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anniversary
“까꿍!”
“꺄아!”
“까꿍!”
“꺄아!”
두 손을 모아서 얼굴을 가렸다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규영이는 꺄르르 웃으며 몹시도 좋아했다. 서규하가 까꿍 놀이로 아이의 환심을 사는 동안, 도우미는 능숙한 손길로 외출복을 입혀 주었다. 추운 계절에 걸맞게 솜이 빵빵하게 들어 있는 곰돌이 누빔 우주복이었다.
“이리 와.”
짝짝, 손뼉을 친 뒤에 팔을 뻗자 규영이는 뽀짝뽀짝 기어서 아빠 품에 안겼다. 잘했어. 칭찬과 함께 쪽, 소리 내며 볼에 입을 맞추니 또 한 번 꺄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서규하는 아기 띠를 착용해서 규영이를 안은 다음 도우미에게 시선을 보냈다. 원래도 인상이 좋지만, 조기 퇴근에 유급 휴가까지 주어져서 더욱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만 가 보세요.”
“네.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싹싹한 인사를 남긴 도우미가 먼저 집을 나섰다. 이어서 서규하도 외투를 걸친 뒤에 장난감과 기저귀 등이 잔뜩 들어 있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와 씨, 존나 춥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춥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행여나 아이가 추울세라 서규하는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했다. 카 시트에 규영이를 앉히자마자 재빨리 시동을 켜서 히터부터 빵빵하게 틀었다.
‘아차.’
그러다 뒤늦게 생각난 사실에, 뒷좌석에 놔둔 가방에서 꺼낸 스틱형 과자를 아이 손에 쥐여 주었다. 가는 동안 부디 잘 부탁드린다는 일종의 뇌물이었다.
“바! 바아!”
대번에 좋아하는 녀석을 보며 픽 웃은 뒤에 서규하는 천천히 핸들을 돌려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카 시트 후방 거울을 쳐다보자 규영이는 쫍쫍대며 과자 먹기에 삼매경이었다.
서규하는 안심하고 시선을 거뒀다. 이차영이나 도우미 없이 아기랑 둘이서만 차를 타고 나간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음 놓고 가도 될 것 같았다.
내비에 찍힌 목적지는 부모님 댁이었다. 저녁에 연달아 약속이 있어서 내일까지 부모님께 규영이를 맡기기 위함이었다.
월초에 이차영은 무려 2주 일정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 그동안 서규하는 혼자서 규영이를 돌보느라 고군분투했다. 떠나기 전에 이차영이 농담으로 했던 말처럼 녀석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도우미들이 집에 있는 시간에는 그나마 나은데, 밤이 되면 ‘아기랑 둘만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긴장감이 차올랐다.
행여나 애가 우는 걸 못 들을세라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고, 새벽에 이유도 없이 계속 우는 날에는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이차영의 귀국 예정일인 오늘만 바라보면서 버텼는데……. 아침에 걸려 온 전화 때문에 기대가 와장창 깨져 버렸다. 때아닌 강추위에 폭설이 내려서 비행기 운항이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 무기한 결항 됐다는 소식이었다.
집 걱정은 하지 말라며 의연하게 전화를 끊긴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낙심이 밀려왔다. 당장 녀석을 볼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준비해 오던 게 있는데, 예정이 어긋나 버려서 월요일에 다시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흐, 우앙….”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서규하는 퍼뜩 후방 거울을 쳐다봤다. 착각이 아니었다.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로 규영이가 울먹울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과자 다 먹었어? 아빠가 금방 새거 줄게.”
다급하게 달랬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기 새 부리처럼 조그마한 입술이 씰룩씰룩 움직이더니 급기야 규영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잠깐만. 잠깐만, 규영아.”
계속 뒤를 보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에 일단 서규하는 운전에 집중했다. 타이밍상 신호에 한 번 걸릴 법도 한데 오늘따라 파란색 신호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동안 아기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하는 대성통곡에, 결국 서규하는 급한 대로 무작정 핸들을 꺾어서 골목길 어귀에 차를 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뒷좌석으로 옮겨 타서는 재빨리 규영이를 안아 들었다.
“왜 울어. 응? 과자 줄까?”
서규하는 허겁지겁 가방을 뒤적여서 새 과자를 꺼냈다. 손에 쥐여 주자 ‘오?’ 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안도한 것도 잠시, 눈에 함박 고여 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더니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착하지. 과자 먹자.”
“으응.”
손에 쥔 과자를 입에 물려 줬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쉬했어? 목말라? 아님 아빠가 안아 줄까? 서규하는 우왕좌왕하며 기저귀를 확인하고, 물이 든 젖병도 물려 주고,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이는 등 생각나는 모든 것을 했다. 하지만 규영이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하 씨, 돌겠네 진짜.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서규하는 핸드폰으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엄마!”
