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기자 질리언.
“막내야. 박현정은 멘토명단에서 빼 영어가 안되어서 안 돼.
예심에 들어가는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무조건 영어가 되는 사람이어야 해.”
“그러면 안무 쪽에선 어느 정도 심사위원으로 뽑을 수 있는 인력풀이 되는데, 보컬 쪽에선 전멸입니다.
보컬 트레이너 중에서 영어로 수업 진행 가능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 한국어 발음이나 억양 성조가 영어로 노래 부를 때 도움이 안 되니 한국 보컬 강사가 외국에서 인기 있을 수가 없지.
보컬, 랩 쪽은 그냥 미국계로 우리가 명단을 뽑아서 FOX 쪽에 넘기는 거로 하자고.
재작년에 미국 엔터, 음악계 동향 조사한 거 있지?
그 보고서에 친한파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연락 넣어서 FOX 쪽에 추천해도 좋은지와 멘토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해봐.”
“넵.”
“그리고 너도 막내 작가 탈출하려면 여기서 어떻게든 경력 쌓아야 해.
영어 된다는 장점에 작가 출신이니 나중에 해외 팀 핵심인력 될 수 있을 거야.
그건 그렇고, 기획사 쪽 사람들이 언제 우리 쪽으로 투입된다는 말 없어?
우리 쪽엔 아예 예산이 없다 보니 제작지원에 들어갈 사람으로 기획사 사람을 쓸 수밖에 없는데,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그게, 회의에 참석했던 회사들 외에도 그 회사 출신들이 차린 회사들도 프로듀스99에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그거 교통정리 한다고 난리라고 합니다.”
“에휴. 방송국 불가촉천민인 막내 작가가 알 정도면 조만간에 기사 뜨겠네.
오프 더 레코드니 뭐니 다 말짱 황이야.
그래도, 실질적인 K-POP의 저력은 Big4로 대표되는 기획사들의 개성에서 나오는 것이라, 누굴 빼버릴 수도 없고 어휴,
윤소원이는 다시 미국 갔데?”
“네. 미국 일이 있어서 간다고 하던데요.
일단 FOX 쪽에 물어보기 전에 윤소원사장에게 먼저 전화해서 중요 건마다 물어보고는 있는데, 그러면 나중에 윤소원사장이 미국판 프로듀스99 MC를 보는 건가요”
“프로그램 판권이나 구성제작에 윤소원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내가 보니 메인 MC를 시킬 생각은 없어 보이던데.
FOX에선 실탄소년단의 멤버가 메인 MC를 맡아주길 바라는 눈치였어.”
“그럼, 윤소원 사장은 끈 떨어진 연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메인 MC는 안되더라도 멘토라도 참여시켜주겠지. MSM을 등에 업고 있잖아.
자 쓸데없는 연예인 걱정말고, 우리 걱정이나 하자.
체크리스트 다시 한번 확인해봐.”
**
“기봉이형 저는 일이 있어서 미국으로 가는데, 형은 왜 미국 가는 거예요? 그리고 본사 직원들은 왜 이렇게 많이 출국하는 거예요?”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오니 MSM의 매니저인 기봉이 형과 회사에서 얼굴만 겨우 알고 있던 직원들 10여 명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애들 뒤치다꺼리 하러 가는 거지. 에휴.
이제 나도 봄날은 다 갔다.
네가 FOX 사에서 온 사람들과 CH미디어 방송국 다녀오고 나서부터 바로 회사에 비상 걸렸어.”
“무슨 비상요? 그날 별거 없었는데.”
“큰일은 없었지. 문제는 말이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하는지 주위를 둘러보던 기봉형은 낮은 소리로 이야길 했다.
“프로듀스99에 진출시킬 애들 케어하기위해 가는 거야.”
“네? 그럼, MSM 연습생 애들을 미국 프로듀스99에 출연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 매년 캘리포니아주에 스카우트 파견해서 교포 애들 많이 뽑았잖아.
소녀연대의 황미연이나 정연주도 그런 케이스고, 지금 연습생에게도 교포 애들이 많아.
그런 애들은 영어가 되다 보니, 어쩌면 한국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어.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프로듀스99 오디션에 참여시키기 위해 직원들도 같이 출국하는 거야.”
