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계획적으로.
마치 캠프에 온 것처럼 연습실에서 행동하는 애들이었기에 마음가짐을 새로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방송에서도 텐션의 높낮이가 필요했다.
물론, 그러다 보면 내 분량도 자연스레 늘어날 터였다.
갑자기 달라진 내 행동과 말에 혼란스러워하는 애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재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는 말을 알거야.
뭐, 모른다면 이제 알면 되는거고.
내가 너희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희망을 줄 수는 있어. 그런 희망적인 말이 달콤하기도 하고.
다들 종이에 적어냈듯이 K-POP 스타를 꿈꾸겠지만 그 꿈은 현실에서 가장 이루기 힘든 비현실적인 꿈이야.
프로듀스에 온 99명의 친구 중에서 단 9명만이 데뷔를 하고, 나머지 90명은 데뷔를 하지 못할 거야.
기껏해야 놀이공원 공연장에서 춤을 추거나 라이브 바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겠지.
그리고 매일 밤 오래되어 쉰내 나는 침대에 누워, 한때는 K-POP 스타의 문턱 직전까지 갔었다고 눈물 흘리겠지.”
내가 하는 말의 심각한 분위기와 앞으로 본인들의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상집 분위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여자애들이라 그런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려는 애도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좀더 들게 되면, 지금 총기로 가득하던 두 눈의 빛을 잃어버리고, 그냥 단순 근무를 하는 봉급쟁이의 생활을 하게 될 거야.
뭐, 예술과 꿈을 따지다 신불자가 되어서 노숙자가 되거나 약물 중독자가 되어 일찍 죽는거 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
그게 프로듀스99 탈락자에게 펼쳐질 미래야.
어때? 웃고 떠들 생각이 들어?”
내 말에 마음이 약한 애들은 충격을 받았는지 눈이 벌게져지고 있었다.
“여기 나를 제외한 몇몇 멘토들은 너희들에게 모두 할 수 있다고, 꿈을 이루라고 용기를 넣어 줄 거야.
파이팅을 외치면서!
하지만, 그런 멘토들조차 자신의 꿈을 다 이루질 못했어.
자신의 꿈을 이루지도 못한 사람이 다시 너희들에게 꿈을 이루어 라고 하고 있지.
너희들이 특별해서일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답을 했다.
“전혀. 진짜 특별했다면 이미 더 어릴 때 데뷔를 했을 거야.
그냥 고만고만한 거지. 그런 너희들이 슈퍼스타가 될 확률은 0.01%야.
죽기 살기로 할 각오가 없으면 그만두는 게 좋아.
시간 낭비니깐!!”
시간 낭비라며 호통치는 내 말에 몇몇 애들은 놀랐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국식 여유 있는 사고방식을 버려!
네 남은 인생의 모든 걸 이 방송에 걸어!
그래야 네가 원하는 방금 적어 낸 그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거다.
쿨 해지지 말고 질척거릴 정도로 노력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치며 미친 듯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팬들을 사로잡아라. 그게 너희가 할 일이야.
K-POP 스타가 되고 싶다면 이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해.
다들 울지 말고, 일어서!
목이 쉬고, 땀 냄새가 코를 찌를 때까지 연습이야.”
눈물을 흘리며 우는 애들은 일일이 일으켜 세웠다.
“편하게 돈 벌고, 유명세를 얻으려면 유튜브에서 그냥 야한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게 더 빠를 거야.
하지만, 무대에서 직접 팬들에게 듣는 그 환호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야.
그런 무대에 서는 걸 꿈꿔라. 다들 눈물 그쳐!!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복식호흡부터 시작해.
가수는 15초 안에 팬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가져야 해.
그래야 팬이 너를 보고 빠져드는 거야.
본인에게 주어진 그 15초를 어떻게 쓸지를 고민해라. 숨이 15초가 멎어도 괜찮을 정도로 호흡을 만들어야 해.”
일일이 애들을 벽에 세우며 복식호흡을 가르쳐주고, 각 개인에게 맞는 발성법을 스파르타식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대니. 방금 윤의 이런 행동이나 말이 대본에 있는 거야? 확인해봐.”
“아니에요. 없는 거예요. 차트에는 이런 교습이라고 안 나와 있어요.
단순히 보컬 강습시간이라고 되어 있어요.”
“흠. 그래? 그럼 이걸 디렉팅(directing)팀에 넘길 때 체크해라고 표시해.
다른 감독들 영상도 다 체크해서 중요표시하고.”
“네 알겠습니다. 헥터 감독님 이름으로 표시 남길게요. 메모는 뭘로 남길까요?”
“아니, 메모는 남길 필요 없어. 그냥 내 이름만 적어두면 디렉팅팀이 알아서 할 거야. 내가 느꼈으니깐 그놈들도 느끼겠지.
기존의 아메리칸 아이돌은 매 무대마다 사이먼과 폴라의 코멘트가 분위기를 올리고 내리며 시청자들의 감정을 가지고 놀았지.
