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인지도.
“일본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돈을 아이돌에게 많이 쓸 수 있는 30~50대를 대상으로 악수권을 판매합니다.
어린 여자의 성(性)을 가지고 나이든 이성들에게 장사하는 거지요.
한국은 이런 악수회라는 이벤트가 아예 없습니다.
물론 한국도 지역 내 한정 팬사인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음반을 구매해야 하는 조건이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가챠 시스템(Gacha System, ガチャ)으로 운이 좋으면 앨범 1장을 사도 당첨될 수가 있고, 운이 없으면 100여 장을 구매해야 하는 형태일 뿐입니다.”
“사인회 자체가 랜덤 박스 형태이군요.”
“네. 그리고, 한국은 일본의 개인 악수회가 아닌 모든 멤버와 대면을 할 수 있는 방식의 사인회입니다.
멤버 개인의 상품화보다는 팀 전체의 상품화를 추구합니다.
쉽게 말해 멤버 개인과 남녀로 보지 않고, 그룹이나 팀 단위의 문화상품으로 팀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흠, 성적인 남녀 개인 아이돌이 아닌 개인이 구성하여 만들어지는 그룹 전체 콤보(세트) 아이돌로 봐달라는 건가요?”
“네. 그것도 맞지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자면, 한국은 아이돌 그룹을 공연이 포함된 종합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구성,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팀 자체가 문화상품이죠.
그래서 같은 연배인 10대뿐만 아니라 다른 연령대에서도 좋아할 수 있는 겁니다. 상품이니깐요.”
나의 상품이니깐 모든 연령층이 좋아한다는 말에 제이니를 비롯한 4명 모두 이해가 가지 않는지 ‘으응?’ 하는 표정이었다.
“음. 쉽게 예를 들면 미국의 미식축구는 남녀노소를 떠나 모두 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야구나 농구도 있겠지만, 미식축구가 확실히 모든 연령층이 좋아하는 스포츠 상품의 정점일 겁니다.
한국에선 K-POP 자체가 그런 문화상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다 좋아하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죠.
국뽕이라 불리는 애국심이 강한 한국인들은 문화상품인 아이돌과 K-POP을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국가에 도움이 되도록 응원을 하는 것이고요.”
스포츠인 미식축구와 수출 상품을 예로 들자 그제야 다들 한국인의 아이돌과 K-POP 사랑을 이해했다.
“그럼 한국인은 일본과는 다르게 어린 미성년자 멤버가 아닌, 그런 멤버들이 만들어 내는 아이돌 공연 전체를 문화상품으로 본다는 거군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떠나 그 문화상품을 좋아하는 거고요?”
“네 맞습니다.”
케일리의 말에 내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고, 맞다고 답을 해주니 프랭크도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지 물어왔다.
“그럼 신인 아이돌이 새로운 스포츠나 새로운 전자제품과 같다는 거군요.
새 아이폰, 새 자동차, 새 게임기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관심을 가지는것과 같다는 논리라는 거죠...흐음.
이해는 가지만, 왜 그런 상품을 또 국가와 연관시키는 거죠?”
“이건 유교적인 국민성과 관련이 있는데, 미국인이 이해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1990년대 말에 한국이 IMF로 힘들어할 때, 미국에서 활동했던 LA다저스의 박찬호나 여자 골퍼 박세리를 국민적인 영웅으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본다면, 그 둘은 그냥 자신의 직업에서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왜 한국에선 그런 영웅 대우를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맞아. 미국인은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라고 불르지만, 그건 뮤지션으로서의 성과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다고.”
“네 미국은 그렇죠.
하지만, 한국인은 나라가 힘들 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많은 돈을 한국으로 벌어오고 있기에 위인으로 인식을 하고 그들의 성적이 좋으면 나라의 이름도 같이 좋아진다고 생각했던 거죠. 지금도 그렇고요.
그런 힘들 때 국민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으니 당연히 영웅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K-POP 스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에 한국인의 우수성, K-POP이라는 한국인이 완성한 음악을 수출하는 것에 대해서 한국인은 큰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서구문화에선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개인과 나라가 같다고 생각하는 유교문화권에서는 모두 동일한 국민성과 사고방식일 겁니다.”
“흠. 호프 윤 말처럼 그 유교적인 국가론을 알아야 이건 이해할 수 있겠군.
아,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두유노(Do you Know~)’ 하며 김치와 실탄소년단을 물어보는 건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는 자부심을 얻으려고?”
“네 맞습니다.
실제 실탄소년단이 뉴욕의 시티필드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와는 크게 접점이 없는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괜히 뿌듯해하거든요.
그러면서 없던 애정도 생겨서 ‘오! 실탄소년단 좋지!’ 하면서 응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마 이 부분은 서양인들이 공감하기는 힘들 겁니다.”
“흠. 오케이! 이 부분을 미국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는 힘들 것 같아.
클래식 음악계를 최대한 끌어들여야겠어.”
“네 프랭크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 같아요.
방금 핸드폰으로 조금만 살펴봤는데, 이미 10대 후반의 첼리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들 모두 다 무대에 오르고 월드투어를 하고 있어요.
그 공연 자체가 클래식의 문화상품이듯이 우리가 만들 ‘프로듀스99’ 또한 문화상품화 시키는 게 그들처럼 가능할 것 같아요.”
긍정적인 이야길 하는 케일리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프로듀스99를 미국에서 제작하기 위해 SWOT 분석 같은 걸 다 끝냈고, 거기서 나온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 크게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클래식계의 미성년자 연주자들처럼 아이돌도 마찬가지라는 관념을 줘야겠네요.
10살 혹은 그 이전부터 영재 교육을 받으며 춤과 안무, 보컬 연습을 하고 있고, 그런 연습으로 갈고닦은 재능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만들어 보죠.