- 아이고, 깜짝이야. 엄마 귀 떨어지겠다.
그러든 말든 서규하는 몹시도 다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애가 자꾸 울어.”
- 차에 탄 게 불편해서 그러나? 기저귀는 확인해 봤어?
“어. 안 쌌어.”
- 배고픈 건 아니고?
“맘마 먹인 지 얼마 안 됐어. 과자 먹으면서 잘 놀다가 갑자기 우는데 어떡하지?”
- 지금 어디쯤 왔는데.
“다 왔어. 5분만 가면 돼.”
- 그럼 일단 집으로 와. 규영이 운다고 절대 운전석에 안고 같이 타지 말고, 꼭 카 시트에 앉혀서 와.
“알았어.”
전화를 끊은 서규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이 계속 뚝뚝 흘러내리는 규영이의 눈가를 닦아 주면서 사정했다.
“조금만 더 가면 할머니 집이야. 좀만 참자. 응?”
“흐애애앵!”
우는 녀석에게 어쩔 수 없이 벨트를 다시 채워 주는데 이차영의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울지 마, 응?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부탁한 뒤에 서규하는 서둘러 운전석에 올랐다.
***
초조한 걸음으로 현관 근처를 서성이던 정은희는 초인종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아기 띠를 하고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고, 서럽게 우는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는 얼른 두 손을 뻗었다.
“왔어? 규영이 얼른 엄마한테 줘 봐.”
이윽고 규영이는 정은희의 품으로 넘어갔다.
“규영아, 할머니야.”
“우애애앵!”
“우리 강아지 왜 이렇게 울까? 응?”
잘 있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터라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내려다보며 달래는데 무언가가 뒤늦게 정은희의 눈에 띄었다. 이마와 모자 사이로 손을 집어넣자 뜨겁고도 축축한 습기가 느껴졌다.
“세상에.”
곧장 우주복 모자를 벗긴 정은희는 서둘러 거실 소파로 장소를 옮겨서 아이의 겉옷도 벗겨 주었다. 내의 위에 얇은 옷을 또 하나 겹쳐 입은 것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차며 아들을 올려다봤다.
“손수건 있어?”
“어.”
서규하는 얼른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모친에게 건넸다. 그걸로 아기 이마와 두피를 톡톡 누르듯이 닦으며 정은희는 “우르르, 까꿍.” 하고 손주를 달랬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울음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규영이는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하고 방긋방긋 웃는 미소를 보여 줬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던 서규하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어떻게 한 거야?”
“옷을 많이 입혀서 갑갑했나 봐. 그지, 규영아?”
“바, 바아!”
맞다는 듯 꺄르르 웃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살짝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거 때문에 그렇게 울었다고?”
손주를 품에 안고 우쭈쭈 하던 정은희가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어디 찬 바람 쐬러 가는 것도 아니고, 차에 잠깐 태우면서 옷을 있는 대로 껴입혀 놨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어? 보나 마나 애 추울 거라고 히터도 세게 틀었을 건데, 엄마 말이 틀려?”
“…….”
“덥다고 말도 못 하고, 아빠는 알아채지도 못하고. 우리 규영이만 고생했네.”
듣고 보니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서규하는 뒤늦게 소파에 앉았다.
오는 내내 온 신경을 규영이한테 쏟으며 긴장한 탓에 서규하의 등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옷자락을 펄럭이며 땀을 식히고 있으니 모친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들진 않아?”
“……새벽에 일어나야 되는 거 빼곤 견딜 만해.”
정은희의 얼굴에 금세 기특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막내아들이 신혼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날부터 정은희는 몇 날 며칠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허전함이 2라면 근심 걱정이 8이었다.
두 녀석이 같이 있을 때 분위기도 그렇고, 아기를 낳아서 같이 키우기로 한 걸 보면 서로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아들놈의 성질머리였다. 하루가 멀다고 싸우면 어떡하나, 결혼하는 걸 후회하면 어떡하나, 그로 인해 혹시라도 배 속 애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등등 온갖 걱정이 가실 줄을 몰랐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적어도 애를 낳을 때까진 데리고 있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었다.
하지만 괜한 기우였다. 속사정까지 자세히 알 길은 없긴 해도, 한 번씩 전화 통화를 하거나 주말에 식사라도 같이 할 때면 예상보다 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서 안심이 됐다.
그리고 유축으로나마 아기에게 모유를 먹인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정은희도 무척 놀랐다. 평생을 베타 남성처럼 자라 왔으니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제 아이랍시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애쓰는 것이 느껴져서 볼 때마다 그저 기특할 따름이었다.
