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6. (6/28)

Chapter 6.

***

차에서 내린 서규하는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직전에 확인한 핸드폰 시계는 오후 4시 10분을 살짝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해서 여유 있게 집을 나섰지만, 앞서 들른 정형외과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오늘따라 신호 운도 영 따라 주질 않았다. 오는 동안 계속 신호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살짝 늦고 말았다.

오늘도 들르는 곳은 동일했다. 서규하는 각종 검사부터 먼저 한 뒤에 내분비과로 향했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핸드폰을 켜 보니 문자가 몇 통 들어와 있었다. 그중엔 담당의인 오태석이 보낸 것도 있었다.

[안늦고잘도착했어?]

[ㅇㅇ]

답장을 보낸 뒤에 다른 메시지들도 차례로 확인하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오태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진료 순서를 확인한 서규하는 대기실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왜.”

- 병원에 도착한 거 맞아?

“맞다니까. 환자들이 존나게 많아서 기다리는 중이야.”

- 말하는 본새하고는.

오태석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사흘 전이었다. 진료 날짜에 대타로 학회에 참석하게 됐다면서 내일 병원에 들를 것을 제안했지만 서규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잠결에 전화를 받아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오전 진료는 사양이었다. 그리고 일부러 같은 날에 정형외과 진료까지 잡아 놔서 일정을 변경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철부지 애새끼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전화까지 한 걸 보니 어지간히 한가한 모양이었다.

- 진료 잘 받고, 다음에 형이랑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자.

“알았어. 끊어.”

대기실로 되돌아가니 아직도 대기 환자가 두 명이나 더 있었다. 빈 의자에 앉은 서규하는 윤병철의 문자에도 답장을 보낸 다음 즐겨 하는 폰 게임을 켰다. 음 소거 상태로 적군들에게 총을 쏴 대고 있으니 마침내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서규하 님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환자용 의자에 앉은 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파티션 같은 얇은 커튼이 걷히면서 가운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서규하 님 맞으시죠?”

“네.”

의사는 앉자마자 마우스를 손에 쥐고 빠르게 움직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길도 분주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그제야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했다.

“괜찮네요.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이번에도 수치가 높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는데 잘 유지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흘끗 쳐다본 모니터 속 그래프도 큰 굴곡 없이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불편한 데는 없습니까?”

“네.”

“그럼 약만 처방해 드릴 테니 잘 챙겨 드세요.”

먼저 일어선 의사가 흰 가운 자락을 펄럭이면서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 실제로 펄럭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몹시 분주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시발, 존나 불친절하네.”

뒤늦게 불만이 흘러나왔다. 다음번 예약을 잡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허겁지겁 들어온 코디네이터는 사무적인 태도로 다음 진료 날짜를 제안했고, 서규하는 한 달 뒤 금요일 오후 시간대로 정한 뒤에 진료실을 나섰다.

***

병원을 나선 서규하는 근처 영화관으로 차를 몰았다.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저녁에 윤병철과 만나기로 했는데,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오려니 귀찮고 차에서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영화관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선택은 실패했다. 상영 시간이 제일 빠른 걸로 무작정 골랐는데 하필이면 초반부터 신파 느낌이 팍팍 풍기는 로맨스 영화였다. 뒤늦게 장르를 파악한 서규하는 영화 관람을 포기하고 숙면을 취하는 편을 택했다.

짧지만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태프 롤이 올라갔고, 서규하는 기지개를 쭉 켜면서 상영관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사위가 캄캄하게 변해 있었다. 무음으로 해 둔 핸드폰을 확인하자 어디냐고 묻는 윤병철의 문자가 보였다. 지금 간다는 답장을 보낸 뒤에 서규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윤병철은 핸드폰 삼매경이었다. 입꼬리가 주체할 줄 모르고 올라가 있는 걸 보니 딱 봐도 애인과 문자를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나 왔어.”

맞은편 의자를 빼고 털썩 앉자 그제야 윤병철이 고개를 들었다.

“집에 들렀다 왔어?”

늦은 이유를 에둘러 묻는 말에 서규하는 새 물컵에 물을 따라 부으면서 대답했다.

“시간이 떠서 영화 한 편 보고 왔어.”

“뭐 봤는데.”

“몰라. 시간 맞는 걸로 골랐는데 존나 재미없더라.”

그런 영화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윤병철은 알 만하다는 얼굴로 웃었고, 이윽고 벨을 눌러서 갈비부터 시켰다. 함께한 시간이 있다 보니 서로의 취향쯤은 손바닥 보듯이 훤했다.

물티슈에 손을 닦으면서 서규하는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따로 보자고 한 거야?”

오늘 윤병철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청첩장을 주기 위해서였다. 곧 결혼한다는 말은 지난번에 들었으니 청첩장을 주면서 밥을 사는 것은 딱히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만 당연히 다른 놈들이랑 같이 부를 줄 알았는데 둘이서만 만나자고 하는 게 이상했다.

“일단 이거부터 받아.”

서류 가방을 연 윤병철이 청첩장 봉투를 내밀었다. 군말 없이 받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 두는데, 그 모습을 본 윤병철이 특유의 저음인 목소리로 말했다.

“열어 봐.”

“뭘 굳이 열어 봐. 청첩장인 거 다 아는데.”

“그래도 열어 봐.”

“뭔 금테라도 둘러 놨어?”

서규하는 툴툴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스티커를 떼고 안에 든 청첩장을 꺼냈다. 생각 없이 펼쳐 본 것도 잠시,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닿은 순간 “응?”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윽고 서규하는 윤병철에게 청첩장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글자 잘못 찍힌 거 아냐? 장남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시 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변함없었다. ‘삼남 윤병철’이라는 글자 밑에 ‘장녀’가 아닌 ‘장남 임형빈’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아무리 일반 상식이 부족해도 장남과 장녀가 뭔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텅 비지는 않았다. 펼쳐진 청첩장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윤병철은 시선을 들어 서규하의 얼굴을 마주했다.

“장남 맞아. 큰아들이거든.”

서규하의 표정이 좀 더 일그러졌다. 장남이 맞다고?

