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Hello, my baby (18/28)

Hello, my baby

삐비비빅- 삐비비빅-

조용한 침묵을 깨며 단조로운 알람이 울렸다. 모니터 하단으로 시선을 옮기니 어느덧 오후 11:00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을 확인한 이차영은 이중 저장만 한 뒤에 미련 없이 컴퓨터를 끄고 서재를 나섰다.

혹시나 자고 있을까 봐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는데 예상과 달리 서규하는 침대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이차영은 웃음 띤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 안 잤어?”

“말했잖아. 낮에 존나 많이 잤다고.”

첫 태동이 다소 늦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깜짝이는 거침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처음에 알아챌락 말락 할 정도로 콩콩대던 것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태동은 더 크게, 더 자주 찾아왔고,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발길질을 해서 자다가도 깨기 일쑤였다. 그 탓에 수면이 늘 부족하다 보니 깜짝이가 잠잠하다 싶으면 서둘러 눈을 붙였다.

침대가 커서 앉을 곳도 많은데 이차영은 부득불 침대 헤드와 서규하 사이로 끼어들며 자신의 자리를 마련했다. 당연한 듯 백 허그가 이어졌다. 아직 임신 8개월이지만 남성체 오메가인 서규하는 만삭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마주 보고 하는 포옹이 힘든 탓에 자연스레 백 허그 빈도가 높아졌다.

그 상태로 이차영은 자신의 페로몬을 약하게 개방했다. 서규하도, 배 속 아이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손톱을 짧게 깎아 단정한 손을 조물락거리면서 이차영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제 슬슬 아기 이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서규하도 동의하는 바였다. 출산 예정일이 다음 주로 다가온 걸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아버지가 정해 주신 이름이 몇 개 있긴 한데, 첫 아이니까 우리 둘이서 같이 짓고 싶어.”

그 말에 서규하는 속으로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웬일로 꼰대한테 전화가 와서는 ‘철학관에서 거금 주고 손주 이름을 지어왔다’길래 귀를 후비적거렸는데, 저쪽 집 아버지도 그런 모양이었다.

“하여튼 유난은…….”

“응?”

“혼잣말이야. 암튼, 생각해 둔 거 있어?”

“네 이름이랑 내 이름,”

“따와서 짓자고 할 생각이면 집어치워.”

이럴 때 보면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 듯했다. 머리 좋은 놈인 줄 알았는데 나랑 별반 다를 것도 없네. 속으로 생각하면서 서규하는 말을 이었다.

“나도 그걸로 생각해 봤는데 존나 이상한 이름들밖에 안 나와.”

형질은 출생 후 검사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일단 성별은 남자애라고 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이래저래 조합을 해 봤는데 결과는 하나같이 신통찮았다. 규차, 차규, 하차, 차하, 영규 등등. 그나마 괜찮은 게 규영이긴 한데, 누가 봐도 아빠들 이름에서 따온 느낌이라서 민망한 감이 있었다.

이윽고 넌지시 건네는 말이 이어졌다.

“규영이는 어때? 괜찮지 않아?”

서규하의 입에서 거듭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다시 생각해도 인간 머리는 거기서 거기인 게 분명했다.

“너희 아버지가 정해 준 이름들 있다면서. 사실 우리 아빠도 그래서……. 우리가 지으면 서운해하실 거 같은데.”

“뭐 어때. 서운해하시면, 분발해서 막둥이라도 낳으시라고 하지 뭐.”

“우리 꼰대 또 뒷목 잡는다.”

킥킥대며 웃는 서규하의 목덜미에 대고 이차영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잠 안 온다고 했지?”

“어.”

“그럼 한 번만 하고 자자. 아기 이름 지은 기념으로.”

“……기념은 개뿔. 그리고 나 아직 좋다고 안 했어.”

“응. 그럼 계속 생각해 보기로 하고.”

서규하의 턱을 살짝 돌려서 이번에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장난 같은 입맞춤은 금세 에로틱한 키스로 변했고, 이차영은 힘들이지 않고 자세를 변경해서 서규하를 침대에 눕혔다.

잠옷 단추를 풀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드러났다. 몸을 숙인 이차영은 만삭인 배에 스스럼없이 입을 맞췄다. 촉, 촉, 소리를 내며 떨어질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서규하는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입을 열었다.