이내 정은희는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를 둥기둥기 하며 진심을 흘려보냈다.
“네 아빠 철들었네.”
“……뭐래.”
“할머니랑 노니까 좋아?”
서규하는 픽 웃음을 흘린 뒤에 몸을 일으켰다. 기척을 느낀 정은희가 뒤늦게 고개를 들며 아들에게 물었다.
“차영이는 내일 오는 거야?”
“몰라. 비행기 뜨기 전에 전화 주겠지.”
새삼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라면 오늘 밤 둘이서 불타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망할 비행기 때문에 친구 놈들과 술 타는 밤을 보내게 될 각이었다.
“갔다 올게.”
“잠은 여기서 잘 거지?”
“곰새끼 집에서 잘 수도 있어. 나중에 전화할게.”
“바! 바아! 우으으으….”
얌전히 안겨서 놀던 규영이가 갑자기 서규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차 싶은 생각에 서규하는 재빨리 다시 착석했다. 이제 아빠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아보는지, 애를 데리고 놀다가 잠깐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하면 금세 울먹이기 일쑤였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해 온 아이템이 있었기에 서규하는 곧장 가방을 열었다. 토끼 인형과 딸랑이 두 개를 건네받은 정은희는 자신의 몸으로 아이의 시야를 살며시 가리며 딸랑이로 관심을 유도했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애착 인형을 품에 안은 규영이는 할머니가 딸랑이까지 흔들면서 놀아 주자 다시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그동안 서규하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일어났고, 발소리를 죽여서 재빠르게 현관으로 향했다.
‘잘 놀다가 안 울고 잤으면 좋겠는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카페였다. 오래 일하다가 그만두는 직원이 있어서 다 같이 회식을 겸한 송별회를 하고, 2차로 박찬웅 집에 가서 한잔 더 할 생각이었다.
***
‘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단연코 고기인 모양이었다. 갈비를 외치는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서 서규하는 밤 9시쯤에 카페 문을 닫고 근처 고깃집으로 직원들을 데려갔다.
오늘 회식은 송별회를 겸한 자리였다. 매니저 다음으로 오래 일한 직원이 그만둬서 아쉽긴 하지만, 취업난을 뚫고 원하는 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에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늘 그렇듯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직원들은 취향대로 가득 채운 잔을 부딪쳐 건배하면서 기분 좋은 식사를 이어 갔고, 서규하도 맥주를 마시면서 고기로 배를 채웠다. 슬슬 끝이 보인다고 생각될 무렵,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잔을 채워 주며 분위기를 주도하던 매니저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운을 뗐다.
“2차로 노래방 갈까?”
보통은 저녁만 먹고 헤어지지만 오늘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웠다. 다들 생각이 같은지 만장일치로 ‘가자’는 말이 나왔고, 마지막으로 매니저의 시선은 서규하를 향했다.
“점장님도 가실 거죠?”
“난 빼 줘. 뒤에 바로 약속이 있어서.”
“에이, 그러지 말고 저희랑 같이 가요.”
옆에 앉은 다른 직원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지원사격을 더 했다.
“미선 언니가 점장님 노래 엄청 잘 부른다고 하셨는데 저도 들어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같이 가요. 네?”
서규하는 답지 않게 곤란해하며 대답을 아꼈다. 뒤에 바로 약속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박찬웅한테 11시쯤에 갈 거라고 말해 둬서 지금 출발해도 이미 늦었는데, 더 늦는다고 하면 지랄발광을 하거나 그냥 오지 말라며 성질을 낼 게 뻔했다.
Trrr- Trrr-
마침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여튼 지 욕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지.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는데, 액정에 뜬 이름은 곰새끼가 아니었다. 놀란 표정으로 잠깐 바라보고 있다가 서규하는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나가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뭐 하고 있어?
“직원들이랑 회식하는 중이야.”
술 때문에 슬쩍 붉어진 눈가를 한 채 서규하는 식당 외벽에 등을 기댔다. 아침에도 통화를 하긴 했지만 잠결이라 목소리를 제대로 못 들었는데, 멀쩡할 때 다시 들으니 괜히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겸연쩍은 얼굴로 콧잔등을 매만지면서 서규하는 입을 열었다.
“아직도 눈 많이 내려?”
- 아니, 안 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질릴 정도로 내린다던 눈이 마침내 그친 모양이었다.
“몇 시 비행기로 올 거야?”
- 이제 출발하려고. 회식 장소 어딘지 말해 줘.
뜬금없게 들리는 말에 서규하는 멈칫했다가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회식 장소를 말해 달라고?”
