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7.(2권) (7/28)

Chapter 7.

***

어느 순간 서규하는 잠에서 깼다. 정신이 채 들기도 전에 앓는 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으… 씨발….”

이제는 완전히 입에 붙어 버린, 그간 수없이 내뱉은 욕을 중얼거리면서 서규하는 간신히 눈을 떴다. 자는 사이에 누가 본드 칠을 해 놓기라도 했는지 눈꺼풀을 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눈을 뜨자 길쭉하게 뻗은 팔이 보였다. 설마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팔을 내준 채 잠든 이차영의 얼굴이 보였다.

“? 뭐야.”

그러다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챘다. 계속 시달리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먼저 잠든 것 같은데, 미친 새끼가 빼지도 않고 넣은 상태로 자고 있었다.

‘하여튼 곧 죽어도 지 마음대로지.’

툴툴대면서 허리에 감긴 팔을 붙잡았다. 채 밀어내기도 전에 거듭 끌어안으면서 묻는 말이 들렸다.

“일어났어?”

자다 깬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끔한 목소리였다. 서규하는 묻는 말에 답하는 대신 한 번 더 이차영의 팔을 밀어냈다.

“놔. 화장실 갈 거야.”

그러자 아침부터 사람 열 받게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혼자 갈 수 있겠어? 힘들 텐데.”

“지랄하고 있네. 싸기 직전이니까 빨리 빼기나 해.”

하지만 이차영은 늘 그렇듯 예상대로 움직여 주는 법이 없었다.

“한 번만 더 하자. 빨리하면 시간 딱 맞을 거 같아.”

말릴 틈도 없이 이차영은 그대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규하의 얼굴에 경악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아침에 워낙 약하다 보니 눈 뜨자마자 하는 모닝 섹스는 이제껏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내 말 못 들었어? 오줌 싸고 싶다고!”

성질을 내면서 뒤를 돌아봤지만 이차영은 몹시도 태연자약했다.

“싸. 안 그래도 침대 바꿀 때 됐거든.”

안을 드나드는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졌다. 이차영은 서규하의 무성한 음모를 손바닥으로 몇 번 쓸다가 그대로 성기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입술은 목덜미로 가져가서 붉은 흔적이 드문드문 새겨진 살갗을 가볍게 빨아들였다.

섹스가 급한 것은 아니었다. 밤낮없이 서규하를 안고 또 안다 보니 어느 순간 러트는 끝이 났다. 그와 별개로 아침 발기는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서규하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이차영은 서규하가 곤란해 하면서 마지못해 무슨 부탁이라도 할 때면 묘한 희열감을 느끼곤 했다.

딱히 가학적인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좀처럼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이 없는 녀석이 자신에게 뭔가를 부탁한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그마저도 절대 저자세로 부탁하는 일은 없는 게 딱 서규하다웠다.

“아, 씹.”

서규하는 입술을 짓씹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팔을 쥐어뜯고 꼬집었지만 이차영은 요지부동이었다. 쪽, 쪽, 귓가며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계속해서 성기를 자극하는 애무가 이어졌다. 정말로 화장실이 급한데, 목적이 뚜렷한 손길로 만져 대니 요의를 비집고 성적인 쾌감이 밀려왔다.

온몸이 절로 배배 꼬이며 발가락 끝이 시트 위를 긁어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진짜 지리는 거 아냐?’

생각만으로도 수치사 각이었다. 이차영은 싸도 된다고 했지만, 대가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침대에서, 그것도 섹스하는 도중에 소변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차영의 것은 계속해서 안을 들쑤시고 있었다. 등 뒤에서 틈 없이 몸을 겹친 채로 반쯤 뺐다가 깊숙이 밀어 넣는 행위를 반복했다. 참으로 좆같은 상황이었다. 차라리 정신없이 몰아붙이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놓아버리겠는데, 생각할 틈이 있으니 더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

잠시 후, 뜨거운 무언가가 흥건하게 번지는 느낌이 났다. 순간 서규하는 오줌을 지린 줄 알고 기겁했지만, 다행히 자신이 아니라 이차영이 사정한 거였다. 빠듯하게 뒤를 채우고 있던 페니스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거듭 앞을 쥐는 이차영의 손을 매섭게 쳐 낸 뒤에 서규하는 서둘러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오, 썅.”

일어서자마자 그대로 다시 주저앉고 싶었다. 전력으로 쉼 없이 달린 사람처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다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고, 허벅지를 타고 뭔가가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이래저래 최악인 상황에 거듭 욕을 내뱉으면서 서규하는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발걸음을 뗐다. 이내 등 뒤에서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갈 수 있겠어?”

서규하는 으득 이를 간 뒤에 짓씹듯이 내뱉었다.

“잘 가고 있는 거 안 보여? 시비 털지 말고 밥이나 차려, 새끼야.”

간신히 방문 앞까지 이르렀지만, 문을 열자마자 또 한 번 절망감이 엄습했다. 휑하다 싶을 정도로 집이 넓은 탓에 화장실까지도 보통 거리가 아니었다.

‘돌겠네 진짜.’

터질 것 같은 요의는 여전했기에 서규하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 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서규하는 서둘러 변기 앞에 섰다.

마침내 해방의 시간이 찾아왔다. 잠시 후, 쏴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변기 물이 빠른 속도로 내려갔고, 그제야 서규하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갈등도 함께 찾아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지금도 여전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가서 눕고 싶지만, 질척거리는 아래 때문에 마지못해 샤워 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가던 중에 별생각 없이 수납장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게 뭐야?”