“도대체, 그날 제가 FOX 직원들과 떠난 이후 이런 이야길 한 거예요?”
“그래, 우리는 물론이고, YEG나 JYE나 전부 다 연습생들이 적체되어서 난리야.
이참에 교포 출신 애들을 다 활용해 보겠다는 거지.
진짜 미국에서 사랑을 받아서 데뷔하면 더 좋은 거고.”
“FOX 쪽에서는 한국 기획사 소속 애들이 출전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다던가요?”
“나야 잘 모르지. 뭐, 애들이 다 연습생이니 당연히 되는거겠지. 프로듀스99가 원래 그런 프로그램이니깐.
그리고, 예심 심사에 한국 출신 심사위원이 다 있다며?
그럼, 기본기나 한국식 보컬 트레이닝으로 갈고닦아진 재능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겠지.”
“그러면, 당연히 예심은 통과하겠죠.”
“맞아. 그래서 본방송에서 두각을 내게 된다면, 미국에서 화제를 받으며 데뷔할 수 있으니 누군들 안 나가고 싶겠어?
실탄소년단은 물론이고 한류 K-POP 가수들의 지원사격도 빵빵하게 할 거라고 하지.
실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오프닝 팀으로 무대에까지 서게 해준다고 하는데, 이민을 가서라도 프로듀스99에 출연하고 싶겠구먼.
자 비행기 게이트 열렸다. 고고~ 무브무브~”
**
“그런데, 정말 이거만 주는 거예요? 저녁으로 닭가슴살 반쪽에 계란 한 개, 샐러드만 먹으라는 건 아동학대에요.”
“한스 불행하게도 우리 ESP엔 아동이 없다는 거.
그리고, 새 앨범 쟈켓 촬영이 내일이니깐 그걸 먹는 것도 감사히 여겨야 할 거야.
저기 탐스 저녁 보이지? 삶은 계란 하나에 샐러드야. 그것도 소스도 없어.”
“윽, 진짜 저거 먹곤 추가 녹음도 못할 것 같아요.”
“탐스는 너무 많이 먹었으니깐, 그러기에 제임스 추 실장과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밤마다 왜 그렇게 먹은 거냐?
춤선, 옷선 제대로 나오게 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깐 참아.
안 그럼 먹고 토할래? 그게 더 고통스러운 건 알지?”
“먹고 토하는 건 더 최악이니, 이거 먹고 물배라도 채워야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다이어트 같아요.”
“어서 먹고 배에 뭐라도 찼을 때 얼른 녹음하자.”
[Wind that makes the tall grass bend into leaning
서 있는 풀을 숙이게 하는 바람
suddenly the raindrops that fall have a meaning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의미가 생겨 버렸어.
where there's love and affection
사랑과 애정이 있는 그곳에
and just maybe i can convince time to slow up
시간이 느리게 흐르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Living here, in this brand new world.
새로운 세상에 사는 건
Might be a fantasy
환상 그 자체인지도 몰라.
But it taught me to love
하지만,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어.
We to find a world full of love.
우리가 사랑이 가득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걸
No matter what we do. no matter what we say
우리가 무얼 하든지, 우리가 뭐라고 하든지.
Everyday is so wonderful, so beautiful world
매일이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이야.]
“녹음하면서도 느끼지만, 너무 간지러워. 소녀 감성이 가득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가사를 내가 부르게 될지는 진짜 생각도 하지 못했어.”
“조든 너만 그런거 아니야. 나도 그래. 하지만, 이게 20명 넘는 프로듀서들이 머리를 맞대고 나온 결과물이야.
발라드인 Summer Love를 부른 후속곡이니만큼, 댄스곡보다는 발라드로 자리매김을 하겠다는 거겠지.
녹음은 이제 끝이 났으니 결과나 지켜보자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새 싱글 ‘beautiful’의 녹음이 끝나고 숙소로 가려는데, 제임스 추 부장이 우릴 붙잡았다.
“아,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내일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이동하여 공연하는 일정에 ‘USA 투데이’ 기자가 동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USA 투데이면 전국지 아닌가요? 뉴욕 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지역 기반이 아니라, 전국으로 다 뿌려지는 신문으로 알고 있는데, 동행 취재를 온다고요?”
