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속도를 줄인 차가 국제선 청사 근처에서 멈춰 섰다. 곧 옆좌석에서 달칵하고 안전벨트 푸는 소리와 함께 최승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형.”
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최승화였다. 귀찮아서 택시비를 준다고 했지만, 집요하고도 뻔뻔하게 계속 들러붙어서 서규하는 마지못해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다.
“얼른 내려. 뒤에 차 온다.”
커다란 대형 버스가 다가오는 것이 사이드미러에 비쳤다. 옆 차선으로 지나칠 걸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데,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옆에서 거듭 말을 걸었다.
“형.”
“왜.”
“저, 형 덕분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거 같아요.”
“뭔 소리야?”
그제야 힐끗 옆을 쳐다보자 트레이드 마크 같은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형이 툴툴대거나 위험하게 말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요. 아, 험하게요.”
“미친놈이네.”
“딱 그런 거요.”
“봐주니까 기어오르지?”
험악하게 표정을 굳혔지만 뻔뻔한 자식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계속 웃기만 할 뿐이었다. 미친놈. 못 웃어서 죽은 귀신도 아니고.
그러니까 어제, 자기가 실수했다고 사과했던 그때를 기점으로 최승화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물론 그 전에도 말을 좀 싸가지 없게 했을 뿐이지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거나 사람 진짜로 열받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형, 형’ 하면서 쓸데없이 계속 말을 붙여대는 게 첫날 봤던 그놈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엔 좀 더 친해져요. 방학 되면 또 놀러 올게요.”
“이제 집에선 안 재워 줘. 얼른 내려.”
한 번 더 축객령을 내렸더니 그제야 최승화는 차에서 내렸다. 짐을 꺼내고 트렁크 문을 닫았는지 차체가 살짝 흔들렸고, 곧 조수석 창문에 대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검지를 아래로 향하는 제스처를 보고 서규하는 마지못해 창문을 내렸다.
“내 자리에 있는 거, 형 선물이에요.”
그러고 보니 조수석 시트 위에 커다란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최승화가 먼저 말을 이었다.
“덕분에 잘 있다 가요. 다음엔 형이 우리 집으로 놀러 오세요.”
“갈 거 같아?”
“에이, 또 그런다. 그럼 진짜 갈게요.”
꾸벅, 정중하게도 고개를 숙인 뒤에 최승화는 뒤돌아섰다. 그래도 먼 길 가는데 들어가는 거나 보고 가자는 마음에 서규하는 녀석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후, 게이트 앞에 멈춰 선 녀석이 뒤를 돌아봤다.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크게 흔들어대더니 다시금 캐리어를 끌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피식 웃으며 그제야 시선을 거두는데, 문득 조수석에 있는 쇼핑백이 눈에 띄었다. 서규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서 안에 든 것을 꺼내 봤다.
외국물 오래 먹었다는 놈이 홍삼 좋은 건 어찌 아는지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들어 있고, 겉면에 꼬부랑 글씨가 적힌 각종 영양제도 가득했다.
‘쓸데없는 거겠거니’ 하고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의외로 개념 있는 선물이었다. 쇼핑백 안에 다시 집어넣는데 차량 수납함 위에 잠깐 올려 둔 핸드폰이 징징대며 전화가 왔다. 서규하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 공항에 잘 도착했어?
이차영이었다. 아까 대뜸 ‘승화, 공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면서?’ 하는 문자가 왔는데, 전화까지 온 걸 보니 어지간히 제 사촌 동생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어. 방금 들어갔어.”
- 고생했어. 기사님 보내준다고 해도 고집을 안 꺾더라.
생각하면 할수록 둘의 재질이 비슷한 것 같았다. 반반한 낯짝이라든가, 사람 마음 무장해제시키는 미소를 습관처럼 짓는 거라든가, 그러면서도 웬만해선 고집을 꺾지 않는 지랄 맞은 점 등등.
- 집으로 바로 갈 거야?
“아니. 카페에 있다가 규영이 데리러 갈 거야.”
- 규영이가 엄청 좋아하겠네. 조심해서 들어가.
“알았어.”
서규하는 먼저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오늘 언제 와?”
