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는 반방 인근 수안각에서 앵두 한 동이를 깨끗하게 비웠다. 앵두를 반 동이 비웠을 때, 이런 절제 없는 폭식은 생애 처음이라며 행복한 얼굴로 고백했다.
앵두 다섯 알쯤 남았을 때 울음을 훌쩍였다. 줄어든 앵두가 아쉬워서, 앵두가 너무 맛있어서 우는 거라고 했다. 빈 동이의 바닥을 보는 얼굴에 쑥스러움과 웃음이 교차했다. 달콤한 냄새를 퍼트리는 것 같은 얼굴을 향해 윤제가 유혹의 말을 건넸다.
“어선방에 앵두가 더 있을 텐데.”
용아가 조용히 군침을 삼켰다. 어선방은 황제께 올리는 음식을 총괄하는 곳이었다. 천하의 모든 고귀한 식자재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황제께 올라가는 것을 손대는 것은 대죄였다. 어선방에서 앵두는 소박한 것이었다.
앵두.
달콤하고 새콤하고 아삭한 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선방예요?”
용아의 눈이 유혹으로 휘청댔다.
“갈까.”
낮게 깔린 저음이 은밀하게 말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머리가 제멋대로 끄덕거렸다. 커다란 손이 용아에게 내밀어졌다.
용아가 저도 모르게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단내가 나는 손이 윤제를 단단히 쥐었다.
둘은 손을 맞잡고 어선방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다. 어둠이 어슴푸레 깔릴 시각에, 영화대 안으로 든 정천궁 태감들이 길을 열었다. 황제의 납심은 갑작스러웠다. 영화대 어린 궁인이 황포 자락을 보고 급히 몸을 낮추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폐하. 황제 폐하를 뵙……”
좌첨이 궁인의 앞을 가로막듯 서며 황제를 안으로 모셨다. 황제의 납심을 알리는 태감의 외침에 영화대 안에서 일제히 예를 올리는 소리가 울렸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예를 올린 모장이 전각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윤제와 용아가 걸어 나와 황제께 예를 올리고자 했다. 예를 올리려는 용아의 앞으로 다가가며 황제가 하명했다.
“예는 되었다.”
황제가 태자와 태자비의 예를 말리는 사이, 좌첨과 정천궁의 태감들이 전전의 문을 열고 채비를 하였다. 금당대와 영화대의 궁인들 또한 정천궁 궁인들을 도와 황제를 모실 준비에 손을 보탰다.
상석이 마련된 후에 좌첨이 황제의 곁으로 와 아뢨다.
“폐하, 드시옵소서.”
공공의 말에 끄덕인 황제가 둘을 향해 말했다.
“들자.”
두 사람이 동시에 답했다.
“예, 부황.”
황제의 뒤를 따르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둘을 모장이 염려스럽게 바라봤다. 총관 태감이 태자와 태자비의 시중인을 가볍게 떨쳤다. 상석에 앉은 황제가 안으로 드는 둘을 보며 하명했다.
“회임 중인 태자비에게 의자를 내주어라.”
“예, 폐하.”
황제의 명에 좌첨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재빨리 움직여 용아에게 의자를 내줬다. 눈치를 보며 방황하던 용아가 어렵사리 예를 올렸다.
“황공하옵니다, 부황.”
황제가 서서 고민하는 용아에게 친히 명하였다.
“앉거라.”
“예.”
의자에 앉는 용아의 옆에, 윤제가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며 황제께 예를 올렸다.
“부황, 낮 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윤제의 예에 용아는 의자에 앉은 채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혀 함께 예를 올렸다. 영 그랬다. 태자께서 무릎 꿇고 예를 올리는데, 자신은 의자에 앉아 편히 있으니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콕콕 찔려왔다. 특혜와 편애를 잔뜩 받는 기분이었다.
정작 윤제는 아무렇지 않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오냐.”
황제가 성의 없는 답을 내렸다.
“…….”
“…….”
황제가 침묵하니 안이 썰렁한 적막에 감싸였다. 상석의 황제는 당신의 아들에게 물끄러미 시선만 내렸다. 의자에 앉은 채 그것을 지켜보던 용아는 이걸 어디서 보았는데 고민하며 눈만 바삐 굴렸다.
