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5/25)

#TRP절갠

괘석습해월(挂席拾海月) ― 돛을 달고 바다의 달을 줍는다

시작은 연와죽이었다.

황가의 전통에 따라 태자의 반방에서 칠일에 한 번 태자비에게 연와죽을 올렸다. 제비집인 연와(燕窩)로 끓인 죽은 담을 없애 주고, 기침을 멎게 하며 폐를 튼튼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황가의 연와죽이 황손을 잉태한 태자비를 위한 것인지, 잉태된 황손을 위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연와죽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태자의 반방에서 신경을 써 만든 것인 만큼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러나 용아는 죽에 제비집이 들어간 것을 안 이후로 썩 내켜하지 않았다.

자신이 폐병 환자도 아닌데 연와죽을 굳이 먹어야 하는가 두어 번을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때마다 금당대 상궁은 미소한 얼굴로 황가의 법도라고 읊어 주며 죽이 담긴 금색 사호황안을 내밀었다.

호화로운 금빛 사호황안 안의 연와죽을 한 수저 떴다. 죽은 밋밋하고 역한 비릿함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첫 수저의 심심하고 불편한 맛은 두 번째 수저에서 코끝을 찌르는 비릿함으로 바뀌었다.

수저를 담은 채로 부드럽게 그릇을 물렸다. 모장이 다가와 힘들어하는 용아를 살폈고, 금당대 상궁이 죽을 확인했다. 기미를 마친 상태이니 죽에는 문제가 없었다. 눈짓으로 하문하는 모장에게 금당대의 상궁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가 불편하시옵니까.”

모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건넸다. 괜찮다 고개를 끄덕이려던 용아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호흡이 더해질수록 역한 비릿함이 강해졌다. 호흡 한 번에 불편함은 불쾌할 정도가 되었다. 구역이 오른 것은 갑작스러웠다.

“우욱.”

용아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모장이 다급히 붙어 서려 했다. 다가오려는 이에게 용아가 몸을 지탱하던 손을 올려 내저었다.

동시에 몸을 일으켜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

모장이 사람들을 물리는 한편, 멀찍한 곳에 서서 용아를 불렀다. 급박한 손길이 내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비전하……!”

문을 닫으면서도 연이어 구역질을 했다. 닫힌 문 너머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두 술도 못 먹은 연와죽을 빈 궤에 몽땅 토해 냈다.

바닥이나 침실, 아무 곳에나 실수를 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읍, 욱―.”

찻물로 입을 헹궈 내다 다시 구역질을 했다. 은은하게 우려 둔 찻잎의 향이 평소처럼 향긋하지 않고 쓰고 역겨운 풀내가 났다.

차를 우리기 위해 준비해 둔 물주전자를 열어 코를 대 봤다. 옅은 물비린내와 백자기 표면에서 흙냄새와 돌 냄새가 뒤섞인 거슬리는 향이 올라왔다.

탁, 주전자의 뚜껑을 닫은 용아가 천천히 뒷걸음쳤다. 태의의 말을 듣지 않아도 이 증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입덧이다.

세상 모든 존재가 강렬한 냄새를 피어 올렸다.

교헌재에서 동궁, 영화대로 향하는 거리는 짧지 않았다.

태자는 교를 탈 수 있었으나 걷는 것을 즐겼다. 법도에 따라야 할 때는 교를 타고 이동했지만, 일상적인 정무를 마치고 황제께 저녁 문안을 올리고 돌아가는 길은 느릿느릿 걸었다.

때때로 모두를 낙오시키고 혼자 앞서 가 버렸다.

오늘은 후자였다.

태자비가 식사를 전부 걸렀다. 거기다 주위를 전부 물리기까지 했다.

“모 상궁은 무얼 했다더냐?”

동궁으로 향하는 길에 등우가 고해 올리는 태자비의 근황을 듣던 윤제가 걸음을 잠시 멈추며 말했다.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에 뒷목으로 소름이 오를 정도였다.

“송구합니다.”

