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스탯을 숨김-1화 (1/180)

제1화. 특별한 자질 (1)

음침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초저녁이었다.

시가지의 한복판에서 방패를 든 군인들이 밀려드는 인파를 막아내고 있었다.

“물러나세요!”

“여긴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바리게이트가 설치된 구역은 이형의 무언가를 외부로부터 격리하고 있었다.

던전 게이트.

복잡한 미궁과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차원 통로였다.

“저기서 3년 전에 진귀한 마법서가 튀어나왔다지?”

“맞아, 그 후로는 진입 불가 상태가 되어서 최근까지 방치되었다고 들었어.”

“봉인이 곧 풀릴 거라는데 이번엔 과연 어떤 게 나올까?”

엄중한 통제에도 군중들의 열광은 식지 않았다.

일반인이 높은 등급의 성유물을 구경할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치잇. 아무리 경고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군.”

주위를 에워싼 채 떠들어대는 이들을 보며 차은식은 낮게 투덜거렸다.

던전 게이트가 가끔 값어치 있는 물건을 떨구긴 하지만, 위험한 몬스터들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잘못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버려 둬. 우리의 임무는 저번처럼 나타날지도 모르는 유실물을 회수하는 거니까.”

옆에 있던 이수연이 방관하듯 팔짱을 꼈다.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게이트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런 유형이 있다는 게 신기해. 대부분은 길어야 한두 달 정도만 유지되는데 말이야.”

공략되지도 않은 채 수년간 유적처럼 남아 있는 건 기록상으로 전무후무했다.

그렇기에 이수연과 차은식 같은 정부요원이 파견되었고 방송국의 기자들도 여럿 와 있었다.

“지금 보고 계시는 던전 게이트에선 사상 최고치의 마력 파동이 감지된 바 있다고 합니다.”

“과연 5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어쩌면 인류가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온 걸지도 모릅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의하면, 과거 한 사내가 내부로 빨려들었다고 하는데 정말 사실일까요?”

기자들은 상상력까지 동원하여 이슈를 만들어내기 바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특종을 무덤덤히 넘기기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려 있는 탓이었다.

현장을 취재하는 카메라가 이곳저곳을 비추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게이트의 개방 시간을 알려주는 모래시계가 가득 찰 때까지.

“어어, 거의 다 됐다!”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온 건가!”

“이번에도 대박 아이템이 나오면 그 주인은 누가 될지!”

잠시 후 허공에 떠 있는 모래시계가 기울어지자, 분위기는 정점에 달했다.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게이트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왜곡된 차원의 너머에서 꾸물거리는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군인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눴다.

“…….”

“…….”

시끌벅적했던 현장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이윽고 미지의 이물질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고 군중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저게 뭐지?”

“생김새만 놓고 보면 커다란 알 같은데.”

“부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능이 깃든 성유물은 아니었다.

그런 건 보통 무기나 장신구의 형태를 띤다.

몬스터의 유충이 튀어나올 수 있었으므로 차은식과 이수연은 각자의 고유 장비를 소환했다.

“재해 등급의 위협 요소일지도 모른다. 상부에 보고해야 해.”

“재미없게 됐네. 전문 인력이 우리하고 유물 감식반밖에 없는데.”

몬스터와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요원은 둘뿐이었다.

군인들의 재래식 무기로는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이지 못한다.

눈빛을 교환하던 차은식이 장검을 든 채 먼저 가까이 다가갔다.

그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커다란 알이 몇 차례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빌어먹을. 가만히 좀 있어라.”

“입 다물어. 네 말 듣고 깨어날 수도 있으니까.”

앞장서고 있는 차은식도, 배후에서 마법을 준비 중인 이수연도 정체불명의 존재가 부화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던전에서 봐 왔던 모든 알주머니는 예외 없이 골칫거리들을 쏟아냈던 탓이다.

두 사람이 유물 감식반의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푸슈슉–

점액이 분출되는 소리와 함께 표면을 덮고 있던 피막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기다란 무언가가 알주머니를 뚫고 나오자 그 앞에 서 있던 차은식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이, 이게 무슨….”

그것은 마치 정상적인 인간의 한쪽 팔처럼 보였다.

손가락도 다섯 개고 덥수룩한 털도 없는 피부다.

설마 하는 생각이 이수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한쪽 팔에 이어 머리와 몸뚱어리까지 나오자, 군중들 사이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알에서 사람이 나왔어!”