윤제는 얼굴로 내리는 부친의 집요한 시선에 불편한 기색 하나 내보이지 않았다. 반듯한 태도가 태자다웠다.
황제가 상석 팔걸이를 손으로 톡톡 두드려 불만을 표했다. 이어 삼엄한 말이 내렸다.
“모두 물러가라.”
황제의 말보다 황족의 권능에 떠밀린 태감과 궁인들의 물러나는 움직임이 더 빨랐다. 조심조심하면서도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삭막해져 갔다.
“…….”
“…….”
침묵이 어렵게 흘렀다. 용아는 단단히 집히는 게 있었기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윤제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답이 너무 뻔한 상황인데 윤제는 꿋꿋하게 버텼다. 으흠, 불쾌한 소리를 흘린 황제가 침묵하는 둘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너희, 짐에게 할 말 없느냐?”
윤제가 그제야 몸을 낮추며 죄를 청했다.
“부황. 소자 죄를 지었나이다.”
“소자도……”
용아가 끼어들려 했지만 황제가 틈을 주지 않았다.
“윤아. 무슨 죄를 지었느냐.”
“소자 불충, 불효하게도 황제의 어선방을 허락 없이 들어 필요한 것을 훔쳐 나왔습니다. 허나 소자는 떳떳하옵니다.”
황제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뭐라.”
윤제는 여전히 반듯하였다.
“소자가 불충, 불효한 행동을 한 것은 곧 효를 실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태자는 괴변을 늘어놓지 마라. 허튼소리로 황제의 귀를 어지럽힐 참이냐. 짐이 듣기가 괴롭구나.”
황제의 말이 엄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황의 숙원이 무엇이셨습니까.”
윤제가 슥 웃으며 양팔에 무언가 안는 시늉을 해 보였다. 용아가 의심스러운 동작을 놓치지 않고 보았고, 상석에 비스듬히 여유롭게 앉아 있던 황제의 얼굴에 미묘한 균열이 갔다.
황제가 험악하게 웃으며 낮게 깔린 말을 내렸다.
“윤아가 이 아비를 겁박할 셈이야.”
“소자 아는 바 대로, 있는 그대로 말을 올리는 것이옵니다. 소자가 황제의 어선방을 범하는 대죄를 지었는데 그것이 곧 부황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일이라는, 뜻이옵니다. 소자가 어선방에 숨어들어 앵두를 일곱 동이 훔쳤습니다만, 그것을 먹은 것은 소자도, 용아도 아니옵니다. 황제의 어선방 앵두를 먹은 것은 부황의 손주이옵니다. 허니, 녀석이 태어나면 엄히 문책하여 주소서.”
“괴상한 말을 거두라 했을 터인데.”
황제가 손가락을 뚜둑뚜둑 소리가 나도록 꺾으며 하명했다.
“부황, 소자 억울하옵니다. 소자가 한 계절이 다가도록 태자비 곁에 못 가 힘들다 하니 그것이 다 아비 되기 위한 과정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비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습니다. 오늘 드디어 복중 아이가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을 거두어 태자비가 앵두를 찾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태자비의 뜻이라 하겠습니까. 전부 부황의 손주가 부리는 농간일 테지요.”
“농간이라니! 태자는 말을 가려 하거라. 아이가 아직 복중에 있다 하나 전부 듣고 있다 하지 않았더냐.”
“소자는 모후 복중에 있을 때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주의하겠나이다. 아무튼 다시 아뢰건대, 오늘 저희가 불충과 불효를 저지른 것은 전부 부황의 손주가 전한 뜻을 바르게 이행코자 한 것입니다. 저희는 결백하옵니다.”
윤제가 뻔뻔한 말을 근엄하게 고했다.
“…….”
용아는 조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제의 불쾌한 얼굴을 보고 끄덕임을 멈추었다. 대신 방금 전 윤제가 해 보였던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동작을 남몰래 따라했다. 양팔에 무언가 안는 모양이 꼭, 양팔에 아이를 안아 드는 모양 같았다.
설마, 아닐 거야.
께름칙한 모양새를 따라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돌이질 치는 용아를 본 두 닮은 얼굴 사이에 미묘한 시선이 오갔다. 황제가 목을 으흠으흠,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니까 너희가 짐의 어선방에 와 앵두를 몽땅 훔쳐 갔다는 것을 인정하겠다?”