- 일 끝나면 바로 가야지.
“그니까 그때가 언제냐고.”
- 처리할 게 좀 많긴 한데……. 되도록 일찍 갈게.
금세 웃음 띤 목소리로 묻는 말이 이어졌다.
- 나 보고 싶어?
“지랄. 끊는다.”
가차 없이 전화를 끊은 뒤에 서규하는 천천히 핸들을 돌려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
별생각 없이 시청하던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고 시끄러운 광고가 흘러나왔다. 한쪽 팔로 머리를 괸 채 TV를 보던 서규하는 멀찍이 놓여 있는 핸드폰을 끌어와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된 것을 확인하고는 못마땅하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일 끝나는 대로 온다더니.”
늦어도 10시쯤엔 올 줄 알았는데 이차영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빤히 쳐다보고 있던 시간이 49분에서 50분으로 바뀌었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 생각으로 핸드폰 잠금을 푸는데, 마침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퍼뜩 일어서서 침실 밖으로 나가자 이차영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급하게 컨펌해야 되는 일이 생겨서 정신없었어. 근데 왜 여기 있어?”
“뭐?”
“내일 30일이잖아.”
무슨 뜻이냐고 따져 물으려다가 서규하는 금세 입을 다물며 뒷목을 어루만졌다. 어째 저녁때부터 묘하게 몸이 축축 처지고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싶었는데, 이차영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녀석이 언제 오는지에만 온통 신경이 쏠린 탓에 오늘이 며칠인지도 잊고 있었다.
“얼른 씻고 와.”
“알았어.”
홀로 남게 된 서규하는 팔짱을 낀 채 소파 주변을 서성거렸다. 방금 귀가한 참이니 페로몬은 풀지도 않았을 텐데, 희미하게 남아 있는 향수의 잔향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늘 그렇듯 일반적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아도, 어쩌면 벌써 히트 사이클이 시작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한 초조함마저 들었다.
‘……지금이라도 약을 먹는 게 낫나.’
힐끗,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여기저기 손 닿는 곳에 억제제를 구비해 뒀고, 침실에 냉장고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약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규하는 곧 시선을 거뒀다. 가뜩이나 잠이 빨리 드는 편인데, 약에 수면제 성분도 들어 있어서 먹으면 곧바로 곯아떨어질 게 뻔했다. 그리고 먹든 안 먹든 알파 페로몬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오늘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뒤늦게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니 잠시 후에 이차영이 옷을 갈아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직 침실에 있는 자신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자러 안 갔어?”
별말도 아닌데 괜히 뭔가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벌떡 일어선 서규하는 코앞에서 이차영을 마주 보고 섰다.
“오늘 여기서 잘 거야.”
“여기서 잔다고?”
“왜. 싫어?”
“그게 아니라, 너 오늘, 우웁!”
녀석의 뒷목을 확 끌어당기며 다짜고짜 입술을 겹쳤다. 느닷없는 접촉에 놀란 것도 잠시, 이차영은 곧 눈을 감고 기꺼이 키스에 응했다. 녀석이 이렇게 먼저 다가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물면서 빨고, 깊숙이 혀를 밀어 넣어 상대의 입 안 곳곳을 핥고, 서로 싸우는 것처럼 혀를 비벼대고. 키스 못 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서로를 격렬하게 탐한 뒤에 서규하는 곧장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를 훌렁 벗어 던졌다.
“하자.”
뭘 하자는 것인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시작부터 이토록 적극적인 모습은 오랜만이었기에 이차영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겠어? 힛싸 기간에는 나랑 같이 있는 것도 힘들어하잖아.”
살며시 뻗은 손이 서규하의 뺨에 닿았다. 순간 서규하는 움찔했지만, 손을 쳐 내거나 피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귓가가 붉게 물들었다. 방금 한 키스 때문에 안 그래도 반쯤 발기했는데, 녀석의 체온이 닿으니 오싹 소름이 돋으면서 젖꼭지까지 단단해졌다.
뺨에 닿아 있는 손을 사타구니로 끌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일었다. 실제로 녀석의 손을 붙잡으면서 서규하는 조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거듭 재촉하듯 말했다.