“야.”

“응?”

“……이런 데도 진짜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 배가 무슨 존나 커다란 탱탱볼 같은데.”

이차영은 멈칫하다가 이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임신해서 부른 배를 보고 탱탱볼이라니, 서규하라서 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당연하지. 내 애를 임신하고 있는데, 좋아서 미치지.”

이차영은 서규하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고간으로 이끌었다. 오른쪽으로 수납한 굵직한 기둥이 바지 너머로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상의에 이어 바지와 속옷까지 단숨에 벗어 던진 뒤에 이차영은 서규하의 허벅지를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가두는 자세로 올라탔다. 무성한 음모와 발기해서 고개를 치켜든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부끄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배가 눌리지 않게끔 조심하며 상체를 구부린 이차영은 유혹하듯 꼿꼿하게 일어서 있는 서규하의 젖꼭지를 망설임 없이 입에 물었다.

춥, 춥, 강하게 빨릴 때마다 허리가 절로 움찔했다. 늘 그렇듯 이차영은 집요했다. 아직 나오는 것도 없는데, 게걸스럽다 싶을 정도로 물고 빨아 대는 혀놀림에 금세 숨이 차올랐다.

“야, 씨, 좀…….”

어깨를 떠밀었지만 돌덩이 같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듯 돌기를 잘근대는 바람에 외려 힘이 빠진 사람은 서규하였다.

춥, 추웁, 질척이며 빠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시간을 들여 다른 쪽도 공평하게 예뻐해 준 뒤에야 이차영은 천천히 입술을 거뒀다. 얼마나 물고 빨아 댔으면 유륜까지 타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많이 커졌어. 열심히 빨아 준 보람이 있네.”

“닥쳐, 좀.”

하여튼 철면피가 따로 없는 새끼였다. 대체 또 어디서 뭘 주워들었는지, 젖꼭지가 너무 작으면 모유도 잘 안 나오고 아기도 먹기 힘들다면서 섹스할 때마다 남의 가슴을 짓씹어 놨다. 그런다고 커지겠냐며 아낌없이 비웃음을 날렸는데……. 패착이자 뼈아픈 실수였다. 씻을 때나 옷을 갈아입을 때 보면 확실히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이 새끼가, 진짜.

또다시 숙여지는 고개를 본 순간,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움직여서 이차영의 정수리를 손날로 내리쳤다.

“작작 좀 하라고!”

“아파…….”

“시발, 나는 안 아픈 줄 알아? 네 거도 내가 물어뜯어 봐?!”

“미안.”

이차영은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애무라면 두말할 것 없이 환영이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정말로 물어뜯어 버릴 소지가 다분했다. 서랍 속에 든 젤을 꺼내자 서둘러 하는 말이 이어졌다.

“넣는 건 안 돼.”

“알아.”

임신 주차에 따른 태아와 임신부의 건강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했다. 가뜩이나 만삭이라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외부에서 더한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옆으로 누울 수 있겠어?”

서규하는 힘겹게 몸을 돌려 누웠다. 침대에 닿은 왼팔로 상체를 지탱하고 오른손으로는 부푼 배를 감싸듯 안으니, 등 뒤로 밀착해 누운 이차영의 손이 다리를 가르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회음부와 허벅지에 젤을 듬뿍 바른 뒤에 이차영은 좀 더 허리를 들이밀며 발기한 성기를 서규하의 허벅지 사이에 끼웠다. 다리를 딱 붙이고 있어서 제법 그럴싸한 조임이 느껴졌다. 삽입 섹스할 때처럼 유연하게 허리를 놀리면서 오른손은 앞으로 돌려 서규하의 성기를 쥐었다. 다행히 강도를 잃지 않고 딱딱한 것이 손안에 감겼다.

“응, 하아…….”

이차영이 허릿짓을 할 때마다 서규하의 몸이 덩달아 느리게 움직였다. 앞으로 쭉 뻗은 왼팔로 시트를 움켜쥐었다. 원래 하던 방식에 비하면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인데도 호흡이 점점 가쁘게 변했다.

