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19/25)

진통은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좀처럼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잠든 이튿날 새벽 은은하게 퍼지는 통증에 용아는 잠이 깼다. 특별한 통증은 아니었다.

그저 입맛이 전혀 없어 모든 걸 물리자, 강제로 의원을 마주해야 했다.

고태의가 들었을 때, 평소보다 조금 더 아픈가? 생각했다. 진맥을 한 고태의가 곧바로 상궁을 불러 산실로 태자비를 모시라 명하고, 하후가에서 보내온 산파와 여의원을 불러들였다.

산실로 갈 준비를 하는 용아를 하후가에서 온 여의원이 진맥했다. 그녀는 곧 아기씨께서 나오시겠다 하였다. 점점 아픔이 커져 가는 것 같았지만, 이 정도로 아이가 나올 것 같지 않아 용아는 얼떨떨했다.

하후가의 여의원은 후족이 보내온 약제를 준비하라 그녀의 제자들에게 명했다. 약제는 전부 기미를 끝낸 상황이었다. 고태의가 용아의 곁에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비전하. 후족에서 보내온 약제는 기미가 끝났습니다만, 약제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태아에 해가 될 위험이 따릅니다. 하오니 약의 힘을 빌리기보다 모성의 힘을 발휘하시어, 약제의 힘을 제한 순수한 출산을 하심이 어떠시옵니까.”

고태의의 말을 들은 하후가 여의원 표정이 기묘하게 구겨졌다. 용아가 손을 내어 고태의의 손을 잡았다. 고태의가 용아의 손을 성심을 다해 다독여 주었다.

용아는 다른 쪽 손을 여의원을 향해 내었다. 용아의 백화 아버지를 돌본 의원의 제자였던 여자는 의원이 되어 제자를 가르치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용아가 손을 내미는 순간 묘하게 우쭐한 얼굴을 했던 고태의는 다른 손으로 여의원을 맞잡는 걸 보고 조금 시무룩해졌다.

“고태의.”

“예, 비전하.”

“닥쳐.”

“…….”

“약 전부 가져와.”

용아가 폭군처럼 굴었다.

“예, 비전하.”

고태의가 재깍 명을 따랐다. 산통은 천천히 불어나다가 어느 순간 폭력적으로 증폭했다. 그것은 마치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점증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닌, 하나에서 단박에 백으로 뛰어올랐다.

“……!”

통증이 순간순간 증폭됐다. 말도 안 되는 강도로 부풀어 올랐다. 온몸이 쪼개지는 아픔 속에서 용아는 산실 침상에 올랐다. 갑자기 숨통이 조여 들었다. 짙은 피 냄새가 올랐다. 모든 것이 착각이란 것을 인지했지만 두려움과 가빠지는 호흡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산실은 용아에게 공포의 장소였다.

“비전하!”

오래전에 헤어진 이의 해사한 얼굴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 헤어진 얼굴 역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얼굴 또한. 용아의 얼굴을 타고 이유 모를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비전하!”

“비전하!”

고태의와 여의원이 동시에 용아를 불렀다. 소리 한 번 제대로 지르지 않고, 눈물을 쏟으며 아이를 낳는 이를 대신 해 고태의와 여의원이 비명을 연신 내질렀다.

이어서 아이 울음이 터졌다.

산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용아가 눈물을 그치고 몸을 뉘였다. 얼굴을 흥건히 적신 눈물에 시야가 잔뜩 흐려져 있었다. 산통이 온몸을 뒤덮은 순간에 또렷하게 들려왔던 소리들이 통증이 가시자 오히려 더 아득하게 멀어졌다.

“비전하, 공주님이십니다.”

“비전하, 경하 드립니다. 황가에 4대 만에 공주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어 용아의 옆으로 데려온 여의원과 고태의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축하해 주었다. 용아의 옆에 누워 있는 믿을 수 없이 조그만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공주……?”