등우는 예상한 상황에 머리를 조아렸다. 두 차례 올라가는 정찬을 거른 것이야 이미 낮에 고해 와 알고 있었으나, 수시로 청하는 식사나 저녁까지 없었다는 말에 등우를 돌아보는 얼굴이 무시무시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태자의 호화로운 포(袍)가 사납게 휘둘러졌다.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올리는 등우의 시야에서 화사한 포(袍)를 걸친 사내의 뒷등이 빠르게 멀어져 갔다.

등우와 금당대 궁인들이 순식간에 버림받았다.

“……어, 전하 그…….”

보통 같으면 궁인들에게 자신들을 따돌리는 태자를 어서 달려서 따라붙으라 손짓할 등우가 멍하니 서서 입만 벙긋댔다. 아련히 멀어지는 훤칠한 뒷등이 야속하고 안타까웠다.

전할 말이 아직 한참 남았다.

빈 거리를 향해 등우가 말했다.

“비전하께서 입덧이 심해지셔서 냄새가 난다고 곁에 아무도 두질 않는다고…… 태의조차 안으로 들자마자 구역질이 나 대면하지 못 하겠다 내쫓으셨다는데요…… 아마 전하께서도…… 사람 냄새가 끔찍하다고 하셨답니다…… 전하께서도 쫓겨나시면 아시겠지요…….”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은 등우가 손짓으로 달릴 것을 명했다.

우르르.

금당대 궁인들이 태자가 있을 영화대를 향해 힘껏 달렸다. 전각 안으로 들지 못한 채 쫓겨난 태자가 있을 영화대로 향하는 것이 벌써부터 걱정스럽고 두려웠다.

모두를 따돌리고 홀로 영화대로 든 윤제를 궁인들이 반듯하게 맞았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예의 바른 인사였다.

“……너희 왜 다 나와 있느냐.”

태자를 향해 일제히 예를 올리는 궁인의 수가 다른 때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전각의 바깥문 곁에, 전각 안 문 곁에, 방과 방을 있는 문 곁에 있어야 할 궁인 전부가 내쫓기기라도 한 듯 제 위치가 아닌 바깥에 시립해 있었다.

명을 받드느라 자주 곁을 비우긴 하지만 허락이 있을 때 태자비의 곁을 늘 지키는 모장 역시 후전 밖 멀찍한 곳에 서서 전각 안의 동향을 눈치 보듯 살피고 있었다.

안으로 든 윤제를 본 모장이 한달음에 다가와 예를 올렸다.

“전하, 오셨습니까.”

무척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태자비는?”

“안에 계시옵니다.”

윤제가 의중을 캐내는 것처럼 답하는 모장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온화한 인상의 상궁은 무척 반가워하는 걸 빼면 평소와 같았다.

“태자비가 식사를 걸렀다고?”

“예, 전부 무르셨습니다.”

윤제의 물음에 모장이 재빨리 답했다.

“입맛이 없다던가?”

윤제는 다짜고짜 안으로 들려던 것을 관두고 상궁에게 상세히 하문했다. 모장이 무언가 감추는 듯한 기색을 하다 조심히 답했다.

“……입덧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모장의 대답에 묘하게 긴장했던 윤제의 얼굴이 풀렸다.

“입덧?”

“예. 무척 심하십니다.”

모장이 하소연을 하는 음성으로 답했다.

“태의가 들지 못할 정도인가.”

영화대의 부름을 받고 동궁에 든 태의가 전각 앞에서 아직 대기 중이었다. 부름이 있어 왔으니, 태자비를 대면하지 못하면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 강제로 매인 몸이었다.

아침나절부터 내내 밖에 서서 기다려 지쳤는지 고태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가 먼저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영화대는 평소보다 고요했다. 주인의 심기가 불편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과하게 조용하기는 했다.

“우선…….”

윤제가 기묘한 느낌에 말을 조금 끌었다.

“드시겠습니까.”

모장이 능란하게 태자의 말을 받았다. 윤제는 알 수 없는 기묘함에 고개만 끄덕였다. 태자 곁에 서 있던 상궁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전각 앞으로 가 고했다.