그런, 무대에 롤리타니 쇼타니 하는 일본의 변태적인 관념을 투영시킨다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하죠.”
스웨인이 질문답변을 정리하듯이 이야길 했다.
“맞아. 같은 10대 소녀의 공연인데, 어떤 공연은 클래식 음악이라고 50대 남자가 좋아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어떤 공연은 50대 남자가 좋아하면 범법자 취급받는 건 없어야지. 같은 문화상품인데 말이지.
좋아. 오늘 점심이 참 뜻깊었습니다.”
프랭크가 벌떡 일어서서 나를 안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케일리와 스웨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흥행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어서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가장 브레이크가 걸린 게 이런 어린아이들에 대한 성 문제 인식이었습니다.
그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제작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이렇게 명쾌한 설명과 예시를 들어 주니 그런 브레이크가 다 없어질 것 같군요.”
스웨인은 당장이라도 제작에 들어갈 것 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호프 윤은 미국판 프로듀서99의 멘토로 참여를 시키고 싶어요. 꼭 참여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든 가겠습니다.”
프랭크와 다시 또 보자는 악수를 하며 헤어졌는데, 멘토 제의는 오늘 무료 컨설팅을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았다.
하긴 한국보다 더 계산적인 미국에서 이런 컨설팅을 듣곤 공짜로 입 딱을 리는 없을 터였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려는데, 제이니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둘이서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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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그 세 사람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게 있어서 다시 만나자고 한 거예요.”
“그들이 알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가요?”
“음. 윤소원이란 인맥 관리를 위해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거라고 정의하죠.
같은 회사 사람이라도, 그 인맥에게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재미가 없으니깐요.”
“오케이. 거기에 제이니씨는 경쟁사에서 굴러온 돌이다 보니 더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그 셋은 같이 일한 지 오래되었지만, 전 이제 두 달여니 숨길 건 숨겨야죠. 후후.”
“그럼 그 정보가 뭡니까?”
마치 비밀 첩보원이 된 것처럼 의자들 가까이 움직여 귀를 기울였다.
“어제 확실하게 이야기 못 해줬지만, 이미 미국판 프로듀스99의 제작을 결정했고, 물밑 작업 중이에요.
그리고, 어제 질문에서 눈치챘겠지만, 여자 편이죠.
아마, 당연하게도 메인MC에는 ‘실탄소년단’이나 ‘싼이’를 내세울 거에요.”
“그럼 어제 프랭크의 섭외 말을 들었으니 저는 아마도 멘토 중 한 명이겠군요.”
“그게..맞으면서도 틀려요.”
“네에? 무슨 문제가 더 있는 건가요?”
“네. 바로 이것 때문에 오늘 보자고 한 거예요. 당신의 인지도 때문에요.”
제이니의 말을 들으니, 어제 프랭크가 한 말을 그대로 믿었던 내가 한심했다.
“프랭크가 제작 총괄책임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가 허언을 한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프랭크는 어제 당신과의 이야기에 아주 만족했고, 당연히 한국판 프로듀스99 출신이라 멘토로 참여하는 것에 아주 긍정적이에요.
문제는 프랭크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에요.”
“미국도 실무진보단 위의 사람들 입김이 더 강한 거군요.”
“훗.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죠 뭐.
제작을 준비하다 보니, 당연히 제작비와 투자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메인 MC에는 실탄소년단 중에서 한 명이 해주길 원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 투자와 광고를 따낼 수 있을 테니깐요.
그래서 위에선 한국식 프로듀스99임에도 멘토에 윌아이엠이나 퍼렐 윌리엄스, 혹은 업타운펑크의 마크 론슨이 참여하길 원해요.”
“광고주들은 당연히 유명한 얼굴들이 나와야 미국 시청자들을 붙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군요.”
“맞아요. 일반인 혹은 데뷔를 했지만, 인기가 없는 신인급의 아이돌 연습생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니 멘토진 만큼이라도 유명인들로 채워야 한다는 논리죠.
뭐, 이것도 다 맞는 말이라 실무진인 프랭크의 힘으로 소원씨를 멘토에 꽂아주기 힘들 거에요.”
제이니의 말에 인기 없는 연예인의 비애를 새삼 느꼈다.
“미국이니 어쩔 수 없겠죠. 한국이었다면 달랐을 텐데. 쩝.”
“정식으로 미국에서 ESP로 활동을 하긴 했지만, ESP 팀 자체가 신인에 빌보드 TOP10에 들지 못한 그룹이니 인지도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런데, 일단 객원 멤버가 아닌 정식 멤버로 ESP에 소원씨가 들어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마도, 제작비와 투자, 광고 문제로 메인 MC에는 실탄소년단의 멤버 중 한명이 오겠지만, 멘토들은 미국 연예인들이 채우게 될 거예요.
아마도 프로듀스99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미국식이 되겠죠.
우리가 처음 생각하고 준비했던 한국식 아이돌을 만들어 데뷔시키는 과정 자체가 다 바뀔 수 있다는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ESP의 멤버이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소원씨가 멘토로 있어야 프로그램이 한국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대로 이야길 나눈 것도 몇 번 안 되는데, 나를 이렇게 높게 평가해 주는 제이니가 고마웠다.
“실제, 방송 판권 문제로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릴 테고, 연습생을 모아서 예선을 거치는 면접에도 시간이 걸릴 거에요.
그 사이에 소원씨가 포함된 ESP가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만들어 준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알아보니, 현재 미국에서 솔로가수로 활동할 계획이 없다고 되어 있던데, ESP에 정식으로 합류해서 성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게 저와 프랭크의 생각이에요.”
제이니의 말을 들으니 내가 고민했던 다른 문제 하나가 바로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