“그러하옵니다. 허나……”
“그러나 앵두를 먹은 것은 용아가 아니라 복중 아이다.”
“그렇사옵니다.”
“새아가도 윤아의 말에 동의하느냐.”
황제와 태자가 제각각 엄격한 시선을 보내왔다. 용아는 고민 속에서 우물댔다.
“그, 그렇습니다…… 부황.”
용아의 대답에 황제가 귀하게 키운 아들을 요녀에게 빼앗긴 것 같은 얼굴을 하며 윤제를 돌아봤다. 황제께서 용아에게 늘 잘해 주었기에 답을 하는 용아의 마음도 좋지만은 않았다.
“태자비가 입덧으로 어려움이 많아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워 잘못을 하는 것은 내 이해할 수 있다. 허나 태자가 그러면 쓰는가. 짐에게 청하여! 말을 하고 가져가야지! 감시 황제의 어선방을 황족의 권능으로 무력하게 만들어 필요한 것을 탈취해?! 네가 태자이지, 도둑놈이냐!?”
황제가 분노를 윤제에게 몰아주려 했으나 용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송구하옵니다. 그게…… 다급하여서요!”
용아의 외침에 황제가 화를 멈추었다. 윤제는 울상인 채로 앵두가 주었던 달콤함과 새콤한, 아삭함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얼굴을 보고 표정을 억눌렀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앵두는 이제 한 동이만 남았다.
세 동이씩 두 번 비운 용아는 세 동이를 비울 때마다 울음을 터트렸다. 앵두가 맛있어서 감동하여 울었고, 앵두가 사라져서 아쉬워서 울었다. 황제의 어선방에서 훔쳐온 앵두를 먹는 대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선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울 만큼은 아니었다.
어, 어떡하죠.
고민하였지만 앵두를 하나 건네면 언제 고민했냐는 듯 앵두를 먹느라 바빴다. 용아의 입맛을 다시며 울먹이는 간절한 외침에 황제가 침잠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느냐…….”
“네…… 되게 맛있어요…….”
대답하는 얼굴에 앵두를 향한 애틋함이 엿보였다.
“이 아비한테 말을 하지 그랬느냐.”
“너무 다급하여서…… 송구하옵니다. ……저 갖고 온 앵두 이제 한 동이 남았…… 그거라도 돌려드리면…….”
앵두를 돌려드리겠다 말하는 얼굴에 미련이 가득했다.
“아니다. 너 다 먹거라. 그게 어디 네가 먹는 거겠느냐. 복중 아이가 먹는 게지.”
황제는 놀리려는 생각도 않고 재빨리 다정한 말을 건네었다. 용아의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단 한마디만 들렸다.
‘너 다 먹거라. 너 다 먹거라. 너 다 먹거라…….’
귓속에 맴도는 말이 은혜로웠다. 이런 게 바로 아비의 사랑인가 싶었다. 온 얼굴에 웃음이 걸린 용아가 반짝반짝한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예, 부황.”
황제가 뿌듯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 아비가 또 앵두 구해다 주마.”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말을 들은 것처럼 용아의 얼굴에 생기가 번져 나갔다. 윤제에게 들었냐고 물어보려던 용아가 저와 황제를 삐뚤어진 표정으로 보고 있는 남자를 보고 멈칫했다.
“황공하옵니다. 저, 부황. 전하께도 의자를 내주시면…….”
용아가 부드러이 청했다. 황제가 곧바로 답했다.
“그건 안 된다.”
딱 부러지는 거절에 더 들이댈 곳이 없었다.
“예…….”
무릎을 꿇은 채 반듯하게 예를 올리고 있는데 윤제의 얼굴을 삐딱하기만 했다. 온 얼굴에 불손함이 가득했다. 황제가 코웃음을 치는 표정으로 당신의 아들을 내려다보았고, 윤제가 양팔에 아이 안는 시늉을 다시 하려고 했다. 황제가 먼 곳을 보며 하명했다.
“어흠. 태자에게 의자를 내주어라.”
황명에 기뻐하던 용아가 잠시 잊고 있던 윤제의 묘한 몸짓을 떠올렸다. 의심에 들려는 얼굴 곁에서 유독 크게 사은하는 소리가 울렸다.