“세상에나, 이게 말이 돼?”

“고전 설화에 나오는 김수로인가? 아니면 박혁거세?”

“그럴 리가.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믿기 힘들어.”

군인과 특수요원도 이 같은 사태에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혼란이 가중되는 동안 문제의 인물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 마침내 깨어났다!”

그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딱히 문제 삼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흔했다.

벌거벗은 상태라서 본의 아니게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행실을 보이고 있단 점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안 움직였더니 몸이 뻐근하네. 그런데 다들 왜 여기 모여 있는 거예요?”

사내가 이상한 기류를 느낀 건 전신 스트레칭을 시작한 지 일 분쯤 지나서였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를 보며 차은식과 이수연은 골 때린단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어서 중요 부위부터 가려줘요. 보는 눈도 많은데 자꾸 덜렁거려서 민망해 죽겠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된 이상 본부로 연행하는 건 불가피했다.

속옷조차 입지 않은 무방비 상태라 내버려 두기도 곤란했고 말이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자 사내는 억울하단 반응을 보였다.

“저기요, 잘은 몰라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이야기 좀 하는 게 어때요?”

전대미문의 던전으로부터 돌아온 생존자, 전요한.

그의 첫 등장은 전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 * *

전요한이 던전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유일한 행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평범한 유형의 게이트가 아니었다.

던전은 마치 대미궁처럼 수많은 층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부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심연의 존재들이 즐비했고, 다른 차원으로부터 넘어온 강자도 많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기적처럼 얻게 된 특수능력 때문이다.

하지만 전요한은 정부기관의 조사를 받는 동안 그에 대한 언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네, 몬스터들에게 쫓기다가 어떤 밀실을 발견했는데 거기서 엄청나게 좋은 성검을 얻었어요.”

적당히 둘러대며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편이 덜 귀찮아질 거라 판단해서였다.

얼마 전부터 똑같은 진술이 반복되자 차은식은 이마를 짚었다.

“이걸 상부에서 그대로 믿어줄지 의문이네.”

오랫동안 일선에서 활동한 자신이 듣기에도 터무니없었다.

대미궁이라니.

차라리 평범한 던전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신빙성 있어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 좀 더 자세히 캐묻는 게 어때?”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이수연이 서류를 뒤적였다.

그러고는 각종 기호와 그래프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분석 자료를 전요한에게 내밀었다.

“말해봐. 그런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어째서 견습 헌터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지.”

이능력이 발현된 헌터들은 정부기관에 의해 전력을 측정받을 수 있었다.

“흐음?”

호기심이 동한 전요한은 보고서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한번 훑어봤다.

[전요한]

잠재력 등급 : ☆☆☆

특화된 원소 : 확인 불가

종합 능력치 : 25

친화적 소질 : 근접 전투

굳이 세부적인 데이터를 읽어보지 않아도 상단에 요약 정리된 부분이 있었다.

이수연이 말한 대로, 서류상의 종합 능력치는 막 이능력을 각성한 헌터의 수준이었다.

“사실,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 의식을 잃었어요. 눈을 떠보니 현실로 되돌아온 상태였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전요한이 잡아떼자 이수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어. 딱히 심문하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 우리는 유일한 피해자인 네 협조를 구하고 있을 뿐이야.”

“보고서를 다 작성하셨으면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슬슬 배도 고픈데.”

꼬르륵하는 소리가 전요한의 배 속에서 들려왔다.

타이핑을 하던 차은식은 이수연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하지. 중요한 내용이야.”

“그게 뭐죠?”

“잠재력 등급이 3성이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보유했었지? 3성급의 헌터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비율상으로 0.1%도 채 되지 않아서 이른바 ‘퍼스트 클래스’라고 불리는 기대주였다.

모두가 특수능력을 얻지는 않지만, 성장 속도와 자질 면에서 평범한 헌터들을 크게 웃도는 편.

전대미문의 대미궁을 공략하고 돌아왔으니 분명 남다른 점이 있을 터였다.

“아, 보유 능력이요? 별로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는데….”

전요한은 말을 흐리며 뭐라고 답할지 잠시 고민했다.

핵심적인 특수능력에 대해선 밝히기 곤란하지만, 다른 건 오히려 지금 밝혀두는 편이 협상에 유리해 보인다.

“실은 제겐 어떤 형태의 디버프도 통하지 않았어요. 맹독, 석화, 경직, 둔화 같은 것들 전부요.”