어쩐지 눈 뜨기가 힘들더라니, 벌에 쏘이기라도 한 것처럼 눈꺼풀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 꼴로 앞을 보고 화장실까지 찾아온 게 신기할 정도였다.

경악스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울에 비치는 상반신 곳곳에 얼룩덜룩한 흔적이 있고, 뭔가가 하얗게 말라붙은 흔적도 있었다. 가슴 부근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였다. 짓무른 것처럼 보이는 상처도 있고, 유륜 주변에는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 있기까지 했다.

인지한 순간 밀려오는 쓰라림을 느끼면서 서규하는 샤워기 밑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하도 시달려서 그런지 피부를 때리는 물조차 따갑게 느껴졌다. 수압을 낮춘 상태에서 미지근한 물을 잠깐 맞고 서 있다가, 큰맘 먹고 엉덩이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입구에 닿자마자 흠칫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 때문에 감각이 분산되어 있는데도 아래가 무서울 만큼 부은 채로 벌어져 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입구가 이런데, 흉기 같은 물건에 내내 시달린 내벽이라 해서 멀쩡할 리가 없었다. 몸속에서 무섭게 팽창하던 것을 생각하니 차마 안을 만져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뒤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나갈 수도 없었다. 잠깐 샤워기를 끈 뒤에 서규하는 두 다리를 안정적으로 벌리고 섰다. 벽에 댄 왼팔로 몸을 지탱하고, 오른손은 다시금 뒤로 가져갔다. 부어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당기자마자 안쪽에 남아 있던 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더럽게도 많이 쌌네.”

끙끙대며 안에 든 걸 빼내고 있으니 뒤늦게 열이 올랐다.

러트가 온 알파는 정말로 개새끼가 따로 없었다. 고장 난 섹스 머신처럼 그야말로 쉼 없이 섹스를 이어 갔고, 그동안 단 한 번도 구멍 밖으로 성기를 빼낸 적이 없었다. 나중엔 울면서 제발 좀 빼 달라고 사정까지 했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목말라 뒤질 것 같다고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른 끝에 간신히 생수 한 병을 득템했을 때, 그리고 넘치도록 안을 채운 정액을 긁어 낼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이차영의 성기를 품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니 애널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한동안 아래에 힘을 줬다 빼기를 반복하다가, 더는 나올 것이 없다고 판단될 때쯤 다시금 샤워기를 틀었다.

수압을 최대치로 올린 다음 아래에 바짝 붙이며 갖다 댔다. 물줄기가 내벽을 때리는 생경한 느낌에 몸이 절로 움찔했다. 결국 서규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샤워기를 잠갔고, 간신히 뒤처리를 끝냈을 때는 기진맥진해서 당장에라도 쓰러져 눕고만 싶었다.

그 무렵 이차영은 팔짱을 낀 채 문가에 서 있었다. 시선은 저만치 있는 욕실 쪽을 향한 채였다.

서규하는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혼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던 것은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녀석의 걸음걸이는 몹시도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괜한 데서 오기가 있는 놈답게 결국은 화장실로 들어갔고, 이차영은 계속 그쪽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어떡할까.’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나오질 않는 걸 보니 샤워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비단 샤워만 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아마 혼자서 끙끙대며 뒤처리를 하고 있을 텐데,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래에 또 힘이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이차영은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뒤처리를 해 주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어찌 보면 그게 매너이지만, 과연 거기까지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아프다고 욕을 해댈 녀석을 달래면서 퉁퉁 부은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고, 잔뜩 차 있을 정액을 긁어 내고, 바들바들 떠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또다시 페니스를 밀어 넣을 제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그랬다간 이번에야말로 서규하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할 터였다. 걸리는 점은 또 있었다. 방금 한 번 더 하는 바람에 출근 시간까지 여유가 별로 없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지각은 결정된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결국 이차영은 미련을 접고 침실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탄탄한 몸을 적시며 땀과 체액을 씻겨 내렸다. 샤워를 끝낸 뒤에 새 가운을 걸치고 나오자, 서규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려고?”

“그럼 가지, 뭐 어쩌라고.”

서규하는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하면서 바지 지퍼를 올렸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피부가 선득한 느낌이 밀려왔다. 모르긴 몰라도 온 침실에 이차영의 페로몬이 가득 차 있는 게 분명했다.

“피곤하면 쉬었다 가. 뭐 먹을 거면 배달시켜 줄까?”

“됐어.”

짤막하게 대꾸한 뒤에 셔츠 단추를 빠르게 채웠다. 예민한 감각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 외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듯했다.

용케 잊지 않고 차 키와 핸드폰을 챙겨 들고 나가려는데, 이차영이 “잠깐만.” 하고는 앞질러서 거실로 나갔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분무기가 들려 있었다. 화초에 물을 주는 것처럼 부지런하게 뿌려 대는 행동에 서규하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냄새나나? 오자마자 벗고 다시 입은 건데.’

한 번 의식하니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팔뚝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으니 이차영이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뭐 해?”

“나한테 냄새나나 싶어서.”

그러자 설핏 웃으며 하는 말이 이어졌다.

“신경 쓰지 마. 페로몬 탈취제 뿌린 거니까.”

덕분에 서규하는 확신하게 됐다. 예상대로 이차영은 탈취제를 뿌려야 할 정도로 페로몬을 잔뜩 내뿜은 모양이었다. 그럴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뒤로 돌아서 봐.”

서규하는 순순히 돌아서면서 뒤늦은 불만을 토로했다.

“나랑 자면서 페로몬은 뭐하러 뿜어?”

“말했잖아. 불가항력이라고.”

“뭐?”

“어쩔 수 없었다고.”

