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도시괴담 (3)
아카데미 기숙사의 부사감실.
관리국 요원인 정서희는 상부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짓이나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수행 대상인 전요한에 대한 감시와 연구.
전대미문의 대미궁에서 생환한 자는 여전히 관리국의 주요 관심사였다.
‘입장이 애매하게 되었네.’
감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으리라 예상했었다.
조만간 관리국으로 불려갈 거라 생각했는데, 현재로선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불온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탓이었다.
‘최근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었다지.’
관리국의 판단에 의하면, 이는 대재해가 다가오는 조짐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모두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 징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최고 전력인 채강윤까지 파견되어 밤낮으로 활동하는 상황.
지금도 아카데미의 교관들을 상대로 수상한 인물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있다.
“후아….”
피로함을 느낀 정서희는 타이핑을 멈추고 잠시 기지개를 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담당 요원 의견서]
대미궁에서 25년간이나 갇혀 있었던 탓인지, 전요한은 알 수 없는 구석이 많다.
인격상의 결함이 있는 건 아니나, 특정 요리를 지나치게 선호하거나 가끔씩 기행을 일삼는다.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심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경쟁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장기간 홀로 활동한 까닭으로 추측된다.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던 게 조금 삐뚤어진 성향으로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올곧은 가치관의 소유자이며, 현세에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관리국이 주시 중인 ‘죄악의 세력’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이외에 능력상의 특이점이 몇 차례 발견된 상태다.
특히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빈틈을 잘 파고드는 면이 있다.
‘절대면역’이라는 소질은 실전에선 제대로 확인해본 바가 없다. 하지만 교내의 혼란이 가중되는 만큼 조만간 기회가 있을 것으로….
딱히 전요한을 위해 숨기거나 한 내용은 없었다.
이 정도는 그대로 보고해도 별로 문제 되지 않을 테지.
하지만 곤란한 개인사정 같은 거라도 나중에 알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요한이 무언가 숨기고 있단 것쯤은 직감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으음….”
관리국 요원으로서 임무에 충실해야 하긴 한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일인 만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말 못 할 고민에 정서희가 홀로 한숨 지을 때였다.
벌컥.
갑자기 문이 열리며 이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선배?”
“아까 채강윤하고 함께 왔었어. 너도 알고는 있었지?”
채강윤은 주로 단독행동만 하는 편인데, 웬일인지 동행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것보다, 무슨 일이에요?”
“이것 봐. 현지의 요원을 통해 새로 들어온 정보가 있어.”
이수연은 곧장 정밀하게 출력된 사진 자료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정서희의 눈빛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악마형의 던전 게이트?”
“저번에 한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는 유형이야.”
던전 게이트의 유형은 바로 위에 떠올라 있는 원형의 표식으로 구분했다.
검이면 전사형.
지팡이면 마법사형.
십자가면 사제형.
일반적으로 위의 3가지 유형이 주를 이룬다.
던전 내부의 몬스터 배치가 어느 쪽에 유리한지, 그 상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유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미궁과 이어져 있었다는 던전 게이트의 경우는 연옥형이라고 분류하기로 했는데,
거대한 탑이 지하로 파고드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보다는 규모가 작은 유형이었죠, 아마?”
“방출된 마력 파동은 4등급이야.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연옥형에 비할 바가 못 되겠지.”
그럼에도 이수연은 적잖이 곤란해하는 표정이었다.
악마형 표식은 일전에 전요한과 정서희가 휘말렸던 던전 게이트의 유형과 같았던 탓이다.
다시 말해서, 그 내부엔 저번처럼 상위 악마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분명, 소란을 일으킨 네크로맨서도 거기서 처음 마주쳤어요. 어떤 방법으로 현세에 모습을 드러냈는진 미지수지만요.”
“내 생각엔 새로운 재앙이 발생하려는 징조 같아. 관리국에서도 대비 차원에서 특별 조치를 취하도록 했어.”
이수연은 관리국 국장인 유명학으로부터 직접 내려온 지시를 전달했다.
“현 시간부로 해당 던전 게이트에 대한 소관은 직속 양성기관인 헌터 아카데미에 일임한다.”
“네?”
“국장님이 신중하게 고려하고 내린 조치야.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한 만큼, 이번 건은 너희가 맡아 줘야겠어.”
마침 상급생의 실전 연습 시기가 다가온다는 명목도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상급생은 담당 교관의 관리·감독하에 일정 수의 던전을 직접 조별 공략해야 한다.
그들 중 최정예 인원만을 뽑아 해당 던전에 투입시킨다는 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
이수연이 구체적인 내용을 떠들어대자 발끈한 정서희는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무리예요. 저도 그 유형의 던전에서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졸업도 안한 생도들이 버텨낼 수 있겠어요?”
“너보다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아이들이야. 임시 부교관으로 관리국의 핵심 요원들을 붙여놓을 예정이고 말이야.”
“그래도 사상자가 발생할 것임은 분명해요. 관리국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형인데.”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아. 미지의 환경에 노출된 것을 계기로 이번 기수의 우등생들이 새롭게 잠재력을 개화할 가능성도 있어.”
이수연의 주장은 학계에선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던전 내부는 마력의 밀도가 짙은 환경이라 이능력자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던전의 등급이 높을수록 이러한 환경상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능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성장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생도들에겐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였다.
“혹시 그 선별대 명단에 요한 씨도 포함되어 있나요?”
더는 이의 제기하기 어렵다 판단한 정서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요한이라면 분명 흔쾌히 수락하겠지만, 무언가 관리국 측의 숨겨진 의도가 있을 가능성을 파악해둬야 했다.