용아의 속삭임에 잠든 아이가 작은 소리를 흘렸다. 윤제와 황족들이 여름부터 내내 힘겨움을 호소했던 대단한 태동이 무엇인가 싶었다. 용아는 제 손바닥보다 더 작은 듯한 조그만 아이를 향해 여름부터 있었던 그것은 무어냐 물어보려다 움칫 멈췄다.

딸이건 아들이건, 아이는 용아의 아이다.

그리 말하려 했다. 헌데 잠들어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어리고 조그만 차이를 제외하면, 매일 밤 보는 얼굴과 똑같은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윤공자 형님을 빼다 박았잖아.”

잠이든 조그만 얼굴은 쌔근쌔근한 숨소리만 퍼트렸다.

“우리 애기, 예쁘다.”

용아는 웃음기 어린 말을 소곤거리고 잠든 아이 옆에서 함께 잠을 청했다.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용아를 감싸 안았다.

황실과 황가는 4대 만에 태어난 공주로 떠들썩하였다. 황제는 공주가 태어난 날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진민 공주라는 봉호를 내렸다. 황친과 문무백관들은 봉호가 너무 이르다 하면서도 황가의 기쁜 일을 경하 드렸다.

공주에 대한 황제의 사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황제는 황가 종실의 돌림자를 넣어 공주의 이름을 지어 주겠다 천명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황가 종실의 돌림자는 방계까지 아우르되 남아만 따랐다. 여아의 경우 따로 정해진 돌림자를 쓰거나, 황제나 부모의 뜻에 따라 짓는 게 일반적이었다.

문무백관은 황제의 크나큰 기쁨을 알기에 적당히 말리는 선에서 물러났다. 황친들 또한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황가 종친회의 원로들은 새벽부터 입궐해 황제의 정무처 앞에서 소리를 높였다.

황제는 반발하는 원로들을 안으로 들여 일일이 말을 나누어 그들의 주장을 하나씩 격파했으나, 이야기는 답보 상태였다.

특히 황제가 정해 둔 이름이 공주의 부친인 태자와 같은 대의 종손들이 쓰는 돌림자와 독음이 같은 글자가 들어가 있어 원로회의 큰 반발을 샀다.

황제는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종친회 원로들 또한 한 발도 물러섬이 없었다.

“윤조야. 할아버지예요. 할아버지, 해 보세요.”

황제는 요즘 수시로 금당대에 들었다. 종친회 원로들의 반대로 매일 정천궁이 들썩이도록 다툼이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황제는 이미 당신이 정하고, 태자와 태자비의 동의를 구한 이름으로 공주를 부르고 있었다.

황제와 황친의 설전과 무관하게 윤조는 이미 제 이름을 알아듣는 것처럼 이름을 부를 때면 까르르 웃거나, 시선을 올려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했다.

“…….”

“…….”

윤제는 공주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황제를 무심히 지켜보았다. 용아는 논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름을 저리 불러도 되는가 황제께 여러 번 진언 드리려 했지만, 번번이 윤제의 방해를 받아 실패했다.

“어떠냐.”

황제가 활짝 웃는 공주를 마주 보며 웃고는 둘을 돌아봤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윤제가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공주가 제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 않느냐? 이제 이름을 알아듣는 것 같지, 그렇지?”

황제의 하문에 윤제도 용아도 답하지 않았다.

“…….”

“…….”

딱히 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었다. 황제는 두 사람이 대답하는 것 따위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공주 앞에서 손을 흔들며 얼러 댔다.

“윤조야. 할아버지가 우리 윤조 이름자 꼭 지켜 줄게요.”

황제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폐하.”

벌써 몇 번째 유모상궁이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황제를 찾았다. 황제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모르쇠 하던 것을 거두고 상궁을 돌아봤다.

“이만 공주를 데려가거라.”

“물러가옵니다.”

황제의 허락에 유모상궁들은 혹여 황명이 바뀔까 재빨리 예를 올리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황제가 쓸쓸함 가득한 시선으로 닫힌 문을 바라봤다.

