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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스탯을 숨김-16화 (16/180)

제16화. 불온한 징조 (3)

“역시 당신이었군요.”

“왜, 나라서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옆집 누나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많으니까?”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던 이수연이 눈을 흘겼다.

그녀는 바쁜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네가 찾던 네크로맨서, 드디어 단서가 잡혔어.”

“정말요?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아직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여기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닌 게 확실해.”

이수연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문서를 보여줬다.

요 며칠간의 사건·사고에 대한 기록과 담당요원의 견해.

목격자의 진술, 사자를 일으킨 흔적 등의 유사성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흐음, 녀석의 목적이 대체 뭘까요.”

“단정하긴 어렵지만, 너라고 생각해.”

나름의 정황 근거가 있는지 이수연이 눈빛을 반짝였다.

“네? 저요?”

“던전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다며? 그리고 넌 적을 많이 만드는 타입이야.”

“하긴, 그렇긴 하죠. 대미궁에 있을 때도 저 하나 잡겠다고 뭉친 세력이 있었으니까요.”

당시엔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많이 겹쳤었다.

지구로 귀환하고 나서는 원한 살 만한 짓을 자제하는 중이다.

고작해야 질투의 죄악, 스반힐트를 적으로 돌린 정도랄까.

“아아, 역시 그것 때문인가.”

순간, 전요한은 납득했다.

생각해보니 자존심 강한 그녀가 제의를 거절당하고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직속 수하인 네크로맨서도 바쁘다거나, 이름이 길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무시했었지.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마계의 존재들인 만큼 충분히 자신을 노릴 만했다.

“과연, 원한을 살 만한 사건이 있었구나?”

“그런데 왜 주위에서 변죽만 울리는 걸까요? 직접 나타나서 시비를 걸지 않고요.”

“단순히 너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목적은 아닌가 보지.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죄악의 사도들을 동원해서 곳곳에 기이한 조각상을 세우고 있어.”

각기 다른 마수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불온한 분위기를 내뿜는 존재였다.

전요한은 그 사진 자료를 하나씩 눈여겨봤다.

“어디선가 본 놈들인데.”

“혹시 대미궁에서?”

“네, 거기엔 별의별 존재가 다 있거든요.”

잘은 몰라도, 마계의 어떤 의식과 관련 있는 건 확실했다.

어쩌면 최근에 수상한 던전 게이트가 잇따라 생겨난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전요한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며 처음 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리국 최고 전력의 전투요원.

국내 서열 1위이기도 한 채강윤이었다.

“네가 전요한인가?”

어쩐 이유에서인지, 채강윤은 조금 화가 나 있었다.

“누구시죠?”

“며칠 전부터 날뛰고 있는 네크로맨서와 어떤 관계지?”

채강윤의 질문이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안 좋은 분위기를 느낀 이수연이 말없이 뒤로 살짝 빠졌다.

“한번 마주쳤을 뿐이에요. 녀석이 뒤쫓아 왔는데, 던전 공략이 우선이라 무시했죠.”

“…지금도 종합 능력치가 50 안팎인 수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지?”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채강윤이 조금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불과 얼마 전에 드락실과 한판 붙고 오는 길이었다.

녀석이 얼마나 상대하기 곤란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꼈는데, 눈앞의 애송이는 단지 귀찮아서 무시했다고 말한다.

그런 행동은 상대가 자신보다 하수일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

역시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질구레한 의문은 건너뛰고 본론을 말해주세요.”

“큭.”

전요한이 태연하게 받아치자 채강윤은 말문이 막혔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서로 간에 눈빛으로 하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성장치 분석이 잘못되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채강윤은 전요한을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자신의 분석 능력은 잘못되지 않았을 터.

종합 능력치가 50에 불과한 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단, 전요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네크로맨서가 내게 말했었다. 전요한과 만나길 원한다고.’

원한이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협력관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혼란해하던 채강윤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네 녀석의 실력을 알고 싶다. 봐주지 않을 생각이니 제대로 응수하는 편이 좋을 거다.”

말을 마치자마자 전력으로 달려드는 채강윤.

아르티나를 소환하여 불의의 일격을 막아낸 전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제대로 방어했는데도 팔이 조금 저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

종합 능력치가 상당한 수준으로 차이 난다는 의미였다.

‘대충 200 정도는 되겠군.’