어느 순간 이차영의 몸에서 성적 흥분이 담긴 알파 페로몬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서규하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섹스를 기대하거나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자지가 벌떡 서는데, 하물며 배 속에 제 아이를 임신한 오메가와 살을 맞대고 있으니 흥분하지 않는 게 이상할 일이었다.

“하아, 규하야…….”

왈칵 흘러나온 끈적한 선액이 서규하의 허벅지께를 적셨다. 서규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차영이 허리를 들이밀 때마다 단단한 귀두가 음낭을 지나 기둥 뒷면까지 닿으며 간지럽게 긁어 댔다.

젤과 체액 때문에 찌걱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것은 덤이었다. 붉어진 귀 끝을 한 채 흥분감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일순 서규하는 멈칫하며 이차영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잠깐만. 애 움직인다.”

부드럽게 흔들던 서규하의 페니스를 놓으며 이차영은 그의 복부로 손을 옮겼다. 손을 대자마자 서규하의 말처럼 쿵, 쿵, 하는 발길질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둥글고 매끄러운 배를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이차영은 안정감을 자아내는 페로몬을 약하게 방출했다.

“깜짝아. 아빠들 거사 치르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 끝나고 놀아 줄게.”

이차영이 말을 거는 상대는 깜짝이지만, 정작 반응이 오는 사람은 서규하였다. 평소엔 부득불 남의 배꼽에 대고 말을 거는데, 지금은 등 뒤에서 몸을 겹친 채 고개만 살짝 들고 있다 보니 나직하게 말하는 목소리와 달아오른 숨결이 고스란히 귓가에 내려앉았다.

“야, 씨. 좀 떨어져 봐.”

몸을 살짝 틀어서 얼굴을 밀어냈지만 이차영은 요지부동이었다. 깜짝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왼팔을 쭉 뻗어서 서규하에게 팔베개를 해 줬다. 오른손은 여전히 녀석의 배에 올린 채로 다시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이차영의 귀두가 성기 뒤쪽을 긁듯이 밀며 올라오다가 빠져나가는 것은 여전했다. 감질이 난 서규하는 배에 올려진 이차영의 손을 끌어 내려서 고간으로 이끌었다. 의중을 눈치챈 이차영이 뜸 들이지 않고 기둥을 감싸며 타이트하게 쥐었다.

“허리 움직일 수 있겠어? 내가 하는 것처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입에 대고 좆질하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겠냐고. 아니면 내 손을 구멍이라 생각해도 되고.”

본인의 쾌락 못지않게 상대의 쾌락을 챙기는 점은 지금도 여전했다. 맞춤형 설명 덕분에 곧바로 이해한 서규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천천히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하…, 흣, 응, 하아…!”

뒤로 빠지면 힘주어 성기를 꽉 움켜쥐고, 파고들 듯 들이밀면 살짝 힘을 빼는 컨트롤 덕분에 만족감은 생각보다 더 컸다. 더듬더듬 내려간 서규하의 손이 이차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좀 더 빠르게 허리를 움직인 끝에, 아찔한 해방감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며 왈칵 정액을 터뜨렸다.

그동안 이차영은 서규하의 어깨와 팔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잠시 후, 한껏 경직되어 있던 몸이 완전히 이완된 것을 느끼고는 그제야 페니스를 쥐고 있던 손을 뗐다. 서규하가 방출한 정액으로 젖은 손을 위쪽으로 가져가서 도톰하게 살이 오른 젖꼭지를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서규하의 쾌감을 우선시하느라 잠깐 중단 상태였던 허릿짓을 재개하면서 녀석에게 물었다.

“가슴에서 아직 나오는 거 없지?”

서규하는 인상을 찡그린 채 툴툴댔다.

“없어, 새꺄.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자신의 몸이지만 신체 곳곳마다 이차영의 손이 닿을 때가 훨씬 더 많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물며 가슴에도 살이 오르고 시도 때도 없이 젖꼭지가 서 있는 것을 자각한 뒤로는 씻을 때 외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살살 만져.”

작게 몽우리 진 가슴을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만져 주다가 이차영은 조금 더 위로 손을 올려서 서규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치달으려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면서 허릿짓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나직한 탄성을 흘리며 열락의 덩어리를 토해 냈다.

