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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스탯을 숨김-25화 (25/180)

제25화. 네크로맨서 (4)

‘아니, 저놈이 미쳤나?’

드락실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은 것 같은데, 무턱대고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전요한.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속전속결이다! 승부를 내자!”

전요한은 그야말로 맹수처럼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황당함에 얼이 빠져 있던 드락실은 모욕감을 느꼈다.

“거, 건방지기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염동력으로 날려버리려 했다.

그런데 지팡이를 휘둘러도 녀석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뭐, 뭣!?”

절대면역이라는 특수 능력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사기적인 패시브에 의해, 전요한은 어떤 외부적인 디버프도 부여받지 않는다.

염동력에 의해 강제되는 행동제약마저 말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배후에 분명 어떤 권능자의 은총이 있었다.

그 존재는 적어도 신급의 위계에 해당하리라.

헌데 누가 눈앞의 인간에게 그만한 은총을 주었단 말인가?

대체 어떤 선구안과 확신을 가지고 이자를 미리 자기 체스말로 삼았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드락실은 되는 대로 화력을 퍼부었다.

콰앙! 콰앙!

호위병으로 두고 있던 망자들이 전요한에게 달라붙으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주위 공간을 진동시킬 만큼의 위력.

하지만 전요한은 예상과 달리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서야 내게 생채기라도 입힐 수 있겠어?”

무형의 장막이 그의 전위를 휩싸고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수호 마법.

이른바 ‘마력 방벽’이었다.

그 시전자는 다름 아닌, 이수연.

달려드는 망자들 때문에 힘들었으나 아슬아슬하게 전요한을 위한 주문을 외워줄 수 있었다.

‘실패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덕분에 위험할 뻔한 이수연이 실눈을 떴다.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채강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왜 이리로 오는 거지?”

“널 살려내야 관리국에서 보너스 더 받거든.”

“쓸데없는 짓 마라. 지금은 저놈을 돕는 게 더 급하다.”

부축을 받던 채강윤의 시선이 다시 전방으로 향했다.

양쪽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충돌하는 중이었다.

“나를 이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검사로서의 기백은 인정해주마.”

새롭게 일으킨 망자들을 진격시키던 드락실이 전요한을 칭찬했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내리꽂으며 자신의 주위에 암흑 결계를 생성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가 괜히 칠흑의 네크로마키아, 마계의 진정한 네크로맨서 군주라고 불리는지 아느냐?”

거리를 조금 내주었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약점을 노리고 무모하게 달려든 경우가 어디 한둘이었는가?

그때마다 드락실은 이와 같은 결계를 치면서 상대를 절망에 빠뜨렸다.

종합 능력치가 230 미만인 자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파훼하지 못한다.

‘네놈의 실제 전력은 기껏해야 160 정도다.’

오랜 경험을 통해 상대의 종합 능력치 정도는 눈대중으로 맞출 수 있었다.

이건 절대적인 수치상의 격차.

기적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자신에겐 유효타를 날릴 수 없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연이은 시체 폭발을 막아낸 전요한이 씨익 웃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줄 아는데, 실은 한참 전부터 대비하고 있었던 일이다.

암흑 결계.

생각해보니 죄악의 권속들이 참으로 좋아하던 수호 마법이었다.

스르르르!

한층 짙어지는 마기를 감지한 아르티나가 매서운 한기를 내뿜었다.

빙결의 마법검.

3성급의 성유물이고 제법 손에 맞아서 무난하다.

‘하지만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 전요한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성녀의 형태를 한 십자가.

얼마 전에 정서희를 보내 골동품 가게에서 구해오게 한 이세계의 성유물이었다.

‘무려 500만 원이었지.’

가진 돈을 거의 털어 모아야 구할 수 있었던 금붙이다.

물론, 평범한 금붙이가 아니고 한 여신의 가호가 담겨 있다.

이것이라면 암흑 결계를 일시적으로 와해할 수 있을 터였다.