순간, 전에 이수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국내 서열 1위가 그만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했었지.

며칠 사이에 변동이 있진 않았을 테니 상대가 바로 그자라고 보는 편이 맞았다.

“이게 종합 능력치가 50밖에 안 되는 애송이의 반응속도인가?”

무기를 맞댄 채 서 있던 채강윤이 눈을 번뜩였다.

이후 그는 전요한을 밀쳐내고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다.

스스스슥.

검 끝을 내민 채강윤의 모습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저, 저건 환영검무잖아?”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이수연이 경악했다.

환영검무는 채강윤이 살의를 드러낼 때만 사용하는 결전 스킬.

자칫 잘못하면, 전요한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말려야 하는데.”

이수연이 끼어들기엔 이미 상황은 늦어있었다.

그리고 사상자가 나올지도 모른단 걱정은 불필요했다.

전요한에겐 2차례의 환생으로 인한 보너스 스탯이 어마어마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제법 괜찮은 움직임이군.’

채강윤이 거리를 좁혀오는 걸 보며 전요한은 희미하게 웃었다.

귀환한 후에 상대했던 적들 중에서는 그나마 인정해줄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대미궁을 공략하고 돌아온 고인물을 상대하려면 환영검무만으론 부족했다.

카랑 하는 소리와 함께 일격이 가로막히자 채강윤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뭣….”

마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듯한 방어.

웬만한 관리국 요원보다 능숙했고 마지막 순간엔 여유마저 느껴졌다.

“자꾸 이럴래요? 갑자기 화나려 하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데.”

하는 수 없이 전력을 드러낸 전요한이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 6등급의 마력파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주세요!

별안간 날아온 재난문자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 * *

하루 일정이 끝나서 한적한 교정에 웬 불청객들이 난입한 상태였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그어어억.”

“히에에엑.”

두 눈은 충혈되어 있고, 걸음걸이는 술에 만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정서희가 호출한 장소로 나타난 전요한은 그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좀비가 왜 여기에 있지?”

저들을 해치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근원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

주위를 살피던 전요한은 한쪽 구석에 있는 던전 게이트를 발견했다.

“뭐야, 또 생겨났어?”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대미궁에서 이상한 저주 같은 거 받은 적 있어요?”

정서희가 의심의 눈초리로 전요한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주위에서 요 며칠간 재해가 잇따라 발생하는 탓이었다.

“저주에 가까운 말은 많이 듣긴 했는데, 제가 디버프는 전부 면역이라서요.”

전요한은 그럴 리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절대면역.

맹독, 석화, 마비와 같은 디버프 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부럽긴 하네요. 적어도 좀비에게 물려서 감염될 일은 없으니까요.”

“그러면 대미궁 한번 공략하고 오시든가요.”

“아무튼, 골치 아프게 됐어요. 관리국 최강의 전력까지 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요.”

재난문자가 날아오자 채강윤은 멋대로 사라져 버렸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듯한데,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투덜거리던 정서희는 한 손에 불꽃 송이를 소환했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곧장 집어 던졌다.

콰아앙!

상당한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몬스터가 처음부터 튀어나오는 경우는 드물죠?”

“네, 적어도 반나절 정도의 여유는 주는데 특이하네요.”

막 생성된 터라 던전 게이터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전요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용무기를 소환했다.

“일단 놈들의 발을 묶어두죠. 더 귀찮아지기 전에요.”

좀비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므로 한번 퍼져나가면 걷잡을 수 없었다.

증상을 억제할 수 있는 백신이 존재하는지도 미지수다.

확산 루트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기에 다소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콰드드득.

아르티엔에 마력을 주입하자, 주위 공기가 얼어붙으며 빙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정서희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저번에 얻은 마법검의 능력이군요? 3성급의 성유물이라 그런지 대단하네요.”

3성급의 성유물은 소유자의 자질에 따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전요한은 빙벽이 세워지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키에에엑!”

주위를 배회하던 좀비 한 마리가 훼방을 놓으려 들었다.

정서희가 화염 마법으로 그 움직임을 제지하려던 찰나였다.

연보라색의 섬광이 스쳐 지나가더니 좀비를 일도양단했다.

“실비아?”

“늦어서 죄송해요. 다른 교관들과 학내 회의 중이었거든요.”

모습을 드러낸 실비아가 생긋 웃어 보였다.

