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도시괴담 (1)
“어지간히도 소란피우길 좋아하는 녀석이군.”
창밖을 내다보던 유리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얼마 전부터 천리안을 통해 교내의 한 인물을 주시하는 중이다.
‘대체 속셈이 뭐냐, 전요한.’
성유물 도난 사건 이후로 여러 생도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아마도 범인을 찾으려는 것 같은데, 아직까진 별 실속이 없어 보였다.
‘너무 일을 벌이지 마라.’
여기는 이능 관리국 산하의 양성기관, 아카데미였다.
실전 준비가 되지 않은 생도들이 대부분인데, 외부의 위험을 끌어들이면 곤란했다.
“전부 나의 소중한 제자니까.”
적어도 교내의 울타리에서만큼은 어떻게든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설령 외부에선 지옥 같은 광경이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다 해도 말이다.
과거에 소중한 제자를 잃은 경험이 있는 유리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하군요.”
배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고개를 돌리니 검은 복장의 사내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웬일이지? 평소에는 안부 인사도 안 하던 녀석이.”
관리국 최고의 전력, 채강윤.
그는 유리안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이었다.
마법 특화 계통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전담 지도 교관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유나를 잊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살해당했던 7년 전의 일을.”
채강윤이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봤다.
한유나.
아카데미에서 최상위 성적을 기록하며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학생회장이었다.
“…넌 항상 유나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 그녀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으니까.”
아픈 데를 찔리자 유리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답지 않게 감정적인 모습이어서, 만약 다른 생도가 보았다면 적잖이 놀랐을 터였다.
“원망하시는 건가요? 안타깝게 죽어버린 유나의 자리를 줄곧 차지해온 저를.”
채강윤도 평소와는 달리 어조가 조금 격양되어 있었다.
‘관리국의 사냥개’라는 냉혹한 별명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한유나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
“만약 네가 그 아이 곁을 조금 더 지켜줬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살얼음이 낀 듯한 분위기 속에서 유리안은 본심을 드러냈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채강윤이 절제를 잃은 건 그 순간이었다.
“제가 그 던전에서 유나를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단 하나뿐이었던 첫사랑을?”
문제의 사고사가 일어난 던전은 일반적인 유형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실력이 뛰어났던 채강윤도 완벽하게는 대처하지 못했다.
당시엔 동기들과 함께 현장 실습을 나왔던 한 명의 상급생에 불과했을 뿐.
어떻게든 탈출 방법을 찾고 있을 때, 한유나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죽임을 당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채강윤은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 없었다고 너무 마음대로 말하지 마시죠. 당신은 그저 아무렇게나 망상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니까.”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유나는 죽지 않았다. 너와는 달리 그녀에게 도움이 되어줬을 터이니.”
유리안은 거듭해서 채강윤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그러자 채강윤의 눈길에 순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당신이 아직도 절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지난 7년간의 절망 속에서 피어난 결과물을 보여드리죠.”
일대일 전투라면 자신 있었다.
얼마 전에 말도 안 되는 상대를 만나서 참패하긴 했지만, 유리안은 다르다.
채강윤은 그의 전투 방식과 속임수, 약점까지 전부 꿰뚫고 있었다.
“한 번쯤은 제대로 맞붙어보고 싶었다. 덤벼라. 소중했던 첫사랑조차 지켜내지 못한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왔는진 모르겠지만.”
말을 마친 유리안이 손아귀에 푸른 불꽃을 피워 올렸다.
일반적인 마법사와 달리, 그는 물, 불, 바람, 대지의 4원소를 사용하지 않는다.
푸른 불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제5원소, 에테르.
마력의 근원에 더 가까운 상위원소이며 선택받은 이들만이 다룰 수 있었다.
“새로운 술식이라도 개발한 건가요? 안 그래도 네크로맨서의 이상한 능력에 당하고 온 참인데, 공부가 제법 되겠군요.”
채강윤의 자세가 금방이라도 돌격할 것처럼 맹렬하게 변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팽팽하게 맞서던 두 사람의 발밑에 돌연 황금빛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
“!”
놀란 두 사람은 재빨리 마법진 밖으로 몸을 피했다.
수준 높은 구속 마법.
만약 조금이라도 지체했다면, 위험했을 터였다.
“사제지간에 말다툼으로도 모자라, 싸움질이라니. 유나가 봤으면 바로 훈계부터 했을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인지 학내의 교화 담당 교관, 메르첼이 뒤쪽에 서 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채강윤은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나타나셨군요, 성녀 님.”
“저번 사건 이후로 외부인의 출입엔 신경 쓰고 있거든요. 그리고 과분한 호칭 대신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세요.”
메르첼은 차가운 눈초리로 채강윤을 바라봤다.
일전에도 갑자기 나타나서 전요한과 맞붙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상당히 곤란함을 겪은 탓이다.
“오늘은 이쯤 해두지. 아카데미의 현직 교관으로서 내부 시선을 신경 써야 하니까.”
푸른 불꽃을 사그라뜨린 율리안이 먼저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그는 사무적인 어조로 채강윤에게 뒤늦게 용무를 물었다.
“이제 네놈이 나타난 이유를 말해라. 이번에도 전요한 때문인가?”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일단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도록 하죠.”
채강윤은 애매한 태도로 질문을 넘겼다.
네크로맨서와의 전투에서 전요한에게 도움을 받은 탓이 컸다.