페로몬으로 휘두르는 섹스는 취향이 아닌 데다 베타를 안을 때는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러트 사이클 때 성욕이 비이상적으로 치솟는 것은 이차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알파를 미치게 하는 오메가의 체향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지만, 이차영은 사흘 내내 페로몬을 완전히 개방한 채로 관계를 맺었다. 온 집 안에 범람할 정도로 뿜어 댔으니 서규하에게서도 자신의 체향이 나는 게 당연했다.

“다 됐어.”

칙칙 뿌려 대던 분무기질이 멈추자 희한하게도 숨 쉬는 게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서규하는 미간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이차영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느새 원래의 눈동자 색깔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한 번만 더 발정기 때 부르면 죽을 줄 알아.”

“왜. 너도 즐긴 거 아니었어?”

놀리거나 일부러 성질을 긁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지 않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그에 서규하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즐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몇 날 며칠 잠도 안 자고 해 대는 게 인간이야?”

생각하니 아래가 또 욱신거렸다. 동시에, 시선이 저절로 이차영의 중심부를 향했다.

계속 넣고 있었는데 저 새낀 멀쩡하나? 까졌거나 불어 터졌을 것 같은…….

“더 하고 싶어서 쳐다보는 거야? 출근 때문에 곤란한데.”

“닥쳐, 새끼야.”

더 있어 봤자 혈압만 오를 듯해서 서규하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등 뒤에서 느긋하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데려다줄게.”

“꺼져.”

심기가 불편하니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툭 하니 내뱉은 서규하는 운동화를 꺾어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긴 한숨이 흘렀다.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복도도 오늘따라 더럽게 길게만 느껴졌다.

아래가 쓰라린 탓에 어기적거리면서 빌라 밖으로 나오자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었다. 장장 사흘 만에 보는 바깥 풍경이었다.

***

집에 도착한 서규하는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기절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을 때는 창밖이 온통 캄캄하게 변해 있었다.

“아파 뒈지겠네.”

주말 내내 몸을 혹사한 후유증이 이제야 밀려오는지, 작살나게 맞은 사람처럼 온몸이 아팠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로 누워 있다가 간신히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뒤에 물 한 컵을 원샷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핸드폰을 켰다.

하지만 액정은 캄캄했다. 충전기를 찾아서 연결한 뒤에 서규하는 다시금 침대에 드러누웠다. 앉아 있으니 거기가 얼얼하고 불편한 탓이었다.

잠시 후에 핸드폰 전원을 다시 켜자 징징대는 진동음과 함께 액정이 밝아졌다. 조금 더 기다리니 익숙한 배경 화면이 보였다. 그리고 각종 문자와 앱 푸시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전화가 온 것처럼 난리가 났다.

왼손을 베개 삼아 벤 채 서규하는 우선 문자부터 확인했다. 뭐 하냐고 묻는 곰 새끼의 문자가 제일 먼저 보이고, 저만치 아래쪽에는 웬일로 오태석이 보낸 메시지도 있었다.

[나야. 문자보면 전화해]

[왜계속 전화를 안 받아. 아무때나 괜찮으니까 전화좀 줘]

[무슨일 있는거 아니지?]

“뭐 때문에 이래?”

오태석은 문자만 보낸 게 아니었다. 부재중 통화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서규하는 선심 쓰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병원 일이 바빠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는 사람이 주말 내내 이유도 없이 계속 연락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윽고 연결음이 끊기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규하야?

“알면서 왜 물어.”

- 대체 뭘 하느라 주말 내내 연락이 안 돼. 무슨 일 있었어?

떡 치느라 그랬다고 대답하면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뻔했기에, 서규하는 얼버무리듯 대답하고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냥, 좀 바빴어. 뭐 때문에 연락한 거야?”

- 그게…….

답지 않게 말을 끌더니, 미안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이어졌다.

- 약 처방이 잘못됐어. 진짜 미안하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서규하의 동공이 커졌다. 오태석이 빠른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 너 왔던 날에 내진 환자가 엄청 많았나 봐. 윤 쌤이 진료실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환자들을 봤는데, 너랑 이름이 비슷한 환자가 있어서 착각을 한 모양이야. 하필이면 그 사람도 남성체 오메가라서……. 진짜 미안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그날, 오태석을 대신해서 진료를 맡았던 의사 놈의 면상이 절로 떠올랐다. 한껏 미간을 구긴 채로 서규하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받은 약은 뭔데.”

- 신체 기능을 강화해 주는 보조제 같은 건데……. 먹었어도 큰 이상은 없을 거야.

오태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쩐지. 섹스할 때 유난히 피부가 찌릿찌릿하더라니.

- 내일 시간 될 때 병원에 잠깐 들러. 처방전 다시 지어 줄게.

“약만 탈 거면 동네 병원에 가도 되지 않아?”

- 그래도 되지. 아무튼 진짜 미안하다.

“형이 미안할 게 뭐 있어. 그 돌팔이 새끼가 잘못한 건데. 그럼 그 돌팔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 ……너한테 달려 있지. 개인적으로 연락하겠다는 걸, 일단은 기다리라고 했어.

이번만큼은 오태석의 판단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그 돌팔이가 직접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라면, 괘씸죄라는 명목까지 더해서 당장 찾아가 뒤집어엎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았으니까 끊어.”

곧 전화가 끊길 것을 직감한 오태석이 빠르게 당부를 더했다.

- 내일 바로 병원에 가. 알겠지?

“알았다고.”

잔소리를 피해서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 돌팔이를 어떻게 할지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서규하는 문자 확인을 계속 이어 갔다.

‘태석이가 널 찾는다’고 보낸 큰형의 문자, 카드 회사에서 날아온 문자, 그리고 점심때쯤 이차영이 보낸 문자도 있었다.