“부황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윤제가 내뱉은 큰 소리에 용아는 생각을 털어 버렸다. 태자에게 맞추어 예에 따라 부황의 은혜에 감사를 올렸다. 용아에게 황제가 파격적인 은혜를 베풀었다.
“앞으로 태자비는 무시로 어선방에 들어도 좋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가져가거라. 혹, 어선방에 없는 게 있거든 이 아비에게 말하거라.”
“황공하옵니다, 부황. 부황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어떻게 보답을 하여야 좋을지 모르겠사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사옵니다.”
용아가 엄중해야 할 예를 활짝 웃는 얼굴로 올렸다.
“간단한데.”
귓가에서 아주 낮은 목소리가 조그맣게 울렸다.
“예?”
상석에 황제가 계신 것도 잊고, 윤제의 말에 용아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황제가 팔걸이를 유난히 크게 탁, 내려치며 먼지를 닦아 내듯 슥슥 손을 움직였다. 용아가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황제가 올려다보는 이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내 이만 가 보마.”
상석에서 몸을 일으키는 황제의 움직임에 맞춰, 용아와 윤제도 몸을 일으켰다. 황제는 전각을 나서기에 앞서 용아의 곁에서 한참 걱정과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당신의 배웅을 거절하고, 친히 용아를 후전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용아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서야 몸을 돌렸다.
윤제가 곁을 물린 황제를 말없이 따랐다.
영화대 권역이 끝나 가는 곳에 당도할 즈음 황제가 입술 끝을 올리며 옆을 따르는 아들을 돌아봤다. 웃음에 기쁨과 야욕이 엿보였다.
“앵두를 좋아하면 딸이랬다.”
황제의 말에 윤제가 뚱한 얼굴을 했다.
“그런 거 다 미신 아닙니까.”
“미신이라니. 선조들의 지혜를 만만히 보아선 아니 돼.”
“그리 좋으십니까.”
황제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짐은 요즘 다 좋다.”
“유독 좋아 보이십니다.”
윤제가 웃음을 숨길 줄 모르는 부친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윤아. 공주가 태어나면 우리도 외척 놀이를 할 수 있잖느냐. 이놈들. 만날 짐의 앞에서 손주 자랑을 해 대던 거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부마 후보를 잔뜩 점지해 두고 고통을 줄 것이다. 좋을 것 같지 않느냐?”
“부황.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사 온데―.”
“시간은 금방 간다.”
윤제의 어처구니없어 하는 태도에 황제가 수줍은 청년처럼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부황.”
“그나저나 윤아, 너.”
황제가 돌연 표정을 바꾸었다. 대화의 분위기가 일순 휙 변했다. 윤제의 표정도 순간 겸손하고 공손하게 바뀌었다.
“예…….”
“일복 터지고 싶으냐. 국경 순시 다녀오고 싶은 게지? 일국의 태자가 되어서, 말조심하고, 손끝 발끝 몸짓도 조심하여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느냐. 너한테 이 아비가 기대가 크다.”
황제가 양손에 아이 안는 시늉을 슬쩍 해 보이며 엄히 말했다.
“노력하겠습니다.”
“애써다오. 믿는다, 태자.”
“황공하옵니다.”
“내 이만 가 보마. 어서 들어가 아가 잘 살펴 주어라.”
“예, 부황.”
황제가 친히 태자의 어깨와 등을 도닥이는 모습에 멀리서 뒤따르는 궁인들을 웃음 짓게 했다.
부자간 사이가 무척 좋아 보였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황가 안 친족 간에 정이 두터운 것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저 풍경에 태자비에 곧 태어날 아기씨까지 더해지면 더욱더 보기 좋을 터였다.
좌첨은 황제의 부르는 손짓에 바삐 다가가며 영화대로 돌아가는 태자를 향해 깊이 예를 표했다. 부황께 사랑이 담긴 손길과 눈길을 받은 태자의 표정이 다소 모호했다.
“찾으셨나이까.”
좌첨이 깍듯하게 예를 올렸다. 황제가 정천궁으로 향하며 음흉한 목소리로 하문하였다.
“윤아에게 줄 일거리가 무어가 있을까.”
“예?”
방금 아드님과 담소를 화기애애하게 나눈 황제였다.
“태자에게 일을 좀 몰아주어야겠어. 슬슬 준비를 해 두어야지. 허튼 생각할 틈을 주지 말아야지.”
“……예…… 하오나…….”