“비전하,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뵙지 않겠다!”

모장의 말에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용아가 답했다. 날카롭게 날이 선 목소리였다. 신경질적이면서, 온종일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힘이 없는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윤제의 일평생 이런 문전박대는 처음이었다. 태자비의 거부에 상궁이 대신 송구스러워했다. 윤제가 구긴 눈썹을 유지한 채 희미한 웃음을 퍼트렸다.

“용아.”

목을 울린 윤제가 안을 향해 말했다.

“가세요!”

서로 사이가 최고로 나쁠 때도 이런 문전박대는 없었다. 문도 열어 주지 않고 거부의 말만 쏘아 대니 서운함과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윤제가 조금 더 웃으며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그때 모장이 태자에게 시선을 건네며 벌컥, 문을 열었다. 상궁의 시선을 받은 윤제가 머쓱한 얼굴을 하며 안으로 한 발 들였다.

“용……”

입덧이란 게 괴롭다고 하였다.

휘익.

닫힌 내실 문 안에서 서늘한 바람 소리와 사나운 외침이 날아들었다.

“가세요!”

윤제는 안으로 들였던 발을 곧장 물리려다 멈췄다. 닫힌 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휘익, 바람 소리 후에 날렵한 가죽이 착, 휘둘러지는 매끄러운 울림이 이어졌다.

필시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였다.

윤제는 너무 당황해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소문대로 용아의 채찍을 휘두르는 기술은 가히 경지에 이른 듯했다.

쉴 새 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무엇 하나 박살 나는 소리가 없는 걸 보아, 용아의 채찍 제어 기술이 보통 이상이란 뜻이었다.

“너, 채찍 휘두르는 거냐?”

닫힌 문 너머를 살피며 윤제가 황망해했다.

“가세요! 냄새 나요! 어서, 가! 우, 우욱.”

“용아……?”

문 너머의 기척을 살피며 윤제는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입덧하는 이만 맡을 수 있는 냄새인 모양이었다.

“가!”

구역질로 잠시 멈추었던 용아가 소리쳤다.

“다시 오마.”

윤제는 전보다 살벌한 채찍 소리에 말을 건네고 우선 물러났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어서 문을 닫으라는 손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단호한 소리가 날아들었다.

“오지 마세요! 가세요! 전부 10보 물러나라!”

온종일 먹은 것도 없다는데 소리는 크고 위엄 넘쳤다. 삼엄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내린 명에 궁인과 의원들이 우르르 물러나는 걸 보며 윤제도 덩달아 걸음을 물렸다.

“…….”

용아의 하명을 충실히 따른 윤제가 표정 없는 얼굴로 옆을 돌아봤다. 태자의 시선을 받은 모장이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내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전하께도 ……찍을 휘두르시옵니까.”

“응.”

윤제가 멍한 얼굴로 답했다. 모장이 얼굴을 더욱 깊이 낮췄다.

“입덧이 무척 심하신 모양이옵니다.”

윤제가 망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입덧이란 게 저런 건가.”

태자의 하문에 고태의가 스윽 소리도 없이 다가와 아뢰었다.

“사람에 따라 경중이 다르옵니다. 태자비전하께서는 중하신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경향을 보이신 듯하옵니다. 앞으로 통상 한두 달, 저 증상이 이어지실 겁니다. 무척 특별한 경우에는 산달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을까지……?”

“송구하옵니다.”

윤제가 허탈한 얼굴로 되묻자, 고태의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렸다. 넋을 잃은 듯한 윤제의 시선 끝에 어색한 웃음을 걸고 있는 등우가 걸렸다. 태감은 태자의 언짢은 표정을 평화로운 얼굴을 받으려 애썼다. 윤제가 웃는 등우를 보고 더욱 인상을 그렸다.

등우는 개의치 않았다.

윤제의 뚱한 얼굴을 모르는 척하며 미리 준비해 놓은 의자를 척하니 대령했다. 호화로운 옷자락을 떨치며 의자에 앉은 윤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저 녀석 뭘 낳으려고 저러지.”

