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 달 뒤-
“저녁 드시러 오세요.”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서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힐끗,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확인한 서규하는 미련 없이 TV 전원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규영이는요?”
“손 씻으러 갔어요.”
타이밍 좋게 욕실 문이 열리면서 아이가 나왔다. 아빠를 발견한 규영이가 활짝 웃으면서 달려왔고, 서규하는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주방으로 향했다.
“와아.”
식탁을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늘 그렇듯 맛깔스러운 가정식 반찬이 담긴 접시가 여럿이고, 나직한 뚝배기에는 갈비찜이 잔뜩 담겨 있었다.
화려한 비주얼에 죽여 주는 냄새까지 더해져서 군침이 절로 돌았다. 자리에 앉은 서규하는 허겁지겁 갈빗살을 뜯기 시작했다.
“입에 맞으세요?”
“네. 완전 맛있어요.”
빈말이 아니라 입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았다. 덕분에 밥 한 공기를 비우는 건 금방이었다. 마지막 한 숟갈을 떠서 야무지게 입 안으로 밀어 넣는데, 돌연 실소를 닮은 웃음이 흘렀다. 시선은 슬쩍 아랫배를 향한 채였다.
‘……규영이 때도 그러더니.’
이내 서규하는 빈 밥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걱으로 양껏 밥을 퍼서 꾸역꾸역 눌러 담는데 규영이가 갑자기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응?”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서규하는 깜짝 놀랐다. 언제 왔는지 이차영이 주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은 하던 일을 마저 한 뒤에 서규하는 든든해진 밥그릇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회식 있다고 안 했어?”
“어. 근데 몸이 좀 안 좋아서.”
“몸이 안 좋다고?”
서규하의 얼굴에 살짝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똑같이 뒹굴어도 끄떡없고, 아직 이삼일 정도는 날밤 새우는 것도 거뜬한 녀석이 몸이 안 좋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디가 안 좋은데.”
“그냥. 컨디션이 좀 나쁜데,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뭐.”
“병원에 가 봤어?”
“집에 오는 길에 들렀는데 별 이상은 없다 하고, 비타민 주사만 맞고 왔어.”
“오늘은 일찍 자. 서재에 처박히지 말고.”
“그래야지.”
도우미가 눈치껏 새 밥그릇과 국그릇을 이차영 앞에 놓아 주었다. 짧게 감사 인사를 한 뒤에 이차영은 숟가락을 들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도 한 점 집어 들었는데, 갑자기 치미는 토기에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래?”
이번에야말로 서규하는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잠시 후, 냉수로 간신히 속을 진정시킨 뒤에 이차영은 고개를 들었다. 분명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갈비를 보자마자 설핏 인상이 구겨졌다.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고기 냄새 맡으니까 속이 메스꺼워서……. 점심때 먹은 게 체했나?”
“뭘 먹었길래 그래?”
타박 섞인 말투와 달리 표정에는 염려가 묻어났다. 이차영은 서규하를 안심시킨 뒤에 다시금 식사를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와 달리 서규하는 전투적으로 갈비를 뜯었다. 이차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봄가을도 아닌데 유달리 입맛이 돌기라도 하는지, 얼마 전부터 저녁마다 두 공기가 기본이었다.
“천천히 많이 먹어.”
“안 그래도…….”
고개도 안 들고 대꾸하던 서규하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 이쪽을 향했다. 그러길 잠시, 이내 서규하는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아빠,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냐.”
말과 달리 아무것도 아닌 반응이 아니었다. 잠시 후에 서규하는 웃음을 겨우 참는 얼굴로 이차영을 불렀다.
“잠깐 이쪽으로 와 봐.”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이차영은 말없이 냉큼 몸을 일으켰다. 옆에 멈춰 선 녀석의 손목을 붙잡아서, 서규하는 천천히 자신의 복부로 가져갔다.
“흠, 크흠.”
막상 말을 꺼내려니 쑥스러워서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슬쩍 붉어진 얼굴로 녀석의 시선을 마주했다.
“나, 그때 약 안 먹었어.”
“응?”
“……지난달 말에 너랑 같이 있었잖아. 그때 네가 놓고 간 약 안 먹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도중에 콘돔이 찢어지긴 했어도 사정하기 전이었고, 그 뒤로는 계속 제대로 끼고 했었다. 또 이차영은 러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임신 테스트기를 써 봤더니 빨간색 두 줄이 나타났다. 혹시 몰라 찾아간 병원에서도 결과는 똑같았다.
“잠깐, 그러면…….”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면서, 서규하는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답지 않게 쑥스러움이 차오르며 귀 끝이 붉어졌다. 하지만 곧 이차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서규하는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로 녀석의 허리께를 손등으로 툭 쳤다.
“둘째 키울 준비 됐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