나른하게 내뱉는 숨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직 서규하의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있는 성기는 늘 그렇듯 한 번 방출한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한 강도를 자랑했다. 한 번 더 할 수 있겠냐는 말이 입 안을 맴돌았지만, 이차영은 입 밖으로 내는 대신 아쉬움을 담아서 서규하의 몸을 끌어안았다.

출산 예정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서규하는 부쩍 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가진통이 오는가 하면, 눌린 장기들 때문에 소화가 힘들고 호흡이 짧아져서 산책도 버거워할 때가 많았다.

그나마 서규하도 성욕이 강한 편이라서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감지덕지인데, 만삭의 임부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양심 없는 짓이었다.

따뜻한 욕조 물에 함께 몸을 담그고 있다가 침대로 다시 돌아왔다. 마주 보는 자세로 누워서 서규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고르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스윽, 어둠 속에서 움직인 손이 서규하의 배에 닿았다. 가만히 온기를 느끼다가 작게 토닥토닥하며 배 속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힘드니까 얌전히 코하고, 내일 많이 움직이자. 응?’

허리께에 걸쳐 있는 이불을 좀 더 위로 끌어 올려 덮어 준 뒤에 이차영도 그제야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깜짝이와 만나기까지 채 열흘도 남지 않은 어느 날 밤이었다.

***

드르륵, 바퀴 달린 침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원 복도를 나아갔다. 세 명의 의료진들이 침대 주변을 둘러싼 가운데 그중엔 이차영도 있었다. 통제구역을 지나쳐서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잠깐 침대를 세운 이차영은 얌전히 놓여 있는 서규하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금방 끝날 거야.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와.”

“……얼굴 펴. 누가 보면 네가 낳으러 가는 줄 알겠다.”

“진짜 같이 안 들어가도 돼? 손잡아 주고 싶은데.”

“꿈도 꾸지 마.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아닌 척하며 듣고 있던 간호사가 타이밍을 봐서 “들어가실게요.” 하는 말을 꺼냈다.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고, 이내 서규하가 누워 있는 침대는 수술실 너머로 사라졌다.

탁- 안에서 닫히는 문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안쪽을 기웃대던 이차영은 이윽고 초조한 걸음으로 수술실 앞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산도가 턱없이 좁기도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두 사람은 의사의 권유대로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수술 날짜에 맞춰 입원은 어제 했고, 아침에 병실을 찾아온 의사는 검사 결과가 좋고 임부의 컨디션도 좋다는 말로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담당의는 이제껏 계속 부인과 검진을 담당해왔던 의사로, 남성체 오메가의 임신 및 출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걱정과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오늘 아침, 임부보다 더 걱정 많고 꼼꼼한 보호자에게 간호사는 미리 이런저런 사항들을 알려 주었는데 수술은 후처치까지 포함해서 30분 정도면 끝날 거라고 했다.

예상보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순간이 닥치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흐르는지, 1분 1초가 억겁처럼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이차영은 당연히 함께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서규하가 결사반대해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혼나더라도 그냥 같이 들어갈걸. 뒤늦은 후회를 하는 와중에도 시선은 수술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하염없이 서성이고 있으니 마침내 안쪽에서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나왔다.

“서규하 님 보호자분?”

“네.”

퍼뜩 가까이 다가가자, 간호사는 마스크를 내리며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수술 마무리까지 잘 끝났고요, 산부와 아기 모두 건강해요. 축하드립니다.”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이차영은 빠르게 되물었다.

“들어가 봐도 됩니까?”

“수술실 출입은 불가하시고요, 회복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임부는 언제 나옵니까?”

“지금 바로 옮길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한 번 수술실 문이 열렸고, 이차영은 서둘러 그쪽으로 다가갔다.

“규하야!”

몇 분이 아니라 며칠 만에 다시 만나는 것처럼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저도 모르게 움직인 손이 서규하의 손을 감싸듯 붙잡았다. 시선은 안색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괜찮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잠시 후에 바싹 메마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답이 들렸다.

“……아파 뒤질 거 같아.”

짙은 주름이 팬 미간도 그렇고, 붉게 변한 눈가만 봐도 고통이 전해졌다. 고생했어. 손을 조물딱거리면서 연신 고생했다는 말을 한 뒤에 이차영은 뒤늦게 또 한 사람을 찾았다.

