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녹화 시작.
“10분의 심사위원분들마다 보컬, 안무 등 여러 분야를 전공하셨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심사를 보실 때 자신의 전공 분야에 주안점을 두시는 분들도 계시고, 무대를 바라보는 인식과 판단도 다 다를 겁니다.
거기에 한국과 미국의 심사위원분들이 다 섞여 있다 보니 무대 수준에 대한 기준도 다를 것이고요.
그래서 예심 심사의 기준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YEG의 심사위원으로 예심 심사를 총괄 책임지기로 한 진요한 프로듀서가 한 명의 연습생을 앞으로 내세웠다.
‘YEG의 리나(Leena)네.’
우리 ESP와 비교하며 언플했던, 리나를 프로듀스99에서 연습생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 심사위원분들은 이번 무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댄스, 보컬, 기본기, 무대연출 등등 이 연습생의 수준을 기준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준은 이번 예심뿐만 아니라 본선의 등급 평가에까지 일관적으로 적용을 해주시면 됩니다.”
“지금 나온 이 연습생보다 뛰어나면 각 부분에서 A를 주면 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지금 이 연습생의 수준이 B+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이상 잘하는 각 분야를 가진 연습생이라면 그 분야에 A를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음악에 맞추어 리나가 노래를 부르고 댄스를 추며 하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알맞은 심사의 기준이기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심사위원들에게 ‘리나’를 강조시키는 YEG의 전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심사위원들은 알게 모르게 연습생들을 심사하며 ‘리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기준이 되었던 리나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에 남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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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00명에서 다시 90명을 골라내야 한다고?
심사 평가서의 점수가 같을 때 우열을 가려서 뽑아내는 게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다고. 어휴. 죽을 맛이네.
그런데, 왜 90명이야? 99명 아니었어?”
“99명인데, 90명이 맞아.
9명은 시드에 배정된 강자 같은 개념으로 미리 있다고 하더라고.
멘토들이 뽑은 90명 안에 그 탑 티어들이 다 포함된다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면 골치 아파지거든.
각 회사의 에이스들이 떨어지면 죽쒀서 개 주는 거라서.
뭐 이것도 공식은 아니고, 비공식 탑 티어(top-tier)라고 할까.”
“비공식? 그럼 외국 애들은 들으면 안 되는 거잖아.”
“폭스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고 하더라고.
능력치가 좋은 각 기획사의 에이스들이 초반 등급 무대에서 화제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비공식으로 9명이 내정되어 있지만, 그게 또 어느 정도는 공식인 그런 느낌?”
“쳇, 눈 가리고 아웅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일단, 심사 평가서에서 한 부분이라도 A가 있는 애들을 뽑을게.
거기서 한국에서 데뷔 경험이 있던 애들로 찾아보고, 미국 애들 중에서는 가능성이 확실히 보이는 애들을 체크할게.”
“그래, 10명의 멘토 선생들이 적어낸 평가서에서 이름이 한 번이라도 거론된 애들로 먼저 리스트업해봐.”
그렇게 심사 평가서만으로 130여 명의 연습생이 추려졌고, 일일이 연락을 해 한국에서의 합숙이 가능한 인원을 추리니 119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심사위원들이 20명을 선택해서 탈락시켜야 했다.
“노골적이라고 욕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이어트 동의 여부와 자기관리가 되는 애들로 뽑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쁘고, 화제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연습생들로 뽑아야 할 겁니다.
다이어트를 거부하는 애들은 탈락을 시켜야 합니다.”
진요한의 말에 대부분 심사위원이 동의했다.
“흑인 특유의 R&B 창법으로 부르는 보컬라인도 너무 많아요.
한국에서 진행했던 프로듀스들이나 중국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의 보컬이 방송에 들어가게 될 거예요. 보컬의 숫자를 조정해야 합니다.”
“김지애 선생님 왜 그게 문제인가요? 보컬, 댄스에 따른 쿼터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보컬이 많으면 더 좋을 겁니다.”
“윤소원 쌤은 보컬이시니 그렇게 보시겠죠.
아마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등급 판정 이후 경연 무대를 할 때 문제가 생길 겁니다. 다들 메인 보컬을 하려고 할 테니깐요.
한국은 주위의 보는 시선이나 카메라 때문에 크게 싸우지 않지만, 미국은 다를 거예요. 싸움이 나서 녹화장이 개판 될 수도 있어요.”