안 봐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웃음 띤 목소리로 하는 말이 이어졌다.
- 저녁 비행기로 귀국해서 방금 집에 도착했어. 데리러 갈게.
혈관을 따라 나른하게 퍼지던 술기운이 단숨에 깨는 소리였다.
***
도로 위를 내달리는 차 안에서 서규하는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네, 진짜.’
힐끗, 곁눈질로 바라본 운전석에는 이차영이 타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두 눈으로 보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녀석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일기예보를 보니 최소 이틀은 더 발이 묶여 있을 듯해서 기차를 타고 인접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말하지 않은 이유는 깜짝 놀라게 해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전은 제대로 먹혔다. 분명 30분 전만 해도 카페 직원들과 오붓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놈과 나란히 차를 타고 집으로 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본 이차영이 픽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나, 집에 온 거 안 좋아? 좀 서운해지려고 하는데.”
“말도 없이 오니까 놀라서 그렇지.”
“말하고 오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그래서, 진짜 집에 온 거 안 좋아?”
“……누가 안 좋대?”
당장 오늘만 해도 규영이가 차 안에서 울어 댈 때 ‘이럴 때 이차영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차영이 집을 비운 동안 베이비 시터 근무 시간을 밤 10시까지 늘려서 육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뭘 해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특히 자려고 누웠을 때 옆에서 치근대며 엉겨 붙는 뜨거운 체온이 없는 게 어색해서 한참 동안 뒤척이다가 겨우 눈을 붙이곤 했다.
“별일은 없었어?”
“없었어.”
“규영이는 계속 우리 방에서 재운 거야?”
“어.”
이차영처럼 자다가도 애 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아기 침대를 가져와서 바로 옆에 두었다. 나중엔 아예 방에서 놀아 줄 때가 많아서 곳곳에 아기 장난감과 인형들이 가득했다.
“아빠 얼굴 안 잊어버렸는지 모르겠네.”
“그 걱정은 안 해도 될걸.”
“응?”
“엄마랑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건데도 방긋방긋 웃으면서 잘만 놀더라.”
그러고 보니 뒤늦게 생각난 사실에 서규하는 옆을 바라보며 물었다.
“애 데리러 가는 거지?”
“아니. 어머니가 봐 주시기로 했다면서.”
맞는 말이긴 한데 의외였다. 애가 자기 얼굴 잊어버렸을까 봐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저녁마다 영상 통화로 주접을 떨길래 당연히 부모님 댁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럼, 집에 바로 가게?”
“아니. 호텔 예약해 뒀어. 오늘은 둘이서 오붓하게 보내자.”
“…….”
서규하의 얼굴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귀국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와중에 호텔까지 예약했다니, 하여튼 손 빠른 건 알아줘야 했다.
잠시 후에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을 태운 고층 전용 엘리베이터는 한 번의 멈춤 없이 빠르게 올라갔다.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단골 클럽 위층에 있는 룸은 물론이고 그 일대 모텔이나 호텔도 빠삭하게 꿰고 있는데, 이차영과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었다.
벌써부터 슬슬 흥분이 밀려왔다. 지난 2주간 서규하는 본의 아니게 독수공방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침대가 허전하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며칠이 지나니 슬금슬금 성욕이 차올랐다.
이래서 습관은 무서운 거였다. 초기에 두어 달 정도 조심했던 때를 빼면 임신한 상태로도 계속 이차영과 섹스를 했고, 출산 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에 몸이 완전히 익숙해져 버렸는지, 딱히 야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밤만 되면 슬금슬금 열이 오르면서 좆에도 힘이 들어갔다.
제가 이런데 이차영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점점 쌓여가는 욕구를 해소하고자 임시방편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폰섹도 여러 번 했지만,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뒤를 쑤셔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드디어 이차영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앞뒤 할 것 없이 근질근질한 흥분이 차올랐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알파의 나체를 떠올린 순간 성감이 확 밀려왔다. 손으로 가슴을 꼬집고, 난잡스럽게 성기를 흔들어 대고, 굵고 튼실한 좆으로 힘껏 박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땡, 하는 알림음과 함께 마침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애가 타는 서규하와 달리 이차영의 걸음은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서규하는 녀석의 손에 들린 키를 빼앗다시피 가져가서 객실 문을 열었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차영의 뒷머리를 끌어당기며 입술을 겹쳤다.
“……!”
이차영은 놀란 듯 눈을 떴다가, 이내 마찬가지로 서규하의 목덜미를 감싸며 기꺼이 키스에 응했다.
