼 계획대로 부탁해.
- 응, 신호 보낼 때까지 얌전히 있을게.
메이가 사념 대화를 통해 걱정 말라는 말을 보내왔다.
이런 식의 은밀한 의사소통은 피의 구속이 걸린 상대하고만 가능하다.
“…….”
“…….”
그렇기에 채린과 멜리사는 점점 멀어져 가는 전요한의 모습을 눈빛으로만 배웅했다.
이윽고 모퉁이를 돌아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끌고 가던 죄수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지금 밖의 상황은 어떻지? 혹시 거점화에 성공한 다른 생존자 집단이 있나?”
좀비 사태가 발생한 지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았기에 놈은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잘 모른다.
물론, 별 보잘것없는 끄나풀이라 그런 면도 있을 터다.
적당히 관심을 끌며 이쪽의 사정을 캐낼 필요성이 있는 상황.
전요한은 머뭇거리는 척하며 한 가지 정보를 흘렸다.
“군부대를 중심으로 구축된 피난처가 한 군데 존재합니다. 여기를 기준으로 북서쪽 방향에요.”
“…왜 거기로 안 가고 하필 이곳에 온 거지? 수용 인원이 너무 많다고 거절당하기라도 했나?”
예상대로 죄수는 다른 피난처에 호기심을 보였다.
만약 여기가 좀비 바이러스의 침투로 끝장나 버리면 새롭게 의지할 곳을 찾아야 하므로 이는 당연한 심리다.
차량이 주차된 작업동 건물을 향해 이끌려 가면서 전요한은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댔다.
“아무래도 군인들은 유도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피난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죠.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기다리면서요.”
“역시 그런 거였군. 확실히 질서 유지 면에선 이쪽이 더 우위에 있을 테지. 필요 없는 녀석은 몰이꾼 역할을 해야 해서 오래 살아남기 힘드니까.”
몰이꾼이란 저들이 식료품 등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좀비 무리의 시선을 끄는 사람을 의미했다.
평범한 시민의 경우 사망률이 매우 높을 터.
전요한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도와주긴 어렵겠지.’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좀비의 개체 수를 억제하지 못하면 더 큰 참사가 벌어질 텐데.
괜히 힘없는 이들을 도운다고 나섰다가 시간이 지체되면 곤란하다.
“어떻게 하면 가치를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소모품 취급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큰형님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복종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다보면 기회가 찾아오는 거지, 뭐.”
작업동 건물이 가까워지는 걸 보며 죄수가 내 물음에 답했다.
큰형님.
현재 교도소를 장악하고 있는 자에 대한 내용이 드디어 언급되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큰형님은 누구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방법을 알아두고 싶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능력이 탁월하지 않은 이상 누구든 단계별로 지위가 올라가는 법이니까.”
역시 끄나풀하고는 대화해봤자 얻을 정보가 별로 없는 건가.
하긴 본인부터가 말단 취급을 받고 있는데 신참내기에게 적극적으로 출셋길을 알려줄 리 만무하지.
적어도 중간 관리자급의 인사와 접촉해야겠다 생각한 전요한은 잠자코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