그러다 뒤늦게 뭔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곧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자 오메가야?”

“맞아.”

군더더기 없는 대답이었다. 서규하는 잠깐 말없이 윤병철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이내 소주병을 들고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러곤 갈비를 불판 위에 올리면서 까먹기 전에 말을 꺼냈다.

“결혼 선물은 뭐 받고 싶은데.”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고, 절친들 중에서 제일 먼저 유부남이 되는 만큼 웬만하면 원하는 걸 선물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 윤병철은 잠잠했다. 불판 가득 고기를 올린 뒤에 맞은편을 쳐다보니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모양이었다.

한 번 더 물어보려는 순간 마침내 윤병철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게 다야?”

“뭐?”

“그게 다냐고.”

“뭔 말이야.”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서규하는 표정을 굳혔다.

“밥도 내가 사라 이거냐?”

“그게 아니고. 남성체 오메가랑 결혼하는 거 알게 됐잖아. 근데 그 반응이 전부냐고.”

“그러면 뭐, 축하한다고 춤이라도 춰 줘?”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윤병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욱해서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윤병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남자랑 결혼한다는데……. 아무렇지 않아?”

아아, 난 또 뭐라고.

그제야 윤병철의 반응을 제대로 캐치한 서규하는 불판 위의 고기를 뒤집으면서 대답했다.

“서로 좋아서 한다는데 뭔 상관이야.”

사실 몹시 드문 케이스이긴 했다. 남자 오메가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 동성끼리 결혼식까지 하는 경우는 더더욱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서규하는 정말로 개의치 않았다. 일단 자신만 해도 남자 오메가인 데다 여자들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남자와 결혼한다’는 윤병철의 말을 듣고 자신이 했을 대답은 같았을 터였다.

그보다는 윤병철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저씨 성격상 쉽게 허락해 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저씨가 잘도 허락해 줬나 보네.”

“안 해 주면 집이랑 인연 끊겠다고 했어.”

“자식 키워 봤자 소용없다니까.”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픽 웃으며 대꾸한 윤병철이 다시금 서규하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느덧 긴장감은 사라지고 신뢰가 담긴 눈빛이었다.

“고맙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 줘서.”

“징그럽게 왜 이래. 됐으니까 받고 싶은 선물이나 생각해 놔.”

“결혼식에 와 주는 걸로 충분해. 근데 정 해주고 싶으면 소파나 한 대 놔 줘.”

“소오파?”

“일생에 한 번뿐인 찬스인데 이 정도는 불러야지.”

“날강도 새끼가 여기 있었네.”

슬슬 술기운이 도는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소주잔을 내려놓은 서규하는 성의 없이 대충 두르고 나온 머플러를 풀었다.

“…….”

옆자리에 내려놓는 순간,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도 안 하는 머플러를 두른 이유는 목 여기저기에 찍힌 흔적들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서규하가 그걸 발견한 것은 이차영이 다녀간 다음 날이었다. 이 날씨에 모기 새끼가 물어뜯었을 리는 없고, 셀프로 이런 흔적을 남기는 재주도 없었다. 딱 봐도 이차영이 한 게 분명한데, 미친 새끼가 얼마나 지독하게 씹어 댔으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탓에 서규하는 쌍욕을 퍼부으면서 옷장을 뒤진 끝에 얇은 머플러 하나를 찾아냈다. 남의 시선 따윈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오늘 저녁 약속 상대가 윤병철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가당치도 않은 헛다리를 막고자 일부러 두르고 나왔는데, 그새 까먹고 스스로 드러낸 꼴이 됐다.

‘……다시 두를까.’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고 있으니 예상대로의 말이 들려왔다.

“애인 생겼어?”

멍청함에 한숨을 내쉬면서 서규하는 대답했다.

“애인은 무슨.”

그러든 말든 윤병철은 건수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었다.

“아니면 네 성질머리에 쪼가리 내는 거 봐줄 리가 없을 텐데.”

“아니라니까.”

봐주는 게 아니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섹스하는 도중엔 이차영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도 버거울 때가 많아서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다음 날 거울을 통해서 씹힌 자국을 확인하고 ‘다음에 만나면 말해야겠다.’ 생각하지만, 막상 또 만나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불필요한 대화가 이어지기 전에 서규하는 말을 돌렸다.

“네 이야기나 해 봐. 마초 새끼가 어쩌다 남자랑 결혼까지 하게 된 거야?”

선심 써서 멍석을 깔아 주자 윤병철은 기다렸다는 듯 본인의 연애담을 풀어놓았다. 시종일관 미소가 가실 줄 모르는 모습을 서규하는 낯설단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새끼야.”

이내 픽 웃음이 나왔다. 밖에서는 온갖 무게를 다 잡는 놈인데, 이렇게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좋나 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책상 위 연필꽂이 통을 뒤적거렸지만 찾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서류철 사이를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였다. 책상 서랍까지 죄다 열어 본 뒤에 이차영은 낮은 목소리로 옆자리 직원을 불렀다.

“민섭 씨.”

“네.”

그러자 곽민섭은 곧바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옆을 돌아봤다.

“혹시 제 책상 위에 있던 검은색 볼펜 못 보셨어요?”

“네, 못 봤어요. 없어졌어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요.”

“한 번 더 찾아보면……. 아 참.”

곽민섭이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좀 전에 홍준 씨가 창가에 서 있었는데, 메모할 걸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거 같더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일어서서 다가가 보니 박홍준은 부재중이었다. 이차영은 빠른 눈으로 박홍준의 책상을 살폈다.

이내 설핏 인상이 찡그려졌다. 입이 벌어진 필통 속에 익숙한 검은색 볼펜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이차영은 짤막한 한숨을 내쉬며 팔을 뻗었다. 동일한 종류의 볼펜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유학 초창기 때부터 몇 년간 계속 쓰고 있는 M사의 볼펜은 국내 유통이 안 돼서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는데, 좀생이 기질이 있는 박홍준이 물건값보다 배송료가 더 비싼 상품을 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듭 한숨이 흘러나왔다. 표정은 드물게 굳힌 채였다. 이차영은 명백한 자신의 소유물에 누군가가 허락 없이 멋대로 손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면 더더욱.

