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불온한 징조 (1)
“자네가 전요한인가?”
라비린스 길드장, 임명준은 시선을 위아래로 훑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외모의 청년.
사상 최악의 던전에서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화제의 인물 같진 않아 보였다.
“맞는데요. 못 믿겠으면 신분증이라도 보여 드릴까요?”
전요한은 태평하게 지갑을 뒤적였다.
그러고는 신분증을 꺼내 임명준의 눈앞에 내밀어 보였다.
“보세요. 중딩 때 찍은 증명사진이라 좀 어리긴 하지만 얼굴형은 틀림없죠?”
“의심하는 건 아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수연에게 들었으니까.”
마침 접객실의 문이 열리며 이수연이 들어왔다.
그녀는 정부요원이라 그런지 주위에 배치된 무장병력의 제지를 받지 않았다.
“자, 어서 대화를 시작하자고. 내가 그렇게 한가한 편이 아니거든?”
“관리국 소속이 되더니 꽤나 까칠해졌군. 업무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지?”
두 사람은 이전부터 알던 사이 같았다.
전요한은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 괜찮다면 제가 먼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라. 애초에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나?”
최상위권의 대형 길드라면 모를까, 그 이하는 관리국의 지시에 굽실거리며 따라야 했다.
더욱이 이번엔 라비린스 측에서 도움을 요청한 경우다.
“흠, 그럼 사양하지 않고 묻죠. 며칠 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내가 네크로맨서인 게 분명한가요?”
“네크로맨서?”
“시체 같은 걸 일으켜서 자신의 권속으로 부리는 이능력자요.”
“그래, 분명했다. 순조롭게 던전 공략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녀석이 어디선가 나타났어.”
임명준의 말에 의하면, 상대는 최소 230 이상의 종합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살아 돌아온 것만도 기적이라고 한다.
“종합 능력치가 그 정도면 어지간한 상위 헌터들도 상대하지 못하겠는데? 현재 국내 1위가 200일 텐데.”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에 이수연은 놀란 표정이었다.
일반적으로 종합 능력치는 10단위의 격차도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인 탓이다.
그녀의 경우 160에 불과하므로 감히 사내에게 덤빌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최소 230 이상이라.”
잠자코 듣고 있던 전요한은 재미있단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비교를 위해 자신의 상태정보창을 열어봤다.
[전요한]
기본 성급 : ☆☆☆
보유 특성 : 환생자 (3회차)
종합 능력치 : 50 (+110)
특화 소질 : 성장가속, 마력재생, 절대면역, 미래시
보너스로 주어지는 히든 스탯은 이제 110이 되어 있었다.
성장치가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서 10단위가 소폭 상승한 것이다.
이제 평범한 정부요원 수준은 되었으나 드락실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
환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격차였다.
‘하지만 거리만 좁힐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번에도 무턱대고 달라붙는 녀석을 혼쭐내준 적이 있었다.
요컨대, 네크로맨서는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분명한 약점이 있다.
그걸 잘 공략하면 지금도 충분히 굴복시킬 수 있을 터였다.
‘마침 새로운 검도 손에 넣었고 말이지.’
빙결의 마법검, 아르티나.
3성급의 성유물이라서 절삭력이든, 관통력이든 평균치 이상이다.
전요한이 전의를 불태우며 눈빛을 빛내고 있을 때였다.
“길드장님, 새로운 피해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수행비서로 보이는 오피스 레이디가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잠시 후, 임명준의 미간이 심각하게 찌푸려진다.
“골치 아프군. 우리가 담당하는 구역에 신종 형태의 6등급 재해가 발생하다니.”
이런 식의 예기치 못한 사태는 최근 전국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이었다.
심상치 않은 걸 느낀 이수연이 정보 공유를 요구했다.
“무슨 일이지? 관련 사건일 수도 있으니 구체적으로 말해봐.”
“도심지 한복판에 정체불명의 운석이 떨어졌어. 거기에서 괴수 한 마리가 나왔다는군.”
전요한이 지구로 귀환한 직후에도 그러한 재해가 벌어졌었다.
토벌에 참여하여 괜찮은 전리품을 얻을 기회였으나, 구미가 썩 당기진 않았다.
“큰일이긴 해도, 네크로맨서와의 연관성은 적어 보이네요.”
“맞아. 관리국을 통해 다른 길드의 협력을 받으면 되니, 우리까지 끼어들 일은 아니야.”
말을 마친 이수연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건 그녀가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의 습관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더 시급한 일이다. 네크로맨서인가 뭔가 하는 녀석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도록 하지.”
임명준은 양해를 구한 후 길드원들과 비상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수연이 허공에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여기저기서 골치 아픈 문제만 계속 터지고, 수습되는 건 별로 없네.”
정부요원의 입장에선 확실히 탈모가 올 법한 상황이었다.
전요한은 말없이 그녀의 머리숱이 충분한지 확인해봤다.
“어딜 보는 거야?”
“아니요, 아무것도.”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일단 되돌아가자. 너도 아카데미 일정을 준비해야 하지 않아?”
어젯밤의 사건으로 인해 아카데미는 며칠간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그렇다곤 해도, 신입생으로서 이것저것 수행해야 할 과제가 많긴 했다.
전요한은 고개를 끄덕인 후,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현장답사는 이쯤으로 하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은 발걸음을 돌렸다.
* * *
이능 관리국의 국장실.
유명학은 모처럼 찾아온 정서희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어떤가? 대미궁에서 생환했다는 청년의 자질은?”