“아기는요?”

“신생아실로 바로 이동했어요. 저희도 회복실로 이동할게요.”

그제야 이차영은 서규하의 손을 놓아주었다. 드르륵, 올 때처럼 소리를 내며 이동한 침대가 같은 층에 있는 회복실로 들어갔다. 당연한 것처럼 이차영의 걸음이 그 뒤를 따랐다.

***

이규영(MA/6.11) 2.85kg

D+016

서규하(이차영)

벽의 절반 이상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신생아실. 그 앞에 두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슈트 차림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남자의 손이 환자복 위에 카디건을 걸친 또 다른 남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시선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서규하였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가, 이차영의 얼굴을 보고는 픽 웃음을 흘렸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이차영은 머쓱한 듯 입가를 매만지다가 덩달아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웃으려고 웃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다가도 멋대로 입가가 허물어지며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오죽했으면 사정을 모르는 회사 사람들도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하는 말을 계속 건넬 정도였다.

출산한 지 2주 차. 수술 직후 담당의가 했던 말처럼 서규하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처음 며칠은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배 근육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서 욕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차츰 통증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거의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깜짝이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산으로 태어나서 곧바로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는데, 몸에 주렁주렁 붙은 기계들이 버거울 만큼 작은 몸으로도 정말 기특하게 잘 버텨 주었다. 덕분에 이틀 전에는 드디어 일반 신생아실로 옮겨져서 하루에 세 번씩 아빠들에게 얼굴을 보여 주곤 했다.

오늘도 이차영은 어김없이 퇴근하자마자 병원을 찾았고, 곤히 잠들어 있는 자신의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빨리 안아 보고 싶다.”

나직하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서규하는 힐끗 옆을 쳐다봤다. 이차영은 여전히 홀린 듯이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망하듯 유리에 닿아 있는 두 손만 봐도 진심이 느껴졌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긴 하지만 출산 자체를 워낙 이르게 해서, 이차영은 물론이고 아직 서규하도 깜짝이를 품에 안아 본 적이 없었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와서 신생아실로 옮겨진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지만, 복도를 걷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아기를 품에 안은 간호사가 지나가기라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깜짝이 얼굴이 떠오르며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2주가 흘러가고, 드디어 퇴원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내일부터 실컷 안아 줘.”

“그래야지.”

반대편에서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내려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분인데, 그새 15분이 훌쩍 지난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생아실 문이 열리며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한데 면회 시간 끝났어요.”

“네.”

끄덕이듯 살짝 숙인 고개로 대답 겸 감사 인사를 전한 뒤에 이차영은 서규하의 어깨를 감싸 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세 사람이 함께 맞이하게 될 내일을 한껏 기대하면서.

***

똑똑- 작은 노크 소리에 이어 병실 문이 열렸다. 핸드폰을 하면서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자 유니폼 차림의 직원이 “식사 나왔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침대 테이블에 식판을 올려 주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잡곡밥과 정체 모를 야채가 들어 있는 된장국, 쌈 채소와 불고기였다. 서규하는 아쉬움에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산후조리원이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인지 간이 살짝 심심하고 뭔가 2퍼센트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혼자 떠드는 TV를 친구 삼아서 식판을 싹싹 비웠다. 입가심으로 작은 요구르트까지 클리어한 뒤에 서규하는 복도로 나가서 식판을 반납한 다음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칫솔을 입에 물었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혈색이 돌았다. 그럴 만도 했다. 길고도 지루했던 조리원 생활을 끝내고 오늘 드디어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퉤, 입 안의 거품을 뱉어 내고 다시 양치질을 이어 가는데 문 너머에서 또 한 번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어?”

이차영이었다. 택시 타고 가면 된다고 해도 굳이 데리러 오겠다더니 이제 도착한 모양이었다. 서규하는 물고 있던 칫솔을 빼고 대답했다.

“어. 화장실 급해?”

“아니. 너 안 보이길래 안에 있는지 확인해 본 거야. 천천히 나와.”

양치질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니 이차영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업무 중에 나온 티가 팍팍 나는 단정한 슈트 차림에, 옆자리에는 커다란 가방이 놓여 있었다.