우울함 가득한 말에 등우가 평온한 음성으로 답했다.

“황손을 낳으시려는 게지요.”

귓가에 울리는 당연한 말에 윤제가 한심해하는 시선을 힘껏 건넸다. 모장과 고태의도 등우의 모자란 말에 눈치를 주는 눈길을 보냈다. 서로가 서로를 힐끗대는 셋을 윤제가 유심히 돌아보았다.

“채찍을 휘둘러서 나를 안에 들여보낸 건가.”

태자의 조용한 물음에 모장이 딴청을 부리며 답했다.

“오해이십니다.”

“모 상궁이 이 사람을 미워하였지.”

윤제가 고요히 투덜댔다.

“소인이 감히 불경한 마음을 품겠습니까……!”

“아까 내게 문을 이렇게 열어 주었지.”

모장의 부정에 윤제가 과장 심한 아이처럼 손짓으로 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오해이십니다, 전하! 비전하께오서 전하께는…….”

모장이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 했지만, 번번이 투덜대는 저음에 막혔다.

“이 사람이 부덕하여 사랑을 받지 못해 채찍에 맞을 뻔한 거지. 전부 나의 탓이야. 그러고 보니 비가 나를 박대해 차를 주지 않으려고 할 때 모 상궁이 모질게 돌아서서 가 버리기도 했었지.”

“차를 올리겠습니다.”

“차는 되었고, 탕조를 들이도록 해라. 이 사람이 안쓰러우면 씻는 와중에 향이 적은 차를 함께 올려도 좋겠지.”

윤제가 시름시름 앓는 듯하던 목소리를 거두고 분명한 음성으로 명하였다가, 이어 꿍얼꿍얼 힘없이 덧붙였다.

“탕조를 말씀이옵니까.”

모장이 손짓으로 태자의 명에 따라 지시를 내리며 질문했다.

“방해연 때 손 닦는 가루도 준비하도록 해라.”

“그것으로 될까요?”

“우선 시도해 보고 퇴짜 맞으면 다음은 그때 생각해 보도록 하지. 등우, 최대한 자극 없는 향을 쏘인 옷으로 준비해 오너라. 뭐라도 해 봐야 할 게 아닌가. 언제까지 혼자 독방에 갇힌 꼴로 둘 순 없으니. 한 끼도 못 먹었다고 하니 향 없는 종류로 준비해라.”

태자의 명에 금당대와 영화대 궁인들이 제 각각 바삐 움직였다. 여러 음식을 들이는 시도를 했으나 전부 실패했다는 말을 태자께 올릴까 말까 고민하는 모장의 곁으로 영화대 궁인이 다가왔다.

“손 닦는 가루는 얼마나 준비하올까요.”

궁인의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은 윤제였다.

“온몸을 닦을 만큼 준비해라. 그리고 들이는 데 실패했던 건 전부 제외해.”

윤제가 몸을 일으켰다. 모장이 움칫 튀려는 얼굴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낮췄다. 탕조가 든 방으로 향하는 태자의 뒤로 등우가 따랐다.

등우의 손에는 속이 깊은 큼직한 회완이 들려 있었다. 회완에는 방해연 때, 게의 비린내를 씻어 내는 가루가 담겨 있었다.

궁인들은 급조해 만든 가루를 방으로 들이고, 추가로 들일 가루를 분주히 준비했다. 국화 꽃잎과 계수나무 꽃잎의 꽃술이 뿌려진 녹두 가루가 제 역할을 해 주기를 모두 간절히 바랐다.

국화 꽃잎과 계수나무 꽃잎의 꽃술, 녹두 가루는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윤제는 세 번이나 전각 밖으로 내쫓겼다. 손에 든 그릇에 담긴 음식이 문제였다.