등줄기를 따라서 소름이 돋았다. 뜨겁게 휘감기는 혀와 질척이는 감촉이 자극으로 계속 치환되면서 손도 대지 않은 젖꼭지가 꼿꼿하게 일어섰다. 발기한 중심부를 이차영의 허벅지에 비비면서 서규하는 녀석의 앞섶으로 손을 뻗었다.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순간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지퍼를 내려서 이차영의 좆을 꺼낸 서규하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녀석의 것을 입에 물었다.
“규하야!”
당황한 듯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규하는 물러서지 않았다. 외려 뼈대가 굵은 열 손가락이 파고들 듯 힘껏 이차영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입 안 가득 들어찬 귀두를 혀로 쑤시고 핥아 대다가 입을 크게 벌려 깊숙이 삼켰다. 빨리는 게 아니라 빨면서도 신음이 멈출 줄을 몰랐다. 꿈틀대는 단단한 좆이 선액을 흘리며 목구멍 안쪽을 찌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흥분이 차올랐다.
“하아…….”
이차영의 입에서도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펠라에 당황한 것은 잠시뿐이었고, 자극적인 상황에 폭발할 듯한 성감이 차올랐다. 둘 다 빼는 법 없이 본능에 충실한 섹스를 즐기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감겨 있는 두 눈과 곧게 뻗은 속눈썹이 복종의 의미인 것처럼 느껴져서 더 큰 흥분이 밀려왔다. 흥분에 일그러진 얼굴로 서규하를 내려다보다가, 이차영은 커다란 손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붙잡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안쪽까지 박히는 것에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서규하는 고개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외려 힘을 빼고 목구멍을 완전히 열어서 거칠한 음모가 코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받아 내기를 반복했다.
이차영은 사양하지 않고 유연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서규하의 입에 대고 좆질을 했다.
“박아 주니까 좋아? 목으로 끝까지 받는 거 보니까 엄청 먹고 싶었나 봐.”
시발, 빨아 주니까 좋아서 질질 흘리는 새끼가 누군데.
받아치고 싶지만 입이 막혀서 그럴 수 없는 게 억울했다. 펠라는 꽤 오래 이어졌다. 말없이 탄성만 흘리며 서규하의 입 안을 범하던 이차영은 사정감을 느끼고 속도를 낮췄다.
“안에 싸 줄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뒤에 서규하는 오랫동안 물고 있던 페니스를 뱉어 냈다. 생리적으로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엉망으로 젖은 입가를 훔치며 숨을 고르는데, 이차영이 서규하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운 다음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춥, 흐응, 하아….”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에 침대에 이르렀다. 이차영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훌훌 벗어 던진 다음 서규하의 옷도 성마른 손길로 잡아 찢듯이 벗겼다.
“내 위에 올라타서 반대로 엎드려 봐. 나도 입으로 해 줄게.”
“씻고 와서 해.”
“그럴 여유 없어.”
서규하의 손을 붙잡은 이차영이 자신의 고간으로 이끌었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좆이 흉흉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빨리. 응?”
델 것처럼 뜨거운 감촉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결국 서규하는 이차영이 바라는 대로 뒤돌아 올라타서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홀린 듯 손을 뻗어 이차영의 페니스를 붙잡으니 이윽고 뜨거운 무언가가 밀부에 닿는 느낌이 났다.
“……!”
“움직이지 마.”
양손으로 둔부를 벌리자 그러잖아도 훤히 보이던 구멍이 더욱 적나라하게 눈앞에 드러났다. 그에 대고 이차영은 스스럼없이 얼굴을 가져갔다. 키스하는 것처럼 몇 번 가볍게 입을 맞춘 뒤에 혀끝으로 구멍을 간질이며 본격적인 애무를 시작했다.
“하, 씨…….”
서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씹어 댔다. 입으로 해 준다길래 당연히 좆을 빨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뒤쪽부터 건드릴 줄이야.
한껏 예민해진 감각 속에서 헐떡이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젤 대신 안쪽으로 흘려보내는 타액이 마치 최음제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의 성감을 부추겼다. 한껏 벌린 구멍을 진득하게 핥아 댈 때마다 뚝뚝 흘러내리는 선액이 이차영의 가슴팍을 적셨다.
앞쪽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에서부터 뭔가가 새어 나오는 느낌에 서규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만해.”
하지만 이차영은 못 들은 척하며 계속해서 혀를 움직였다. 회음부와 음낭까지 자극하며 애무를 이어 가다가, 아래가 온통 흥건해질 정도가 되어서야 얼굴을 들었다.
젖어서 벌름거리는 구멍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곳에 자신을 파묻었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니 잇새로 욕설이 절로 나왔다.