“점심 먹었어?”

“어. 너는?”

“아직 안 먹었어. 이따 집에 가서 먹으려고.”

전후 사정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으로 오고 싶어서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차를 몰고 달려왔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지하 식당에라도 갔다 와.”

간호사가 1시에 온다고 말했으니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차영은 옅게 웃으며 집에 가서 먹겠단 말을 거듭한 뒤에 서규하를 향해서 물었다.

“컨디션은 괜찮아?”

“어. 존나 좋아.”

처음 며칠간은 수술 부위가 심하게 땅겨서 잠도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러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괜찮아졌다. 통증이 줄어드니 입맛도 돌아오고, 지금은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어서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몇 달 내내 불러 있던 배가 쑥 들어간 것만으로도 더없이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멋모르고 어찌어찌 무사히 출산까지 했지만, 제정신으로 두 번은 절대 못 할 짓이었다.

“옷 가져왔으니까 갈아입어.”

“땡큐.”

이차영이 일어서서 짐을 챙기는 동안 서규하는 환자복 상의로 손을 가져갔다. 차례대로 단추를 풀다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홀쭉해진 배에 길게 난 수술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시선을 거두며 아무렇지 않게 티셔츠로 갈아입고 바지도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지퍼를 올리는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2주 내내 환자복만 입고 있다가, 드디어 평상복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에 서규하는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켰다. 12:48. 이제 곧 있으면 깜짝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술렁거렸다. 설레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 묘한 긴장감이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똑똑-

잠시 후, 문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사람의 시선이 움직였다. 벌떡 일어서는 이차영을 따라서 서규하도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병실 문이 열리며 전담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얇은 여름 담요로 감싼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살갑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아버님 두 분 다 계셨네요. 퇴원 준비는 다 하셨어요?”

“네.”

“그러면 아기 한 번 안아 보시겠어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생긋이 웃으며 건네는 간호사의 말에, 서규하는 저도 모르게 손을 움직여 이차영의 등을 떠밀었다.

“네가 먼저 안아 봐.”

“규하 네가 먼저 안아야지. 아기 낳느라 고생했는데.”

“……괜찮으니까 네가 먼저 안아. 심장이 너무 뛰어서……, 떨어뜨릴 수도 있을 거 같아.”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말에 이차영도 간호사도 흠칫했다. 얼굴에서 진심을 읽어 낸 이차영은 이내 마음을 굳히고 두어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잠이 든 듯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깜짝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이차영의 품에 아기를 안겨 주었다.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이 가슴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멋대로 빨라졌다. 방금 서규하가 왜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는지 절로 이해가 갔다. 품에 안은 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서 넌지시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나도 심장이 터질 거 같아.”

잠시 후에 이차영은 서규하를 마주 보면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안아 봐. 우리 아기.”

“난 안 될 거 같아.”

갓 낳았을 때에 비하면 많이 자랐다고는 하지만, 체격이 큰 이차영이 안고 있어서 그런지 신생아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겁이 나서 도저히 안아 볼 엄두를 못 내는데, 맞은편에 서 있던 간호사가 유한 목소리로 거들어 주었다.

“괜찮으니까 안아 보세요. 힘든 시간 잘 이겨 내고 쑥쑥 자라서 드디어 아빠들 보러 왔는데, 안아 주지도 않으면 깜짝이가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걱정과 긴장감에 안절부절못하던 서규하는 마침내 큰 결심을 하고 침대 위로 주섬주섬 올라갔다. 설마 정말로 떨어트리기야 하겠느냐마는,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어서 그나마 안전한 편을 택했다.

“후우…….”

긴 심호흡을 내뱉은 뒤에 천천히 두 팔을 내밀었다. 상체를 숙인 이차영이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겨 주면서, 서규하는 마침내 제 아이를 품에 안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선이 저절로 깜짝이의 얼굴을 향했다. 작은 코, 작은 입, 작은 귀, 생각보다 더 가벼운 무게감.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작고 하찮기만 한데, 눈매나 콧대에서 벌써부터 아빠를 닮은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제 배 속에서 나온 녀석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어때?”

“……예쁘네.”

이후로도 서규하의 시선은 한동안 깜짝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처음으로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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