아침에 보시고, 점심에 보시고, 저녁 전에 또 보러 와 한참 놀아 주셨는데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공주와 공주를 돌보는 유모상궁이 머무는 방에는 태자비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살펴보고 올까요.”

처음 금당대에 온 황제는 방금 옆방으로 건너간 공주가 잘 있는지 보고 와 달라 청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인데 그리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용아의 물음에 황제가 쑥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아니다. 방금 건너간 것을. 짐은 이만 가 보마. 내 또 오마. 쉬거라. 이 아비 때문에 우리 용아가 쉬지도 못하는구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느냐?”

“소자는 무탈합니다.”

“혹 어디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데가 있으면 어의를 불러 살피거라. 윤아는…….”

황제의 걱정 어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윤제가 답했다.

“소자가 항상 태자비를 부족함 없이 살피겠습니다.”

“…….”

“조석으로 태의에게 태자비를 살피게 하였고, 소자가 직접 태의에게 보고를 듣고 있사옵니다. 염려 놓으소서.”

황제가 입 뗄 틈을 주지 않고 윤제가 이어 말했다. 황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태자를 흘겨봤다.

“요즘, 윤아가…….”

윤제가 아첨꾼처럼 속삭였다.

“소자는 윤조 이름이 무척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황제가 곧장 넘어갔다.

“예. 소자는 예서 잠시 머물다가 윤조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돌아가겠습니다. 곧 뒤따르겠습니다.”

“천천히 오너라.”

겨우 아부 몇 마디에 황제께서 넉넉히 웃는 걸 보며 용아는 알 듯 말 듯한 기분이 되었다. 걱정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다.

입가로 새어 나가려는 웃음을 억누르며 떠나는 황제를 배웅했다. 황제는 아직 겨울도 아닌데, 찬바람을 맞는다며 용아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살펴가소서.”

닫힌 문 너머에서 윤제가 황제께 예를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윤제는 따라 오려는 이들을 올 것 없다 물리며 문을 완전히 닫았다.

용아는 폐하께서 가셨느냐 물으려던 참이었다.

“……!”

안으로 돌아온 윤제가 용아를 덮치듯 와락 안았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용아는 얼결에 밀어낼 뻔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이와 유모상궁이 있는데 부둥켜안고 있는 것이 민망했다.

“나, 예뻐?”

귓가에서 울린 속삭임이 아니었으면 곧바로 밀쳐 냈을 터였다. 해괴한 말이 조금 우습고, 안쓰럽고, 당황스러웠다. 온몸을 뒤덮는 것처럼 안아온 남자의 등을 더듬어 만지며 답했다.

“예쁩니다.”

용아의 말에 윤제가 입술을 내려 키득대는 뺨에 입을 맞췄다.

“너도 예쁘다.”

“뭡니까.”

“사랑을 뺏긴다는 게 이런 걸까.”

윤제가 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엄살을 부리는 모양새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용아가 야유를 하듯 말했다.

“갓난쟁이한테 투기하십니까.”

“나도 꼬맹이 좋아해. 우리 꼬맹이는 예뻐, 좋아, 귀여워. 태어난 직후에 말도 못하게 못생겼었지만, 내 눈에야 예쁘고 좋지. 나날이 괜찮아지는 것도 같고. 이 형이 부황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나이가 아니긴 해. 그래도 너무 하시는 것 아니냐. 요즘 나를 보면 윤조부터 찾으신다. 부황뿐 아니라 모든 이가 공주부터 찾아. 용아, 내가 윤조로 보이느냐.”

윤제가 부친의 사랑을 빼앗긴 꼬맹이처럼 툴툴대었다.

“정말 질투하시는 겁니까.”

“조금?”

용아는 찬찬히 답했다. 윤제의 마지못한 인정에 용아가 큭, 웃었다.

“그런데 태어난 직후에 윤조가 못생겼었습니까.”