“그래? 체질 분석에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니 따로 기록은 해둘게.”

능력 확인을 위한 검증 절차는 추후에 실시하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수연이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이제 뭘 할 거야? 혹시 우리가 제안했던 내용에 관심 있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고, 장차 헌터 일로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아카데미는 미성년의 적합자를 수용하여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양성 기관이었다.

선별 기준이 엄격한 대신, 숙식을 비롯한 일체의 비용이 전액 지원된다.

게다가 향후 진로까지 보장받는 등의 혜택이 있어서 전요한으로선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저, 아직 미성년인 거예요? 나이 문제가 좀 마음에 걸려서.”

“뭐가 문제지? 지금의 넌 많이 쳐줘도 17살밖에 안될 것 같은걸?”

실제로 겉모습만 보면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던전 게이트에 휘말렸을 때가 중학교 1학년.

그로부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에 전요한은 놀랐다.

“어? 분명 25년 동안 갇혀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죠?”

“던전에 진입하면 흔히 겪는 현상이야. 상대적인 시간 흐름도 다르고 노화도 진행되지 않지.”

“그렇군요. 어쩐지 나이를 거의 안 먹는다 싶었어요.”

“아무튼, 너처럼 던전에 오래 들어가 있었던 경우는 처음이야. 현실에서의 생활에 곧바로 적응하긴 어렵겠지.”

전요한의 재사회화를 돕기 위해 수행요원이 붙기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특혜는 그가 ‘퍼스트 클래스’ 급의 인재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공된 것이다.

요주의 인물을 당분간 곁에서 주시한다는 목적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조사 전부 끝났어. 들어와.”

이수연이 무전으로 누군가를 호출했다.

머지않아 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나타나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서희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 * *

정서희는 요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별로 되지 않는 신참내기였다.

이수연보다 십여 년은 더 젊었고, 전요한보단 실질적인 나이가 서너 살 많았다.

“서희 씨는 어떤 능력의 소유자이신가요?”

소파에 기댄 채 티브이를 시청하던 전요한이 물었다.

“저는 화염 마법을 사용합니다. 아직 부족한 면이 많지만요.”

신체 강화 계열같이 흔한 소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잠재력이 2성이라 그런지 성장상의 한계를 자주 느낀다고 한다.

“잠재력 등급은 노력만으론 돌파하기 어려운 모양이네요.”

“네, 그래서 다들 퍼스트 클래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3성으로 시작하니까요.”

설명을 계속하며 정서희는 선망의 눈빛을 보내왔다.

최근성장이 정체된 탓에, 그녀는 승진을 위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흐음….”

잠시 정서희를 응시하던 전요한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람해 보았다.

[전요한]

기본 성급 : ☆☆☆

보유 특성 : 환생자 (3회차)

종합 능력치 : 25 (+100)

특화 소질 : 성장가속, 마력재생, 절대면역, 미래시

‘숨겨진 능력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양이던데.’

만약 정부기관의 분석력이 정확했다면 귀찮은 질문을 여럿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상태창의 내용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긴, 그렇게 쉽게 간파된다면 히든 특성이 아니겠지.’

이능력자로 처음 개화하면서 얻은 특성은 환생이었다.

일정한 수준까지 도달하면 기존의 성장치를 희생하여 부가 옵션을 획득하는 권능.

앞서 2차례의 환생을 통해 보너스 스탯과 몇 가지의 혜택을 얻은 상태였다.

절대면역과 미래시.

전자는 어떤 디버프에도 당하지 않게 해주고, 후자는 이번에 새롭게 얻어서 아직 잘은 모른다.

아마도 최선의 선택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아닐까?

전요한이 머릿속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아무튼, 점심도 드셨으니 외출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서희가 수첩을 꺼내 들며 꼼꼼하게 오후 일정을 물었다.

“외출이요?”

“네, 던전에 오래 갇혀 있었으니 현실에 적응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하긴 했다.

대미궁에 갇혀 있었던 동안 지구는 과연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차량에 탑승했을 때 창밖을 조금 내다본 정도로는 이해도가 부족했다.

“그게 좋겠군요. 생각해보니 여기저기 들러야 할 곳이 많아요.”

한국에서 지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오랫동안 실종 상태였으므로 신분증부터 해서 계좌 개설까지 전부 다시 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전요한은 묵묵히 정서희의 뒤를 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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