볼펜을 들고 돌아서는데 마침 박홍준이 종이컵을 손에 쥔 채로 다가왔다.

“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요?”

“……제 볼펜을 빌려 갔다고 들어서요.”

“아.”

짤막한 신음을 흘린 뒤에 박홍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갑자기 메모할 일이 생겨서 좀 빌렸어요. 근데 찾으러 왔네요? 보통은 그냥 둘 텐데.”

미안함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되레 적반하장 격이나 다름없는 말에 순간적으로 이차영의 눈빛이 싸늘해졌지만, 금세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제 물건은 잘 챙기는 편이거든요.”

“인생 참 피곤하게 사네요.”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피곤할 일이 없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이차영은 당부를 빙자한 경고를 덧붙였다.

“앞으로는 허락 없이 제 물건에 손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대로 박홍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살짝 굳은 채로 서 있던 박홍준이 뒤늦게 뒤를 돌아보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참 나, 볼펜 하나 갖고 더럽게도 구네.”

아닌 척하면서 듣고 있던 부팀장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고 급해서 빌려 썼으면 홍준 씨가 먼저 돌려줬어야지.”

“그럴 생각이었어요. 잠깐 화장실 갔다 왔는데 그새 와서 난리 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럼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모니터에서 시선도 떼지 않고 하는 말에 박홍준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부팀장님은 무조건 차영 씨 편이죠?”

“편들고 할 게 어딨어. 차영 씨 말이 맞으니까 그런 거지.”

네, 네. 속으로 비아냥거리듯 대답하면서 박홍준은 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급해서 눈에 띄는 대로 잡아서 쓴 게 맞고, 통화를 끝내고 보니 어느새 본인의 책상이 코앞이었다. 단돈 몇 푼이나 하겠냐는 생각에 그냥 계속 쓸 생각이었는데……. 설마 그걸 찾으러 여기까지 올 줄이야.

“하여튼 정 안 가는 새끼라니까.”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사무실 밖으로 나간 이차영은 복도 끝에 있는 남성 휴게실로 들어갔다.

덜컹, 소리를 내며 떨어진 캔 음료의 탭을 땄다. 창밖을 내다보는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별말 없이 볼펜만 챙겨서 자리를 떠났을 거다. 쓸데없는 분란을 만드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기 때문인데,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젠틀하거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럴 가치가 없는 상대에게는 짧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조차 아까웠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컨디션이 저조했다. 이유는 러트 때문이었다. 페로몬 수치로 따지면 최상위급에 속하는 그는 몇 년째 달마다 동일한 러트 주기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걸 억제제로 누르고 있는데, 효과는 좋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어쩌면 식욕이나 수면욕보다 더 강한,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구를 억지로 틀어막다 보니, 전날에 약을 복용하는 순간부터 몹시 예민해지고 성격이 날카로워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평소만큼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몇 해 전에는 길을 걷다가 사소한 시비가 붙어서 주먹을 내지른 적도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이 무렵에는 부딪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주변에서 먼저 자극하면 방도가 없었다.

차가운 음료를 마셔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온갖 냄새와 소음이 가득한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쾌함이 차올랐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했다.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이차영은 사무실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팀장의 자리로 가서는 조용히 그를 불렀다.

“지금 반차 좀 쓸 수 있을까요?”

“응? 지금?”

“네.”

“왜. 무슨 일 있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 보려고요.”

“어디가 안 좋길래.”

팀장은 아예 의자까지 돌려서 시선을 마주했다. 눈가에 걱정이 묻어났지만 지금은 그조차 귀찮았다. 팀장은 베타였다. 구구절절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소지가 다분했기에 이차영은 에둘러 대답했다.

“속이 영 불편하네요.”

“듣고 보니 안색이 안 좋네. 얼른 병원에 가 봐.”

“네,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간 이차영은 곧바로 코트를 챙겨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한 번 저조해진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목을 옥죄는 듯한 넥타이 매듭을 끌어당기면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손에 쥔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굳은 표정으로 액정을 확인하니 메시지 한 통이 들어와 있었다.

[오늘볼거지? 너네집으로ㄱ?]

금세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오늘은 안 된다’고 답장을 보내려던 것도 잠시, 이차영은 한숨을 토하며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다시금 문자를 확인했다. 거듭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릴 때부터 봐 온 만큼 이차영은 서규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만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보낸 듯한데……. 오늘 또 한 번 거절했다간, 자존심 때문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하필이면 오늘…….’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곤란했다. 이유는 팀장과 같았다. 러트 전날이라서 예민하다고 베타인 녀석에게 말해 봤자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외려 ‘발정기면 더 꼴려서 할 수 있지 않냐’는 둥의 생각 없는 말을 해 댈 게 뻔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이차영은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평소와 달리 힘이 바짝 들어간 손길이었다.

[오늘 만나면 평소보다 거칠 거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어?]

그러자 금세 답장이 왔다.

[당연하지새끼야ㅋㅋㅋ 너나허리아프다고울지마]

픽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예상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는 놈이었다. 내심 서규하가 거절해 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다.

[월요일까지 약속 잡지 마]

[허세보소ㅋ 몇시까지갈까]

이차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12분. 이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왜.

“진짜 감당할 수 있겠어?”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코웃음을 치면서 하는 대답이 들렸다.

- 남 걱정할 시간에 네 허리 걱정이나 해, 새꺄.

“후회하지 마.”

- 후회 같은 소리 하네. 그래서, 몇 시까지 가면 되냐고.

“5시……. 아니 4시 반까지 와.”

방금 봤던 시간을 상기하며 대답하자 금세 욕설이 날아들었다.

- 장난해? 그 새벽에 가서 뭘 어쩌라고.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훤히 그려졌다. 줄곧 불쾌하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이차영은 차에 오르면서 대답했다.

“새벽 말고, 오늘 오후 4시 반까지 오라고. 반차 써서 집에 가는 중이니까.”

- 반차가 뭔데.