“네, 네놈이 설마?”

성유물의 정체를 확인한 드락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최하위 차원의 불모지인 지구에서 저런 것과 마주하게 될 줄은.

여유를 잃어버린 그의 마음은 더욱 맹렬한 폭격으로 표출되었다.

와장창창!

마침내 전요한을 지켜주던 수호 결계가 산산조각 났다.

수어 번의 시체 폭발을 막아냈으니 이만하면 제 역할을 다한 셈이었다.

드락실의 코앞까지 다가온 전요한은 사악하게 웃었다.

“질서를 관장하는 여신, 아리안델의 가호다! 모든 악은 본래의 혼돈으로 돌아갈지니!”

성녀의 십자가로부터 눈부신 황금색 빛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전요한은 그것을 암흑 결계에 힘차게 내리찍었다.

“아, 안 돼!”

패배를 직감한 드락실이 뒤로 물러서며 절규했다.

타격점을 중심으로 굳건했던 암흑 결계에 균열이 일어난다.

곧, 결계는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죄악의 권속이 되라고? 마녀의 발밑을 기라고? 일단 너부터 참교육을 시켜주마!”

살의를 드러낸 전요한이 눈을 크게 떴다.

아르티나의 검끝이 무자비하게 앙상한 가슴팍을 파고든다.

“쿨럭!”

치명상을 입은 드락실이 검은 피를 토해냈다.

이후 휘몰아치는 혹한에 의해 그대로 얼어붙고 만다.

“결국 당해버리고 말았군요. 방심하더니 완전히 일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드락실의 최후를 지켜보던 괴한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후일을 기약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하지만 고작해야 그분의 체스말 중 하나일 뿐.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취를 감출 때까지 괴한의 시선은 전요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대미궁을 공략하고 돌아온 자.

그가 앞으로의 판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 * *

이능 관리국의 심문실.

그곳엔 평소 잘 방문하지 않는 주요인사가 와 있었다.

“이자가 최근 말썽을 부렸던 좀비 사태의 주범인가?”

관리국 국장, 유명학이 물었다.

옆에 있던 전요한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맞아요. 저놈 때문에 좀 고생을 했죠. 비상금도 조금 쓰고요.”

그들의 눈앞엔 각종 구속 마법으로 결박당한 드락실이 있었다.

자신에게로 시선이 모이자 드락실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셈이냐? 고문이라도 해서 마계 진영의 정보를 빼내려고?”

볼썽사납게 사로잡힌 이상,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 중이었다.

상대를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이 패착의 원인.

하지만 쓸데없이 입을 열어서 배신자로 낙인찍히진 않을 터였다.

“과연, 쉽사리 협조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군. 어떻게 하는 편이 좋겠나, 요한 군?”

혼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유명학이 의견을 물었다.

“가벼운 고문에서부터 시작하죠. 마침 적당한 도구가 있지 않으신가요, 국장님?”

전요한은 무엇가를 요구하듯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유명학은 허허 웃으며 전용무기인 알타니스를 소환했다.

“녹이 슬지도 모르니 살살하게. 성검이라 수리비가 제법 나와서 말이네.”

“걱정 마시죠. 금방이면 됩니다.”

전요한이 아무렇지 않게 알타니스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드락실의 허벅지에 가차 없이 처박았다.

“크악!”

성검에 걸린 가호의 영향으로 짙은 회색의 수증기가 일어났다.

체내의 마기가 중화되며 자연 증발하는 현상이었다.

“말해. 앞으로 얼마나 더 수작질을 할 셈이야?”

전요한은 악질적인 고문에 제법 숙련도가 있었다.

대미궁에 갇혀 있었던 동안 사로잡은 적들을 직접 입 열게 만들었던 덕분이었다.

“나는, 나는 모른다! 크아악!”

그런데 드락실은 제법 근성이 있었다.