“분명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종합 능력치도 빠르게 성장 중이고, 임무 수행 능력이 요원들만큼 탁월해서 마치….”
솔직하게 이야기하던 정서희는 주저하며 잠시 말을 멈췄다.
유명학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위 랭커 같았습니다. 전요한,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요.”
“역시 사실인 건가. 비상식적인 일이긴 하지만, 현 사태를 보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지.”
전요한이 말했던 대미궁의 존재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시련이 다시 나타난다면 과연 누가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유일한 경험자인 전요한에게 모든 걸 맡기기엔 모든 것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감시는 계속해야 할까요, 국장님? 아무래도 그가 죄악의 사도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만.”
“사상 최고치의 마력 파동을 기록한 던전 게이트였네. 그로부터 돌아온 유일한 생존자이니 곁을 지키고 있게나.”
단순히 감시만을 위해서 수행요원을 붙인 것이 아니었다.
손녀의 은인인 건 별개로 하고, 대미궁의 존재에 대해 아는 자는 오직 전요한뿐.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임무도 함께 내렸고, 무엇을 숨기고 있진 않은지 알아보는 중이다.
“그건 그렇고, 그가 매입했다는 정체불명의 마석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나?”
“네, 저로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이수연 선배에게 맡긴 상태입니다.”
“아쉽게 되었군. 줄곧 지켜본 성과가 나오나 생각했는데.”
유명학은 잠시 말없이 눈을 감아 보였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이수연이 내부로 들어왔다.
“전요한을 아카데미로 복귀시키고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정서희를 보고 마침 잘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여기 있었네? 어서 돌아가 봐. 누군가는 그의 곁에 항상 붙어 있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정서희는 두 사람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자리를 비켰다.
그녀가 사라지자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유명학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달리 알아낸 건 없나?”
“네, 찾고 있다는 네크로맨서도 행방이 불분명합니다.”
“그의 요구 사항은 가급적 전부 들어주게. 서희 양은 아카데미 생활에 집중해야 해서 외부적인 일은 자네가 맡아줘야 해.”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장님. 그런데 며칠 전에 발견한 죄악의 사도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
심연의 존재에 의해 타락하여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언론에도 노출되지 않았을 정도로 극비에 해당하는 내용.
관리국의 입장에서는 최우선시되고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 토벌 임무는 채강윤에게 맡겼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채강윤? 그를 현장에 투입시킨 건가요?”
채강윤은 모두가 인정하는 관리국 최고 전력이었다.
국내 서열 1위인 동시에 기본 성급 3성인 최상위 랭커.
정부요원으로서 경력이 상당한 이수연도 그에겐 함부로 접촉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관리국은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이능력 기관의 존재 의미가 없으니까.”
무언가를 생각하는 유명학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오직 그만이 아는 기밀 정보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예고하고 있었다.
* * *
“후암, 졸리네.”
지루한 이론 수업이 끝나자 전요한은 기지개를 켰다.
내용만 따지고 보면 유익하긴 하지만, 대부분 살아남기 위해 구르며 몸으로 체득했던 것들.
그리고 대미궁에서 요구되었던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기초적인 지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례적으로 단 며칠 만에 상급생으로 진급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머, 쟤는 마력응용이 별로 어렵지 않나 봐.”
“대미궁에서 살아 돌아왔다는데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겠지.”
“그래도 능력치가 초기화되었단 건 믿기 힘들어. 실은 전부 거짓말 아닐까?”
상급생들에게 있어 전요한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얼마 전에 생성되었던 던전을 독보적인 실력으로 공략한 초신성.
담당 교관, 실비아가 주관하는 진급 시험도 가볍게 통과하여 2년에 달하는 커리큘럼을 건너뛰었다.
경이롭다는 반응을 보이며 가까이 가길 꺼리는 이들도 생겼고,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친해지려는 이들도 모여들었다.
“점심시간인데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
“오늘은 이번 주의 특식 메뉴가 나온다고 들었어.”
“취미가 뭐야? 나는 검술 대련하는 걸 좋아하는데.”
귀찮은 걸 싫어하는 전요한에겐 지나친 관심이었다.
더욱이 25년 동안 대미궁에서 처절하게 공략에만 몰두했던 입장.
이런 식의 사교적인 분위기가 쉽게 적응될 리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먼저 자리를 비킬게. 잠시 혼자 있고 싶어서.”
왁자지껄한 교실을 빠져나온 전요한은 옥상으로 향했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후우.”
겉모습은 20대 초반이지만 정신적으론 그렇지 않은 탓일까.
어쩌면 지구로 귀환한 후에도 계속하여 문제가 터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전요한이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려 할 때였다.
“이런 곳을 좋아할 줄은 몰랐네. 의외야.”
익숙한 여학생이 옥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채린.
지난번에 함께 던전을 공략한 적도 있는 학생회장이었다.
“날 찾으러 온 거야?”
“아니, 우연히 만난 거니까 오해하지 마.”
채린에게도 뭔가 답답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전요한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넌 주특기가 뭐였지?”
“빙결 마법.”
“기본 성급은?”
“3성. 사실 나도 너처럼 퍼스트 클래스야.”
채린은 교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파였다.
종합 능력치는 130.
지금 당장 정부요원으로 활동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3성급의 이능력자는 실제로 처음 만나 보네.”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말인데, 한번 여기서 붙어 보지 않을래? 마침 기분도 썩 좋지 않은데 말이야.”
말을 마친 채린이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곧, 한기와 함께 얼음 송이가 피어오르자 전요한은 씨익 웃어보였다.
“나중에 후회할걸? 난 여자라고 봐주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