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미래시 (2)
“얘, 들었어? 얼마 전에 전요한이 밖으로 나갔다 왔대.”
“특별한 체질이라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관리국에 호출되었다지?”
“던전 내부에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조기진화라도 했나 봐.”
“알에서 깨어난 것하고도 관련이 있으려나? 너튜브에 돌아다니는 영상 보니까 완전 신기하던데.”
학내의 교실은 온통 전요한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생도에게 나쁜 짓을 하던 한동혁과 천강우를 때려잡은 사실은 이미 교내의 화젯거리였다.
“풍기 문란한 변태들도 잡아내고 학생회장까지 구해내다니. 꽤나 하잖아?”
“실비아 교관하고 대련할 때부터 알아봤어. 전혀 밀리지 않던데?”
“입학 1주만에 조기진급한 인재답네. 겉보기엔 평범했는데 의외였어.”
한편으로는 정체를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관리국 요원이 아직도 곁을 따라다니다니, 조금 수상하지 않아?”
“생각해보니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네. 뭔가 특별 보호라도 받는 건가?”
“퍼스트 클래스라고는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게 많아. 정말로 관리국 기밀에 해당하는 능력이 있는 걸까?”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으면 의구심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누군가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고 있었다.
‘체엣. 그따위 녀석이 뭐가 잘났다고 계속 떠들어대는 거야!’
말없이 과제를 하고 있던 강현석은 연필심을 부러뜨렸다.
안 그래도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데, 주위의 잡음이 화를 부추긴다.
‘나 같은 녀석은 언제까지고 무관심으로 방치되어야 하는 거냐고!’
내부 경쟁에 허우적대다 보니, 어느덧 상급생이 되어 있었다.
처음 이능력을 각성했을 땐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았고 절망감이 허탈한 심정을 채우고 있었다.
앞으로 1년이면 졸업.
냉혹한 실전 무대가 자신의 앞을 기다리고 있다.
만년 열등생인 강현석이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엇?”
복도 쪽의 창문 너머로 한 생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제멋대로 머리를 기른 상급생.
외모는 평범한데 표정이 개선장군처럼 자신감에 차 있다.
“전요한?”
지도실에 불려갔다가 마침 교실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강현석은 녀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이거나 먹어라!”
별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모두에게 지나칠 정도로 주목받는 것이 기분 나빴다.
“으음?”
우연찮게 그 모습을 목격한 전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과감하게도 만국 공통의 도발 행위를 시전해댄다.
“왜 시비를 거는 거야?”
교내에서 잘 나가는 중이다 보니 시기 질투하는 무리도 적지 않아보였다.
봐줄 생각은 없었지만, 남의 교실로 쳐들어가서 멱살까지 잡기도 뭐했다.
‘다음에 만나면 각오해라.’
연이어 주목받는 것도 피해야 하니, 이번엔 그냥 얼굴만 기억해 두기로 했다.
전요한은 불끈거리는 주먹을 참으며 다시 복도로 시선을 돌렸다.
투욱.
맞은편에서 지나치던 누군가와 부딪힌 건 바로 그때였다.
고개를 드니, 익숙한 표정의 훈련 교관이다.
“죄송합니다, 교관님.”
한눈팔았던 전요한이 먼저 정중하게 사과했다.
별말 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예의를 갖추는 편이 덜 골치 아플 것 같아서였다.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다니더군, 진급생.”
마법 담당 교관, 율리안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사건의 용의자를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눈초리가 차갑다.
“재미있는 일이라고요?”
“모든 문제가 발생했던 곳엔 네가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촉이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계속 지켜보니 무언가 연루된 느낌이더군.”
율리안은 며칠 전에 전요한이 슬럼가로 갔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특수능력은 천리안.
교내에서도 전요한을 태운 차량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는 게 가능했다.
“만약 제가 나쁜 짓을 꾸몄다면 이렇게 사태가 수습되었겠어요?”
“한동혁이나 천강우같이 인간 말종은 아니겠지. 하지만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일을 계획하는 기분이 들어.”
율리안은 감이 좋은 편이었다.
멀리서 몇 번 지켜본 것만으로 전요한이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중임을 알아차렸다.
‘실비아 교관에 비하면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군.’
이런 상대는 최대한 멀리하는 편이 답이다.
의심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적으로 돌리면 더 귀찮아지기만 할 뿐이다.
불필요한 대면이라 생각한 전요한은 그만하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알아서 생각하시죠. 교화 담당교관님에게 끌려갈 짓은 그다지 안 해서요.”
“관리국 국장의 보호를 받는 것 같다만, 지나친 외부 활동은 삼가는 게 좋을 거다.”
말을 마친 율리안은 뚜벅뚜벅 걸어갔다.
평소에도 무뚝뚝하긴 했으나,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냉혈한처럼 느껴진다.
“뭐야, 선전포고하는 것도 아니고.”
멍하니 서 있던 전요한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왜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되짚어봤다.
‘아무리 종합 능력치가 차이나도 다가오는 건 느꼈을 텐데.’
교실에서 도발을 한 생도에게 한눈이 팔려 있었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율리안에겐 특수능력이 하나 더 있었다.
‘블링크라고 했던가.’
먼 거리를 전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가까운 곳으로 공간 도약을 하는 것쯤은 제약 없이 연속 시전된다.
맞부딪치기 전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분명 그 공간 도약 때문이었을 터다.
‘일부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한 건가.’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충분히 의문을 품을 만했다.
관리국 최고의 전력인 채강윤이 단독으로 만나러 온 일도 있었고 말이다.
천리안을 보유했으니 당시의 전투도 직접 목격했겠지.
조금 전에 보여준 적대적 태도가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었다.
“후우.”