이미 황제는 많은 정무를 태자에게 넘겨주었다.
“잠들기 전까지 찾아오도록 하게.”
“명을 따르옵니다. 하온데, 허튼 생각이라 하심은 무엇을 말하시옵니까.”
“비밀이네.”
태감의 물음에 황제가 음흉한 미소를 퍼트리며 답했다. 더 물었다간 알아선 안 되는 것을 듣게 될 듯한 표정이었다. 노련한 공공은 얼굴을 낮추며 괜한 말을 듣지 않도록 기척을 낮추었다. 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이었다. 태자의 정무가 차곡차곡 늘어나는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윤제는 교헌재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황제의 급습이 들이닥친 것은 이틀 전이었다. 한참 잠잠하여 방심한 게 패착이었다. 황제는 상시로 태자가 정무를 보는 곳에 와 시비를 걸고 갔다. 덕분에 자리를 비우기도 여의치 않았다.
“전하.”
차를 가지러 나갔던 등우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눈 뜬 시간 내내 종이를 들여다보니 눈은 뻑뻑하고, 호흡은 답답하고, 목은 칼칼해 차 없이 한순간도 지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는?”
윤제가 태자다운 근엄함을 잊고 바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찾았다.
“영화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나가 보셔야겠습니다.”
“영화대에서?”
등우의 말에 윤제는 손에 들고 있던 세필을 던지듯 내리고 곧장 몸을 일으켰다. 문을 나서는 윤제에게 궁인들이 쉴 새 없이 예를 올렸다. 윤제는 대충 손을 내젓는 것으로 예를 물렸다.
“전하, 어서요.”
계단을 내려가는 윤제의 속도는 충분히 빠른데, 등우는 더욱 빨리 움직이라 재촉했다.
“무슨 일이라더냐.”
윤제의 물음에 등우가 당당히 그러면서도 재빨리 답했다.
“모르옵니다.”
“몰라?”
윤제가 뻔뻔스러운 태감을 구박하려 했다.
“전하!”
밖으로 나서는 윤제의 곁으로 모장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감히 일개 궁인이 태자께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장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허옇게 질린 얼굴을 향해 윤제가 물었다.
“모 상궁, 무슨 일인가.”
“전하. 빨리요. 빨리. 빨리 가셔야 됩니다.”
“알겠다.”
모장은 오직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빨리만 연발했다. 능란한 상궁의 희게 질린 얼굴에서 다급함을 이해한 윤제가 더 묻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모든 이를 따돌리고 영화대로 향했다.
영화대에 든 태자를 궁인들이 온 마음을 다해 기쁘게 맞았다. 궁인들이 죄 밖에 나와 있는 게 기이했지만 모장의 짧고 강렬한 당부가 있었던 만큼 윤제는 지체 않고 전각 안으로 들었다.
“용아.”
문을 열며 안으로 드는 윤제에게 다급한 손길이 닿았다. 스슥스슥. 천이 비벼지는 메마른 소리가 숨 가쁘게 울렸다. 동시에 다리 사이가 허겁지겁 만져졌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윤제가 당황해 머뭇댔다. 윤제는 다짜고짜 만져 오는 과하게 적극적인 손을 말리려 했다.
용아가 말리려는 손에 입을 맞추며 힘겨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윤제 형…….”
“저기.”
“싫어요?”
윤제는 용아의 손에 떠밀려 벽에 기대어 서며 숨을 삼켰다. 갈급한 손이 윤제의 것을 음란하게 주물러 댔다. 숨이 저절로 올랐다. 난데없고, 뜬금없지만, 싫을 리 없었다. 윤제가 헛숨을 삼키며 자신의 앞에 무릎을 낮추고 앉은 얼굴을 향해 말했다.
“아니. 좋아. 좋은데…….”
윤제가 무어라 더 말하려 했다. 좋긴 한데, 입도 맞추고 싶고, 서로 말도 주고받은 후에 조금 적응을 하는 게 어떠냐 말하려 했다. 지금 상황은 다소 일방적이고, 위압적이고, 강압적이지 않느냐 은근히 튕기는 말도 해 보려 했다.
용아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거면 되었다는 듯 남자의 샅에 얼굴을 묻고 비비며 깔끔한 매듭을 손끝으로 정신없이 풀어 나갔다.