[몸은 괜찮아?]

[아까 말한다는게 깜빡했는데 열상에 바르는 연고 있으면 좀 발라둬]

[문자 보면 답장 줘. 그래야 안심될거 같으니까]

“안심은 개뿔.”

이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꼬이지.

문득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 때문에 억지로 이차영과 같은 태권도 학원에 다녔을 적에, 그때도 이차영은 대체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잘 챙겨 주는 편이었다.

덕분에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허구한 날 신경전이 벌어졌다. 어쩔 땐 진짜로 싸움이 나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손톱으로 할퀴는 일도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는 문화충격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 재회했을 때도 겉으로 보이는 녀석의 젠틀함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서규하는 속지 않았다. 이차영에게 있어서 ‘친절함’은 몸에 밴 습관 또는 버릇과 같은 거였고, 그러면서도 본인이 손해를 보는 일은 절대 없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랬다. 이차영이 정말로 젠틀한 놈이라면, 성욕에 눈이 돌아버린다는 러트 때 발정기도 없는 베타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안는 짓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생각하니 또 아픈 것 같아서 아래로 슬쩍 손을 가져갔다. 입구에 손등을 대 보자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뜨거웠다. 말뚝 같은 게 쉬지도 않고 계속 들락거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서규하는 인상을 팍 구긴 채로 뒤늦게 답장을 보냈다.

[연고사와치킨도사오고]

[존나갓튀겨서바삭하고매콤한거]

일종의 분풀이였다. 진짜로 오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고, 변명이 가득할 게 뻔한 답장이 오면 실컷 비웃어 줄 생각이었다.

꼬르륵-

확실히 정신이 돌아오긴 했는지 뒤늦게 허기가 밀려왔다. 집에는 먹을 만한 게 없었기에 서규하는 곧장 배달 앱을 켜서 메뉴를 살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은 허기부터 채울 생각이었다.

***

“앗, 지혜 씨 잔 비었네요. 한잔 받으세요.”

“괜찮아요. 이제 그만 마시려고요.”

“에이, 벌써부터 빼면 안 되죠. 취하면 제가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받으세요.”

“진짜 그만 마시고 싶어요. 홍준 씨나 더 드세요.”

짜증 섞인 목소리에 일순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시선에 박홍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든 말든 이차영은 느긋하게 자신의 술잔을 기울였다.

박홍준이 입사 동기인 유지혜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은 기획부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평소에도 틈만 나면 가서 말을 걸거나 유지혜의 책상에만 커피를 올려 두는 둥 워낙 티가 나게 행동하는 탓이었다. 대시했다가 벌써 차였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박홍준은 포기를 모르고 계속해서 수작을 걸었다.

자신의 팀원 때문에 한순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최 팀장이 얼른 소주잔을 들면서 말했다.

“나 한 잔 줘, 홍준 씨. 술이 입에 착착 붙네.”

“오늘따라 고기도 더 맛있는 거 같아요.”

눈치 빠른 곽민섭도 지원 사격을 더했다. 덕분에 또 한 번 서로의 잔에 잔을 부딪치면서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회식은 오늘 오후에 갑자기 정해졌다. 릴레이 회의 끝에 마침내 4/4분기 기획안이 최종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고 나타난 윤 부장은 망설임 없이 법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덕분에 모처럼 기획부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회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월요일부터 하는 회식이 딱히 달가울 리가 없지만, 다들 속마음은 어떻든지 간에 하하 호호 웃으면서 부지런히 배를 채웠다. 이차영도 예외 없이 참석해서 간혹 맥주잔을 홀짝였다. 소주도 맥주도 취향이 아니지만, 괜히 있는 그대로 말해서 피곤해질 바에야 적당히 맞춰 주는 편이 더 나았다.

음식의 질도 그다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입에 대는 시늉만 하면서 앉아 있다가 때를 봐서 담뱃갑과 핸드폰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덕분인지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밖으로 나온 이차영은 식당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가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온갖 음식 냄새가 즐비한 곳에 계속 앉아 있다가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마시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지이이잉-

손에 든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을 확인하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종일 묵묵부답이던 서규하한테서 마침내 답장이 왔다.

[연고사와치킨도사오고]

웃음이 좀 더 깊어졌다. 실컷 자고 이제야 일어난 모양인데, 세상 모든 불만을 가진 얼굴로 답장을 보냈을 표정이 눈에 선했다.

더불어 오늘 아침에 봤던 서규하의 얼굴이 생각났다. 밤새 운 사람처럼 눈가가 불긋하고, 입술은 바짝 마른 데다 피딱지까지 앉아 있었다.

전부 자신이 만든 흔적이었다. 첫 노팅을 성공적으로 한 뒤부터 그야말로 정신 나간 놈처럼 서규하를 안았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버거운 섹스에 울면서 쌍욕을 퍼붓던 모습과, 그러면서도 보채듯 계속해서 탐욕스럽게 조여 대던 구멍, 그에 완전히 빠져서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흔들다가 사정감이 치밀 때마다 거리낌 없이 사출했던 기억만이 선명했다.

이내 쓴웃음이 지어졌다. 아침의 일을 잠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당겨왔다.

답장을 보내려던 생각을 바꿨다. 그새 길이가 퍽 짧아진 꽁초를 간이 재떨이에 짓이겨 끄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여기 계셨네요.”

고개를 돌리니 유지혜의 얼굴이 보였다. 이차영은 곧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제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바람 쐬러 나오셨나 봐요.”

“네. 저기…….”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유지혜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면 이따 저랑 같이 한잔하러 가실래요?”