“……조퇴했다고.”

-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존나 어렵게 말하고 지랄이야.

“…….”

- 조퇴는 왜 했어? 어디 아파?

“아프면 병간호해 주려고?”

장난스럽게 묻자 신랄한 대답이 돌아왔다.

- 개소리하네. 아프면 안 가. 감기 옮는 거 질색이야.

“냉정하기는.”

픽 웃은 뒤에 이차영은 말을 이었다.

“안 아프니까 안심하고 와.”

- 이랬는데 감기면 죽을 줄 알아.

그대로 전화가 뚝 끊겼다. 이차영은 그제야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얼굴은 언제 미소를 지었냐는 듯 무표정했다.

***

한 방에 주차를 끝낸 뒤에 서규하는 안전 벨트를 풀었다. 차에서 내리자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빌라 입구에 이른 서규하는 핸드폰 메모장에 적힌 비밀번호를 보고 눌렀다. 공용 현관이니 쉬운 번호로 해 두면 될 텐데 더럽게도 길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자 먼지 한 점 보이지 않는 대리석 바닥이 나타났다.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갔다. 잠시 후, 층에 하나뿐인 현관문 앞에 멈춰 서서 벨을 누르니 이내 문이 열리며 이차영이 나타났다.

“어서 와.”

순간 서규하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보자마자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만 보면 여전히 잘생긴 낯짝도, 살짝 웃는 듯한 미소도 그대로인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와이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가? 근데 정장 차림은 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안 들어와?”

그제야 안으로 들어서다가 또 한 번 멈칫했다. 춥지도 않은데 소름이 쫙 돋았다. 정전기가 이는 것처럼 피부가 선득해지면서 오한을 닮은 떨림이 찾아왔다. 굳은 듯 서 있는 모습을 본 이차영이 물었다.

“왜 그래?”

“……아냐.”

말과 달리 서규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유도 모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차영이 성큼 다가왔다.

“……!”

깜짝 놀라 물러서려고 했지만 녀석이 한 발 더 빨랐다. 뒷머리를 감싸며 끌어당긴 이차영이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벌어진 입 안으로 물컹한 무언가가 밀려 들어왔다. 이차영은 능숙하게 혀를 휘감으며 입맞춤을 했다.

여전히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서규하도 눈을 감고 적극적으로 혀를 움직이며 키스에 열중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 긴 타액이 늘어졌다. 호흡을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던 이차영은 다시금 서규하의 턱을 올리며 입술을 겹쳤다.

서규하의 눈썹이 꿈틀했다. 치아에 입술이 찍혔는지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놈의 움직임은 거셌다. 키스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기라도 했는지, 혀를 뽑을 것처럼 빨아 대고 곳곳을 핥아 대는 둥 난리도 아니었다.

“야, 좀, 우웁…!”

밀어내려 해도 소용없었다. 단단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외려 허리를 압박하듯 끌어안은 채로 전투 같은 키스를 계속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받아 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참고 참다 입술을 깨물려는 찰나, 내내 입 안을 휘젓던 이차영의 혀가 귀신같이 빠져나갔다.

“푸하!”

어김없이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한껏 인상을 구긴 채 손등으로 입가를 닦자 아니나 다를까 타액이 섞인 옅은 피가 묻어났다.

“시발, 아프잖아.”

“좋다고 같이 비볐을 때는 언제고.”

정곡을 찌르니 할 말이 없어졌다. 휘익, 놈의 멱살을 끌어당기면서 이번에는 서규하가 먼저 입을 맞췄다.

“……!”

고의로 아랫입술을 깨물자 이차영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달래듯 두어 번 핥아 준 뒤에 놈의 입 안으로 한껏 혀를 밀어 넣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움이 찾아왔다. 받은 게 있으면 똑같이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웠다.

“응, 춥, 하아….”

입가가 흥건해질 정도로 격렬한 키스를 나누면서 이차영은 서규하의 옷을 벗겨 냈다. 그에 질세라 서규하도 이차영의 와이셔츠 단추로 손을 가져갔다.

피부가 선득하면서도 저릿저릿한 감각은 여전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당장 이차영의 옷을 벗겨야만 사는 사람처럼 성마르게 손을 움직이다가, 급기야 나머지 단추는 힘으로 쥐어뜯었다.

이차영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문 앞에 서 있는 서규하를 본 순간부터 ‘이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급격한 흥분이 차올랐다.

서로 싸우듯 옷을 벗기면서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서규하를 밀어 눕힌 이차영은 드러난 목에 이를 세우고 잘근잘근 씹어 댔다. 알파로서의 본능에 따른 행위였다.

“좀 떨어져, 새끼야.”

통증을 느낀 서규하가 머리통을 밀어냈지만 굳건한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달래듯 혀를 내밀어 핥은 뒤에 점점이 입을 맞추며 아래로 내려왔다. 금세 서규하의 몸이 흠칫했다. 자그마한 유두가 뜨거운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열기는 빠르게 고조되었다. 다리 사이를 주무르는 손길에 중심이 금세 딱딱하게 일어섰다. 서규하도 손을 뻗어서 이차영의 페니스를 훑었다. 꿈틀대며 손바닥을 적시는 느낌에 놀란 눈으로 얼굴을 쳐다봤다.

“벌써 쌌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야.”

“그럼 이건, 으웁!”

또다시 입술이 막혔다. 이차영의 손이 분주해졌다. 왼손으로는 젖꼭지를 꼬집고, 다른 손은 다리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서 뒤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서규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신음했다. 오늘 이차영은 확실히 뭔가가 이상했다. 전희는 보통 여유롭게 하는 편인데, 오늘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성급함이 느껴졌다.

입구를 지분거리던 손가락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거침없이 안을 휘젓다가 빠져나가더니, 차가운 무언가가 아래를 흠뻑 적셨다.

“앗, 차거!”

놀라서 쳐다보니 이차영의 손에 튜브가 들려 있었다. 손바닥으로 대충 아래를 문지른 뒤에 이차영은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밀어 넣었다. 왼손으로는 서규하의 페니스를 쥐고 거칠게 흔들었다.

