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악마의 둥지 (1)
“···호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한 앨런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면에 떨어진 한쪽 팔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주인을 잃은 심장만이 남겨져 피를 토해내는 상황.
짧은 정적을 깨고 전요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놈이 귀족에 해당하는 악마인 건 알겠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내 앞에선 일개 조무래기일 뿐이야.”
대미궁을 공략하고 돌아온 환생자에게 고작 남작 정도의 악마는 하찮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당신은 보기 드문 귀인이군요.”
앨런이 자세를 고치며 정중하게 사죄했다.
그와 동시에 오른팔의 절단면이 스멀거리며 감쪽같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회, 회복됐어!”
“예상대로 괴물이었군.”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수군댔다.
분명, 그들에게 있어 앨런의 능력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다.
지구의 어떤 헌터도 이런 식으로 잘린 팔다리를 복구하진 못했으니까.
“지금이라도 도망치자!”
“놈이 우릴 다 죽일 거라고!”
서너 명의 무리가 혼란한 틈을 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전요한과 대면 중이라 직접 제지하기 어려웠지만, 앨런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말씀드리죠. 여긴 과거에 이세계가 멸망하면서 남긴 잔재. 비유하자면 깨진 유리 조각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그 안에 갇힌 셈이고요.”
멀리서 뭔가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고통에 찬 비명이 연달아 이어지더니 이내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탈출 시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즉, 제가 주관하는 미션을 완료할 때까지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앨런은 전요한을 흘끗 쳐다봤다.
계속해서 자신을 방해해봤자 득이 될 게 없다는 의미.
기존의 성장치가 모두 소실된 전요한은 현 상태로는 앨런을 사멸시키지 못했다.
“건방진 녀석.”
“이들과 함께 한번 발버둥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당신은 섣불리 평가하기 어려운 존재이니 주의 깊게 지켜보겠습니다.”
뒷걸음치는 앨런의 눈빛에 재차 호기심이 일었다.
마안으로 확인해보니 성장치가 낮은 편인데, 어렵지 않게 자기 팔을 잘라내서 매력을 느낀 것이다.
“나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지마, 다쳐.”
“후후, 그렇겠지요. 아무튼 첫 번째 미션을 부여합니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으니 일단 숲에서 살아남아 보세요. 기한은 하루 정도로 하죠.”
어떤 위협 요소가 존재한단 식의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앨런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계속 내버려 뒀으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어.”
여기저기서 무언의 감사가 전요한에게 집중되었다.
개중에는 가까이 다가와 직접 말을 건네는 부류도 있었다.
“어이,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겠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말이야.”
건장한 체구의 사내.
헌터는 아닌 것 같은데, 신체 단련을 했는지 제법 근육이 다져져 있었다.
“아무래도 여긴 악마의 둥지 같습니다.”
“악마의 둥지?”
“네, 살아남으려면 정신없이 발버둥 쳐야겠죠.”
단순히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식의 진행이 아니었다.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악마가 시종일관 간섭하며 훼방을 놓는다.
그 간계를 막아내고 궁극적인 탈출구를 찾는 것이 핵심이다.
전요한이 간단히 설명을 해주자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반인도 다수 섞여 있는 이상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겠네요.”
수행요원으로서 줄곧 곁을 지켜왔던 정서희였다.
그녀의 말에 발끈한 생존자들이 여기저기서 화를 냈다.
“뭐라고? 희생?”
“지금 뭐라고 했어?”
“던전 내부로 끌려 들어온 것도 억울한데 여기서 죽으라고요?”
“우리를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속셈인가. 너네가 그러고도 헌터야?”
안 그래도 어두웠던 분위기가 더 악화되었다.
하지만 정서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일단 계획부터 세워야겠어요. 일반적인 형태의 던전과는 다르니 냉정하게 판단해야 해요.”
모두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건 이상론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마저 발목을 잡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선행을 베풀 여유가 없단 건 전요한도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도록 모두를 최대한 이끌어줄 필요성이 있어.’
악마의 둥지에선 생존자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서, 남의 목숨도 어느 정도는 챙겨줘야 한단 이야기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으니 다른 생존자를 굳이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는 건 미숙한 조언이었다.
‘미래시가 보여주는 내용대로네.’
정서희에게서 떠올랐던 정보창은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전요한은 다시 한번 그것을 천천히 훑어봤다.
[정서희]
견습 마법사.
일천한 지식으로 당신에게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 그녀의 조언은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처음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확실히, 일천한 지식과 미숙한 조언은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견습 마법사의 존재가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니었다.
서투른 마법이라도 위기 상황에서는 적잖이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정서희 씨.”
“네?”
“이 분야에서는 제가 더 전문가입니다. 그러니 서포터의 역할에 충실해 주세요.”
대미궁에서 25년간 구르며 고생한 덕분에 어지간한 시련은 낼 자신이 있었다.
전요한이 분위기를 주도하자 주위의 생존자들도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역시 저 사람이 여유로워 보여서 신뢰가 가는군.”