더는 참지 못하고 한 번에 손가락 두 개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대로 크게 휘저으며 내벽을 눌러 대자 서규하가 발작하듯 몸을 떨며 허물어졌다. 더는 풀어 줄 필요도 없어 보였다. 뜨겁고 찰진 구멍은 어서 빨리 넣어 달라는 듯 오물거리며 손가락을 조여 댔다.
이차영은 서규하의 몸을 앞으로 밀며 상체를 일으켰다. 가쁜 숨을 쏟아내며 덩달아 일어나려는 녀석의 등을 지그시 내리누르며 저지했다.
“그대로 있어. 바로 박아 줄게.”
“…….”
서규하는 달싹이려던 입술을 도로 다물며 엉덩이를 좀 더 높이 치켜들었다. 뒷치기는 상대적으로 삽입이 수월하고, 말 그대로 뚫는다는 느낌이 가장 확실한 체위라서 둘 다 선호하는 편이었다.
무릎을 살짝 벌려 자세를 안정적으로 잡은 다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이제 곧 이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에 내벽이 멋대로 꿈틀거렸다. 그런데 곧바로 박아 주겠다 했던 말과 달리 곤란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어떡하지.”
“뭐가?”
초조함에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자 난감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차영과 눈이 마주쳤다.
“콘돔이 없어.”
난 또 뭐라고. 서규하는 다시금 앞을 보며 대답했다.
“그냥 해. 계속 피임약 먹었어.”
“피임약을 먹었다고?”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선물 같은 거 주고 싶어도 너한테는 딱히 필요한 것도 없을 거고……. 섹스나 진탕 하자 싶어서 병원에서 피임약 받아 왔어. 너, 그냥 하는 거 좋아하잖아.”
첫 번째 결혼기념일인 만큼 뭐라도 해 주고 싶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게 생각나질 않았다. 낯간지러운 이벤트는 보나 마나 이차영이 준비했을 게 뻔하고, 선물을 사 주자니 딱히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몸으로 때우자’였다.
또다시 임신이 될까 봐 극도로 몸을 사리는 걸 알기에, 규영이를 낳고 난 뒤에는 이차영이 매번 알아서 콘돔을 꼈다. 덕분에 큰 걱정 없이 몸을 섞으면서도 아주 가끔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멋모르고 이차영의 좆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뜨거운 것이 내벽에 직접적으로 확 끼얹어질 때의 느낌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하.”
잠시 후에 이차영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감히 장담하건대 결혼기념일 선물로 피임약을 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서규하밖에 없을 터였다.
설레던 감정은 이내 흥분으로 변모했다. 힘들게 다시 키운 잔근육들이 굴곡을 자아내는 서규하의 등에 상체를 겹치면서 이차영은 그의 귓가에 대고 장난스럽게 속삭이듯 말했다.
“결혼기념일 알고 있었네. 당연히 모를 줄 알았는데.”
“당연히는 뭐야?”
욱해서 돌아보는 서규하의 턱을 붙잡고 짧게 키스한 뒤에 이차영은 말을 이었다.
“네가 내 선물이니까,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뭔 미친 소리야? 콘돔 안 끼고 하는 거 좋아하니까, 흐읏!”
말을 잇던 서규하의 입에서 돌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발기한 페니스를 붙잡아서 구멍에 맞춘 이차영이 그대로 힘주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야, 씨! 말도 안 하고 갑자기…….”
“힘 빼. 금방 기분 좋게 해 줄게.”
서규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었다. 이차영을 받아들일 때면 늘 그러하듯, 굵고 단단한 것이 좁은 내벽을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선연했다.
안쪽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라도 있는 것처럼 이차영은 거침없이 안을 밀어 넓혀 가며 진입했다. 이내 음낭이 둔부에 닿으며 결합부가 완벽하게 맞물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차영의 눈빛에 흥분과 사나움이 뒤섞여 떠올랐다. 또다시 임신이 될까 봐 걱정하는 서규하를 위해서 출산 후에는 러트가 아니라도 반드시 콘돔을 꼈는데, 오랜만에 그냥 넣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칠 정도로 좋았다.
“네 안, 너무 뜨거워서 녹을 거 같아.”
“지랄.”
버거울 정도로 꽉 차 있는데 녹을 것 같기는 개뿔. 긴장을 풀기 위해 애쓰며 서규하는 달아오른 얼굴로 심호흡을 반복했다.
달라진 거라곤 고작 얇은 막이 없어진 것뿐인데 배 속이 지끈거릴 정도로 쾌감이 치밀었다. 기대감에 멋대로 스며 나온 애액이 어서 빨리 움직여 달라는 듯 이차영의 성기를 흠뻑 적셨다.