꽉 다물려 있던 아래가 조금씩 벌어졌다.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서규하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길쭉한 손가락이 내벽을 자극하며 긁어 댈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랫배가 뭉근한 것 같기도 하고, 가려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안을 자극하던 손가락을 빼내며 이차영이 말했다.

“넣을게.”

그 말에 서규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미쳤어? 벌써, 으읏!”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차영이 허리를 들이밀었다. 이윽고 아래를 파고드는 묵직한 압박감이 찾아왔다.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관자놀이에는 핏대가 솟았다.

두 손이 멋대로 시트를 틀어쥐었다. 벌써 몇 번째 경험하는 일이지만, 이 순간의 느낌은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이차영의 미간도 굳기는 마찬가지였다. 삽입이 어려울 정도로 타이트한 조임에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서규하를 내려다봤다.

“힘 빼. 금방 좋아지는 거 알잖아.”

“갑자기 넣으니까 그렇지, 새끼야.”

주먹이 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이 와중에도 여전한 얼빠 기질이 문제였다. 성적인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차영의 얼굴은 심장에 해롭다 싶을 정도로 취향을 저격했다. 무리한 삽입에 버거운 것도 여전했기에 서규하는 한껏 인상을 구긴 채로 자신의 성기를 훑기 시작했다.

크고 단단한 이차영의 손이 그 위에 겹쳐졌다. 꽉 쥐고 위아래로 훑으면서 이차영은 다시금 삽입을 시도했다.

저항감은 여전했지만 아예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길을 내듯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가, 마지막에는 서규하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힘으로 밀어 넣었다.

“……!”

서규하가 숨을 삼키며 경련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걸 봐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래가 완벽하게 맞물리자마자 이차영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안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아, 읏! 으, 흐응!”

금세 서규하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애태우지 않아서 좋긴 한데 시작부터 템포가 지나치게 빨랐다.

“씹, 왜 이렇게, 급해?”

“집에 올 때부터, 크흣, 너랑 할 생각밖에 없었어.”

여봐란듯이 허리를 쳐올리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차영은 깊이 삽입한 채로 서규하의 무릎 뒤쪽을 붙잡고 힘으로 밀어 올렸다.

엉덩이가 허공으로 들리면서 결합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그러진 서규하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이차영은 빠르게 안을 쑤셔댔다.

“읏! 아, 아흣, 앗!”

사정 봐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움직임에 머리 위 공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 침대 헤드에 서규하의 머리가 닿았다. 아래를 헤집듯 박아 대는 놈 때문에 처음엔 그것도 모르고 있다가, 꽤 세게 부딪히고 나서야 짧은 비명과 함께 머리를 감쌌다. 그 손마저 침대 헤드에 부딪힐 정도로 몰아붙이는 움직임에 결국 서규하는 폭발했다.

“개새끼야, 남의 뇌세포 다 죽일 일 있어?!”

마침내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안도는 잠시뿐이었다. 서규하의 허벅지를 붙잡고 주르륵 끌어 내린 뒤에 이차영은 다시금 허릿짓을 재개했다.

“아, 응, 읏, 흐읍….”

상체를 구부린 이차영이 서규하의 입술을 찾았다. 입 안으로 파고드는 혀를 휘감으면서 서규하는 두 손으로 이차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몸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거친 삽입이 계속됐다. 불붙은 쾌감이 전신을 장악했다.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이차영의 복부에 비벼지면서 찔끔찔끔 선액을 흘렸다.

“하아…….”

격렬하게 서로의 입안을 넘나들던 혀가 떨어졌다. 이끌리듯 시선이 마주쳤다. 이차영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 흰자위가 충혈된 게 아니었다. 검은색이어야 할 눈동자가 핏빛처럼 붉었다. 깨달은 순간 흥분이 싹 달아나며 공포가 엄습했다.

“야, 너 눈이 왜 이래?”

그러자 이차영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눈?”

“존나 새빨개. 약 빨았어?”

말하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시발, 약쟁이는 질색인데.

흥분제 때문에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보니, 약을 한 상대와 붙어먹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드러기가 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차영의 대답은 예상을 비껴갔다. 아아, 하는 짤막한 신음을 흘리더니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러트라서 그래.”

“러트?”

버릇처럼 되물었다가 한 박자 늦게 단어의 뜻을 이해했다.

러트.

히트 사이클과 비슷한, 속칭 알파들의 발정기.

이차영의 눈알은 여전히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오싹 소름이 돋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더듬더듬 말이 흘러나왔다.

“야, 씨, 발정기면 오메가를 불러야지 왜…….”

“그래서 말했잖아. 평소보다 거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발정기라는 말은 안 했잖아!”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차영은 태연했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평소랑 다를 거 없어. 그냥 좀 더 오래, 좀 더 즐긴다고 생각해.”

순간 서규하는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을 채우고 있는 페니스가 한층 부피를 키우는 것이 느껴졌다.

“점심때 억제제를 먹긴 했는데……. 슬슬 약발이 떨어지는 모양이야.”

“그, 으읍!”

달싹이려는 서규하의 입술을 또 한 번 입으로 틀어막으면서, 이차영은 배꼽에 닿을 정도로 발기한 서규하의 성기를 손에 쥐었다.

“응, 흐읏…!”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서규하는 막힌 신음을 흘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요도구에서는 미끈거리는 선액이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하여튼 야해 빠진 몸뚱이였다.

상체를 일으킨 이차영은 다시금 힘 있게 아래를 들쑤셨다. 서규하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화염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붉고 뜨거웠다.

이제껏 이차영은 러트 주기에 맞춰 철저하게 억제제를 복용해 왔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엔조이에 불과한 상대에게 자신조차도 낯선 이면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번에도 조용히 넘길 생각이었지만 서규하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게 됐다. 오늘도 거절했으면 이번에야말로 녀석은 미련 없이 관계의 끝을 고했을 텐데, 아직은 이 유희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젖은 혀가 아랫입술을 훑었다. 약효가 다해 가는지 슬슬 몸이 뜨거워졌다. 지금도 이런데, 시간이 더 지나면 어디까지 치달을지 기대 아닌 기대가 일었다.