“할 거야, 말 거야? 예, 아니오 로만 대답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이차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
춥, 추웁- 질척이는 타액 소리가 사타구니 사이에서 계속 났다. 나직하게 내뱉는 간헐적인 신음이 이차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열에 들뜬 시선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서규하를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굵은 기둥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뜨겁고 미끈한 혀가 귀두를 핥아대는 감각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당장에라도 목구멍 깊숙이 처박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면서 이차영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없어. ……그냥, 하고 싶어서 그래. 싫어?”
눈을 치뜨고 묻는 말에 이차영은 퍼뜩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좋아서 죽을 거 같아.”
“오바하기는.”
밉지 않게 핀잔을 준 뒤에 서규하는 또다시 이차영의 기둥을 붙잡고 쪽쪽 입을 맞췄다. 아래쪽까지 내려가서 묵직한 음낭을 우물대며 빨다가, 역으로 점점이 올라가면서 툭 불거진 혈관 위를 핥아댔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면 별일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성격이 단순한 만큼 이미 지나간 일은 곧잘 잊어버리는 편이지만, 그저께 최승화가 술김에 주절댔던 말들은 어쩐 일인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앙금처럼 마음속에 가라앉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겨울 방학. 엄마 말 들으면 친구들끼리 여행을 보내 주겠다는 꼬임에 홀랑 넘어가서 페로몬 억제술을 받았고, 그 일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 있을 때 힛싸가 와서 난리가 날 뻔했던 때를 생각하면 왜 더 일찍 하지 않았는지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덕분에 거리낄 것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아왔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알파한테 코가 꿰이고 애까지 낳게 된 건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긴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건 서규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자 셋이서 서로 부대끼고 사는 데 이젠 완전히 익숙해졌고, 집에만 매여 있는 게 아니라서 큰 불평이나 불만도 없었다.
그저……. 한 번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남자 오메가가 자길 낳았는데 규영이는 괜찮을까? 지금은 아직 어리니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머리가 좀 더 커지면 속을 엄청 썩이거나 어긋나지는 않을까?
의문을 가장한 마음의 짐은 또 있었다. 이차영은 진짜 괜찮은 걸까. 알파 페로몬을 아무리 흘려 대도 나는 모르는데. 끽해야 피부로만 겨우 느낄 수 있을 뿐이고, 녀석이 오메가 페로몬을 맡을 일도 평생토록 없을 텐데.
그런 상태에서 최승화가 던진, 이차영이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차영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한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 녀석이 일찍 퇴근하길 기다린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평소처럼 변함없이, 지금도 여전히, 알파로서 자신을 뜨겁게 원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추웁, 하아….”
한동안 물고 빨며 원하는 만큼 실컷 맛을 본 뒤에야 서규하는 고개를 들었다. 타액으로 흥건하게 젖은 입가를 대충 훔치고는 그대로 이차영을 침대에 밀어 눕혔다.
“오늘은 내가 할 거야.”
“응. 마음대로 잡아먹어.”
저와 달리 여유가 철철 넘치는 태도에 서규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별다른 말 없이 이차영의 골반 위에 걸터앉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목선을 따라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매끈한 피부에 가볍게 이를 세우자 이차영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멋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목에 페로몬 분비선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서규하도 알고 있었고, 피부가 묘하게 선득해지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차영이 성적인 페로몬을 조금씩 흘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지한 순간, 손도 대지 않은 페니스가 꿈틀대며 선액이 흘러나왔다. 조금 조급해진 마음으로 몸을 일으킨 서규하는 이차영의 중심부를 내리누르듯 밀착한 다음 빙글빙글 엉덩이를 돌려댔다.
“흣, 하아….”
자신은 아직 바지를 벗지도 않았는데, 은밀한 곳이 서로 비벼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쾌감이 일었다. 삽입한 것처럼 계속 엉덩이를 돌려대면서 서규하는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애무했다.
이번에는 이차영의 울대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흥분하면 늘 그렇듯 눈가를 붉게 물들인 채, 야릇한 신음을 흘리면서 본인의 가슴을 스스로 만지는 모습이 그 어떤 자극적인 영상보다 더 야하게 보였다.
“넣고 싶어, 규하야.”