이후 그녀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빙벽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회장의 작품인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생도가 또 있었네요.”

실력 있는 빙결 속성의 마법사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실비아의 시선이 아르티엔으로 향했다.

“역시 그 마법검의 위력인가요?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잘도 이만한 힘을 다루시는군요.”

“저랑 제법 잘 맞더라고요. 대미궁에 있을 때도 비슷한 걸 사용했어요.”

전요한이 이만한 위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양의 보너스 스탯 덕분이었다.

“아무튼, 좋은 시도예요. 현재로선 좀비들을 가둬놓을 수단이 달리 없네요.”

실비아는 전요한의 작전을 돕기로 했다.

그녀가 합세하면서 전투양상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날뛰지 말고 잠자코 있으세요, 여러분~ 여긴 소중한 생도들이 지내는 장소랍니다~”

연보라색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좀비들이 무더기로 도륙당한다.

‘과연 실력지상주의 교관답네.’

생도들에게 냉혹한 실전연습을 강요하는 만큼, 본인도 뛰어난 실력을 겸비했다.

평소엔 이런저런 이유로 힘을 조금 빼는데, 전력을 다하면 묘한 압박감마저 느껴진다.

전요한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무래도 비상사태 같은데?”

“이제 조용해지나 싶었더니, 또 난리네.”

교내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던 상급생 삼인방이 호들갑을 떨었다.

정하은, 채린, 송주한.

여기선 나름 상위에 속하는 전력이므로 도움이 될 터였다.

“더 골치 아파지기 전에 도와줘. 웨이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어.”

전요한은 삼인방에게 전투에 가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정하은이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실눈을 뜬다.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벌칙으로 힘든 교내 청소를 전부 도맡아서 했다고!”

그녀는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린 후, 옆에 있던 채린에게 동의를 구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말 좀 해봐, 학생회장! 우리가 복도 창틀부터 공용 화장실 구석까지 정신없이 닦았지?”

“…창피하니까 조용히 해.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떠들어?”

풀이 죽어 있던 채린이 조용히 속삭였다.

한편, 송주한은 썰렁하게 웃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하하. 제법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생도 시절의 추억 하나 정돈 남겨둬야 하지 않겠어? 학업 면에서 흠 잡히기 어려운 우등생은 이런 때가 아니면 벌칙을 받을 기회도 없으니까.”

소위 말하는 중2병 환자.

저런 성격으로 잘도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잡담은 거기까지~ 다들 기 싸움 벌이지 말고 전투에 협조하세요~”

빙벽 뒤에 가려져 있던 실비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를 본 삼인방의 표정이 일시에 창백해졌다.

“자, 잔학교성의 실비아.”

“히, 히익. 싫어.”

“아까부터 듣고 있었던 건가? 조금 위험했군.”

실비아는 상급생들도 꺼려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관이었다.

삼인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분고분해졌다.

“꽤나 개성적인 애들이네요.”

잠자코 지켜보던 정서희가 혀를 내둘렀다.

전요한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다른 면에서 별난 기질이 있어요. 아, 그건 서희 씨도 마찬가진가?”

“무슨 소리예요? 아무리 이상하다해도 알에서 튀어나온 사람만 할까.”

정서희는 삐졌다는 듯 양쪽 볼을 부풀렸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몰려오는 좀비들에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점점 가속도가 붙는데요? 상황이 급박해지고 있어요.”

던전 게이트로부터 방출되는 좀비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중이었다.

서둘러 빙벽을 완성하지 않으면 곤란한 사태가 발생할 터였다.

“학생회장과 함께 최대한 완성시점을 앞당겨 주세요~ 저희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깐요~”

실비아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의 지휘 아래 봉쇄 작전이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후속 전력도 점차 도착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교정이 지저분해지고 있는데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죠.”

“함께 아카데미를 지켜내요!”

좀비 웨이브를 막아내는 건 이제 어렵지 않았다.

던전 게이트를 빙벽으로 둘러싸는 작업만이 중요해졌을 뿐.

전요한은 자신과 같은 임무를 맡게 된 채린을 바라봤다.

“또 만났네?”

“말 걸지 마. 집중해야 하니까.”

채린은 빙벽을 세우는 일에만 신경 썼다.

그녀의 작업 속도는 전요한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육성한 스탯들이 마력과 지력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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