이윽고 이차영은 허릿짓을 시작했다. 늦게나마 서규하를 배려해서 천천히 움직였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손으로 골반 아래를 꽉 붙든 채 이차영은 엎드린 서규하의 몸이 밀릴 정도로 힘껏 안을 박아 댔다.
“아, 으, 흐, 흐읏, 아!”
살끼리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찌걱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안쪽에서부터 샘솟듯 계속 스며 나온 맑은 액이 서규하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한동안 풀 스피드로 왕복 운동을 하다가 이차영은 사정을 늦출 겸 움직이는 속도를 살짝 줄였다.
끝까지 뺐다가 깊숙이 찔러 넣을 때마다 내벽이 꿈틀대며 요사스럽게 성기를 물어 댔다.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결합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차영은 허릿짓을 계속 이어 갔다.
“소리 들려? 안에 엄청 젖어 있어.”
“닥쳐, 좀.”
서규하의 사타구니로 손을 가져가자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가 손에 잡혔다. 이차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강도를 잃지 않고 쿠퍼액을 뚝뚝 흘려 대는 걸 보니 뒤로 받으면서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젖은 성기를 빼낸 뒤에 이차영은 체위를 변경했다. 엎드려 있던 서규하를 옆으로 눕힌 다음, 녀석의 왼쪽 허벅지에 걸터앉고 오른쪽 다리는 제 어깨에 걸친 자세로 다시금 안을 쑤시기 시작했다.
뺐다 넣기를 반복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황홀한 쾌감이 번졌다. 탄력 있는 둔부를 욕심껏 쥐어짜듯 매만지며 들썩이다가, 다리가 크게 벌어져서 완전히 개방된 서규하의 페니스를 오른손에 쥐고 흔들었다.
“으응…. 하읏, 읏, 하아…!”
계속 방울져 흘러내리는 선액 때문에 손바닥이 금세 끈적하게 젖었다. 서규하는 일전에 배운 대로 성기를 움켜쥔 이차영의 손에 대고 허릿짓을 했다. 욕망에 충실한 신음이 이어지던 입에서 가쁜 숨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쌀 것 같아.”
“싸.”
“흐읏!”
엄지로 귀두부를 둥글리며 매만지자 서규하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언제든 가도 좋다는 듯 페니스를 꽉 쥐고 훑는 이차영의 손길이 빨라졌다. 그 위에 손을 겹쳐 무아지경으로 흔들어 대다가, 어느 순간 막힌 둑이 터진 것처럼 범람하는 쾌감 속에서 서규하는 진한 정액을 쏟아 냈다.
“하아, 하아….”
쾌감의 여운에 취한 몸이 잔 경련을 일으켰다. 탈진한 사람처럼 가쁜 숨을 내뱉는데 이차영이 허리를 뒤로 물리며 빠져나갔다. 하지만 휴식은 잠시뿐이었다. 또다시 서규하의 다리를 붙잡은 이차영이 이번에는 정상위로 몸을 겹치며 아래를 묵직하게 채웠다.
넣자마자 그대로 안을 들쑤시는 움직임에 서규하는 서둘러 이차영의 팔을 붙잡았다. 얼굴에는 황당한 기색이 가득했다.
“잠깐만! 나 방금 갔어.”
“알아. 근데 나는 아직이거든.”
“좀만 쉬었다가 해.”
거듭된 부탁을 들은 척 만 척하며 이차영은 멈추지 않고 삽입을 이어 갔다. 서규하의 무릎 뒤쪽을 붙잡아서 위로 밀어 올린 다음 힘주어 내리누른 채 빠르게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시발,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그렇게 바로 하면…!”
안쪽 어딘가에 이차영의 성기가 처박힌 순간, 서규하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키며 또다시 경련했다. 굴곡진 부분을 지나서 숨겨진 안쪽 공간까지 비집고 들어간 이차영이 그대로 귀두를 파묻은 채 허리를 들썩였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강제로 다시 발기한 서규하의 성기에서 투명한 액이 줄줄 흘러나와 가슴팍을 적셨다. 포궁 경부를 건드릴 때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하, 씨발.”
흥분해서 내뱉는 어조가 퍽 거칠었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감각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작년 이 무렵 서규하가 오메가인 줄 모르고 한껏 비집어 넣은 채로 노팅을 시작했을 때, 그때와 맞먹는 쾌감이 전신을 장악했다.
눈가에 고여 있다가 흘러내리는 눈물조차도 그때와 똑같았다. 빼라고 난리를 치는 걸 가볍게 묵살하며 이차영은 서규하의 왼손을 붙잡아서 결혼반지에 입을 맞췄다. 지금도 귀찮은 건 질색하는 녀석인데, 자신의 부탁을 잊지 않고 외출할 때 결혼반지를 끼고 나왔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대로 두 손을 깍지 끼며 이차영은 상체를 구부렸다. 지척에서 열에 들뜬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 둘째 가질까?”