그래도 교내에선 지나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는데.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사람은 아직 율리안뿐이니 일단 넘기기로 했다.
끼이이익.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던 전요한은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의 이목이 일순간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어? 전요한 아니야?”
“관리국에서 부르는 바람에 외출했다더니, 무사했네?”
“오가다 좀비 무리하고 마주치진 않았어? 완전 고어물 영화 같았겠는데?”
표정이 각양각색이지만 대체로 반기는 이들이 많다.
다행이라 여긴 전요한은 우선 자리에 앉았다.
“그냥 체질이 특이하다 해서 건강검진 좀 받고 왔을 뿐이야.”
굳이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시야에 익숙한 모습이 들어왔다.
“강기태?”
저번에 한동혁에게 기습을 당해 뻗었던 녀석이었다.
추격 미션에 성공하면 맛있는 걸 사주기로 했었지.
집요하게 한동혁의 뒤를 쫓아서 궁지까지 몰아넣은 공이 컸다.
“어어, 왔냐?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 없이 연필을 굴리던 강기태가 씨익 웃어 보였다.
녀석은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상태라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뭐 먹고 싶어? 이따가 점심시간에 스페셜 메뉴라도 사줄게.”
“정말? 대박이네. 실은 용돈이 슬슬 떨어져가던 참이었는데.”
강기태는 최근 발매되는 가상현실 게임의 타이틀을 모으느라 돈이 궁하다고 했다.
험한 꼴을 당하고도 해맑게 웃는 녀석을 보며 전요한은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이런 것도 학창 시절의 추억인가.’
대미궁에 갇히기 이전의 학교생활은 좋은 기억이 없었다.
형편없는 식단.
별것도 아닌 일로 항상 다투어대는 동급생들.
눈빛에서 열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담당 교사.
그때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잃어버렸던 과거의 생활, 이번에야말로 되찾아 주겠어.’
밖에서 죄악의 무리들이 활개 치고 있더라도, 사적인 공간은 지키고 싶었다.
대미궁에서 죽어버린 동료들의 몫까지 행복해져야 혼자서 살아남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중에 피하지 못할 위협이 다가오기 전까진 평화로운 나날을 만끽하고 싶은 전요한이었다.
* * *
마계의 성역 중 하나로 불리는 잿빛 안개 숲.
권좌에 앉아 있던 스반힐트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일개 인간 따위가 드락실을 쓰러뜨릴 수가 있지…”
그저 특이한 구석이 조금 있는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다.
대미궁을 공략한 것도 어디까지나 동료들의 활약에 힘입어 가능했으리라 치부했다.
그녀가 수천여 년간 봐왔던 인간은 그 정도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으니까.
헌데 당연하다 여겼던 상식이 서서히 깨져가고 있었다.
마법수정에 비치는 전요한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에 묘한 파문을 일으킨다.
“지구의 여신이 전혀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지는 않았던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거라 여기면 오산이었다.
자신은 마계를 지탱하는 일곱 기둥의 하나.
최하위 차원의 불모지인 지구 따위도 넘보지 못할 만큼 하찮은 권능자가 아니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스반힐트 님. 기일 안에 반드시 전요한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붉은 망토를 걸친 흑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무릎 꿇었다.
데스나이트, 베르길리우스.
서열로 따지자면, 마계 영지 내에서 드락실보다도 더 위에 있는 존재였다.
“백작 지위에 해당하는 마족이 패배했느니라. 제 흥에 겨워 방심했다고는 해도 말이다.”
스반힐트는 지난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계획을 세워 이번에야말로 전요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저는 그동안 후작의 지위를 이어오며 수많은 이계의 적대자들과 싸워 왔습니다. 드락실 따위에 비할 전력은 아닙니다.”
“과연 해낼 수 있겠느냐? 전요한은 평범한 체스 말이 아니다. 지구의 여신이 배후에서 유일하게 은총을 내린 존재. 그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라.”
질투의 죄악인 스반힐트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권능자들은 만일에 대비해 여러 개의 체스 말을 준비해둔다.
그런데 지구의 여신은 단 하나의 기대주에게 모든 판돈을 올려두었다.
자신의 권능을 사용해서 기존엔 없었던 이능력자들을 잔뜩 늘려놓고선 말이다.
“송구합니다만, 지구의 여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요?”
베르길리우스도 그 점이 궁금했는지 감히 질문을 올렸다.
“잘은 모른다. 최하위 차원의 권능자 주제에 오랫동안 서열전을 치르지 않았단 사실 말고는.”
“그렇다면, 다른 권능자들이 건드리는 걸 금기시할 만큼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릅니다.”
“제멋대로 망상을 늘어놓지 말거라. 무엇이 특별하다는 말이냐? 그만한 재간이 있었다면 어째서 최하위 서열에 꿈쩍 않고 머물러 있었겠느냐?”
스반힐트의 기다란 눈썹이 화난 듯이 치켜 올라갔다.
두려움을 느낀 베르길리우스는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저의 모자란 생각일 뿐입니다. 부디 크게 개의치 마십시오.”
“됐다. 나의 명예를 되찾아오려는 노력은 가상히 여기겠다. 마침 이게 손에 들어왔으니 너에게 빌려주마.”
다리를 꼬고 있던 스반힐트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칠흑빛의 성유물이 소환되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가시면류관.
얼마 전에 한 권속이 지구로부터 회수해온 유실물 중 하나였다.
“그, 그건?”
“지구의 여신이 수작질을 부리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구나. 이걸 가지고 가서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오너라.”
자신이 본격적으로 개입했으니 전요한의 운명도 이제는 경각에 달했다.
그를 산 채로 끌고 올 것을 명하면서 스반힐트는 요란하게 웃어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