“아, 흣, 흐읏, 응! 아, 하앗!”

이차영이 움직일 때마다 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서규하의 눈가에 붉은 기가 맴돌았다. 유연한 허리놀림으로 내벽을 탐닉하다가, 이차영은 페니스를 잠깐 빼내고 서규하의 몸을 뒤집었다.

엉덩이를 벌리고 다시 밀어 넣자 이번에는 저항 없이 쑥 들어갔다. 뜨겁게 감싸는 온기를 느끼면서 이차영은 허릿짓을 재개했다.

깊숙이 치고 들어갈 때마다 탄력 있는 엉덩이가 흔들렸다. 서규하의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이 둔부로 이동했다. 옆으로 벌려서 관망하듯 바라보며 삽입을 이어 가자 한껏 찌푸린 얼굴이 뒤를 향했다.

“그만 좀 벌려, 새끼야.”

“아파?”

“존나 찢어질 거 같아.”

“엄살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차영은 순순히 손을 뗐다. 타원형으로 벌어졌던 주름이 원래대로 돌아가면서 성기를 더 꽉 무는 느낌이 들었다.

빠른 삽입이 계속됐다. 발끝으로 몸을 지탱한 채 허릿짓을 하다가 이차영은 상체를 숙이며 서규하의 등에 자신의 몸을 겹쳤다. 자극적인 살 내음이 훅 풍겼다. 아까부터 눈독 들이던 목덜미에 이를 세우자 탄식 같은 신음과 함께 도드라진 등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깨물지 마, 흐읏!”

“죄다 안 되는 것뿐이야?”

“싫은 짓만 골라서, 흣, 하니까 그렇지, 새끼야.”

“여기는 아닌 거 같은데.”

커다란 손이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음낭까지 한 번에 쥔 채로 주물러 대다가 다시금 상체를 세웠다.

유희 같은 움직임은 여기까지였다. 낙인처럼 새겨진 흔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차영은 이 순간 오직 섹스만이 목적인 사람처럼 사정없이 안을 박아 대기 시작했다.

“아, 으, 으읏, 흣! 응, 흐읏!”

다물릴 틈 없는 입술 사이로 타액이 질질 흘러내렸다. 하지만 서규하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자꾸만 앞으로 떠밀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두 팔로 안간힘을 다해 버티기에 급급했다.

이차영이 파고들 때마다 아래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망할 개자식은 한 번씩 엉덩이를 내리치기까지 했다.

“아흣!”

그때마다 깜짝 놀라서 아래가 절로 조여지고, 그러면 이차영은 더 흥분해서 허리를 흔들어 대고, 버거워서 울먹이면 또다시 둔부에서 철썩하는 소리가 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기어이 서규하의 상체가 무너지며 시트 위에 뺨이 닿았다. 그런데도 이차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몰아붙이다가 불시에 페니스를 빼냈다.

“…….”

눈동자가 핏빛처럼 더 붉어졌다. 몸 전체가 심장이 된 것처럼 맥박이 크게 뛰고, 목이 타 버릴 것 같은 갈증이 일었다.

기저에 깔려 있던 알파의 본능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상대의 몸속에 자신의 씨를 듬뿍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차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자신의 흔적으로 뒤덮고 싶었다.

즈윽, 잡아 뜯듯이 벗겨 낸 콘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혈관이 두드러질 정도로 발기한 성기가 멋대로 꺼떡거리며 선액을 흘려댔다. 지친 듯 엎드려 있는 서규하를 바로 눕힌 이차영은 곧바로 페니스 끝을 붙잡고 구멍에 맞췄다.

“크흣…!”

넣자마자 강렬한 쾌감이 소름처럼 번졌다. 뜨겁고 미끈한 내벽이 생살을 감싸는 느낌이 끝내주게 좋았다.

또 한 번 격렬한 추삽질이 이어졌다. 서규하는 시트를 틀어쥔 채로 신음했다.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말했지만 이차영은 들은 척도 하질 않았다. 마주친 눈동자는 여전히 시뻘건 빛을 띠고 있었다. 덕분에 서규하는 그새 잠깐 잊고 있던, 러트라는 놈의 말을 상기해내고는 벗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전력으로 붙어도 열세인데, 반쯤 미치기까지 한 놈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읏, 흐읏!”

목소리에 희미한 괴로움이 묻어났다. 찌릿찌릿한 자극이 전신을 휘감았다. 질척한 혀가 귀를 핥아대고, 밑에서는 말뚝 같은 성기가 몸 속 성감대를 쉼 없이 자극하면서 쾌감을 이끌어냈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완전히 사라졌다. 땀처럼 번지는 열기와 뜨거운 호흡, 살끼리 마찰하는 소리, 그리고 이차영이 내뿜는 페로몬이 침실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 신음 섞인 거친 숨을 내뱉다가 서규하는 갈라진 목소리로 명령했다.

“몸 좀, 숙여 봐.”

“뭐?”

“몸 좀 숙여 보라고, 새끼야.”

가까워진 목에 서규하의 두 팔이 감겼다. 와중에도 이차영의 성기는 계속해서 아래를 드나들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시선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서규하의 눈이 감겼다. 입술이 닿음과 동시에 뜨거운 혀가 입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발갛게 젖은 혀가 뱀처럼 엉겨들었다. 싸우는 것처럼 서로의 혀를 빨고, 입술을 깨물고, 덩달아 뒤섞이는 타액을 감로수라도 되는 것처럼 삼키면서 서규하는 한껏 미간을 구긴 채 키스에 몰두했다.

“응, 흣, 흐읏!”

또 한 번 거친 허릿짓이 이어졌다. 맞물린 입술이 조금씩 엇나가더니 기어이 완전히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이차영을 붙잡은 서규하가 그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억눌린 신음이 이차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따끔하며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조차 쾌감으로 치환되어 흥분을 부추겼다.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발정 난 개새끼처럼 무아지경으로 박아 대다가, 어느 순간 이차영은 몸을 굳히며 짧게 신음했다.