용아는 거의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육고기와 물고기, 향이 짙은 과일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마늘, 파, 부추, 염교, 무릇이 든 음식은 몸이 배척했다. 향이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도 가까이 오면 물 냄새나 풀 냄새가 난다고 질색했다. 모장은 고민 끝에 쫓겨나는 윤제에게 맹물에 얼음 설탕을 녹인 것을 들려 보냈다.

“나, 냄새나?”

윤제가 자꾸 안으로 들려는 것을 처음엔 온 얼굴로 거부하던 용아는 우울한 저음에 조금씩 누그러졌다. 언제까지 사람을 피할 수도 없으니 적응해 보고자 마음을 바꾸었다.

남자가 들고 오려는 음식들은 곤란했지만 의외로 방 안에 든 윤제에게서 별 냄새가 없어서, 경계 하는 짐승처럼 코를 몇 번이나 킁킁 울렸다.

모장이 고민 끝에 들려 보낸 단물은 끝에는 괴상한 퀴퀴한 단맛이 났지만 냄새만 맡아도 끔찍한 다른 것들보다 나아서 꾹 참고 단숨에 들이켰다. 하루 종일 먹은 것 없다가 단물이라도 마시니 살 만했다.

뱃속을 아쉬운 대로 채운 후에야 자신의 눈치를 보며 멀찍한 곳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용아가 신경이 날카롭게 선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아니야. 그런데 나 아직도 냄새나?”

사람 누린내는 최악이었다.

“조금?”

어떤 방책을 썼는지 뒷걸임치며 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냄새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용아는 사람 냄새라는 걸 오늘 처음으로 맡으며 인간도 짐승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속이 울렁일 만큼은 아니지만 윤제를 얼마나 가까이 두어도 좋을지 몰라서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여기 있을게. 뭐 시킬 것 없느냐.”

윤제가 내실 초입에서 자리를 틀며 말했다. 용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벗어 둔 옷을 슬그머니 밀었다.

“이거.”

입을 떼고 보니 이런 불경이 또 없었다.

“치울까?”

본의 아니게 태자를 손끝으로 부리게 되었다. 여전히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었지만, 겸연쩍음에 핑계를 대듯 웅얼거렸다.

“네. ……저 토했어요.”

윤제가 이쪽으로 밀려온 옷을 챙기다 멈칫했다. 괜찮으냐, 물으며 다가오려는 남자에게 용아가 예민함이 도드라지게 표출되는 얼굴로 싸늘하게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미안해.”

“괜찮습니다.”

윤제의 사과에 답하는 얼굴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싸늘했다.

용아의 성정은 평소의 열배쯤 예민했고, 신경은 백배는 더 날카로웠다.

후각은 짐승처럼 발달해 세상 모든 냄새가 코끝을 어지럽혔다. 예리한 후각은 백배는 날카로워진 신경을 더욱 예민하게 했고, 평소의 열배쯤 예민해져 있는 용아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존재가 되었다.

항상 표정 없이 무심하던 정결한 얼굴에 예민함과 신경질적인 기색이 더해지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더해졌다. 단호한 태도로 거절해 오면 무방비한 마음이 섭섭함에 움칫하면서도 왜인지 다시 말을 걸어 거절당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이 들었다.

윤제가 방을 나서기 전에 은근한 목소리로 불렀다.

“용아.”

“예.”

대답하는 목소리가 예민하였다. 날카롭고, 싸늘하고, 도도하기 그지없었다. 윤제가 무척 곤란한 웃음을 퍼트리며 나직이 고백했다.

“나 너 정말 좋아하나 봐.”

“네?”

“아니다.”

윤제가 뜬금없는 고백과 뜬금없는 부정의 말을 건네고 방을 나섰다. 네가 신경질부리며 거절의 말을 할 때마다 움칫움칫 좋다고 하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테니, 진실을 내뱉을 수 없었다. 네가 저리 가세요, 라고 말할 때 왜인지 더 좋아진다는 괴상한 고백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밖으로 나선 윤제는 영화대 모든 전각과 물품을 방해 비린내를 씻는 녹두 가루로 닦아 청소하라 하명했다. 그리고 신경질적인 매력이 넘치는 이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