하지만, 지금의 바뀐 프로듀스 방식이라면 등급평가 무대 말곤 그런 코멘트로 방송의 분위기를 올리고 내리기가 힘들어.
그런데, 저 윤은 그걸 해 냈단 말이지.”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다른 트레이너들의 수업은 그냥 교습이긴 했죠. 이렇게 감정적이진 않았으니깐요.
아, 이쪽 보내요. 엄지척 해줘야겠네요.”
카메라 감독들이 나의 이런 감정적 어그로를 마음에 들었는지 따봉을 해왔다.
나름의 츤데레 캐릭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쌍따봉을 해줬다.
**
“야, 저거 봐.”
“재 리나 라는 애 맞지? 그 심사위원들 앞에서 심사기준이 되었던 애.”
“맞아. 재는 아예 잠도 연습실에서 잔다고 하던데, 담요 하나로 연습실에서 자면서 밤새 연습한다고.”
“정말? 와 엄청나네.”
“리나 라는 저 애만이 아니야. B등급 애들 대부분이 진짜 연습실에서 잠잘 시간도 아껴가면서 타이틀곡인 ‘Good Day’ 연습을 한다더라.”
“재는 이미 데뷔를 한번 했던 애라서 적극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B반 애들 전체가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그래, 시즌 1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서 연습실에 있었던 총시간을 기준으로 점수 주고 했었잖아. 그걸 노리는 거 같은데.”
“엇? 그런 거야? 그런 거면 우리도 이렇게 숙소로 들어가면 안 되는 거잖아. 나도 담요 들고 연습실 가야겠어.”
“나도, 나도.”
**
“윤 이 사진 봐요. 녹색 담요를 덮고 있는 애들 모습이 애벌레 같지 않아요?”
“헐. 말은 들었는데, 진짜 애들이 숙소에 안가고, 연습실에서 이렇게 담요를 둘둘 말아서 자는 거예요?”
“한국의 프로듀스99 시즌 1에서 연습실에서 체류했던 시간을 계산했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 자는 애들도 있어요.
한데, B등급 애들은 그냥 연습시간을 아끼려고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듣기로는 애들 정신 차릴 수 있게 윤이 강한 말을 했다던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예요?”
“뭐 그냥. 잘하라고 했죠. 하하
제이니라면 편집팀 찾아가서 뭐라고 했는지 볼 수 있겠지만, 그냥 참아봐요.
방송에서 봐야 재미가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이 사진을 SNS에 올려요.
왜 이렇게 담요를 덮고 애벌레처럼 자는지 시청자들이 궁금하게 만들어야 이득일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올릴 예정이에요. B반을 보곤 다른 반 애들도 다들 이렇게 연습실에서 잠을 자며 연습하고 있어서 아예 편집해서 넣을 생각이고요.”
제이니의 말과 애들의 이런 모습에 내가 보여줬던 악역으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어그로와 츤데레가 나름 성공한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프로듀스99의 타이틀 곡인 ‘Good Day’ 무대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프랭크. 방금 또 1명이 그만둔다고 했어요.”
“뭐? 진짜야? 그럼 벌써 4명째잖아.
이 애는 또 왜 그만둔다고 했는데? 다이어트가 힘들데?
아님, 순위가 하위권이라서 못 버티겠다는 거야?”
“그냥 애들이 못 견디는 거 같아요.
미국 애들은 한국과 달리 이런 성적순으로 숫자를 메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면역이 없으니깐요.
타이틀 곡인 ‘굿데이’ 곡이 공개되고 연습생 투표 순위가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개되잖아요.
그걸 또 본인이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깐 그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거 같아요.”
“악플을 직접 보고 멘붕이 왔겠군.
방금 그만둔다는 애 이름은? 몇 위하던 애인데?”
“피츠 슐만이에요. 88위였고요.”
“독일계로 키도 크고 예뻤는데...휴...
그러니깐 그냥 핸드폰을 한국처럼 반납을 받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SNS로 등급 사진 찍어서 스포 올리는 애도 없었을 테고, 악플을 보고 스트레스받는 애들도 없었을 텐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신고할 수 있게 핸드폰을 제출받지 않았는데, 이게 이렇게 역효과를 가져오네.”
“어쩔 수 없잖아요.
홍보팀에서는 SNS로 그렇게 유출된 사진들이 오히려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니 참아보죠.
그리고, 첫 순위 결정과 첫 방출이 오늘이죠?”
“그래, 1화 시청률은 2.8%로 나름 괜찮았는데, 오늘 39명이 탈락하는 방송이 나가고 나서가 문제야.
위에서도 성적 만능주의에 대해서 걱정을 좀 하고 있어.
오늘 순위 결정전이 나가는 5화 이후 언론이나 SNS의 반응을 체크해야 해.”