여자들의 기세 싸움이 두렵다는 듯이 김지애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메인 보컬이 되기 위한 경쟁은 오히려 방송의 성공 여부에 더 좋습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진들 간의 분쟁, 증오와 배신, 우정, 협력 같은 단어들이 쓰여야 인기를 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촬영을 폭스사의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치고받고 하며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건 막아야죠.
그래서 저는 재능이 있거나 매력이 엄청나더라도, 인성이 안 좋거나, 단체 생활에 부적합한 연습생을 배제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다들 생각해보세요.
데뷔 멤버로 뽑히고, 활동을 하는데, 한국의 타이트한 활동을 견뎌내야 할 겁니다. 당연히 잠도 제대로 못 잘 거고요.
계약으로 묶여있다고 하더라도 인내, 참을성이 없는 아이들은 쉽게 활동할 수 있다고 회사를 옮기라는 유혹을 못 견디고 탈퇴하거나 아예 연예계를 은퇴하려고 하게 될 겁니다.”
심사위원들은 내 말에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았다.
“여러 유혹에서 버텨낼 수 있는 기본적인 개념이 있는 선한 애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쉽게 대마초나 약물을 구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을 못 지키는 애들은 결국 팀에 마이너스만 될 뿐입니다.”
“전적으로 윤소원 선생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럼, 단체생활에 적합하고, 팀원들 간에 싸우지 않을 정도의 무난한 성격을 우선순위로 두죠.
실력이 아닌 인격적으로 돌출되는 아이들을 배제하기로 하죠.”
진요한 심사위원이 정리를 해줬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진짜 꼭 할애들!! 다이어트 안 한다고 하면 무조건 빼야 해요!”
“학교에서 징계받았거나, 문제있는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지도 모르니 SNS를 한번 다시 확인해서 문제 있는 애들도 빼야 합니다.”
“우울증 같은 병으로 처방받은 애들도요!”
다이어트를 강조하는 김홍천 선생의 말에 여기저기서 다른 심사위원들이 말이 나왔다.
그렇게 인원을 추리다 보니 119명에서 오히려 80명대로 줄어들었고, 기획사 간에 서로 밀고 있던 애들이 빠지면 와일드카드로 넣어 주자고 했던 인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본 방송에 진출할 수 있었고 가진 실력보단 성격이나 사고방식을 고려해서 99명을 최종 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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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SP 활동은 끝이 난 건가요?
소원쌤이 처음부터 같이 멘토로 합류한다는 게 진짜 다행이에요.
시즌 2에서 여자애들의 그 특유의 ‘여자어’까지 쓰면서 서로 싸우는 것에 전 질려 버렸거든요.”
최종 99명을 선발할 때도 보컬들끼리의 포지션 싸움에 진절머리를 내던 보컬 트레이너 김지애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내내 옆자리에서 시즌 2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했는데, 비행시간 내내 잠도 자지 않고 이야길 했다.
김지애가 힘들게 했지만, 미국에서의 ESP앨범 활동도 끝이 났고, 몇 개월 동안 한국에 가지 않았기에 ESP 애들도 다 같이 전세기로 이동을 했기에 나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ESP 애들도 한국에서의 자신들 인기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한스~!” “레밍턴!” “턴이오빠!” “소원오빠!”
<경! 내한 ESP하고 싶은 거 다 해! 축!> 이렇게 적힌 현수막도 걸려있고, 손팻말을 든 300여 팬들과 기자들이 출국장을 나서는 우릴 반겨주었다.
기자들도 있는지 포토월이 임시로 만들어졌고, 일본이나 중국 기자도 사진을 찍으며 들이대었다.
“ESP의 한국 일정 중 미니 콘서트가 있던데, 그 이후 한국에서 정식 콘서트를 하게 되는가요?”
“일본에는 언제 방문하는가요?”
“ESP의 멤버인 레밍턴이 아메리칸 아이돌 – 프로듀스99의 진행자로 내정되었다고 하는데, 이것과 관련해서도 한마디 해주세요.”
아침 7시에 도착하는 비행기였는데, 이렇게 혼란스레 진행되어 버리자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폭스의 스태프나 관계자는 물론이고, 연습생들도 호기심과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 ESP를 쳐다보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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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그거 진짜야? 윤소원 선생님이 너 목소리 듣고 반해서 바로 와일드카드로 뽑았다는 거? 그리고 카디건스의 노래를 불러라고 제작진을 통해서 선곡도 해준 거 맞아?
그럼, 혹시 윤소원 쌤이 따로 트레이닝을 해주거나 하는 거야?”
“멀리서 한두 번 본 거 말곤 소원쌤이랑 이야기도 한 적이 없어.