이차영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말하는 뉘앙스도 그렇고, 누가 봐도 이면의 뜻을 내포한 제안이었다. 유지혜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객관적으로 유지혜는 제법 괜찮은 여자였다. JM전자 기획부에 입사할 정도면 능력도 있고, 과하지 않은 자신감에 센스도 겸비한 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뻔히 예상되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사 직원을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요즘엔 원나잇 상대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운 섹스 파트너가 있기 때문이었다.

기대와 두근거림이 어우러진 유지혜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이차영은 짐짓 유감스럽다는 듯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미안한데 어쩌죠. 회식 끝나면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요.”

“……이 밤중에요?”

“네. 중요한 약속이라서 안 갈 수가 없네요.”

유지혜의 표정에 궁금함이 더해졌다. 그걸 본 이차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일개 직장 동료에 불과한 사람이 자신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달갑지 않고,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다음에 동기들끼리 따로 한 번 모이죠. 먼저 가 보겠습니다.”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식당으로 돌아가자 타이밍 좋게 파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2차 갈 거지?”

얼큰하게 취한 윤 부장의 물음에, 근처에 있던 직원들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럼요, 부장님. 오늘 같은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시겠습니까, 하하.”

“이래서 내가 강 차장을 좋아한다니까.”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 때는 다들 느긋하면서도 급할 게 전혀 없는 걸음이었다. 때를 봐서 슬쩍 이탈하려는데 앞서서 걷던 윤 부장이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그러고 보니 차영 씨는 어디 갔어?”

일순 사람들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했다. 이차영은 속으로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사장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다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점심을 함께 먹고, 야근도 자처해서 하다 보니 지금은 무난하게 잘 지내는 편이었다.

오직 한 사람, 윤 부장만이 이런 식으로 대놓고 티를 낼 때가 더러 있었다. 성가심을 담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뒤늦게 입을 열려는데, 뜻밖에도 최 팀장이 구원 투수가 되어 주었다.

“차영 씨 지금 뒤쪽에서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부장님, 이번에…….”

금세 화제를 전환하는 말이 이어졌다. 치켜세우는 말을 들은 윤 부장은 언제 누군가를 찾았냐는 듯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기회를 노리다 보니 시기적절한 때가 찾아왔다. 윤 부장을 필두로 한 윗사람들이 노래방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차영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응? 2차 안 가고요?”

“네. 약속이 있어서요.”

그러자 박홍준이 금세 띠꺼운 투로 끼어들었다.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부장님이 애타게 찾으실 텐데.”

이차영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곽민섭에게 부탁했다.

“혹시라도 누가 저 찾으면 몸이 안 좋아서 먼저 갔다고 해 주세요.”

“맞다. 차영 씨 지난주에 반차 냈었죠? 내가 잘 말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세요.”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차영은 곧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약국부터 먼저 들를 생각이었다.

***

음식이 주는 기쁨은 컸다. 뜨끈뜨끈한 국물로 속을 채우자 배고픔에서 비롯된 짜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식사를 마친 서규하는 방자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TV를 켰다. 시간 죽이기엔 핸드폰 게임이 제격이지만, 그것도 은근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뜻대로 안 풀리면 성질이 날 게 뻔하니 오랜만에 TV나 좀 보다가 잘 생각이었다.

배가 부르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념무상으로 멍하니 게임 채널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

시선이 현관문을 향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또 한 번 딩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서규하는 몸을 일으켰다. 허리를 뜨끔한 사람처럼 손으로 짚은 채 인터폰 앞으로 다가가자 이차영의 얼굴이 보였다. 이내 미간이 일그러졌다.

새끼, 문자는 씹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응답 버튼을 눌렀다.

“왜 왔어?”

“네가 오라고 했잖아. 치킨 사 왔어.”

묵직해 보이는 비닐봉지가 인터폰 화면에 비쳤다. 꼴깍,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배는 부르지만 치킨이라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었기에 서규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밤에 봐도 준수한 얼굴은 여전했다. 깔끔함이 돋보이는 헤어 스타일에, 맞춤일 게 분명한 블랙 트렌치코트가 기깔나게 잘 어울렸다.

“좀 쉬었어?”

“어. 치킨만 주고 가.”

“치킨이랑 나랑 세트야.”

“뭐?”

“하나만 들이는 건 안 된다고.”

농담조로 대답한 뒤에 이차영은 현관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섰다.

“술 깨게 물 한 잔만 줘.”

“술 마셨어?”

“회식 있었거든.”

“그럼 집에나 가지 여긴 뭐 하러 와?”

“치킨 먹고 싶다고 했잖아.”

순순히 하는 대답을 들으니 아주 살짝 양심에 찔렸다. 물 한 잔 정도는 대접해 줄 수 있었기에 서규하는 주방으로 걸어갔고, 이차영이 그 뒤를 따랐다.

“마셔.”

냉수를 가득 받은 컵을 건넨 뒤에 서규하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치킨 박스를 열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멋대로 맞은편에 앉은 이차영이 서규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몸은 괜찮아?”

“아파 뒈질 거 같아.”

즉각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몇 시간을 내리 자서 수면 부족과 눈꺼풀의 붓기는 많이 빠졌지만, 전신의 근육통과 그곳의 통증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에 비해 이차영은 몹시도 생생해 보였다. 분명 사흘 내내 같이 뒹굴었고, 체력이나 에너지 소모로 따졌을 때 자신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심지어 오늘 곧바로 출근한 데다 회식까지 했다는데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지난 금요일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진 것도 같았다.

‘발정기가 대단하긴 하네.’