방금 전까지 책상 앞에서 고리타분한 상소를 읽고 있었다. 갑자기 공기 중에 노출 된 맨살에 부드러운 입술이 입을 맞추고, 비벼 오는 감각이 곤란할 정도로 직접적이었다. 동시에 현실감이 하나도 없었다. 입술을 열어 순식간에 발기한 것을 삼키는 용아를 보며 윤제가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커다란 것을 먹어 치워 볼이 불룩해진 용아가 시선만 올려 남자를 봤다. 음탕하게 구르는 혀와 생리적인 눈물이 고인 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윤제를 자극했다.
커다란 성기를 빠는 입술이 퍼트리는 젖은 소리와 감당하기 어려운 부피감을 입에 머금느라 용아의 목 아래에서 울리는 뭉근한 소리가 난잡하게 엉켰다.
용아의 목에서 억눌린 소리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윤제는 좀처럼 사정하지 않는 그의 것에 곤란해하는 얼굴을 손을 뻗어 만지작거렸다. 열 오른 얼굴이 내뿜는 숨결과 간지러운 헐떡임이 그를 웃음 짓게 했다.
결국 용아는 턱이 아려 와 커다란 것을 우물우물 뱉어 냈다. 손으로 쉬지 않고 자극하며 얼얼한 입술을 천천히 움직여 말했다.
“윤제 형. 빨리. 내 얼굴에 싸 줘요.”
시선을 내리깔면 유난히 우아한 눈매가 돋보이는 얼굴이 음란한 말을 내뱉었다. 남자의 것이 거칠게 꿈틀대었다. 용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꿈틀대는 귀두에 야한 입맞춤을 퍼부었다.
윤제는 쪼는 듯한 음탕한 입맞춤에 벼랑 끝으로 떠밀리는 아찔한 기분을 맛봤다. 그가 말릴 틈도 없이 곧 희뿌연 타액이 용아의 얼굴로 쏟아졌다.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쏘아진 사출액이 눈에 들어가 만족한 얼굴을 했던 용아가 인상을 그렸다.
윤제가 막무가내로 눈을 비비려는 용아를 말리며, 풀어 헤쳐진 허리춤을 대충 추스르고, 용아를 의자에 앉혀 얼굴을 닦아 주려 했다. 얼굴을 샅샅이 닦아 내는 커다란 손을 용아가 다급히 밀쳐 냈다.
“가만히 좀 있어.”
“다 닦으면 안 돼요. 내가 먹을 거예요!”
투덜거리던 윤제가 용아의 애절한 말에 우뚝 멈췄다. 그새를 놓치지 않고, 용아가 혀를 내 얼굴을 적신 정액을 핥았다. 맛과 향을 살피는 얼굴은 순진하고도 음란했다.
멈춰 있던 윤제가 더듬거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속도로 말했다.
“그걸 왜 먹어…….”
남자의 얼굴이 자못 심각했다.
“눈에 들어가서 아파요.”
용아가 탁액이 길게 흔적을 남긴 눈가를 내보이며 소곤거렸다. 엄살이 분명했다. 찡그린 눈가에 읽어 낼 수 없는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미안.”
윤제는 저도 모르게 사과했다. 거의 습관이 돼 버렸다. 용아가 사과하는 남자에게 너그러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도 해 줄게.”
윤제가 엄격히 말했다. 한낮이었다. 잠시 까맣게 잊고 있던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굴에 흩뿌려진 것 중 눈에 들어간 것만 닦아 낸 채였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용아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용아가 숨을 들이켜며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
“괜, 괜찮…… 흑…….”
커다란 손이 용아의 아래를 완전히 뒤덮었다.
“다리 벌려 봐.”
“괜찮은데…… 윤제 형…… 아, 거기는…….”
“다리 더 벌려 봐. 여기 좋아?”
용아는 의자에 앉혀진 채 단단한 남자에게 가로막혀 가장 취약한 곳을 만져졌다. 입에서 허약한 소리가 제멋대로 흘렀다. 윤제의 말에 용아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 하자, 소리 내서 대답해 보라는 요청이 있었다. 잔뜩 곤두선 유두를 빨리며 앞이 만져지는 건 말도 못하게 괴상하고, 좋았다.
“……아, 읏, 좋아요…….”
“나도 좋다.”