“갓 태어난 아기는 빨갛고 쭈글쭈글한 원숭이 같은 법 아니냐. 너도 다 봐놓고 뭘 새삼 그러…… 네 눈에는 안 그랬어?”

“……네…….”

아기는 조그맣고 어여뻤다.

“제 자식은 다 예쁜 법이지. 객관적으로 못난이였지만, 나도 예쁘게 봤다.”

윤제의 말에 용아가 조용히 도리질했다. 고요한 얼굴에 우리 애기 엄청 예뻤고, 지금은 더 예쁩니다, 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알게 모르게 균열이 간 얼굴이 느릿느릿 말했다.

“부황께서 형님 전하를 맞으실 때 윤조부터 찾으시는 것은, 전하와 윤조가 똑같이 생겨서 아닙니까.”

이번에는 윤제의 얼굴에 미세한 틈이 생겼다. 윤제가 진지하게 따졌다.

“나, 예쁘다며.”

“예쁘십니다.”

“나하고 꼬맹이랑 닮았다고?”

윤제가 거듭 물었고, 용아가 다시 답했다.

“아뇨. 똑같이 생겼습니다. 남자 여자, 어른 애기, 크고 조그맣고 차이만 빼면 아주 빼다 박았지 않습니까. 모상궁도, 유모상궁들도 전부 그랬습니다. 저 하나도 안 닮고, 윤공자 형님만 닮았다고요. 윤공자 형님은 부황과 똑같이 생기셨고요.”

“있느냐.”

윤제가 문 너머를 향해 말했다.

“예, 전하.”

유모상궁 하나가 급히 문 곁으로 다가서며 답했다.

“공주를 데리고 건너오너라.”

“예.”

유모상궁은 의아해하며 공주를 안아 올렸다. 금당대를 찾은 황제가 방금 물러가게 한 공주를 새로 불러들인 적은 있어도 태자나 태자비가 공주를 연거푸 불러들이는 일은 드물었다. 곧 문이 열리고 곂문을 건너 유모상궁이 공주를 데리고 들었다.

“공주께서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공주께서 태자비전하를 뵙습니다.”

상궁이 품 안의 공주를 살짝 기울이며 태자와 태자비에게 차례로 예를 올렸다.

“이리 다오.”

윤제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상궁이 조심스레 태자의 품에 공주를 안겨 주었다. 용아는 아이를 볼 때마다 기묘한 충격을 받았다. 사내와 사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딸이란 것이 볼 때마다 놀라웠다.

황가 적통과 후족 백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성별을 불문하고 진족이라고 하였다. 사내아이가 아니니 공주는 백화일 터였다.

용아는 그도 놀라웠다. 자신이 황족의 힘과 무관한 존재이기에, 자신이 낳은 아이가 황족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일정 나이가 차면 개화를 하고 발현을 숨기지 못하는 백화라는 것이 신기하고도 안타까웠다.

아가, 내가 지켜 줄게.

윤조와 첫 밤을 보낸 용아는 다짐했다.

“…….”

그리고 제가 낳은 아기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꼭 닮은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도록 기이했다. 윤제가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안고 불만스레 용아를 올려다봤다.

“나와 닮았다고?”

“예.”

윤제의 물음에 용아가 지체 없이 답했다. 윤제가 의문을 담아 용아 어깨 너머로 보이는 두 유모상궁에게 시선을 던졌다. 두 유모가 얼굴을 낮추며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아주 꼭 닮으셨습니다.”

“그러합니다.”

세 사람의 동일한 주장에 윤제는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품 안의 아이를 바라봤다. 제 아비를 닮은 공주가 살짝 웃음을 퍼트렸다. 윤제가 안아 든 아이를 살며시 도닥이자 웃음이 점점 더 커졌다.

용아는 그것 또한 놀라웠다.

제가 낳았지만 아이 안는 것이 엉성한 용아와 다르게, 어려서부터 아우를 갖고 싶어 종실 자손이 태어날 때마다 가서 안아 보고는 했다는 남자는 곧잘 아이를 안았다.