“흐읏!”
이차영이 뻗은 손이 뺨에 닿는 순간 서규하는 흠칫 놀라며 자지러졌다. 예상치 못한 격렬한 반응에 이차영도 덩달아 놀랐다가 금세 이유를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어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지금 서규하는 히트 사이클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규영이를 낳은 뒤로는 아무리 억제제를 먹어도 극미한 알파 페로몬조차 못 견뎌 해서 월말엔 사흘 정도 각방을 쓰곤 했다. 그런 시기에 알파인 자신과 침대에서 이러고 있으니 아무래도 버거운 모양이었다.
“억제제는 먹었어?”
“……먹었어.”
이차영은 말을 잇는 대신 천천히 두 손을 움직였다. 탄력 있는 둔부를 움켜쥐기 무섭게 거듭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굳히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어쩌면 히트 사이클이 벌써 시작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덩달아 열기가 고조됐다. 안타깝게도 오메가 페로몬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지만, 처음으로 녀석의 발정기 때 섹스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이 차올랐다.
정신적인 흥분감은 신체의 변화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꿈틀대며 요동치는 페니스를 느낀 서규하가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차영을 쳐다봤다.
“갑자기 왜 더 커져?”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이차영은 한 번 더 서규하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밤새도록 범하고 싶어. 내 페로몬으로 절여질 때까지.”
“미친…….”
“얼른 넣게 해 줘. 응?”
아래를 슬쩍 쳐올리는 허릿짓에 서규하는 신음을 삼켰다. 또 한 번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으면서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입으로 빨아주기도 전부터 발기했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서둘러 바지를 벗은 다음 협탁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주욱, 손바닥에 대고 양껏 짜낸 젤이 손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뒤쪽으로 손을 가져가서 손가락 두 개를 동시에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몇 번 천천히 찔러대다가, 하나를 더 보태서 세 개까지 밀어 넣었다. 고작 손가락 하나가 더 늘어난 것뿐인데 확연히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가 해 줄까?”
“가만히 있어. 오늘은 내가 한다고 했잖아.”
잠시 후에 서규하는 엉덩이를 살짝 치켜들었다. 왼손으로 본인의 상체를 지탱하고,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서 계속 아래를 넓혀갔다. 받는 쪽인 섹스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조금도 풀지 않고 그냥 넣는 짓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서규하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뒤쪽에서 질척이는 음란한 소리가 났다. 꼿꼿이 발기한 성기에서는 선액이 간헐적으로 뚝뚝 방울져 흘러내리면서 이차영의 복부를 적셨다.
“하아…….”
툭 불거진 이차영의 울대가 또 한 번 요동쳤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서규하의 몸을 뒤집어엎고 그대로 페니스를 찔러 넣고 싶었다. 단숨에 뿌리 끝까지 처박은 채, 울음이 터질 때까지 사정없이 범하고 싶었다.
“내 거, 넣어 줘.”
“아직 안 돼. 조금만 더 풀고…….”
“넣어 줘. 응?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을게.”
콩깍지가 쓰여서 그런 걸 알면서도,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니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서규하는 두어 번 정도 크게 안을 휘저은 뒤에 손가락을 빼냈다.
흠뻑 젖은 손을 시트에 대충 슥슥 문질러 닦고는 아까 젤과 함께 잡히는 대로 꺼냈던 콘돔 중 하나를 집어서 이로 포장을 찢었다. 서둘러 이차영의 페니스에 씌운 다음, 끝부분을 입구에 맞추고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읏….”
어쩔 수 없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늘 그렇듯 아래가 한껏 벌어지는 압박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 순간만 지나면 어떤 쾌감을 느낄 수 있는지 알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허리를 내리며 이차영의 것을 삼켜갔다.
“하아…….”
마침내 서로의 피부가 맞닿으면서 아래가 완벽하게 맞물렸다. 그 상태로 잠깐 숨을 고르다가, 서규하는 두 손으로 이차영의 복부를 짚은 다음 앞뒤로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막상 하나가 되니 어서 빨리 더 갖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읏, 아, 앗, 하읏!”