“한번 믿어보죠. 적어도 옆에 있는 여자보단 나을 것 같은데.”
“버리고 간단 말을 안 하는 게 어디에요. 뭐, 허세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정서희가 속삭이듯이 말을 건넸다.
“진심이세요? 이러면 정말 나중엔 감당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수행요원인 정서희로선 나름 전요한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불확실한 상황이다 보니 그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게 당연하다.
“걱정마세요. 저들을 전부 책임지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럼요?”
“지켜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전요한은 어깨를 으쓱한 후 모두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아까 도망쳤던 자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고 싶진 않겠죠?”
어디선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짙은 안개 너머로 머리가 세 개 달린 사냥개가 나타나서 붉은 눈을 번뜩였다.
“뭐, 뭐야 무서워.”
“정체가 뭔지 잘은 모르겠고, 일단 피해야겠어.”
“여긴 대체 어떤 곳이야? 어디든 위험하단 생각만 들어.”
공포감에 휩싸인 생존자들은 다리를 덜덜 떨었다.
단지 실루엣만 보일 뿐이지만 덩치가 얼마나 큰지 어림짐작이 간다.
“오솔길이 이어지는 방향은 이쪽입니다. 잘 따라오세요.”
전요한은 침착하게 먼저 회갈색 숲으로 진입했다.
곁에 있던 정서희가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고, 나머지 생존자들도 걸음을 뗐다.
* * *
콰직―!
이동하던 도중 누군가가 썩은 나무줄기를 밟았다.
덕분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생존자들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어이쿠!”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다들 아까 봤던 괴생물체가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녀석이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까?
절망적인 상황을 비관한 여고생 한 명이 주저앉아 코를 훌쩍였다.
“흐윽···.”
위로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는지 다른 이들도 참담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기만 했다.
그 모습에 전요한은 잠시나마 연민을 느꼈지만 다시 냉정해지기로 했다.
무리를 이끄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모두 챙겨줄 여유는 없다.
여고생을 내버려 둔 채 전요한이 걸음을 옮기자 정서희가 따라붙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유형의 던전이에요. 혹시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도 있나요?”
정서희는 악마의 둥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법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휘말린 건 자신의 책임도 있었기에 전요한은 조금 귓띔을 해주기로 했다.
“보통 이런 곳엔 근간을 유지해주는 동력원이 존재합니다. 그걸 찾아내서 파괴해야죠.”
“장소가 아니라 어떤 유물일 수도 있나요? 목걸이 같은?”
“네, 혹은 주인 역할을 하는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앨런이 동력원일 가능성은 아까 없단 걸 확인했다.
팔을 베어냈을 때 근간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까 녀석과의 전투를 중단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야기 도중에 미안한데,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점점 길을 잃는 느낌인데.”
생존자들 중 한 명이 다가와서 질문을 던졌다.
자신을 박수호라고 소개한 사내는 조금 전에도 대화를 해서 일면식이 있었다.
“글쎄요. 제가 이곳의 지리를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요.”
“그러면 무계획으로 일관하고 있단 말이로군. 다들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데 너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닌가?”
박수호는 아무런 진전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답답한지 시비를 걸어왔다.
그 오만불손한 태도에 정서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만이면 좋은 의견을 제시해 보세요. 우리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데 당신이라고 뭐 다를 줄 아세요?”
애초에 헌터는 전요한과 정서희 둘 뿐이었다.
아무런 이능력도 없는 일반인이 훈수를 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정서희가 사실에 근거하여 쏘아붙이자 박수호는 얼굴을 붉혔다.
“나, 나도 일인분 이상은 할 자신이 있다! 그동안 열심히 육체를 단련해 왔으니까!”
자칭 종합무술 경력 5년이었다.
심호흡을 하던 박수호가 전신의 근육을 자랑했다.
마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라도 하겠단 듯이.
‘뭐, 일반인치고 나쁜 몸매는 아니네.’
전요한은 박수호가 쌓아온 노력의 결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종합 능력치는 15 정도일 터.
이능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된 헌터도 그보다 10단위 정도는 우위에 있었다.
근력, 체력, 민첩, 감각, 마력.
이 다섯 가지를 기본 스탯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 하나 특출나 보이진 않는다.
“알겠으니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지금 이런 대화할 여유 따윈 없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발차기까지 해보이는 박수호의 모습을 보며 전요한이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저건 뭐죠?”
함께 걷던 정서희가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음침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피의 제단’에 도착했습니다.]
[주위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이 한층 더 포악해지고, 빠른 성장을 거듭합니다.]
돌연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밤하늘엔 붉은 달이 떠올랐고 숲속 어디선가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잘은 몰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 같군요.”
대미궁의 초입부에서 여러 번 상대했던 녀석들이 안개 너머로 다가오고 있었다.
“캬아악!”
“키에에엑!”
어두운 녹색 피부.
난장이처럼 왜소한 체격.
작고 조악한 무기.
무리를 지어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고블린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