윤제가 흥분으로 체취가 은은히 퍼져 나오는 목덜미와 머리칼 사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예민한 곳을 뒤덮은 커다란 손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과격한 것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쾌감이 아픔을 압도했다.
“아……!”
시야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착각이 일었다.
“그런데, 용아. 나는 왜 덮친 거냐?”
“덮친다니, 아! 아! 흣!”
“어서 말해야지. 화아. 형이 잘해 주고 있지 않느냐. 곧 쌀 거 같은데, 응?”
흥분으로 벌름대는 귀두 위를 단단한 손이 쓰다듬듯 만졌다. 앞이 순간 캄캄하게 사라졌다. 용아는 그대로 사출이라 생각했지만 끝을 단호히 눌러 막는 손길에 쾌감의 한계치만 넘어가는 아득한 감각이 이어졌다. 용아가 팔을 마구 휘둘러 윤제를 밀쳐 내려 했다.
“아, 놔줘…… 윤제 형…… 윤공자 형님, 아아. 나, 입덧. 입덧.”
“지금 입덧 안 하잖느냐. 사정 한 번 넘긴다고 안 죽는다.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닌가.”
윤제는 포악한 팔꿈치에 얻어맞으며 웃었다. 남자가 빨갛게 열 오른 살에 자잘한 입맞춤을 내렸다. 용아가 눈물이 고여 빨갛게 달아오르는 눈으로 윤제를 보며 애원했다.
“윤제 형…….”
“알겠다.”
윤제가 다정하게 말했다. 남자가 얼굴을 숙여 흥분으로 꿈틀대는 허벅지와 골반 언저리와 끝이 막혀 있는 성기의 표면에 짧은 입맞춤을 내렸다.
한계를 넘은 지독한 감각은 앞을 형형색색으로 뒤바꿔 보이게 했다. 용아의 근육이 일제히 발산하지 못한 흥분으로 기묘하게 떨렸다.
용아가 기어코 눈물을 쏟았다.
“입덧.”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소곤댔다.
“입덧이 뭐?”
귓가에 쏟아지는 입맞춤과 유두를 툭툭 건드리는 손길이 과하게 자극적이었다. 숨이 넘어가는 듯했다. 용아가 한계를 넘은 어질어질한 쾌감에 왈칵 소리를 내뱉었다.
“윤제 형이 내 얼굴에 정액을 싸 줘야 입덧이 가라앉는 것 같다고요……!”
“역시.”
남자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머리를 숙여 용아의 것을 집어삼켰다. 단숨에, 목 깊은 곳까지 닿도록 용아를 먹어 치웠다. 미소를 그린 입술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용아를 한계로 몰아 갔다.
“아……!”
용아는 뜨거운 점막에 감싸이자마자 참지 못하고 토해 냈다. 윤제가 용아를 전부 먹어 치웠다. 용아는 강제로 틀어 막혀 있던 쾌감이 해소된 탓인지 잠시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머리가 텅 비었다.
“사랑해.”
귓가에 울리는 고백이 기묘하도록 달콤했다.
“……나도 사랑해요…….”
날씬한 복부와 허벅지가 여전히 흥분으로 움칫움칫 울었고, 때때로 자르르 떨림이 튀어 올랐다. 감각이 너무도 예민해져 몸의 어떤 부분이 잘못된 기분이었다.
“내가 퍽 쓸 만한가.”
윤제가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댄 채 구겨 앉아 소곤거렸다.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깔린 미묘한 걱정이 용아의 안쓰러움을 자극했다. 용아는 꿈틀대는 아래를 추슬러야 한다는 것도 잊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얼굴에 입을 맞췄다.
“무척 유용하십니다.”
“다음에 또 덮쳐 주려나.”
“그러겠습니다.”
윤제의 나직한 말에 용아가 키득대며 답했다.
“설렌다.”
윤제가 용아의 뺨에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 많은 소년처럼 떠들었다. 밖에서 태자를 찾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다급한 목소리로 보아 황제가 찾는 것이 분명했다. 윤제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재빨리 용아의 엉망이 된 얼굴을 꼼꼼히 살펴 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문을 나서던 남자가 갔던 거리를 빠르게 되짚어 와 멍하니 앉아 있는 몸을 와락 안았다가 놓아주고 떠나갔다.
순식간에 다가와 안아 오는 커다란 몸을 마주 안으며 용아가 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