체력적인 열세를 인정하기 싫어서 발정기 탓으로 돌리며 서규하는 부지런하게 치킨을 뜯었다. 배가 불러도 치킨은 맛있었다. 순식간에 클리어하고 다음 조각을 집으려는데 저만치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내가 갖다 줄게.”

이차영이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금세 돌아와서는 서규하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모란이한테 전화 왔어.”

“김모란?”

액정을 보니 정말로 ‘김모란’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손에 묻은 양념을 대충 닦은 뒤에 서규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나야. 뭐 하고 있어?

“치킨 먹는 중이야.”

- 죽을래?

밑도 끝도 없이 던지는 말에 서규하는 어이가 없었다.

“왜 갑자기 시비야?”

- 약 오르니까 그러지. 혼자 처먹으니까 맛있어?

존맛이라는 대답이 입 안을 맴돌았지만 서규하는 현명하게 말을 아꼈다.

“너도 시켜 먹어.”

- 완전 촌구석이라서 해만 졌다 하면 암전이야. 괜찮은 식당도 없고.

“고생이 많네.”

가만히 듣고 있던 이차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누가 들어도 영혼이라곤 없는 대꾸였다.

- 사진 좀 찍어서 보내 봐.

“무슨 사진. 치킨 사진?”

- 당연한 걸 뭘 또 물어. 설마 네 면상 찍어서 보내라는 뜻이겠어?

말투에 신랄함이 잔뜩 묻어났다. 못 먹어서 까칠해지는 건 누구도 예외가 없는 모양이었다.

“알았어. 근데 왜 전화했어?”

- 심심해서. 재밌는 이야기 좀 해 봐.

부탁의 탈을 쓴 거만한 명령이 이어졌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옛날부터 김모란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서 그보다 더 뜬금없는 요구를 할 때가 가끔 있었다.

이래서 기선 제압이 중요한 건데. 몇 번인지 모를 후회를 하면서 서규하는 입을 열었다.

“치킨 존나 맛있어.”

- 죽을래?

역시, 안 먹히나.

“ASL……. 뭐 그거라도 해 줄까?”

- 그게 뭔데.

“맛있는 거 먹으면서 소리 내는 거 있잖아.”

- ASMR이겠지. 그리고 먹는 소리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뇌를 자극해서 안정을 느끼게 하는 거야.

“이거나 그거나.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는데.”

- 한 달 넘게 남았어. 아님 여기로 놀러 올래?

“치킨 먹는 소리 들려줄게.”

- 죽인다, 진짜.

이후로도 한참을 티격태격한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 액정에 뜬 통화 시간을 보고는 내심 놀랐다. 딱히 오래 붙잡고 있은 것 같지도 않은데 10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먹다 만 치킨 조각을 집어 드는데 이차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란이랑 계속 연락하는 거야?”

“가끔.”

“의외네. 여자는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섹스만 안 할 뿐이야. 물 다 마셨으면 집에 가.”

축객령을 내렸지만 이차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규하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결혼은?”

“안 해.”

서규하는 뒤늦게 눈을 들어 이차영을 마주 보았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

“그냥. 예전에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아저씨면, 우리 집 꼰대?”

그렇다고 대답한 이차영이 특유의 낮고도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 사귀는 사람 없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셨어. 좋은 여자 있으면 소개 좀 해 달라 하시던데.”

“영감탱이가 미쳤나…….”

바와 클럽을 막론하고 어딜 가도 사람이 아쉬운 적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들 다가왔고, 개중엔 진지한 만남을 제안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원나잇 선에서 그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였다.

몇 번 연애를 해 봤지만 하나같이 끝이 좋지 못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집착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애인에게 열등감을 표출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병신도 있었다. 인성이나 배경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얼굴만 보고 오케이한 결과였다.

이후로 서규하는 인생에서 ‘연애’라는 단어를 완전히 지웠다. 세상은 넓고 예쁜 꽃돌이는 많은데, 굳이 한 사람에게 매여서 스트레스를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거나 부탁할 사람이 따로 있지, 이차영한테 그런 말을 했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덩달아 떠오른 어떤 생각에 서규하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다른 이야기 들은 건 없어?”

“다른 이야기?”

“……됐어. 못 들은 걸로 해.”

“왜. 뭔데 말을 하다 말아.”

“귓구멍 썩었어? 못 들은 걸로 하라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서규하는 괜히 큰소리를 쳤다.

순간적으로 ‘꼰대가 얼떨결에 자신이 오메가인 것까지 말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만일 이차영이 알게 됐다면 러트 때 그렇게 미쳐 날뛰면서 노팅까지 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일찌감치 섹파를 그만두자고 말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설핏 미간이 구겨졌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묘하게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끝을 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쪽에서 먼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안 먹어?”

“배불러.”

“고작 그거 먹고?”

“좀 전에 밥 먹었어. 쉬고 싶으니까 그만 가 봐.”

“연고만 발라 주고 갈게. 사실 그거 때문에 온 거야.”

쓸데없는 배려는 오늘도 여전했다. 잠깐 이차영을 바라보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놔두고 가. 내가 할 테니까.”

“혼자 하기 힘들잖아. 안쪽에는 손도 잘 안 닿을 거고.”

“됐다니까.”

“나 때문에 그런 게 미안해서 그래. 아까 보니까 걷는 것도 불편해 보이던데, 약 바르면 빨리 아물 거야.”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그걸 또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딘가에 앉거나 걸을 때마다 쓰라려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던 참이었다.

‘저 새끼 때문인 게 맞으니까.’

잠깐 고민하던 서규하는 이차영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거실로 나갔다.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린 다음 소파에 엎드려 누웠다. 민망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아침까지 발가벗고 뒹군 데다가, 이제는 눈을 감고도 상대의 나체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윽고 소파 한쪽이 살짝 내려가는 느낌과 함께 이차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러면 바르기 힘들 거 같은데.”