가슴팍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던 서규하는 뒤늦게 이차영이 한 말을 인지했다.
“돌았어?”
깨닫자마자 생각에 앞서 말이 먼저 튀어 나갔다. 표정은 한껏 일그러진 채였다.
히트나 러트인 것도 아니고, 의사가 피임약을 처방해 주면서 ‘사후 피임약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거라서 반드시 정해진 용량만 복용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걱정 없이 그냥 받았는데, 둘째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니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기가 빽빽 울거나 보챌 땐 버겁긴 해도 2세가 주는 기쁨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빠를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거나, 어릴 때 이차영을 꼭 빼닮은 얼굴로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바라볼 때면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거야 무사히 낳아서 그런 거고, 배 속에 품고 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진저리가 났다. 바닥까지 내리꽂힌 자존감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불러 오던 배, 온갖 제약 속에서 수도승처럼 살아야만 했던 시간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오죽하면 스스로 생각해도 별 탈 없이 애를 낳은 게 기적 같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딴 이야기 할 거면 빼.”
“…….”
말없이 서규하를 내려다보다가 이차영은 삽입된 채 멈춰 있던 허리를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 순간부터 하얗고 끈적한 체액이 기둥에 듬뿍 묻은 채로 딸려 나왔다.
“하, 앗, 아, 흑, 흐응!”
서규하는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몸 안쪽이 불이 나는 것처럼 뜨거웠다. 마구잡이로 허리를 놀리던 이차영이 뿌리 끝까지 완전히 파묻은 채로 체중을 실어 내리눌렀다. 질을 지나서 급격히 좁아지는 경부까지 비집고 들어가서는 그대로 빙글빙글 엉덩이를 돌려 댔다.
“이거, 하지 마 새꺄…!”
“왜. 깊이 박아 주는 거 좋아하잖아.”
“……!”
퍽! 허리를 뺐다가 불시에 쳐올리는 움직임에 서규하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멈췄다.
젖어서 번들거리는 성기에서 맑은 소변 같은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러든 말든 이차영은 자비 없이 계속 허리를 놀리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서규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말이라도 해 줘. 아기, 또 갖고 싶다고.”
“…씨발, 진짜 돌, 았어?”
완전히 폭발한 서규하가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손목을 붙잡은 이차영이 그대로 내리누르며 머리 위로 두 손을 결박했다. 유연한 허리 놀림으로 계속 안을 들락거리면서 개새끼 같은 말을 이어 갔다.
“진짜로 갖자는 게 아니라, 그냥 말만이라도 듣고 싶어.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그거랑, 흐읏,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선물로 듣고 싶은 말이야. 앞으로 언제 또 이렇게 할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자극적인 게 좋잖아. 응?”
“좋긴 뭐가 좋아.”
“말해 줘. 안에 싸 달라고. 또 임신하고 싶다고.”
뭉근하게 움직이는 허릿짓이 이어졌다. 눈앞에는 변함없이 취향 한복판을 저격하는 낯짝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놈이 사람 홀리는 미소를 띤 채로 조르듯이 말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발, 시발, 존나 씨발.
차마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서규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갤 돌리고 말았다.
“……갖고 싶어.”
“안 들려. 크게 말해 봐.”
민감한 귀 주변을 핥고 깨물어 대는 성가신 애무를 피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서규하는 외치듯 말하고 말았다.
“아기 갖고 싶으니까 안에 싸 달라고!”
“응. 밤새 넘치도록 싸 줄 테니까 둘째 갖자.”
“이, 씹…! 우웁!”
벌어진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으면서 진한 딥키스를 한 뒤에 이차영은 또다시 서규하의 안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면 둘째 욕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규영이를 키워 보니 육아라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고 예측불허한 일도 더러 있지만, 고단함과 피로함을 상회하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임신 기간 내내 서규하가 힘들어했던 걸 생각하면 적어도 제가 먼저 아이를 갖자는 말을 해서는 안 됐다. 지금껏 계속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지만 오늘이 예외였다.
근 2주 만에 하는 섹스에 마침 내일이 결혼기념일이라서 기분이라도 내고 싶은 마음에 기대 없이 한 부탁인데……. 비록 거짓이라 할지라도, 서규하의 입에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차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정욕이 가득했다. 장담컨대 오늘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쌍욕과 함께 가쁜 숨을 내뱉는 서규하의 입술에 또 한 번 키스하면서, 이차영은 약하게 방출하던 페로몬을 점점 강하게 내뿜었다. 밤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