표정만 보고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으나, 노력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다독이며 윤제가 단호히 말했다.

“나는 모르겠는데. 나를 닮았어?”

용아에게 그 모습이 세상 무엇보다 좋았다.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 불쑥 울컥함이 오를 정도로 좋았다. 용아는 예고도 없이 윤조를 안고 있는 윤제에게 부드러이 다가가 꼭 안았다가 물러났다. 아이와 윤제를 한꺼번에 안는 기분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놀라 멈칫한 윤제의 얼굴을 향해 용아가 속삭였다.

“좋아요.”

윤제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용아에게 건네주었다. 용아의 아이 안는 모양새는 뿌듯한 기분과 달리, 좀 엉성하고 서툴렀지만 윤제는 아무 말 않았다. 남자는 용아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아비를 동시에 품에 안았다.

“나도, 좋다.”

윤제의 도닥임에 용아 품의 아이가 조그만 새의 울음 같은 옅은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에 용아와 윤제가 동시에 웃음을 퍼트렸다.

유모상궁들이 기쁜 얼굴로 옹알이를 하려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공주마마.”

두 유모상궁이 공주의 관심을 부지런히 끌었다. 용아는 이러다 애기가 자기 이름을 공주마마인 줄 알겠다 싶었지만,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지 싶었다.

이럴 때면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인을 통해 황족이 된 지 한참이고, 용아 역시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컸지만, 황족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현재는 자신과 아이 모두 금당대에 머물고 있으나, 공주는 복중에 있을 때 이미 한 전각의 주인이었다.

아이와 며칠 건너 하루씩 같이 자고는 하지만, 그때도 유모상궁들의 보살핌이 더 컸다.

어린 날 내원 아버지가 계실 때 늘 아버지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고, 눈가의 작은 먼지 하나까지 그분이 떼어 주었던 자신의 입장과 공주의 상황은 꽤 많이 달랐다. 공주의 신분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지금의 환경이 더 알맞은 것일 터였다.

“고생들 해 주게.”

용아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네자, 윤제가 유모들에게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상궁은 기쁜 얼굴로 답했다. 유모상궁들이 아이를 데리고 건너가자, 떠들썩하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고요해졌다. 닫힌 문 건너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윤제가 말했다.

“윤조 이름은 마음에 드느냐.”

“예.”

용아의 재빠른 대답에 윤제가 눈썹을 구겼다.

“부황께서 정한 거라고 무조건 마음에 든다 말고, 너는 어떠냐.”

“저는 좋은데, 윤공자 형님과도 독음이 같으니 전하께서 곤란하지 않으십니까. 부황께서 이미 윤조라 부르고 계시니 윤조도 제 이름이 윤조라 생각할 터인데…… 종친들과 다툼이 진정되기 어려울까 걱정입니다.”

커다란 손이 용아의 뒷머리를 쓱쓱 쓸었다.

“걱정 마라.”

“예…… 예? 부황께서 마음을 굳히셨으니 바뀔 일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용아의 물음에 윤제가 담담히 말했다.

“이 형이 가서 바람 좀 잡아드리면 오늘 안에 해결될 일이다.”

“바람…….”

“태자 할 일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자식 된 도리이기도 하고 말이다. 너는 걱정 말고 이 형만 믿고 있어라. 쉬어라.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라. 심심하면 꼬맹이 주무르고.”

“주무르다니요……!”

문을 나서던 윤제가 상체만 안으로 기울여 입술을 짧게 맞췄다. 쪽, 부러 소리를 낸 것처럼 요란한 울림이 퍼졌다. 용아가 멈칫한 사이 웃음 가득한 얼굴이 문을 닫았다.

“바람이 차다. 들어가. 금방 다녀올게.”

닫히는 문틈으로 달콤한 속삭임이 스며들었다. 문이 완전히 닫혔다. 닫힌 문 앞에서 용아는 한참이나 기분 좋은 멍함에 젖어 멈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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