살갗이 불타는 듯한 통증에도 견뎌내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한다.

“역시 총애받는 죄악의 권속답군. 단순히 고통을 주는 것만으로는 어렵겠어.”

다른 방법이 낫겠다 판단한 유명학이 알타니스를 돌려받았다.

이후 무전기에 신호를 보내자 한 요원이 아카데미 생도들을 데려왔다.

저번에 붙잡혔던 한동혁과 천강우였다.

“어엇?”

“저 아저씨는?”

둘은 신성력으로 교화되어 더는 악에 받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을 잘 보게. 한때 죄악의 길에 빠져들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되돌아왔네.”

“그게 어쨌다는 거지?”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들었다네. 질투의 죄악이란 존재를 제외하고 말이야.”

순간 유명학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원하는 건 마계의 권능자에 대한 상세 사항이었다.

“크큭. 그거라면 말해줄 수 있겠군.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아니니까.”

“질투의 죄악은 누구지? 어째서 이곳의 혼란을 부추기는 건가?”

“그분께서는 태초의 심연으로부터 비롯한 존재.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신다.”

드락실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악마교의 구원론을 떠들어댔다.

그의 궤변을 듣고 있던 유명학은 낯선 용어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권능자 간의 서열전이라고?”

“그래, 일각에선 차원 관리자라고도 불리는데 쉽게 말해서 초월적 존재이지.”

“초월적 존재라.”

“선택받은 대영웅부터 해서 신과 악마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분명한 건, 까마득하게 오래 전부터 권능자들이 서로 맞부딪쳐 왔다는 사실이다.

다만, 지구의 경우에는 최하위 차원이기도 하고 눈독 들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지구를 관장하는 여신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특별한 능력?”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서열 높은 일부의 권능자들만이 아는 비밀이거든.”

드락실은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하고 웃었다.

그의 충혈된 두 눈이 전요한에게로 향했다.

“아무튼, 잠자코 있기만 했던 그녀도 자신의 체스말을 고르긴 한 모양이군.”

하지만 지구의 여신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배후에 숨어서 모든 걸 지켜보기만 해왔으니까.

설령 개입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몰래 권능을 준다거나 해서 원하는 상황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과연 그녀가 바라는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이유로 변심해서 자신의 체스말을 정하고 그에게 시련을 부여하는 것일까?

질투의 죄악, 스반힐트의 오래된 권속으로서 드락실은 속마음이 궁금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지구에도 초월적인 존재가 군림하고 있었다니.”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에 유명학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다면 인류 중 일부가 이능력을 부여받은 것도 그녀의 가호라고 봐야 하나?

어느 날 갑자기 던전 게이트가 생성되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것은 그녀의 무능함으로 이해해야 하나?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그만이 알고 있던 사실과 묘한 충돌을 일으켰다.

“이만하면 된 것 같네요.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들었으니 다시 가둬두죠.”

“잠깐, 어디로 옮기겠단 말이지? 저번처럼 성찬가가 울려 퍼지던 장소는 싫다.”

요원들에게 양팔을 붙들린 드락실이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어디론가 끌려 나가자 전요한은 흘끗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한동혁과 천강우.

저 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왕 개과천선했으니 새로운 기회를 주는 건 어떻겠나? 마음가짐은 아직 부족하겠지만, 이능력자이니 쓸모는 있을 거네.”

유명학은 해외 분쟁지역으로의 파견직을 제안했다.

위험이 따르는 일인 만큼, 지난 죄를 씻기에는 적당한 임무라는 의견이었다.

“뭐, 아카데미로 돌아오지만 않으면 전 상관없어요. 그럼 저는 이만.”

사건이 마무리되자 전요한은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되도록 의심을 사지 않도록 아카데미의 일정에 맞추려 함이었다.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유명학은 희미하게 웃었다.

‘또 보도록 하세, 요한 군.’

조만간, 전요한이 다시 불려 나올 일이 발생할 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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