“네 사장님. USA 투데이에서 한류와 K-POP 관련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동행하며 취재를 할 만한 K-POP 그룹이 지금은 우리 밖에 없다 보니 우릴 취재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5박 6일간의 동행 취재입니다.”
“잘되었네요. 새 싱글 출시에 맞추어서 특집 기사를 실어 달라고 하면 되겠네요. 남자 기자 맞죠?”
“이름은 ‘질리언’이라고 했으니 맞겠죠.”
“그럼, 아예 우리 차에 같이 타서 이동하고 밥도 먹고 아예 같이 움직이죠.
한국 K-POP 아이돌을 경험할 수 있게 완전히 밀착해서 보여주면 긍정적인 기사가 나오겠죠.”
“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만난 USA 투데이의 질리언이란 기자는 눈썹과 고티(Goatee:염소)수염까지도 백금발 색을 가진 전형적인 북유럽 사람으로 보였는데, 키도 190에 육박해서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 나는 기자였다.
“기자님, 어제 별도로 트레이닝복을 챙겨달라고 했는데, 챙겨오셨지요?”
“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은 들고 왔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동행 기간 5일 동안 매일 운동을 하는 건가요?”
“운동 이긴 운동인데, 좀 다를 겁니다.
오전 일정으로 노숙자 쉼터의 아침 급식 봉사가 있어서 그쪽으로 먼저 가겠습니다.”
“급식 봉사요?”
“네. 정기적으로 노숙자 쉼터나 학교의 주변 환경 정리 같은 사회봉사 활동을 우리 ESP는 해오고 있습니다.
동행 취재이니 기자님도 같이 하셔야죠.”
처음 만나자마자 노숙자들 쉼터로 옷까지 갈아입고 가게 되자 질리언은 이게 뭔가 싶어 하는 황당한 얼굴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런 얼굴을 보고 웃지 않기 위해 힘들었다.
그 전날, USA 투데이의 질리언기자가 동행 취재를 하러 온다기에 이때까지 적어온 기사들을 보고, 논조라거나 한국 K-POP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와 연관된 기사는 전혀 없었다.
그가 적은 대부분의 기사는 주로 사회문제나 고발이 주를 이루었는데, 비판하는 논조가 주를 이루는 기사들이었다.
아마도, 한류와 K-POP이 미국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면을 찾아보기 위해 우리에게 동행 취재를 요청한 것 같았다.
그래서 멤버들과 예정에 없었던 노숙자 쉼터 자원봉사를 만들었고, 질리언기자를 골탕 먹이고자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릇을 닦고, 감자를 깎고 바닥청소를 하며 힘을 내었다.
“휴, 감자를 깎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를 몰랐네요. ESP는 이런 자원봉사를 자주 하는 겁니까?
다들 일을 하는 게 익숙해 보이는군요.”
“멤버인 유리언은 아르바이트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해봤었고, 다들 자원봉사를 하기 전에는 집에서 햄버거도 안 만들어 먹었죠.
우리가 입고 있는 작업복이 보이시죠? 실밥이 터질 정도로 오래되었어요. 우리 ESP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노숙자 쉼터에 자원봉사를 나오고 있습니다.”
“놀랍군요.”
“네. 저도 미국에 왔을 때 ESP 멤버들을 설득해서 자원봉사에 나오는 게 힘들었습니다.
미국에선 연예인이라면 이런 자원봉사보다 모금 활동 등을 해서 금전적으로 돕는 것이 기본이었으니깐요.
하지만, 보십시오. ESP멤버들은 한국 아이돌들처럼 몸으로 직접 봉사를 하는 걸 택했습니다.
그게 더 보람찬 일이니깐요.”
“그럼 한국의 아이돌은, 아니 연예인들은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는 게 일상적이란 말입니까?”
“네. 당연하죠. 연예인들은 팬들의 사랑이 있어야 연예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겁니다.
팬이 없는 가수나 배우가 존재 가능할까요?
한국의 연예인들은 팬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이렇게 몸으로 직접 갚는 방법을 하면서도 금전적인 성금도 내고 있습니다.”
내가 일부러 핸드폰에서 YAM으로 활동하며 찍었던 봉사 활동사진들을 보여줬다.
“한국의 아이돌은 올바름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의를 가지고 있는 게 미국 아이돌들과는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