명목뿐인 발정기이지만 그래도 히트는 히트인 걸까. 뭐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서규하는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흔들어댔다. 반쯤 뺐다가 푹 주저앉을 때마다 단단한 귀두가 내벽을 밀어 올리면서 경련이 일 정도의 쾌감이 전신으로 퍼져갔다.
이차영도 미칠 것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서규하가 바라는 대로 해 줄 생각이었지만, 들썩이며 제 걸 먹어 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팔, 뒤로 뻗어 봐.”
“뭐?”
“뒤로 팔 뻗어서 내 허벅지 짚으라고. 다리는 벌리고.”
시키는 대로 위치를 바꾸자, 손바닥 아래로 단단한 허벅지 근육이 느껴졌다. 그 상태로 서규하는 두 다리를 옆으로 살짝 벌린 채 또다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아, 흣! 응, 하, 아앗!”
아래가 완전히 개방된 탓에 결합부가 훤히 드러났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외려 타 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차영의 시선에 더 큰 흥분감이 차올랐다. 피부가 계속 따끔하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있는 대로 페로몬을 내뿜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서규하의 얼굴과 아래쪽 결합부를 번갈아 바라보며 탐닉하던 이차영이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이내 무릎을 반쯤 세우며 상체를 일으켰다.
“잠깐만, 규하야.”
“왜 그래?”
“잠깐 밑에 좀 확인할게.”
뭘 확인하겠다는 것인지 묻기도 전에 곧바로 자세가 반전됐다. 힘들이지 않고 서규하를 침대에 눕힌 다음 이차영은 줄곧 녀석의 안에 파묻고 있던 페니스를 천천히 빼냈다.
이내 얼굴 전체로 곤혹스러움이 번졌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콘돔 윗부분이 실처럼 가늘게 찢긴 것이 보였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감지한 서규하가 거듭 재촉하는 투로 물었다.
“왜 그러는데.”
“……콘돔이 찢어졌어.”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설마 자기 스스로 찢어지는 재주는 없을 테니, 아까 씌워 줄 때 마음이 급한 나머지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가서 약 사 올게.”
“잠시만!”
당장에라도 나가려는 녀석을 서둘러 붙잡았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모른 척하면서 서규하는 말을 이었다.
“그냥 해. 아직 안 쌌으니까, 콘돔만 새로 끼면 되잖아.”
“…….”
“계속하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하자’면서 당장 다시 몸을 겹칠 것을 내심 기대했지만, 이차영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잠깐 애먼 곳을 바라보더니 다시금 눈을 맞추면서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약부터 먹자.”
“…….”
“힛싸 때 섹스하는 거 처음이잖아. 나 지금 너무 흥분한 상태라서, 한시라도 빨리……!”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몸이 침대 위로 풀썩 넘어갔다. 이차영을 밀어 넘어뜨리며 올라탄 서규하가 군림자 같은 표정으로 녀석을 내려다봤다.
“하자면 하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렇게 단단하면서.”
성기를 꽉 움켜쥐자 이차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것도 자극이랍시고 꿈틀대며 요동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일 먹을게. 그래도 안 늦어.”
“규하야…….”
“지금 당장 박을 건지, 아니면 나갈 건지 선택해. 참고로 지금 나가면 1년 동안 각방이야.”
페니스에서 손을 뗀 서규하가 기둥 뒷면에 대고 엉덩이를 비벼 댔다. 이차영은 움찔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문과도 다름없는 상황에 목 안쪽에서부터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래도 계속 헛소리를 할 거냐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눈빛에 마음이 갈대처럼 마구 흔들렸다. 솔직히 말하면 콘돔이고 뭐고 간에 당장 다시 꿰뚫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괜찮겠어?”
“괜찮다고! 할 거야, 말 거야?”
“……할 거야.”
“할 거면서 존나 튕기기는.”
이겼단 표정으로 피식 웃은 서규하가 고갤 숙여 이차영의 입술을 찾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휘감고 진득한 키스를 퍼부으면서 이차영은 어렵지 않게 자세를 다시 반전시켰다.
옆에서 뒹구는 새 콘돔을 집어 들어 급하게 씌운 다음 서규하의 다리를 양옆으로 크게 벌렸다.
“잠깐만! 오늘은 내가,”
“미안. 이제 못 기다려.”