“됐으니까 대충 하고 집어치워.”

그러자 나지막하게 내뱉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찰싹하고 엉덩이를 가볍게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돌았어?”

“비집고 넣으면 아프다고 난리 칠 거잖아. 아니면 차라리 바로 누워 보든가.”

서규하는 욕설을 중얼거리면서 후배위를 할 때처럼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어떤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편이 좀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생각보다는 괜찮은 것 같네.”

“닥치고 얼른 약이나 발라.”

“하여튼 성질은.”

금세 애널에 뭔가가 닿는 느낌이 났고, 서규하는 반사적으로 흠칫했다.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으니 입구 주변에 약을 바르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손가락 하나가 몸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아프지는 않지?”

“……괜찮은 거 같아.”

내벽을 더듬는 손길은 사뭇 조심스러웠다. 한 곳에 집중적으로 연고를 바른 뒤에 빠져나가더니 잠시 후에 또 한 번 안으로 들어왔다.

뜨거운 곳을 식혀 주는 기분이 들어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어쩐지 가빠지려는 호흡을 달래면서 서규하는 머릿속을 비우려고 애썼다. 단순히 약을 바르는 것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삽입 전에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

약을 바르던 손끝이 어딘가에 닿은 순간 등이 흠칫 튀어 올랐다. 하마터면 터질 뻔한 신음을 간신히 삼킨 뒤에 서규하는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그쪽은 하지 마.”

“여기가 많이 부었어. 뜨겁기도 하고.”

덤덤하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규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금세 도로 다물고는 팔뚝에 이마를 묻었다. 안쪽은 차마 건드릴 엄두가 나질 않아서 내버려 둔 탓에 상태가 어떠한지 알 재간이 없었다.

“힘 빼고 편하게 있어. 금방 끝날 거야.”

다시금 안쪽을 더듬는 듯한 손길이 재개됐다. 유감스럽게도 금방 끝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게 미안하다면서, 이차영은 완벽하게 연고를 발라 줘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처럼 꼼꼼하고도 신중하게 손을 움직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규하는 점점 안절부절못했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내벽을 문지르는 손길에, 믿을 수 없게도 아랫도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부러 딴생각을 하고 의미 없이 가나다라마바사를 읊어도 잠깐뿐이었다. 아직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계속 이러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미친 거 아냐?’

책망의 대상은 본인이었다. 쾌락에 약하다는 사실은 스스로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약을 발라 주는 손길에도 반응한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차올랐다. 하물며 오랫동안 굶주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주말 내내 침대 밖을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해 댔는데, 내보낼 것도 없으면서 발기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가빠지려는 숨을 고르면서 서규하는 머리를 굴렸다. 빼라고 해 봤자 들어 처먹질 않을 게 뻔하니, 이번에 손가락을 빼내면 황급히 바지를 올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 주는 법이 없었다. 뒤를 채우고 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반쯤 발기한 성기를 가볍게 움켜쥐는 손길이 느껴졌다.

“섰네.”

“……!”

그대로 슥슥 훑는 손길에 서규하는 퍼뜩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래를 꽉 움켜쥐는 힘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편하게 있어. 빼 줄게.”

“안 놔, 새끼야?”

“해 준다는데 왜 그래.”

“안 해. 아프니까 놔.”

사흘 내내 쥐어짜듯이 주무르고 만져 댄 탓에 성기도 예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차영은 손을 떼는 대신 좀 더 붙어 앉으면서 현란한 손기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픈 것치곤 생생한데?”

고환 아래, 민감한 부분을 슥 훑는 느낌에 서규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민소매 티 위로 도드라진 날개 뼈와 얼룩덜룩한 목덜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차영은 느긋하게 손을 움직였다.

단정한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서규하는 전체적으로 몸이 예민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유독 잘 반응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거길 건드려 주면 언제 그만두라고 했었냐는 듯 확실한 반응이 나타났다.

오른손은 계속 성기를 만지면서 왼손은 거슬러 올라가서 젖꼭지를 꼬집어 댔다. 어느 순간 서규하의 입에서 흥분 섞인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사람은 비단 녀석만이 아니었다. 관망자 같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지만, 이차영의 중심도 불룩하게 솟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슴을 만져 주던 손을 거둔 이차영은 주저 없이 자신의 바지 앞섶을 풀었다. 지익, 지퍼 내려가는 소리가 울렸지만 서규하는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속옷을 살짝 끌어 내리자 발기한 성기가 튕기듯 튀어나왔다. 독 오른 뱀처럼 바짝 일어선 것을 두어 번 슥슥 훑은 뒤에 서규하의 엉덩이로 가져갔다.

끝을 맞춘 채로 허리에 힘을 주자 촘촘하게 다물려 있던 구멍이 순식간에 한계까지 벌어지며 성기를 삼켰다. 그와 동시에 경악하듯 외치는 말이 들렸다.

“씨발, 미쳤어?!”

“한 번만 하자.”

“안 한다고! 빨리, 악!”

서규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 손으로 골반을 붙잡은 이차영이 그대로 허리를 쳐올렸다.

강렬한 충격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맺혔고, 인지하기도 전에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몸을 숙여 상체를 바짝 붙인 이차영이 서규하의 귓가에 대고 어르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쉿, 착하지. 금방 기분 좋게 해 줄게.”

촉, 촉, 목덜미에 입맞춤을 반복하면서 이차영은 잘게 허리를 흔들었다.

시발. 서규하는 욕을 뇌까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 부어 있는 곳을 헤집어 대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엿같은데, 더 엿같게도 그 사이로 희미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응, 윽, 흡!”