“이때까지의 아메리칸 아이돌과는 다르니깐, 방송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지 않길 빌어야겠네요.”
“그래.
아, 그리고 2화, 3화 편집본을 봤는데, 제이니 이사가 궁금해 할 만하더라고.
케일리도 미리 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방송을 봐봐.”
“왜요? B등급 애들 대부분이 A등급으로 된 비밀이 제대로 나오던가요?”
“후후. 그래 비밀이 있더라고. 그리고, 우리가 윤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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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0위 아래의 친구들은 방출이 될 거야.
이제 방송이 막 시작되었고, 첫 경연 무대를 끝냈을 뿐인데 벌써 방출을 해야 하니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될 거야.
그리고, 이런 방출이 최종 20위를 뽑을 때까지 몇 번이나 있을 거야.
합격자나 방출자나 다 힘든 시기지.
하지만, 오늘 순위로 인해 방출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야.
오히려 프로듀스99 출신자라고 해서 한국 기획사나 다른 기획사에서 관심을 더 가질 거야.
그러니 나쁜 마음은 먹지말고...
아 그리고, 방출자들 만의 뒤풀이도 비공식적으로 있으니깐 이제까지 다이어트한다고 못 먹었던 한국식 바비큐를 마음 편히 먹을 준비를 해.
이거 때문에 또 일부러 떨어지진 말고. 알았지?”
결국 오늘 순위 결정전에서 한국과 미국에서 이미 데뷔를 했기에 어느 정도 팬덤을 가지고 있던 리나가 1위를 했고, 내가 지켜보고 있는 엘리는 24위로 살아남았다.
순위 발표식을 보고 오니, 스태프들이 다들 짐을 싸고 있었다.
“애들이 방출되면서 스태프들도 줄어드는 건가요?”
“아닌데요. 아, 짐 싸는 건 오늘 윤이 주최하는 방출자 회식있다고 해서 그거 촬영 나갈 준비하는 거예요.
비공식이지만, 그런 곳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좋고. 2화를 방출자들과 같이 보는 것도 뜻깊을 것 같아서요.
또 한국식 바비큐 싫어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하하하”
이때만 해도 단순히 촬영 스태프들도 바비큐가 먹고 싶어서 회식에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방출자 30여 명과 한국 식당에서 2화를 같이 보다 보니 왜 스태프들이 따라붙은 것인지 알 것 같았다.
**
한국식 바비큐 집에 예약했기에 우리를 위해 가게의 큰 티비마다 우리 방송을 해주고 있었고, 자연스레 가게 안의 다른 손님들도 다 같이 시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2화 방송의 끝을 내가 끝내주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냥 너희들이 가진 재능이 고만고만한 거야.
그런 너희들이 슈퍼스타가 될 확률은 0.01%야.
죽기 살기로 할 각오가 없으면 그만두는 게 좋아.
시간 낭비니깐!!”
내가 여름 캠프에 온 것같이 행동하는 애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 티비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꿈을 적어내라고 해놓고는 그 꿈 종이를 애들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모습과 격앙되어 애들에게 큰소리치는 영상은 내가 봐도 자극적이었다.
“와 진짜 어떻게 저런 말을 애들에게 한 거야?”
“아무리 애들 가르치는 트레이너라지만 너무하네.
아니, 트레이너니깐 더 저런 말을 하면 안 되는거 아니야?”
“저 윤이란 사람의 인성이 문제인 거 같은데 왜 저런 녀석이 어린 애들을 가르친다는 거야?”
식당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티비 속의 내 모습을 보곤 다들 한마디씩 욕을 하며 화를 내는 게 보였다.
‘워워. 시청자 여러분. 이 어그로 다음에는 바로 애들을 껴안아 준다니깐요. 끝까지 좀 봐주세요.’
가게 안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일단 어그로는 잘 끌은 것 같았다.
사람들의 커지는 욕 소리에 이제 바로 어그로가 츤데레로 변하는 걸 지켜보라며 기대하고 있었다.
<다음 주 예고>
예고 편 화면엔 내가 애들을 벽에 일렬로 세우고는 복식호흡을 가르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숨 크게 쉬어! 배에 힘줘!”
내가 크게 외치는 장면과 B반 애들의 눈물 흘리는 모습이 교차되며 예고편도 끝이 나서 2화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그리고 주위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니 저런 쓰레기가 왜 트레이너를 하는 거야? 왜 애들 자존심을 뭉개버리고, 저렇게 하는 거야. 저거 문제가 있다고.”
“저 놈 이름이 뭐라고?”
“윤소원이라고 하는데, 저 새끼 한국에서도 사고치고 미국으로 도망친 놈 아니야?”
식당 안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나를 찾아 나설 것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회식 자리까지 촬영 장비를 들고 와서 찍고 있는 헥터나 대니를 보니, 그 둘은 물론이고 다른 스태프들도 내 눈을 피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악마의 편집 희생자였으면 미리 말을 해줘야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