“아…!”
곧장 아래가 벌어지며 묵직한 것이 치고 들어왔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이차영은 마구잡이로 안을 들쑤시며 허리를 움직여댔다. 꼿꼿하게 발기한 서규하의 페니스를 쓸어 주다가 상체를 구부리며 지척에서 눈을 마주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성인이 된 이후에 다시 만나서 다행이야.”
“무슨 말이야?”
“너랑 계속 같이 있었으면 중학생일 때 애 아빠가 됐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미친…….”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뒤늦게 질색하며 면상을 밀어냈지만, 이차영은 손쉽게 저지하면서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또다시 격렬한 허릿짓이 이어졌다. 서규하는 두 손으로 이차영의 어깨를 꽉 움켜잡은 채 아래에서부터 퍼지는 쾌감에 울부짖듯 신음했다.
“흣, 아, 흐, 아앗!”
이런 놈인데, 잠깐이나마 녀석의 마음을 의심했단 사실이 민망할 정도였다.
‘계속 같이 있었으면, 중학생일 때 애 아빠가 됐을지도 몰라.’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이차영이라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묘한 흥분감이 차올랐다. 이래서야 똑같이 변태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히트라서 그런가. 오늘따라, 크읏, 안이 엄청 뜨거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쿠퍼액으로도 임신시킬 수 있을 거 같아.”
“미친 소리, 흣, 좀, 그만해.”
“너무 좋다, 규하야.”
이후로도 이차영이 쏟아내는 음담패설은 그칠 줄을 몰랐다. 입으로는 제발 좀 닥치라고 타박하면서도, 서규하는 여느 때보다 들뜬 신음을 흘리면서 제 안에 든 것을 꽉꽉 조여 댔다.
‘박스 안에 콘돔이 몇 개나 남았더라…….’
“우웁-.”
잠깐 딴생각한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이차영이 또다시 입술을 겹쳤다. 서규하는 기꺼이 입술을 벌리면서 녀석의 혀를 받아들였다. 장담컨대 오늘은 한두 번으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목이 타는 갈증에 서규하는 눈을 떴다. 정신이 들자마자 든 생각은 ‘아, 죽겠다.’였다.
“아오, 썅…….”
몸을 움직인 순간 절로 욕이 나왔다. 그간의 경험으로 오늘 같은 날에는 아침에 움직이는 게 버거운 걸 알아서 천천히 일어났는데도 밤새 짓밟힌 사람처럼 온몸이 아팠다.
있는 대로 미간을 구긴 채 잠깐 앉아 있다가 뒤늦게 눈을 뜨고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냉장고에 든 생수병으로 목부터 축인 다음,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절뚝대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상반신에는 키스 마크투성이였지만 이젠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
반쯤 눈을 감은 채 무성의하게 칫솔질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반바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밀부 주변을 더듬으니 열이 나긴 해도 손에 묻어 나오는 건 없었다. 속옷도 제대로 입혀져 있는 걸 보니, 잠든 사이에 뒤처리를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지.’
잠깐 어제 일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구멍이 욱신대는 것 같았다. 어서 다시 눕고 싶은 생각에 서규하는 퍼뜩 양치질과 세안을 끝내고 침실로 되돌아갔다.
“진짜 죽겠……. 뭐야, 저건?”
갈 때처럼 절뚝거리며 침대 근처까지 이른 찰나였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못 봤는데, 네모난 무언가가 협탁 위에 놓여 있었다.
뭔가 싶어서 들고 확인해 보니 낯선 제품명이 크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사후 피임약’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이차영이 놔두고 간 게 분명했다. 새벽 늦게까지 힘쓰고 아침 일찍 출근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잊지 않고 잘도 챙겨놨단 생각이 들었다.
“…….”
‘사후 피임약’ 밑에는 ‘72시간 이내 복용’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었다. 겉면에 적힌 글자들을 한 번 더 찬찬히 읽어 본 뒤에, 서규하는 밀봉 테이프를 뜯는 대신 상자째로 쓰레기통에 휙 던져 넣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대 위로 올라가서는 모로 누우며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피곤한 육체에 수마가 깃든 것은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