“……!”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강렬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모든 움직임이 멈춘 채, 등 근육만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사정 시간은 길었다. 몇 번에 걸쳐 남김없이 모조리 내보낸 뒤에 이차영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을 떠 보니 서규하는 가쁜 숨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가슴팍과 복부에는 희멀건 체액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자신은 안에서 갔으니 서규하가 싼 거라는 결론이 났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손끝에 묻은 정액을 젖꼭지에 대고 문지르자 움찔하며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바텀 다 됐네.”

“닥쳐, 새끼야.”

서규하는 발끈해서 외쳤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늘따라 어찌나 몰아붙이는지 제 걸 붙잡고 자위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이차영이 안쪽 깊숙이 찔러 넣는 순간, 참았던 소변이 터지는 것처럼 멋대로 사정이 시작됐다. 솔직히 말하면 안을 짓이기듯 누르는 자극이 너무 강렬해서 서규하는 자신이 사정하는 줄도 몰랐다.

한마디로 이차영 때문에 싼 것이 맞지만, 순순히 인정하려니 지는 기분이 들어서 허세 아닌 허세를 부렸다.

“전에도 말했는데, 네가 아니라 누가 박아도 마찬가지야.”

난생처음 써 본 전동 딜도로도 사정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키려는데 나직하게 읊조리듯 하는 말이 들렸다.

“나도 말했던 거 같은데.”

“뭐?”

“비교하는 건 딱히 유쾌하지 않다고.”

또다시 뒤를 가르고 들어오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곧바로 재개되는 섹스에, 서규하는 이차영의 팔뚝을 붙잡으면서 찡그린 얼굴로 불만을 표출했다.

“좀 쉬었다가 해.”

“오물거리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아? 빼면 허전할 텐데.”

“시발, 허전하기는 누가, 악!”

끝까지 뺐다가 갑자기 쳐올리는 동작에 놀란 몸이 수축하며 아래를 꽉 조였다. 봐봐. 꽉 물고 안 놓아주잖아. 귓가에 대고 읊조리듯 말한 뒤에 이차영은 그대로 허리를 흔들었다. 두툼한 귀두로 내벽을 긁으면서, 잠시 소강상태였던 쾌감을 억지로 끄집어냈다.

“좀 천, 천천히 하기라도, 흣, 해!”

“생각해 보고.”

달갑지 않은 말이 들릴 때마다 이차영은 여봐란듯이 더욱 거세게 허리를 흔들었다. 뜨겁게 감겨 오는 내벽은 여전했다. 한 번씩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방금 안에 사정한 정액이 거친 움직임에 밀려 밖으로 흘러나왔다.

얽힌 두 육체는 또다시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몸을 가를 듯한 기세로 박아 대다가 이차영은 삽입한 상태로 빙글빙글 엉덩이를 돌려 댔다. 그러다 다시금 안을 빠르게 쳐대는 움직임에 서규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진저리를 쳤다. 가장 민감한 곳을 계속해서 짓이겨 대니 견딜 수가 없었다.

“흣! 아! 아앗! 흐, 읏!”

눈앞에서 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거칠 거라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까지는 버틸 만했는데, 난생처음으로 섹스가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차영은 발정난 개새끼처럼 계속해서 쉼 없이 안을 들쑤셨다. 저도 모르게 눈가가 뜨끈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울어?”

“조건 반사야, 씨발.”

이차영의 입에서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오메가보다 더 찰지게 물어 대면서 곧 죽어도 자존심은 안 굽히지.

이후로 대화는 또 끊겼다. 서규하의 탄탄한 허벅지를 틀어쥐듯 꽉 붙잡은 채로 이차영은 전진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허리를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이마에서 시작된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빠른 속도로 드나들 때마다 앞서 싸지른 정액이 풀처럼 끈적하게 변해서 구멍 주변을 허옇게 물들였다.

“……시발.”

이차영의 입에서 드물게 나직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누구를 안아도 콘돔은 필수로 착용하는 편이기에 이런 장면은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욕을 자극하는 포인트는 또 있었다. 기어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버거운 듯 내뱉는 신음이 흥분을 더 부추겼다.

허벅지 살이 떨릴 정도로 강하게 박는 허릿짓이 계속 이어졌다. 어느 순간 절정을 직감한 이차영은 서규하의 몸속 끝까지 페니스를 밀어 넣은 채로 정액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싸는 동안 서규하의 무릎 뒤쪽을 붙잡고 밀어서 엉덩이가 들리게끔 했다.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 안에 싼 정액을 흘리지 못하도록 하려는 본능에서 기인한 행위였다. 하지만 기껏 그러한 보람도 없이, 좁은 곳을 가득 채운 정액이 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서규하는 뒤늦은 이상함을 느끼고 결합부로 손을 가져갔다. 이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이차영을 향했다.

“콘돔 안 꼈어?”

“찢어질 거 같아서 뺐어. 아까도 그냥 했는데, 이제 안 거야?”

놀리는 듯한 말투에 서규하는 발끈했다.

“안에 싸지 말라고 했잖아. 내 말이 우스워?”

“흥분해서 절제가 안 됐어. 나중에 빼 줄 테니까 화내지 마.”

몸을 숙인 이차영이 서규하의 귓가에 대고 쪽쪽 입을 맞췄다. 서규하는 질색하면서 밀어냈지만, 금세 결박당하듯 두 손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잠깐 멈췄던 허릿짓이 재개됐다. 두 번 연속으로 사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차영의 성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느리게 뺐다가 끝까지 묵직하게 밀어 넣을 때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서규하의 발끝이 시트 위를 긁어 댔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면서 이차영이 몸을 일으켰다. 느긋하던 움직임에 점차 속도가 붙었다. 한동안 빠르게 안을 찌르다가, 페니스를 끝까지 넣은 채로 허리만 잘게 흔들어 댔다.

“자, 잠깐만.”

헐떡이며 신음하던 서규하는 불현듯 이상함을 느끼고 팔꿈치로 상체를 일으켰다. 시선이 저절로 아래를 향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갈수록 몸 안쪽이 빠듯하게 벌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도 이차영의 것은 크고 굵지만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아래를 채운 것이 점점 커지면서 무서울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서규하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 빼 봐.”