와일드카드로 나를 뽑은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고, 노래 선곡도 제작진을 통해서 전달받은 거라 그때는 그 선곡이 소원쌤의 추천인지도 몰랐어.”
“이야, 그럼 더 대단한 거잖아.
직접 보지도 않고, 너 목소리만 듣고 바로 뽑은 거라니.
빌보드의 스타가 직접 예선 심사 선곡을 해줬다는 게 멋지잖아!
아까 공항에서 그렇게 팬들이 마중 나오는 그런 K-POP스타가 나도 되고 싶다.”
“나도...”
“그런데, 조이 넌, 그게 눈에 보였어? 난, 거기 나온 팬들이 다 말랐다는 거에 더 충격이었어.
다들 몸매관리를 하는지 다들 말랐어. 진짜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다이어트 다이어트할 때 별생각이 없었는데. 어휴. 한국에 오니 다이어트의 중요성을 알겠어.
내일부터 나도 다이어트해야겠어. 한국인들은 왜 이리 마른거지. 부럽게.”
“그러게 다이어트 어떻게 하지.”
다들 공항에서 환호하는 팬들로 인해 인기와 흥분을 느꼈지만, 다이어트를 생각하자 다들 급 우울해 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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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김지애 선생님 진짜 1위 자리에 조이가 앉았다고요?
그 주근깨 많은 빨간 머리 백인 애 맞죠?
그 애 영상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의외네요.”
ESP의 국내 활동으로 인해 순위 의자에 앉는 착석식과 등급을 결정하는 등급 무대를 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1위 자리에 앉은 아이가 빨간 머리의 조이라고 했다.
“역시 미국 애들은 한국 애들과는 달랐어요.
자리에 앉는 걸 눈치 보지 않더라니까요. 6명이 1위 자리에 앉았고, 그게 계속 도전자가 나와서 대결을 했다니깐요.
결국엔, 그 PPL 광고 잡은 사다리 타기 그 어플로 1위를 결정했어요.
덕분에, 어플 반응이 좋다고 추가 PPL 하겠다고 계속 연락이 온다네요.”
“PPL 어플로 1위 자리 결정한 건 신의 한 수네요.”
“아, 그리고, 엘리 베이리시가 99번째 자리에 앉았어요. 웃기죠?”
“응? 진짜예요?”
“네. 엘리가 인터뷰할 때 들어보니, 자기 롤 모델인 윤소원 선생님이 그렇게 아래에서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올라갔다고 거기에 앉았데요. 뿌듯하죠?”
김지애 선생의 말에 엘리 베이리시와의 계약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A등급을 받은 애들이 19명으로 확실히 전체적인 수준과 능력치는 올라간 거 같아요.”
“하긴 다들 프로듀스 시즌을 봐 왔으니 의자 순위에 대한 환상과 등급에 대한 기대가 있겠죠. 그리고 K-POP 스타가 되기 위한 꿈을 한창 꿀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럼, 그 꿈을 좀 뭉개러 수업에 들어가 볼까요?”
“호호호. 그러죠.”
보컬 수업은 등급 무대에서 결정된 등급별로 수업이 시행되었는데, 운 좋게도 엘 리가 있는 B등급 반이 내 담당이었다.
아마도, 제작진에서 이렇게 잡아 준 것 같았다.
“오늘은 보컬 트레이닝 첫 수업이니 만큼 나눠준 종이에 자신이 닮고 싶은 가수와 왜 그렇게 닮고 싶은지.
그리고, 자신의 포부라든지 꿈을 적어봐. 이제껏 꿔 왔던 가장 큰 꿈을 적어도 좋아.”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자신들의 꿈을 적고, 다른 이가 적은 꿈을 보며 서로 꺅꺅거리며 즐거워했다.
노란색의 티셔츠를 단체로 입은 그런 애들을 보니 10대 특유의 밝음이 가득했고,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그런 모임으로 프로듀스99를 여기는 애들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미국인들 특유의 여유인지도 몰랐다.
B반 반장인 리나가 아이들의 꿈을 적은 종이를 들고 왔다.
그러고 보니 리나는 A반일 줄 알았는데, B반이었구나.
“흠. 너희들이 적어준 롤 모델과 꿈에 대해서 봤는데. 다들 좋아. 슈퍼스타? 뮤지컬 스타? 천만장자? 다 좋아.
그런데...”
말을 하며 훑어보던 아이들의 꿈 종이를 그냥 뭉개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안타깝게도, 너희들의 꿈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거야.”
아이들의 꿈을 적은 꿈 종이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자,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는지 정적만이 흘렀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애들에게 팩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