신음을 입 안으로 눌러 삼키면서 팔뚝에 이마를 묻고 말았다. 쾌락에 약하디약한 몸뚱이가 오늘처럼 야속할 수가 없었다.

이차영이 그런 서규하의 얼굴을 붙잡아 돌리며 입을 맞췄다. 벌어진 입 안으로 뜨거운 살덩이가 밀려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이차영은 부드러운 키스를 했고, 키스가 끝난 뒤에는 눈가로 입술을 옮겼다.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맺힌 눈물을 빨아들인 뒤에 다시금 천천히 허리를 놀렸다.

내키는 대로 거칠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하는 섹스도 나쁘지 않았다. 느리게 왕복 운동을 할 때마다 뜨거운 내벽이 꿈틀거리며 조이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좀 전에 약을 바르려고 손가락을 넣었을 때, 안쪽은 열이 오른 것처럼 뜨거우면서도 도도록하게 부어 있었다. 그런 곳을 드나들고 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아래로 손을 뻗어서 서규하의 성기를 만져 주는데, 갈라진 목소리로 하는 말이 들렸다.

“자세 좀 바꿔 봐. 팔 아파.”

두 팔로 버겁게 상체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차영은 기꺼이 서규하의 말에 따랐다. 뒤에서 상체를 끌어안은 다음, 힘들이지 않고 움직여서 소파에 앉았다. 덕분에 서규하는 삽입당한 채로 이차영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는 꼴이 됐다.

“자, 잠깐만!”

“버둥대지 마. 떨어진다.”

벌어진 허벅지 안쪽을 붙잡은 채로 이차영은 다시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 곳을 잃은 서규하의 손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고는 귓불을 잘근대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내 팔 붙잡아. 아니면 마주 보고 할까?”

차라리 그게 나을 듯했다. 이 자세로는 잡힌 물고기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데다, 발을 디딜 만한 곳도 마땅찮았다.

페니스를 빼낸 이차영은 휘청거리는 서규하를 붙잡아서 자신을 마주 보고 앉게끔 했다. 허리를 바짝 끌어안은 다음 벌어진 구멍 안으로 다시금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기분 좋게 조이는 감각은 여전했다. 탄력 있는 둔부를 두 손 가득 움켜쥔 채 이차영은 느긋한 섹스를 이어 갔다.

힘들어 보이는 표정과 달리 서규하의 중심은 강도를 잃지 않고 꼿꼿하게 발기해 있었다. 끝에서 흘러내린 선액이 와이셔츠에 얼룩을 남겼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비단 앞쪽만이 아니라 몸 안쪽도 젖어서 움직일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그 상태로 이차영은 페로몬을 조금씩 방출하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어깨를 붙잡고 있는 서규하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조임도 좀 더 강해졌다.

“으응….”

뒷머리를 끌어당기며 입을 맞추자 기다린 것처럼 눈을 감고 스스럼없이 입을 벌린다. 미끈한 혀에 자신의 것을 얽으면서 이차영은 페로몬을 조금 더 강하게 개방했다.

“하, 응, 읏, 하읏!”

대체 언제 거부했었냐는 듯 서규하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리드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툭 불거진 울대가 눈에 들어왔다. 서규하의 뒷목을 한 손으로 끌어당긴 이차영은 쇄골 위에 이를 세우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러자 대번에 못마땅한 투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지 좀 마. 진짜 무슨 개새끼도 아니고…….”

“개새끼처럼 굴면 물어도 된다는 뜻이야?”

“돌았어?”

움푹 팰 정도로 선명하게 남은 잇자국을 보니 아플 것 같긴 했다.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처럼 이차영은 그 위를 가볍게 핥았다.

서규하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목에 집착하는 것은 알파로서의 본능이었다. 목은 분비선이 지나는 곳이었다. 베타인 녀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흥분하면 저도 모르게 이를 세우곤 했다.

슬슬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차영의 상태를 눈치챈 서규하가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말했다.

“안에 하지 마.”

“씻겨 줄게.”

턱 끝에 입을 맞추며 달래듯 말했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했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결국 넘어간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체내 사정은 달랐다. 지금 하는 섹스 때문에 더 부었을 게 뻔한데, 거길 또 헤집고 뒤처리를 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이차영에게 맡기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보나 마나 틀림없이 개수작을 부릴 거고, 휩쓸리듯 또 붙어먹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랬다간 이번에는 진짜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았다.

“응, 읏, 빼, 새끼야.”

“알았으니까 긴장 풀어.”

골반을 붙잡고 내리찧는 움직임이 점점 빠르고 거칠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싸고 싶지만, 이차영은 욕망을 눌러 참고 사정 직전에 페니스를 빼내서 서규하의 것과 동시에 쥐었다.

타이트하게 붙잡고 빠르게 훑자, 서규하가 뜨끈하게 열이 오른 몸으로 목을 껴안아 오며 거친 신음을 토해 냈다.

“크흣…!”

절정은 금방 찾아왔다. 쾌감에 몸을 굳힘과 동시에, 터져 나온 정액이 이차영의 손을 흠뻑 적셨다.

서규하도 거의 동시에 절정에 달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이완되고, 나직하게 내뱉는 숨이 이차영의 쇄골에 닿았다.

“…….”

고개를 드는 서규하와 눈이 마주쳤다. 이차영은 한 번 더 녀석의 뒷목을 감싸며 얼굴을 가까이 했고, 서규하는 거부하지 않았다.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서 서규하도 두 손으로 이차영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서로의 키스 취향도 훤했다. 타액과 호흡이 한데 섞이는 키스는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