“왜?”

“뭔가 이상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차영이 움직일 때마다 돌기 같은 무언가가 내벽을 긁어 댔다. 질겁해서 몸을 물리려 했지만, 아래가 꽉 맞물린 것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빨리 좀 빼 봐.”

“…….”

“내 말 안 들려?!”

대답 대신 휙 뻗어 나온 손이 서규하의 손목을 침대에 내리눌렀다. 순간 서규하는 흠칫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새빨간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늦었어.”

“……!”

“노팅이 시작돼서 지금은 뺄 수가 없어.”

노팅.

이건 서규하도 알고 있었다. 알파들의 생리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지만, 노팅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인간의 거시기가 개처럼 변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돈 들이지 않고 즉석에서 하는 자지 리모델링’이라면서 박찬웅이 몇 번이고 부러움을 토로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그걸 왜 나한테 하는데!”

“내가 지금 널 안고 있으니까.”

“시발, 당장 빼라고!”

“못 뺀다니까.”

답지 않게 온몸으로 불안함과 두려움을 표출하는 서규하를 바라보다가, 이차영은 서로의 피부가 닿을 정도로 상체를 바짝 붙였다. 줄곧 내리누르고 있던 서규하의 손을 이끌어서 자신의 등에 두르도록 했다.

“금방 끝날 거야.”

당장 못 뺀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단단하게 부풀어서 형태까지 변하는데, 무리하게 뺐다가는 아래쪽에 큰 상처가 날 것이 분명했다.

가라앉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한 번 더 사출해야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기에, 이차영은 서규하의 귓불을 핥고 깨물면서 세 번째 사정을 준비했다.

“조금만 참아. 응?”

“아, 씨발, 흣!”

이차영의 등에 손톱을 박아 넣은 채로 서규하는 신음했다. 이제는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왔다. 온몸이 뜨겁고, 숨은 잘 안 쉬어지고, 아래에는 개새끼의 좆이 말뚝처럼 박혀 있는데 욕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일이었다.

기가 막힌 일은, 이차영의 좆이 꿈틀댈 때마다 자신의 성기도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넣어도 귀두 끝이 몸속 포인트에 닿는데, 계속 꾹꾹 찌르면서 자극해 대니 반응하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속 난잡하게 허리를 움직이면서 이차영은 서규하의 귓가로 거듭 입술을 가져갔다.

“서규하.”

“흣, 왜, 개새끼야.”

“내 이름 불러 봐. 그럼 빨리 끝내 줄게.”

“읏!”

고막을 바로 건드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에 서규하는 진저리를 쳤다. 두 팔로 이차영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손쉽게 붙잡아 봉쇄한 뒤에 이차영은 꿀이라도 발려 있는 것처럼 서규하의 귀를 핥고 빨아 댔다.

질겁하며 반대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차영은 집요하게도 달라붙었다. 부은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망할 개새끼는 예민한 귀를 계속 자극하면서 아래로는 틈 없이 맞붙은 채로 뭉근하게 허리를 돌려 댔다. 기어이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열 오른 사람처럼 온몸이 뜨거웠다.

“고집 피우지 말고, 얼른. 응? 편하게 해 줄게.”

악마의 속삭임 같은 유혹이 이어졌다. 머릿속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것 같은 상황에서 생각이 점점 한곳으로 기울어 갔다.

까짓 이름 부르는 게 뭐라고. 개나 소나 다 부르는 게 이름인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되뇐 끝에 서규하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차영.”

“다시 불러 봐. 성은 빼고.”

“씨발, 한 번 불렀으면 됐지 뭘 또 불러?”

“생각보다 듣기 좋아서.”

뜻밖의 말에 서규하는 멈칫했다. 뻔뻔하게 받아치거나 사람 복장 뒤집는 소리나 할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불러 봐.”

어느덧 이차영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쿵, 쿵, 시끄럽게 뛰는 심장 소리가 요란했다. 혹시라도 녀석에게 들킬세라 서규하는 시선을 피한 채로 입을 열었다.

“……차영아.”

“한 번 더.”

개새끼.

짤막한 한숨을 내뱉은 뒤에 서규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내뱉었다.

“차영아, 차영아, 차영아. 됐, 으웁!”

턱을 붙잡히며 갑자기 입이 막혔다. 벌어진 입 안으로 뜨거운 살덩이가 밀려 들어왔다. 곧바로 서규하의 혀를 찾아 얽으면서 이차영은 또다시 추삽질을 이어 갔다.

“응, 추웁, 하아….”

이차영이 움직일 때마다 필연적으로 서규하의 몸도 덩달아 흔들렸다. 쾌락을 좇는 몸짓이 점점 빠르고 다급해졌다. 이미 끝까지 들어와 있는데, 이차영은 더 깊은 곳으로 들여보내 달라는 듯이 서규하의 몸을 끌어안으며 노팅에 집중했다.

“……!”

그때였다. 이차영이 불시에 안을 쳐올리는 순간, 신음조차 멎을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 찾아왔다.

허벅지 안쪽이 부들부들 떨렸다. 뜨거운 무언가가 확 퍼지면서 감전된 사람처럼 몸 전체에 잔 경련이 일었다.

서규하는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벌벌 떨었다. 고여 있던 눈물이 떠밀리듯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차영은 사정을 멈추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섹스 도중 저로 인해서 우는 모습을 보니 외려 더 울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눈동자에 깃든 붉은 광염은 가실 줄 몰랐다. 단언컨대 이런 섹스는 처음이었다. 탐욕스러운 내벽은 지금도 계속 꿈틀대면서 페니스를 물어 댔다.

“…….”

입술을 달싹였지만, 도로 다물었다. 이제 와서 괜찮냐고 물어 봤자 위선밖에 되지 않을 터였다.

대답은 더더욱 의미 없었다. 어떤 말을 듣게 된다 해도, 울고불고 쌍욕을 퍼부어도 이차영은 발정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섹스를 이어 갈 생각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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