“왜, 네 남자친구라도 떠나보내는 듯한 표정이네?”
“그런 게 아니에요. 제 임무 중엔 요한 씨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잖아요.”
“혹시 몰라 충고해 두겠는데 개인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거라면, 공과 사는 명확히 하도록 해. 나도 그를 지나치게 떠미는 것 같아 기분은 좋지 않아.”
“아직 언급하지 않으신 게 있다면, 지금 말해주세요. 선배님. 저까지 속일 생각은 아니겠죠?”
곧게 일어선 정서희가 똑바로 눈을 마주 봤다.
그녀를 말없이 응시하던 이수연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많이 성장했구나, 정서희. 예전과 달리 네 신념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네.”
관리국 소속의 정부요원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엔 아무런 의견도 피력 못 하는 풋내기였다.
얼마 동안 전요한과 붙어 다녔던 게 마음가짐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걸까?
기특하게 여긴 이수연은 하나뿐인 선배로서 몇 가지를 더 알려주었다.
“국장님은 전요한이 빠르게 성장해주길 원하고 있어. 아마도 그가 숨기는 비밀과 관련 있는 것 같아.”
“비밀이요?”
“자세한 건 알 수 없어. 하지만 전요한을 곁에서 지키고 싶다면, 단단히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의 넌 그의 발목밖엔 잡지 못해.”
과연, 너는 이런 혼란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을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직속 후배에 대한 기대감을 남기며 이수연은 등을 돌렸다.
“항상 말하는 건데, 무슨 일이 있어도 개죽음은 당하지 마. 그동안 너를 힘들게 키운 내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니까.”
“…네.”
점점 멀어지는 선배를 향해 정서희는 뒤늦게 대답했다.
주위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잠시 후 그녀는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수신자 : 전요한
급히 상의해야 할 일이 있어요. 최근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니 지금 부사감실로 와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잠시 후 전요한이 도착했고, 정서희는 자신의 휴대폰 액정을 내밀어보였다.
“조만간 문제가 터질 것 같아요. 또 배달 불가 지역 되기 전에 어서 주문하죠!”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써먹지 못한 사례금이 최우선 순위였다.
* * *
“학내 생활엔 별 문제 없어?”
채강윤이 자판기의 음료수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의 눈앞엔 하나뿐인 여동생 채린이 서 있었다.
“…응.”
오랜만의 재회인데도 채린은 말수가 적었다.
두 사람과 관계되어 있는 집안 문제 탓이었다.
“내가 가업을 이어받지 않아서 피해를 보는 거라고 생각해?”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싶었던 채강윤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의 말대로, 장남이 후계자 교육을 받지 않는 건 재벌가에서 문제가 될 만한 일.
하지만 채린은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쉽사리 고민거리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정략결혼.
오빠처럼 집안을 박차고 나가서 헌터 업계에 종사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실제로 교내의 성적도 매우 우수한 편이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까지 그렇게 행동하면 부모님은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집안의 오래된 기대감을 저버리기엔 채린은 아직 어렸다.
“정혼자에 대한 문제 말이지? 상황은 대충 알고 있어.”
사전 조사를 해두었던 채강윤이 먼저 이야기를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채린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걸 어떻게?”
“나는 관리국의 최상위 요원이야. 주로 비밀리에 행동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서 정보력이 빠삭한 편이지.”
“그럼 충고를 해주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글쎄. 기본적으로는 너의 선택을 존중해. 하지만 집안의 이해관계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건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였다.
그러니 이능력자로 활동하고 싶다면 그 꿈을 저버리지 마라.
채강윤이 인생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오빠는…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거야? 7년 전의 악몽을.”
고개를 든 채린이 자신의 친오빠와 마주했다.
그녀는 지난 세월 동안 그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나가 죽은 날은 결코 잊을 수 없어. 그 자식을 찾아내서 반드시 죽이고 말 거야.”
복수를 다짐하는 채강윤의 눈빛에 불길이 일었다.
기존과 다른 유형의 던전에 있었던 고위 악마.
놈의 흉악한 간계에 소중했던 첫사랑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시신마저 유실되어 제대로 된 무덤조차 없는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인생에 남겨진 마지막 소명.
채강윤은 자신이 포기한 인생의 행복만큼 하나뿐인 여동생이 잘되었으면 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쪽 업계는 정말 냉혹해.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진정한 동료 정도는 한 명쯤 구해두는 편이 좋아.”
“동료?”
“그래. 네가 누군가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하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복수를 해줄 의리가 있는 전우 말이야.”
혼자서 활동해온 채강윤에겐 그런 존재가 없었다.
자신의 여동생이 같은 길을 걷길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어떤 경우에도 신뢰 가능한 동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찾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해. 언제까지고 내가 보호해줄 순 없을 테니까.”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문득 채린의 머릿속에 한 인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전요한.
위험할 때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기에, 친오빠가 말하는 상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채린은 망상이라고 생각하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야! 그건 단지 우연….’
머릿속의 이미지가 현실과 겹쳐진 건 바로 그때였다.
“안녕? 또 만나네.”
마침 두 남매의 곁을 전요한이 지나가고 있었다.
표정이 얼어붙어 있던 채강윤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놈이랑 아는 사이냐?”
“아, 응… 어쩌다가 학생회 일을 잠시 도와주게 되었어.”
“…잠시 삼자대면 좀 하자.”
친오빠로서 여동생의 남자관계에 대한 교통정리는 해둬야 했다.
볼썽사납게 도움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서 자존심이 구겨질 것은 각오해야 하는 부분.
채강윤은 손을 들며 전요한을 불러 세웠다.
“이봐, 잠깐 이리로 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