입장을 대충 이해한 유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국의 사정이니 깊이 묻진 않겠다. 그게 핵심이 아니라면 성유물 도난 사건 때문인가?”
“네,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들 중에 한 명의 동선을 쫓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자는 죄악의 사도로 활동했던 한동혁과 천강우에게도 접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채강윤은 천리안을 지닌 율리안에게 목격담이 있는지 물으러 온 것이다.
“확실히, 율리안 교관이라면 무언가 본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에도 외부인의 출입은 직접 확인하는 편이잖아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메르첼의 고개를 돌려 율리안을 바라봤다.
율리안은 생각에 잠긴 채 잠시 말이 없었다.
“…….”
사실 그건 율리안이 비밀로 하고 혼자서 파헤치고 있던 건이었다.
다른 제자들이 휘말리게 될까 곤란했으므로 관리국에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주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자칫하면 제 여동생도 휘말릴 수 있으니까요.”
중대 사안이라며 채강윤은 협조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그의 여동생은 바로 채린.
현재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상급생이었다.
“크윽.”
채린의 이야기가 나오자 율리안은 심적으로 흔들렸다.
예전에 자신이 아꼈던 한유나를 쏙 빼닮은 수제자.
그런 아이가 채강윤의 친동생이란 사실이 운명의 장난 같았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채린이 이번 사건에 말려들 수도 있겠지.’
전요한이 그녀와 함께 다니며 성유물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내버려 두고 있긴 하지만, 혹여 한동혁이나 천강우 같은 녀석들에게 당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됐다.
문제의 수상한 외부인이 왔다 간 이후로, 교내에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알겠다.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도록 하지.”
결국 율리안이 먼저 자존심을 굽혔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끼는 수제자인 채린의 안위를 위함이었다.
“제가 몽타주를 그려 왔는데,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만족한 표정을 짓던 채강윤이 품에서 두루마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후 그것을 펼쳐 보이자 율리안과 메르첼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인물화인지 추상화인지 잘 모르겠군.”
“예전 제자에게 악담은 하고 싶지 않지만, 심하군요.”
성격도 잘 맞지 않는 두 교관이 입을 모아서 내린 평가였다.
초등학생이 그린 듯한 몽타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단 지적.
그림 실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던 채강윤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눈썰미들이 뛰어나셔서 이 정도로도 가능할 거라 기대했는데 말이죠.”
관리국 최고의 전력치고는 허술한 면이 있었다.
아카데미 생도였던 그의 오래전 모습이 잠깐이었지만 겹쳐 보였다.
‘만약 유나가 살아남았더라면, 너도 그렇게 마음을 닫아버리진 않았을 텐데.’
예전부터 채강윤을 알고 있었던 메르첼은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그녀는 애써 희미한 미소를 띠며 다시 입을 열었다.
“교내 시설 중에 외부 출입자의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떨까요?”
명색이 관리국 산하의 전문 양성기관이었다.
유능한 인재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이곳은 평소에도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채강윤이 바로 그것이라는 듯이 박수를 쳤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실은 율리안과 대면한 이후에 곧바로 찾아갈 예정이었긴 했다.
여전히 모두에게 본심을 숨긴 채, 채강윤은 메르첼의 뒤를 따랐다.
* * *
“흐음, 애매하네.”
대련을 마친 전요한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앞엔 기진맥진한 상태의 박수호가 쓰러져 있었다.
“뭐, 뭐가 애매한데?”
거칠게 호흡을 고르던 박수호는 빼꼼 고개를 들었다.
“모든 면에서. 신체강화 계열의 능력자치고는 격투기를 활용하는 자질이 부족한 느낌이야.”
“이제부터 막 시작했으니까 좀 더 분발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지도. 하지만 교내에서 지도하는 훈련법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
아카데미 수업은 체계적이긴 하지만, 생도들의 내적인 잠재력을 너무 배제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급이란 외적인 잠재력의 일부를 반영하는 지표일 뿐이다.
내적 자질이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면 외적 자질은 그저 이능력 개화와 동시에 주어진 것.
전요한은 이러한 개념을 명백히 구분해둘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네가 말하는 내적 자질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데?”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력이라든지,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력. 이외에도 본질을 간파하는 통찰력이라든지, 그 종류는 다양해.”
인간의 성향이나 기질에 해당하여 함부로 수치화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무튼, 희망이 있다는 전요한의 말에 박수호는 깊이 감명받았다.
“부디 나를 유용하게 써줘. 힘들게 구르더라도 너처럼 강해지고 싶으니까.”
“나중에 두말하기 없다? 도망치려 하면 붙잡아서 네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던전 게이트에 집어 던질 거야.”
말을 마친 전요한은 미리 으름장을 놓았다.
대미궁에서도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고 싶다느니 지껄인 녀석들은 제법 되었다.
하지만 전부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현실에 안주하여 변절해 버렸지.
‘자고로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 법이야.’
애초에 처음 받아들일 때, 그 됨됨이를 확실히 파악해둬야 했다.
박수호의 활용도를 두고 전요한이 좀 더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여어, 이런 곳에서 뭐 해?”
몸을 풀러 나왔던 강기태가 마침 눈앞에 나타났다.
전요한의 시선이 빠르게 양쪽을 왔다 갔다 했다.
“으음.”
갑자기 고민거리가 생겼다.
양쪽 다 신체강화 계열의 이능력자인데, 당장의 쓸모는 강기태가 더 있어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